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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69)화 (70/163)

<70화>

“어, 그러니까…… 나무가 엄청 무성해서 예뻐요!”

“신경 좀 썼지. 그리고 또 뭐가 좋은데?”

“네? 그리고, 그리고…….”

갑자기 나를 피드백 지옥에 가둬 버렸다…….

지크프리트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키리오스를 흘겨보았다.

“타티아나가 난처해하는 것 안 보이나?”

“키리오스, 당신은 하루에 한 번이라도 사고를 안 치면 입에 가시가 돋습니까?”

세자르도 함께 핀잔을 주었다.

키리오스는 억울한 얼굴이 되어 제 친구들을 노려보았다.

“아니, 내가 무슨 사고를 쳤다고? 나는 그냥 꼬마의 취향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그런 것뿐…….”

“웃기지 마세요. 그냥 타티아나 양에게 칭찬을 듣고 싶은 거잖아요.”

“…….”

키리오스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나는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가끔 보면, 세자르는 정말로 세 치 혀로 사람을 찔러 죽일 수 있을 것 같다니까?

때마침 하나둘씩 레이디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음, 다들 옷은 제대로 챙겨 입고 왔네.’

나는 초대장에 미리 움직이기 편한 옷을 입고 오라고 고지해 두었고.

레이디들은 내 말에 충실히 따라 준 것 같다.

나처럼 본격적인 바지 차림은 아니라도, 모두들 여성용 사냥복을 차려입고 있는 모습이 그랬다.

“세상에, 이럴 수가!”

한편 레이디들은 무척 놀한 얼굴이었다.

“어떻게 날씨가 이렇게 화창할 수가 있죠?”

“분명 비가 왔었는데 말이에요!”

신이 난 레이디들이 결계로 가로막힌 하늘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저기 봐요, 저기! 하늘 색깔이 다르잖아요?”

“너무 신기해요!”

그렇게 저들끼리 잔뜩 흥분하여 재잘거리던 중.

“어서 오세요, 다들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내가 인사를 건네자, 레이디들 또한 입을 모아 내게 마주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공녀님!”

나는 종종걸음으로 레이디들에게 다가섰다.

“오늘 제 야유회에 참석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별말씀을요,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저희야말로 영광이지요.”

“저, 사실 마탑 근처에는 처음 와 보거든요.”

“에이, 제국민 중 와 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맞아요, 마탑은 원래 보안기관이잖아요. 저희 어머니가 그러시는데, 마탑은 그 주변까지 모조리 기밀로 지정되어 있대요.”

……그랬었어?

일전에 마탑 구경을 알차게 하고 나온 나는 조금 민망해졌다.

그러던 중.

멀리 세 용사들이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한 레이디들이, 허억 거세게 숨을 몰아쉬었다.

“저기, 저기!”

“세 용사님들이셔……!”

“어떡해, 세 용사님들을 한자리에서 뵐 수 있을 줄이야!”

일전에 지크프리트 한 사람만 먼발치에서 봤을 때도 다들 기절할 것처럼 놀랐었는데.

세 용사를 다 함께 보게 되니 그 반응은 상상 초월이었다.

다만 슬프게도 지크프리트와 키리오스, 세자르는 다소 낯가림이 있는 편이었다.

그나마 세자르는 아이들을 잘 다루는 편이었지만, 굳이 여기까지 와서 인사하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기야.’

나는 힐끗 레이디들을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나라도 저렇게 흥분한 레이디들 근처에 오기에는 좀 무서울 것 같아…….’

나는 레이디들이 진정할 수 있도록, 얼른 화제를 전환했다.

“이 숲은 마탑에서 관리하는 곳이랍니다. 위험하거나 불편한 일이 없도록 미리 숲을 정돈해 두었으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자 레이디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그렇다면 이 숲은…… 마탑주님께서 직접 관리하신다고 봐도 되는 건가요?”

“네? 어, 그렇…… 죠?”

불의의 습격에, 나는 무심결에 대답을 해 버렸다.

그러자 레이디들은 다시 한번 난리가 났다.

“꺄, 정말요?”

“마탑주님께서 이 숲도 관리하신다고 하네요!”

“너무 좋아!”

저 멀리 서 있던 키리오스가, 순간 소스라쳐서 이쪽을 돌아보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둘째 아빠, 미안합니다…….

한편 한참을 세 용사에 대해 재잘거리던 레이디들이, 선망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탑 주변을 개방해 주신 것만도 대단한데, 결계며 환상 마법까지…….”

“마탑주님께서는 공녀님을 정말로 아끼시나 봐요!”

“그냥, 둘째 아빠가 많이 신경을 써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나는 배시시 눈웃음을 지으며, 실수인 척 ‘둘째 아빠’라는 호칭을 입에 담았다.

순간 레이디들의 눈빛이 예리해졌다.

“실례지만, 공녀님께서는 마탑주님도 아빠라고 부르시나요?”

“아차.”

그 질문에, 나는 민망한 표정을 꾸며내며 수줍게 대답했다.

“죄송해요. 평소에 부르던 게 입에 붙었나 봐요.”

“아아…….”

고개를 끄덕이던 레이디가 재차 물었다.

“그렇다면 첫째 아빠랑 셋째 아빠도 있으신가요?”

“아, 오를레앙 공작님이 첫째 아빠, 세자르 대사제님이 셋째 아빠예요.”

“……그러시군요.”

비록 아직 나이가 어리고 천진하다지만, 이들은 모두 내로라하는 귀족가의 영양들.

그러니 이쯤이면 레이디들도 눈치를 챘을 것이다.

날 공식적으로 입양한 지크프리트뿐 아니라, 키리오스와 세자르도 내게 아빠라는 호칭을 허락할 정도로.

나를 아끼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양 생글생글 웃으며, 머릿속으로 바쁘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적어도 함부로 건드리면 난처할 거라는 판단은 섰겠지.’

비록 레이디들은 나와 친근한 관계를 형성하고 싶어 했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앞일은 모르는 거잖아?’

모처럼 나와 아빠들의 친분을 강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니, 이참에 확실히 못을 박아둘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

“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뒤늦게 도착한 세 사람이 있었으니.

기베르티 백작대부인과 백작영애, 그리고 오를레앙 노공작님이었다.

노공작님은 꽤 침착한 얼굴이셨지만, 기베르티 일가는 넋이 나간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는 중이었다.

“왜 갑자기 날씨가 이렇게 화창해진 건데?”

노공작님과는 달리, 기베르티 일가는 그야말로 비에 쫄딱 젖은 생쥐 꼴이었다.

값비싼 드레스는 온통 엉망이었다.

밑단이 흙탕물로 흠뻑 젖은 꼴을 바라보며 나는 혀를 쯧쯧 찼다.

하기야, 비 오는 날에 드레스를 입고 돌아다니는 건 좀 고생스럽긴 하지.

‘잠깐, 드레스라고?’

순간 나는 눈썹을 꿈틀했다.

보호자인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이야 그렇다 치고.

백작영애의 옷차림에서 뭔가 위화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분명 내가 미리 드레스 코드를 알려 줬는데?’

나는 힐끔 다른 레이디들을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내가 제대로 전달해 둔 게 맞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레이디들은 모두 제대로 드레스 코드를 맞춰 편안한 의복을 입고 왔으니까.

그래서 비가 오는 와중에도 크게 젖지는 않았다.

그런데 백작영애의 옷차림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어마어마하게 화려했다…….

‘저걸…… 사냥복이라고 해도 되나?’

보통의 여성용 사냥복은 재킷과 셔츠, 그리고 발목까지 닿는 스커트로 구성된다.

뭐, 드물게 나처럼 바지를 입는 사람도 있고.

활동하기 편하도록 장식들은 최대한 간소하게 넣는 편이었다.

하지만 백작영애가 입은 드레스는 말만 사냥복이지, 거의 파티용 드레스에 가까웠다.

풍성하게 주름을 넣어 부풀린 치맛자락, 주렁주렁 매달린 리본 장식, 값비싼 레이스 소맷자락까지.

어떻게든 나를 값비싼 옷차림으로라도 눌러보겠다는 의지가 돋보인다.

“오늘 드레스 코드는 편한 의복 아니었나요?”

“저건 좀…… 예의에 어긋나는 일 같은데.”

이상을 느낀 레이디들이 저들끼리 조그맣게 속닥거렸다.

하지만 난 별다른 불만은 표하지 않았다.

‘으음, 저 옷차림으로는 오늘 꽤 불편할 텐데.’

그저 그 정도 생각만을 할 뿐.

어쨌든 기베르티 일가야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오를레앙 노공작님은 무척 반가웠기에.

“잠깐만요, 노공작님께 인사를 드리고 올게요.”

나는 레이디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그쪽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어서 오세요!”

“그래, 좋은 아침이구나.”

가장 먼저 내게 인사해 주신 분은 바로 노공작님이셨다.

‘이거, 좋은 신호라고 해석해도 되는 거지? 그렇지?’

나는 방긋 미소 지었다.

“네, 좋은 아침이에요! 노공작님께서는 간밤에 편안하게 주무셨어요?”

“그럭저럭 괜찮았다. 너는 어떠했느냐?”

“저도 잘 잤어요!”

해맑게 대답하자, 노공작님의 얼굴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동시에 어색한 인사가 들려왔다.

“오셨습니까, 아버지.”

“…….”

노공작님이 흘끗 뒤를 돌아보셨다.

어느새 지크프리트가 등 뒤에 다가와 있었다.

노공작님께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셨다.

“그래, 지크프리트.”

두 부자는 겸연쩍게 서로를 마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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