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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67)화 (68/163)

<67화>

“앗, 노공작님도 계시네요!”

타티아나는 노공작을 알은척하며 해맑게 미소 지었다.

노공작이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는 여긴 웬일이냐?”

“아, 저희는 산책 나왔어요, 계속 앉아만 있으니까 지루해서요.”

타티아나가 눈짓으로 뒤를 가리켰다.

저 멀리 아이들이 보였다.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이쪽을, 더 정확히는 지크프리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 그럴 수밖에 없나.’

노공작은 흘끗 지크프리트를 바라보았다.

기본적으로 지크프리트는 인류를 지킨 세 영웅으로서, 인지도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

게다가 최근에 더더욱 세 영웅을 선망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만화 위인전이라고 했던가?’

리즈벳과 볼프렌 남매가 위인전에 코를 박고 읽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표지에 그려져 있던 지크프리트의 강건한 모습도.

노공작에게는 그저, 아비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원망스러운 아들일 뿐이었는데.

지크프리트를 향한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고 있자니…….

‘그래도…… 지크프리트가 옳은 일을 하기는 했다는 건가.’

한편 지크프리트는 의아한 시선으로 타티아나를 내려다보았다.

“타티아나, 날이 쌀쌀한데 왜 숄은 안 걸치고 나왔지?”

“아- 그게요.”

타티아나는 힐끔 기베르티 백작영애를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묘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일마즈 남작영애에게 선물로 줬어요.”

“어째서?”

“글쎄, 일마즈 남작영애의 드레스에 찻물이 튀었거든요. 정말 운이 없었던 것 같아요.”

순간 기베르티 백작영애가 움찔 어깨를 굳혔다.

‘운이 없다.’

그저 별다를 것도 없는 말인데.

마치 그 말에 반응하기라도 한 것처럼.

타티아나가 걱정스럽게 말을 이었다.

“일단 제 숄로 얼룩을 가리라고는 했는데요. 그래도 남작 영애의 드레스가 못 쓰게 된 게 마음에 걸려요.”

“이런, 큰일이군.”

“네. 비단에 진 얼룩은 몇 번씩 세탁을 해도 잘 안 지워진다고 하더라고요.”

타티아나가 포르르 한숨을 내쉬었다.

“새 드레스를 맞추는 건 부담스러울 텐데, 어떡하죠?”

그러고는 들으란 듯이 말을 잇는다.

“저는 좋은 아빠들을 만나서 운 좋게 그런 문제는 겪지 않게 되었지만, 아무래도 남작영애는 사정이 다를 테니까…….”

“고, 공녀님!”

동시에 기베르티 백작영애가 허겁지겁 대화에 끼어들었다.

‘쟤가 갑자기 왜 저러지?’

백작대부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도 그럴 것이, 손녀의 얼굴은 어느새 새파랗게 질려 있었으니까.

“제가…….”

백작영애가 빠득빠득 이를 갈며 입을 열었다.

“제가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순간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이 두 눈을 부릅떴다.

쟤는 드레스 한 벌에 얼마인 줄이나 알고 저렇게 말하는 거야?

“리즈벳, 잠깐만…….”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이 황급히 상황을 수습하려 했으나, 타티아나의 말이 더 빨랐다.

“정말요?”

타티아나가 두 눈을 반짝이며 백작영애를 돌아보았다.

일마즈 남작영애의 표정도 등불을 켠 것처럼 환해졌다.

“제가 착각했네요. 일마즈 남작영애는 저 못지않게 무척 운이 좋은 레이디였어요.”

“…….”

백작영애가 어금니를 꽉 악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타티아나는 눈매를 곱게 휘어 보일 따름이었다.

“그럼 저희는 마저 산책하러 갈게요! 아빠, 노공작님께 화내시면 안 돼요. 아셨죠?”

재차 신신당부를 한 후.

타티아나는 다른 레이디들을 향해 쪼르르 달려가 버렸다.

그렇게 사위가 고요해지고.

다시 한번 지크프리트와 노공작은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

“…….”

그 침묵을 이기지 못하고,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지금 당장 백작대부인이 두 사람을 화해시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래도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은데…….

“그, 그럼.”

두 부자가 나란히 백작대부인을 돌아보았다.

그 눈빛이 마치 ‘아직도 안 갔어?’라고 묻는 듯하다.

백작대부인은 억지로 입술 끝을 밀어 올렸다.

두 분 대화 나누세요. 저는 다른 손님들을 뵈러 가 봐야겠네요.

그렇게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이 총총걸음으로 사라지고.

지크프리트와 노공작 단둘만이 남았다.

두어 번 헛기침을 한 노공작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이가 무척 귀엽더구나.”

“…….”

뜻밖의 말에, 지크프리트가 놀란 얼굴로 제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누그러진 목소리로 대답한다.

“……제 딸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확실히 귀엽기는 합니다.”

“내 눈에도 그래 보인다.”

노공작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게다가 말도 또박또박 잘하는구나. 똘똘해 보이는 게 마음에 들어.”

그 말에 지크프리트는 어쩐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마왕성에서 타티아나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오랫동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던 아이는, 세 용사들을 대할 때마다 살얼음 위를 걷듯 조심스럽게 굴었다.

겁을 집어먹어, 말 한 마디조차 허투루 하지 못했었다.

그랬었는데.

언제 저렇게 유창하게 말을 할 정도로 자라서…….

“마탑주와 대사제도 저 아이를 많이 아낀다고?”

“예, 그렇습니다.”

이미 지크프리트가 법적 아버지 자리를 쟁취했음에도, 여전히 호시탐탐 그 자리를 노릴 정도로 말이다.

지크프리트는 다소 불만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그런 아들을 향해, 노공작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너도…… 네 딸 같았던 때가 있었다.”

뭐?

지크프리트는 제 귀를 의심했다.

노공작은 정원의 먼 곳을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조그만 녀석이 어떻게든 진검을 들어 보겠다며 낑낑거렸었는데.”

“…….”

추억에 젖은 아버지의 얼굴은 무척 부드러웠다.

그 표정이 낯설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싫은 건 아니야.’

지크프리트는 벤치에 몸을 기대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이 아릴 정도로 푸르른 하늘은 타티아나의 눈동자 빛깔을 닮았다.

‘타티아나는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무심결에 그렇게 생각하던 지크프리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타티아나 생각인지.

이게 딸아이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인가.

그렇게 생각하던 지크프리트는, 흘끗 노공작을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께서 내게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지.’

하지만 모처럼 찾아온 이 평화로운 분위기를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여쭙도록 하자.’

지크프리트는 몸의 긴장을 조금 풀었다.

아버지와 단둘이 있으면서 이토록 편안했던 적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 * *

그 시각.

“다들 아까 오를레앙 공작님 보셨죠?”

“그럼요, 너무 멋지시더라고요!”

레이디들은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꺅꺅거리고 있었다.

“공녀님, 정말 부러워요.”

“항상 공작님을 곁에서 뵐 수 있을 것 아니에요?”

지크프리트에 대한 환상이 어찌나 큰지, 나에게까지 부러움의 눈빛을 보낼 정도였다.

‘그, 그 정도인가?’

물론 세 영웅의 인기가 어마어마하다는 건 알지만…….

나는 그냥 어색하게 웃었다.

뭐, 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누군가의 날 선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슬슬 다음 티타임 약속을 잡아야 하지 않나요?”

“…….”

“…….”

기베르티 백작영애였다.

순간 즐겁던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싹 가라앉았다.

‘다들 재밌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굳이 지금 대화의 흐름을 끊어놔야 하나?’

‘조금 이따가 말해도 되잖아.’

레이디들은 제각기 못마땅한 표정이었으나, 그렇다고 백작영애에게 무어라고 불만을 표하지는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백작영애는 나를 힐끔 돌아보았다.

“다음 차례는 공녀님이시겠네요.”

그것까지는 괜찮았다.

새로 온 사람이 다음 티파티를 주관하는 게 규칙이라고는 하니까.

다만.

“다음 티파티 일정은 이틀 뒤로 잡고 싶은데, 공녀님의 생각은 어떠실까요?”

“네? 이틀 뒤요?”

“그건 너무 이르지 않나요?”

나보다도 레이디들이 더 놀라서 백작영애를 바라보았다.

보통 이런 식으로 파티를 준비할 때는, 일주일 정도의 준비 시간을 주고는 한다.

아무리 어린아이들의 티파티라고 해도 이런저런 신경을 쓸 일이 많았으니까.

그러나 백작영애는 그 반응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또한 조심스럽게 추천을 드리자면, 이번 티파티는 외부에서 치르는 건 어떨까 해요.”

그러고는 정말로 나를 위하는 척 말을 덧붙인다.

“그 편이 훨씬 더 색다른 느낌을 줄 것 같아서요. 공녀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

“…….”

레이디들은 그만 떨떠름한 얼굴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외부는 날씨나 벌레 등 실내보다 신경 써야 할 요소가 훨씬 더 많으니까.

그나마 티파티를 열기에 괜찮은 외부장소들은 온실이나 정원 정도였지만…….

“다만 온실이나 정원 같은 곳은 너무 흔하지 않나 싶기는 해요.”

그 장소들까지 모조리 막아 버리면서, 기베르티 백작영애는 생글생글 웃었다.

어떻게든 나를 곤란하게 하겠다는 의도가 아주 노골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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