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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78)화 (79/163)

<80화>

한편 농민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는 지크프리트를 바라보았다.

“헉, 도련님! 아니, 아니지. 공작님!”

그러고는 후다닥 지크프리트 쪽으로 다가온다.

“돌아오셨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아이고, 그새 이렇게 훤칠해지셔서는, 제가 처음 공작님을 뵈었을 땐 요만하셨는데…….”

농민이 제 허리를 손짓으로 가리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어째 다들 내 어린 시절을 너무 잘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

한편 지크프리트가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농민이 제 가슴팍을 쭉 펴 보였다.

“당연하죠. 무려 다섯 마왕을 토벌하신 용사님의 어린 시절인데요. 멀리 사는 제 친척에게까지 자랑했답니다.”

“……그랬군.”

지크프리트는 어쩐지 피로한 얼굴이 되어 고개만 끄덕였다.

동시에 농민이 힐끔 날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쪽 분은…….”

“내 손녀일세.”

할아버지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아하, 공녀님을 뵙습니다.”

농민이 눈을 한껏 휘며 미소 지었다.

눈가에 자글자글하게 잡히는 주름이 푸근한 느낌을 준다.

“우리 공녀님을 처음 뵈었는데, 드릴 것도 없고…….”

한참 안절부절못하던 농민이 얼른 내게 질문을 던졌다.

“아, 그렇지. 혹시 사과 좋아하십니까? 작년 늦가을에 수확한 건데 아주 답니다. 제가 지금 당장 드릴 것이 이것밖에 없어서…….”

그러자 곁에 서 있던 푸근한 인상의 아주머니 한 명이, 농민의 등짝을 철썩 소리가 나도록 내리쳤다.

“에이, 사과는 무슨 사과? 공녀님께서는 좋은 것만 드실 텐데.”

“아녜요, 주시면 감사히 받을게요.”

나는 방긋 웃어 보였다.

사과를 주겠노라고 제안하면서도, 정말로 내가 그를 받을 거라고는 예상을 못 했는지.

“어…….”

농민이 두 눈을 껌뻑이다 말고, 어깨에 메고 있던 자루를 얼른 내렸다.

자루 안에서 사과 한 알을 꺼내어 옷자락에 쓱쓱 닦아서 내민다.

“여, 여기 있습니다.”

새빨간 사과가 반질반질하게 윤이 났다.

“잘 먹을게요!”

나는 사과를 커다랗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아삭거리는 사과의 단맛이 기분 좋게 입 안을 채웠다.

지크프리트와 할아버지가 그런 나를 흐뭇한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 * *

그렇게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본 후.

마차를 타고 이동하던 나는, 린츠의 간판을 단 조그만 가게를 목격했다.

갖가지 채소와 염장고기, 소시지, 향신료 등을 파는, 마을마다 하나씩은 있는 식료품점이었다.

‘어제부터 묘하게 린츠 상단이 자주 보이는 것 같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그렇게 몇 군데의 마을을 더 거쳐.

우리는 중산층이 사는 번화가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나는 익숙한 가게를 또 하나 목격했다.

‘또 린츠야!’

아까 전에는 식료품점이었으면 이번에는 잡화점이었다.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살 법한 고급 잡화들을 주로 판매하는 가게였다.

‘아니 이건 뭐…… 거의 독점 느낌 아니야?’

뭐랄까, 다른 가게들도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린츠 상단의 가게들이 독보적으로 많은 느낌이랄까…….

타 상점들에 비해 대부분 대형이었고.

특히 식료품과 잡화, 의복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판매하고 있어서 더더욱 그랬다.

‘어라?’

그러던 중.

문득 스치는 위화감에,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저렇게 큰 상단이 원작에서 단 한 번도 언급이 안 됐다고?’

오를레앙 공작성도 린츠 상단의 물건을 받아 쓰고 있다고 했고.

심지어는 린츠 상단을 통해, 카롤링거에게 물자 공급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아빠, 린츠 상단 가게가 엄청 많은 것 같아요!”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렇게 물어 보았다.

그러자 지크프리트 대신 할아버지가 끼어들어서 대답해 주셨다.

“그럴 만도 하지. 요 몇 년간 무섭게 성장했으니 말이다.”

뚱한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지크프리트를 무시하며, 할아버지가 재차 말을 이었다.

“납기 일정도 잘 맞추고 가격도 합리적이어서, 우리 외로도 거래하는 가문이 많다.”

“아,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은근슬쩍 할아버지에게 물어보았다.

“저, 그럼 가게 구경 한 번 해 봐도 돼요?”

“그래라. 갖고 싶은 게 있다면 하나 사 주마.”

“네!”

우리는 마차에서 내려 잡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딸랑-

경쾌한 종소리가 울렸다.

중산층이 주로 오가는 가게답게, 잡화점 내부는 무척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다.

공작가의 마차를 알아봤는지 후다닥 점원이 달려왔다.

“어서 오십시오! 저, 무언가 찾으시는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닐세. 손녀가 가게를 구경하고 싶다고 해서 잠시 들른 거라네.”

“아, 예.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말씀 주십시오.”

그렇게 점원이 물러가고.

우리는 느긋하게 가게를 돌아보았다.

그러던 중.

나는 무심결에 인형 하나를 집어 들고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흡사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내 손에 들린 인형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타티아나, 이 인형이 마음에 드느냐?”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박력이었다.

그 기세에, 나는 조금 움츠러들어 중얼거렸다.

“귀, 귀엽기는 한데…….”

“사 주랴?”

“아니다, 타티아나. 내가 사 주마.”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던 지크프리트도 은근슬쩍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대번에 도끼눈을 떴다.

“내가 손녀한테 장난감 하나 사준다는데. 왜 네가 끼어드는 게냐?”

“그렇게 치면 저는 타티아나의 아버지입니다. 딸아이에게 장난감을 사 주는 게 이상합니까?”

그렇게 두 부자는 아웅다웅 말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내가 허겁지겁 두 사람을 만류했다.

“괘, 괜찮아요. 인형 필요 없어요. 어차피 집에 많은걸요.”

“뭐? 인형이 필요 없다고?”

“그래도 하나쯤 사면 좋을 텐데.”

그러자 이상하게도, 할아버지와 지크프리트 모두 못내 풀이 죽은 얼굴이 되어 버렸다…….

결국 나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할아버지, 아빠. 사탕 드실래요?”

내 세 아빠가 토라졌을 때의 특효약.

간식 나눠주기!

그 효과는 굉장해서, 두 부자 모두 사탕 하나를 입에 물자마자 표정이 풀어졌다.

‘정말, 혹시 몰라서 간식을 미리 갖고 나오기를 잘했지.’

나는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끔 어른들도 정말 유치하다니까?’

그건 그렇고…….

나는 가게 안을 커다랗게 휘둘러보았다.

수상한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고급품을 취급하는 잡화점이었다.

다만 저 멀리 서 있던 점원이, 내가 집어 들었던 인형을 유심히 바라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망가뜨렸을까 봐 걱정하는 건가?’

너무 걱정 마세요, 점원 언니.

제가 비록 몸은 열한 살이지만, 정신연령은 그보다 훨씬 높답니다.

장난감을 욕심내다가 망가뜨릴 나이는 이미 지났다고요.

나는 점원을 향해 관대하게 웃어 주었다.

* * *

그렇게 영지 시찰을 마치고.

공작성으로 돌아온 우리는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린츠 상단주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상단주에게? 무어라고?”

할아버지가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오랜만에 도련, 아니, 가주님께서 돌아오셨다고 하시니, 노공작님도 뵐 겸 한 번 인사를 드리러 찾아뵙고 싶다고 합니다.”

“뭐…… 그건 마음대로 하라고 하고.”

할아버지가 힐끔 나를 내려다보았다.

“마침 잘됐군. 그 자리에는 우리 타티아나도 함께 합석하도록 하지.”

어라, 나도?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외부손님을 함께 맞이하는 것 자체가, 나를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해 주는 행동이었으니까.

“헤헤.”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나는 할아버지의 옷깃을 꼭 붙들고 얼굴을 파묻었다.

“이런, 왜 갑자기 어리광인 게냐.”

입으로는 타박을 하시면서도,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금세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내 정수리를 가만가만 토닥이시는 할아버지를 향해, 집사가 재차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약속은 언제로 잡을까요?”

“내일 점심은 어떤가?”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회신을 해 두겠습니다.”

집사 아저씨는 다시 한 번 묵례를 하고 떠나갔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은근슬쩍 나를 내려다보았다.

“정말로 인형은 필요 없느냐? 지금이라도 내가 린츠 상단주에게 부탁해서 하나 갖다 달라고 말하면?”

“네, 필요 없어요.”

나는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아니, 그럴 거라면 기껏 인형을 사지 않은 보람이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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