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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72)화 (73/163)

<74화>

딸깍.

나는 버튼을 다시 눌렀다.

대화가 뚝 끊어지고.

사위는 찬물을 끼얹은 듯 다시 한번 고요해졌다.

“이곳은 마탑의 영지고, 마탑은 둘째 아빠…… 아니, 마탑주님의 영역이죠.”

경악한 레이디들을 향해, 나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갖가지 안전상의 문제 때문에, 마탑과 그 주변에서 있었던 일은 모조리 기록하는 게 원칙이에요.”

“참고로 지금은 음성만 따 왔지만, 영상도 남아 있습니다.”

라키어스가 유쾌한 어조로 설명을 덧붙였다.

“또한 키리오스 스승님께서는, 마탑의 영역에서 이런 문제가 벌어진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시한다고 전해 달라 하시더군요.”

“…….”

“…….”

레이디들이 경멸에 찬 눈초리로 기베르티 백작영애를 바라보았다.

“기베르티 백작영애께서 공녀님을 도둑으로 몰려고 한 게 사실이었네요.”

“저는 그냥 백작영애께서 오해한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곳곳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가 알기로, 남작영애의 드레스는 이미 보상해 주기로 이야기가 끝난 것 아니었나요?”

“설마 그것까지 입을 싹 씻어 버리려고 한 거예요?”

그렇게 분위기가 최악으로 치닫고 나서야.

“이, 이건 다 거짓말이에요!”

백작영애가 발작적으로 외쳤다.

“마탑주께서 공녀를 아끼시는 건 모두가 다 알고 있잖아요. 지금도 노골적으로 공녀를 편들고 있……!”

하지만 백작영애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내가 중간에 가로막았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그냥 들어 넘기지 못하겠는데요, 기베르티 백작영애.”

나는 차갑게 백작영애를 노려보았다.

“설마 인류를 구원하신 세 영웅이신 마탑주께서, 제 편을 드시느라 객관적인 시각을 잃었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 그런 뜻이 아니라!”

“마탑주께서는 그저 저희에게 증거를 내주신 것뿐이에요. 그 증거를 통해, 저는 도둑이라는 누명을 벗었고.”

나는 흘끗 일마즈 남작영애를 곁눈질로 가리켰다.

“또한 일마즈 남작영애도, 백작영애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어요.”

“고, 공녀님!”

“그런데도 감히 그딴 식으로 말씀하시나요?”

나는 재차 말을 이었다.

“기억하시나요, 백작영애? 저더러 아주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셨지요.”

“네? 아니, 그건…….”

“비록 밑바닥 인생이었지만, 그래도 동정심 많은 세 용사님들을 만나서 구원받았으니 다행이라고요.”

기베르티 백작영애가 내게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며, 나는 생긋 눈웃음을 지었다.

“몇 번이나 용사님들의 동정심을 강조하시기에, 저는 백작영애께서도 그분들의 선량한 마음씨를 본받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건…….”

나는 말끝을 흐리며, 측은한 눈빛으로 백작영애를 바라보았다.

백작영애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언제 폭발하려나?’

나는 속으로 초를 셌다.

‘1, 2, 3…….’

그리고 딱 3초 만에, 백작영애가 폭발했다.

“제가 없는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지금 그걸 말꼬투리 잡아서 절 모욕하는 거예요?!”

정말, 바보 같기는.

나는 내심 조용히 웃었다.

나라면 일단,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발뺌부터 할 텐데 말이야.

아무리 화가 나서 이성을 잃었다지만, 자기가 진짜 저런 말을 했다고 인정해 버리다니.

아직 나이가 어리긴 어린가 봐?

동시에 라키어스가 나를 돌아보았다.

“저게 무슨 말입니까, 오를레앙 공녀?”

어느새 붉은 눈동자에 바짝 날이 서 있었다.

“정말로 기베르티 백작영애가 공녀께 ‘밑바닥 인생’ 운운한 겁니까?”

……어째 당사자인 나보다도 라키어스가 훨씬 더 화가 나 보이네?

하기야 나라도, 내 친한 친구가 저런 말을 들으면 참을 수 없을 테니까.

게다가 저런 반응은 라키어스뿐만이 아니었다.

“세상에, 공녀님께서는 저 막말을 듣고도 여태까지 참아 주신 거예요?”

“정말 놀랍네요. 저라면 참지 못했을 텐데…….”

주변 반응은 실시간으로 싸늘하게 얼어붙고 있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백작영애 입장에서는 최악일 텐데, 이 상황에 쐐기를 박는 목소리가 들려왔으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

……어라, 이 목소리는?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오를레앙 노공작님께서 경악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계셨다.

그 뒤로는 지크프리트와 키리오스, 세자르가 흉흉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사실이냐? 리즈벳이 너더러 밑바닥 인생이라고 했어?”

노공작님께서는 사나운 기세로 내게 캐물으셨다.

“아, 아뇨! 저는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린 백작영애는 오리발을 내밀려 했으나, 모조리 허사였다.

“시끄럽다!”

노공작님께서 노호를 터뜨리신 거다.

“누가 너더러 사람을 그렇게 차별하라고 가르쳤더냐! 어찌 그리 천박하게 굴 수가 있어?!”

“오, 오라버니!”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이 허겁지겁 노공작을 만류하려 했다.

그러나 그건 최악의 대응이었으니.

“너는 도대체 손주들을 어떻게 가르치는 게냐?”

불똥이 백작대부인에게로 튀고 만 것이다.

“아니, 그게…….”

“리즈벳도 벌써 열다섯 살이다! 최소한 할 말 못 할 말 정도는 가려야 하지 않겠느냐?!”

노공작님께서는 그야말로 성난 호랑이 같았다.

백작대부인은 차마 변명조차 하지 못하고 쩔쩔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최근 기베르티 일가를 대하며 쌓였던 체증이 쑥 내려가는 듯하다.

‘하, 정말 속 시원하네!’

팝콘이라도 품에 끌어안고 보면 딱 좋을 텐데.

그렇게 내심 아쉬워하던 중.

노공작님이 나를 돌아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넌 괜찮으냐?”

노공작님께서는 정말로 미안한 표정이셨다.

“내가 리즈벳 대신 사과하겠다. 리즈벳이 아직 철이 덜 들어서…….”

아하, 그렇구나.

나는 두 눈을 깜빡였다.

기베르티 백작영애 때문에 내가 상처받았을까 봐 마음을 써 주시는 거구나.

솔직히 이렇게까지 배려해 주실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 했는데.

이런 부분까지 정말 지크프리트와 닮았다니까?

뭐, 솔직히 마음이 아프기는커녕.

오히려 기베르티 일가에게 한 방 먹여 준 게 속이 시원하지만…….

“아니에요.”

이왕 노공작님께서 오해하신 상황이니까.

나는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받은 척, 가련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론 저는 기베르티 백작영애와 좋은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그래도 제 마음을 강요할 수는 없으니까요.”

“…….”

“제가 여태까지 친구를 가져 본 적이 없어서…… 조금 기대하기는 했지만.”

나는 일부러 아련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도 저는 괜찮아요.”

내 대답에, 노공작은 물론이고 세 아빠들까지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좋아.’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겉으로는 계속 아련한 미소를 유지했다.

“오히려 노공작님께서 저를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그러자 노공작님께서 정색을 하셨다.

“어째서 나를 노공작님이라고 부르느냐?”

“네? 그거야…….”

“너는 지크프리트의 딸이지 않느냐. 그렇다면…….”

잠시 말끝을 흐리던 노공작님께서, 다소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을 맺으셨다.

“……마땅히 날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함이 옳다.”

“…….”

순간 지크프리트가 놀란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아, 솔직히 나도 정말 놀랐다.

저 엄격하던 노공작님께서 내게 저렇게 말씀해 주실 줄이야?

‘하지만 놀란 건 놀란 거고.’

나는 속으로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모처럼 노공작님께서 내게 마음을 여셨는데,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나는 기대감으로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노공작님을 올려다보았다.

“정말로…… 제가 할아버지라고 불러도 괜찮으신 거예요?”

“그럼, 당연하지.”

노공작님께서는 커다랗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는 해맑게 미소 지었다.

다만 문제는, 갑자기 코가 간질거려 왔고.

“할아버지! ……엣취!”

그래서 난 말을 잇다 말고 조그맣게 재채기를 했다는 점이다.

순간 난 보았다.

세 아빠와 라키어스는 물론이고, 노공작님까지 두 눈을 번뜩이며 이쪽을 휙 돌아보는 것을.

“어디 아파, 꼬마?!”

“티티 양, 괜찮습니까?!”

“일단 이리 와라,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마시고……!”

당장이라도 나를 이불로 둘둘 싸매서 타운하우스로 들여보낼 것 같은 아빠들의 반응은 그렇다 치고.

“혹시 추우십니까, 오를레앙 공녀? 일단 제 옷이라도 벗어 드릴까요?!”

라키어스의 과도한 반응도 이제 꽤 익숙해졌다.

그러나.

“이런, 얼른 타운하우스로 돌아가야겠구나. 아이가 몸이 약하다고 들었는데.”

노공작님, 아니, 할아버지까지 이렇게 수선을 피우실 줄은 몰랐는데?

어리둥절해하던 것도 잠시.

……그래도 할아버지의 이런 반응은 어찌 보면 기회일지도?

“그럼 할아버지께서도 우리랑 같이 타운하우스로 가시는 거죠?”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노공작에게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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