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76)화 (77/163)

<78화>

‘좋아!’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그러자 세자르가 아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티티 양, 다시 생각해 줄 수는 없을까요? 지크프리트를 떼어 놓고 우리끼리 재밌게 놀 수 있을 절호의 기회예요.”

그러자 지크프리트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꾸했다.

“세자르, 너 오늘 타운하우스에 방문하겠답시고 신년 연설조차 생략했다며?”

“…….”

“아까 대신전에서 연락이 왔다. 마차는 언제든 대기되어 있으니, 돌아갈 거라면 편하게 말하도록.”

“…….”

세자르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동시에,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던 키리오스가 내게 권유했다.

“꼬마, 오랜만에 마탑에 놀러 오는 건 어때?”

“요새 마탑에서의 폭발 사고는 좀 어떤가? 잠잠한가?”

지크프리트가 덤덤하게 질문을 던졌다.

“……이 자식이.”

키리오스는 분한 얼굴로 지크프리트를 노려보았으나, 차마 반박을 하지는 못했다.

나는 조금 어리둥절해졌다.

아니, 언제는 공작령에 혼자 다녀오겠다고 했으면서.

이 철벽방어는 도대체 뭐람?

* * *

며칠 후.

나는 공작령으로 내려가는 마차 앞에서, 사람들의 배웅을 받고 있었다.

“잘 다녀와라, 꼬마.”

“몸조심해요. 알았죠?”

키리오스와 세자르는 못내 아쉬운 얼굴로 내게 인사했다.

“다녀올게요! 아빠들도 제가 없는 동안 몸 건강히 있어야 해요!”

나는 두 사람에게 번갈아 가며 꼭 안겼다가 떨어졌다.

그러자 라키어스가 양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편지할게, 라키.”

그렇게 말한 후에야, 라키어스의 어깨에 조금이나마 힘이 돌아왔다.

‘아니, 누가 보면 몇 년간 못 보는 줄 알겠어.’

나는 피식 웃으며 라키어스의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내가 보고 싶어도 울지 말고. 알았지?”

“…….”

끄덕끄덕.

라키어스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이럴 땐 반박을 해야지.

내 농담에 동조하고 있으면 어떡해?

때마침 지크프리트가 걱정스레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라키어스의 교육 스케줄은…….”

“걱정 마.”

키리오스가 지크프리트를 향해 씩 눈매를 휘어 보였다.

“너 없는 동안, 라키어스 녀석은 우리가 잘 굴려 놓을 테니까.”

……어째 저 미소가 사악하게 보이는 건 착각일까?

“…….”

그렇지 않아도 시무룩했던 라키어스는, 더더욱 시무룩해지고 말았다…….

세자르가 냉큼 맞장구를 쳤다.

“하기야, 티티 양이 매번 감시하는 통에 제대로 굴리지를 못했었죠?”

“맞아, 꼬마가 자리를 비우는 이때가 기회라고.”

키리오스와 세자르는 아주 흡족해 보였다.

나는 안쓰러운 시선으로 라키어스를 바라보다가,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그, 잘 살아남아야 해, 라키어스!’

마지막으로 노라가 내게 다가왔다.

내 옷매무새를 꼼꼼히 살피더니, 나를 꼭 끌어안는다.

“아가씨, 정말 보고 싶을 거예요.”

“나도. 얼른 다녀올게, 알았지?”

그 인사를 끝으로, 나는 마차에 올라탔다.

처음으로 지크프리트의 고향을 방문한다는 기대감.

……그리고 정말로 마족의 흔적을 맞닥뜨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두 감정이 뒤섞여 심장이 쿵쿵 뛰었다.

* * *

“우와아!”

나는 두 눈을 빛내며 마차에 찰싹 달라붙었다.

기나긴 마차 여행 끝에, 나는 마침내 오를레앙 공작령에 도착할 수 있었다.

‘듣기로, 오를레앙 공작령의 별명은 북부의 심장이라지?’

길을 오가는 깔끔하게 차려입은 사람들.

잘 정돈된 거리.

마차가 달리는 데 무리가 없도록 널찍하게 뻗은 거리까지.

그 별명이 잘 어울리는 번화한 풍경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공작령 구경에 심취해 있던 중.

나는 번쩍이는 거리의 건물들 중에서도 유난히도 화려한 건물을 목격했다.

“린츠 의상점……?”

무심결에 간판의 이름을 따라 읽자, 할아버지가 얼른 아는 척을 했다.

“아, 린츠 상단의 의상점을 말하는 게냐?”

“린츠 상단이요?”

“오를레앙 공작가와 주로 거래하는 상단이란다. 요새는 카롤링거의 물자 공급도 함께 맡고 있지.”

아,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를레앙 공작령은 옛 카롤링거의 영토, 더 정확히는 카롤링거의 수도였던 카를로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원작에서도 똑똑히 기재되어 있었다.

마계의 침공 이후로도 카롤링거가 계속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제국 북부의 중심인 공작령이 계속 지원해 줬기 때문이라고.

실리적으로는 마계와 맞닿아 있는 카롤링거가 무너지면 공작령도 위험해졌고.

인도적으로도 마계의 폭거에 분연히 맞선 카롤링거 국민들을 도와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지크프리트는.’

나는 지크프리트를 곁눈질로 힐끔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마족에게 대항하겠다는 결심을 한 게, 카롤링거에서 쏟아져 나온 난민들을 목격해서였지?’

특히 카를로는 마족들과 맞붙는 최전선이었기에, 전쟁 피해자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지크프리트가 놀란 목소리로 할아버지에게 물어보았다.

“아버지께서…… 카롤링거를 지원하고 계셨습니까?”

“왜, 지원하면 안 되느냐?”

할아버지께서 다소 시큰둥한 어조로 대꾸하셨다.

지크프리트는 이채 서린 눈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그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흥.”

할아버지는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

“…….”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는 지크프리트와 할아버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제각기 골똘히 생각에 빠진 얼굴이었다.

잠시 후.

제도와 비견해도 모자람 없는 도시의 정경을 보며, 지크프리트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께서 무척 고생하셨겠습니다.”

“됐다. 다섯 마왕과 직접 싸웠던 너만 하겠느냐.”

뚱하니 대답한 할아버지께서 재차 핀잔을 주었다.

“그보다, 너는 가주라는 녀석이 내가 카롤링거를 지원하는 줄도 몰랐느냐?”

그 핀잔에, 지크프리트는 머쓱한 얼굴이 되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공작령에서 정기적으로 올라오는 예산안에는 그 부분이 기록된 적이 없어서…….”

그렇게 대답하던 지크프리트가 문득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그런데 카롤링거는 황실 직할령에 속하니, 지원을 해 주려면 황실의 허가를 받아야 가능하지 않습니까? 황실에서 파견한 영주, 혹은 황족이 아니면 직접 지원은 불가능하잖아요?”

“공작가의 공식 자금이 아니라, 개인의 사비로 상단을 통해 물자를 지원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아니, 공식 예산안도 아니고 아버지의 사비 지출까지 제가 알 수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지크프리트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정곡을 찔린 할아버지가 괜히 언성을 높였다.

“그래도 가주라면 응당 알았어야지!”

“아니, 말씀도 안 해 주셨는데 제가 어떻게 압니까?”

지크프리트가 재차 캐물었다.

“게다가 린츠 상단으로 주거래 상단은 언제 바꾸셨습니까? 주거래 상단을 바꾸실 거라면 가주인 제게도 말씀을 해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네가 마계로 떠난 후 바꿨다! 네가 멋대로 소가주 자리조차 내팽개치고 떠났는데, 어떻게 미리 알릴 수 있단 말이냐?”

“그, 그건…….”

잠시 말문이 막혔던 지크프리트가 억울한 얼굴로 항변했다.

“왜 이야기가 거기까지 갑니까? 그러는 아버지께서도 제가 마계로 떠나자마자 제게 공작위를 이양하셨잖습니까.”

“그게 뭐가 문제가 되느냐? 내가 내 아들한테 공작위를 물려준다는 게 뭐가 어때서?”

“적어도 저한테 언질부터 주셨어야지요!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제국으로 돌아왔을 때 제가 공작이 됐다는 소리를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십니까?”

“아니, 당연히 물려받을 공작위를 조금 일찍 물려받는 게 그렇게 억울해? 네가 일찍 공작이 되어야 기베르티 고놈들도 헛물을 켜지 않을 것 아니냐!”

“그 소리가 아니라는 건 아버지께서도 잘 아시잖습니까!”

두 사람은 그렇게 다시 말다툼을 시작했다…….

다만 지크프리트가 계속 수세에 몰리는 것을 보아하니, 이번에는 할아버지께서 승기를 잡으신 것 같다.

그래도 예전처럼 정말로 날을 세우기보다는, 그냥 말다툼에서 지지 않겠다는 오기에 가까워 보여서.

‘저 정도면 그냥 둬도 되겠지?’

피식 웃은 내가 흘끗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건 그렇고, 마기는…… 느껴지는 건 없는데.’

마기는 흔적조차 없었다.

이래 봬도 나는 마왕이고, 그러니 당연히 세상에서 제일 마기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그런 내게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크프리트도 저렇게 말다툼에나 열중하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아무것도 감지하지 못한 것 같지?

‘하지만 겨우 이 정도로 안심할 수는 없어.’

나는 자꾸만 느슨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상대는 ‘그’ 바르톨로아 일족이지 않은가.

‘조심해야지.’

나는 두 눈에 바짝 날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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