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81)화 (82/163)

<85화>

“그리고…….”

흡사 벌레를 보는 듯 무감정했던 금안 안으로, 처음으로 불길이 일었다.

만물을 살라먹을 것처럼 사나운 불길이었다.

“내 딸의 목숨을 위협한 죄.”

고, 공녀의 목숨을 위협했다고?!

머리에 피가 통하지 않아 어지러운 와중에도, 토마스는 아연해졌다.

자신은 그저 신사가 건네 준 몇 가지 물건들을 유통한 것뿐이다.

고작해야 몇 가지의 사치품.

그깟 것들이 누군가의 목숨을 위협할 리 없다.

게다가.

‘도, 도대체 그 물건들에 대해 어떻게 알게 된 거야!?’

그 신사는, 저 물건들을 절대로 들키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었는데!

“타티아나가 이 자리에 있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공…… 공작…….”

“그 아이에게 흉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있어서 말이야.”

지크프리트는 평소 인류를 구원한 용사답게, 언제나 올바른 행동을 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여력이 나지 않았다.

당장 눈앞의 이 남자를 찢어 죽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지크프리트의 이성은 끊어지기 직전이었으니까.

“타티아나가 무척…… 고통스러워했어.”

그 사실을 되새기자마자, 다시 한번 손아귀에 지그시 힘이 들어갔다.

“커억!!”

토마스의 두 눈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런 토마스를 향해 지크프리트가 빙긋 웃어 보였다.

깨진 유리조각처럼 날카로운 미소였다.

“자네가 내게 알려 줄 것들이 참 많을 것 같아. 그렇지 않나?”

* * *

그 후.

공작가에 있던 린츠 상단의 물건들을 다 폐기하자, 내 몸은 순식간에 회복했다.

“……조금만 더 빨리 린츠 상단에 대해 알았더라면.”

지크프리트는 못내 애틋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네가 아프지 않았어도 되는데.”

“에이, 괜찮아요.”

나는 지크프리트를 향해 방긋 웃어 보였다.

“그래도 마족들의 꼬리를 잡았잖아요? 저는 그걸로 충분해요.”

“그래도…….”

“이제 이 이야기는 그만해요. 네?”

지크프리트는 여전히 미안한 얼굴이었으나, 난 진심이었다.

그렇잖아?

이번 일로 바르톨로아가 암약하고 있음이 밝혀졌는걸.

물론 세 용사들은 바르톨로아의 존재까지는 모를 테지만, 마족들을 본격적으로 경계할 계기가 만들어진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앞으로도 내 목숨을 건사하기 위해서라도, 세 용사들 옆에 꼭 붙어 있어야지!

……여하튼.

조사 결과, 여러 가지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키리오스의 말에 따르자면, 다행스럽게도 공작령에 뿌려진 마도구들은 살상용은 아니었다.

도청 용도로 개발된 마도구로, 정보를 수집하는 데 사용했던 것 같다고.

그리고 마기를 감추기 위해 특이한 술식이 걸려 있는데.

그 술식은 바로, 일정 이상의 마력, 혹은 신성력을 품은 사람이 근처에 있을 시 고유의 마기가 감춰지는 것이다.

그 기준은 대략 마탑의 평범한 마법사, 혹은 평범한 신관 정도이며.

강한 자일수록 그 술식이 강력하게 발현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첫째 아빠랑 할아버지가 마기를 느끼지 못한 것도 이해가 가.’

첫째 아빠는 거의 초월자에 가깝고, 할아버지도 마족과 인간을 통틀어 상당한 강자이니까.

게다가 일전에 할아버지께서는, 마기를 감지하는 순간 기척이 사라졌다고 말씀을 하셨었는데.

‘그것도 저 술식의 영향일 거야.’

할아버지는 초월자급의 강자는 아니니까,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마기를 감지한 그 순간 술식이 발동된 거겠지.

다만 내가 마기를 감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난 약해빠진 반인반마니까.’

너무 연약한 탓에, 술식이 발동되는 조건조차 갖추지 못했지만.

어쨌든 마왕이기는 하니까, 물건들에 내재된 그 미약한 마기에도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내가 앓아누운 이유가 마기를 감지해서인 줄도 모르고, 그냥 마기 폭주로 착각했었지만 말이다.

‘내 무능력함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니, 참…….’

나는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쨌든 린츠 상단이 납품했던 거의 모든 영지에서 저 염탐용 마도구가 발견되었다.

다만 저 마도구를 어떻게 입수했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는데.

정확히는 추적을 해 봤지만 중간에서 뚝 끊겨 버렸다고 했다.

린츠 상단주도 전혀 아는 게 없었다고.

뭐, 내가 아는 바르톨로아라면 여기서 꼬리를 밟히는 게 훨씬 더 이상하긴 하다.

“이 일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지크프리트의 질문에, 할아버지가 턱을 쓸어내리며 고민에 잠겼다.

“이것 참, 어려운 문제구나.”

“……그렇죠.”

지크프리트도 눈살을 찌푸렸다.

실제 마족이 발견된 게 아니라, 고작해야 염탐용 마도구들이 발견된 것뿐이니까.

‘물론 염탐용 마도구도 엄청 심각한 일이기는 한데.’

그래도 마족이 실제로 나타나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니까 말이다.

“어쨌든 이 문제를 외부에 알리기는 해야 한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마족과 전쟁이 끝난 지도 아직 몇 년밖에 안 지났어요.”

지크프리트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함부로 마족에게 다시 칼을 겨누었다가, 다시 전쟁으로 발화되기라도 하면…….”

“안다. 제국민들이 너무 힘들어지겠지.”

고개를 끄덕인 할아버지가 지크프리트에게 제안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는 건 어떠하냐?”

* * *

황실 식구들은 오랜만에 가족끼리 모임을 가졌다.

황비의 오라비인 필로멜 후작이, 새해를 맞이한 기념이랍시고 입궁한 것이다.

필로멜 후작이 흐뭇한 얼굴로 루돌프에게 말을 붙였다.

“우리 2황자께서는 어쩜 뵐 때마다 이렇게 훤칠해지시는지?”

“아, 정말. 외삼촌께서도 당연한 말씀을 하십니다.”

루돌프는 어깨를 우쭐거리며 대답했다.

황비가 애정 어린 손짓으로 루돌프의 어깨를 쓸어내렸다.

“그렇죠, 오라버니? 우리 루돌프가 많이 자랐죠?”

“그럼요! 2황자 전하의 늠름한 자태는 황제 폐하를 쏙 빼닮으셨습니다.”

그 노골적인 아첨에, 황제는 피식 웃으며 포도주를 한 모금 머금었다.

그리고 라키어스는, 제멋대로 구겨지려는 미간을 억지로 펴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필로멜 후작은, 아무래도 입궁하기 전에 기름에 혀를 담가 놨나 보군.’

이 역겨운 꼴을 보며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느니, 차라리 스승님들 밑에서 한 다섯 시간쯤 구르는 편이 나을 것 같다.

“황비 마마께서는 어째 더더욱 아름다워지십니다. 홀로 세월을 거꾸로 거스르시나 보아요.”

“오라버니도 참, 농담도…….”

“아니, 제가 마마께 이런 문제로 농담하는 거 보셨습니까?”

까르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와중, 라키어스는 거의 투명인간 취급이었다.

사실 식당에 들어선 내내, 라키어스는 입술 한번 벙긋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뭐, 그렇다고 저들과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하기야, 식사 자리에 초대된 게 어디야.’

라키어스는 예법 교본에 나올 법한 동작으로 스테이크를 썰며, 냉소적으로 생각했다.

그나마 황실 가족들의 식사 자리에서 완전히 제외되지 않고, 말석에나마 초대받을 수 있었던 이유.

그건 바로 세 용사들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기 때문이었다.

용사들의 면을 봐서라도, 용사들의 단 하나뿐인 직계 제자인 라키어스를 아예 홀대할 수는 없었던 것이리라.

게다가.

‘……티티의 도움도 컸지.’

갓 피어난 봄꽃을 닮은 소녀를 떠올리며.

식당에 들어선 이래로, 라키어스는 처음으로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타티아나가 진행했던 만화 위인전은 계속해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고.

덕택에 이제는 카롤링거 왕족의 인지도도 현 황제 일가에 못지않았다.

보는 눈이 신경 쓰여서인지, 요새는 예전에 비해서는 꽤 황자 대접을 해 주기는 한다.

‘티티가 보고 싶네. 공작령에 내려가고 나서는 편지도 한 통 없고…….’

그런데 그때.

똑똑똑.

다급한 노크 소리가 울렸다.

황비가 짜증스럽게 언성을 높였다.

“폐하를 모시고 함께하는 식사 자리다! 어딜 감히 방해하려 들어!!”

닫힌 문 너머로 어쩔 줄 몰라 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황비 마마. 하지만 워낙에 급한 전갈이라서…….”

“됐다. 문을 열어라.”

황제가 혀를 차며 손짓했다.

그리하여 식당의 문이 열리고.

문밖에 선 시종이 허리를 조아리며 입을 열었다.

“오를레앙 공작령에서 사자가 왔습니다.”

“공작령에서? 무슨 용건으로?”

“그것이…….”

시종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맺었다.

“오를레앙 공작령에서 마족의 흔적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황실 가족들이 두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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