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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82)화 (83/163)

<86화>

* * *

달은 인간들의 제국에도, 마족들의 마계에도 공평하게 떠올랐다.

그러나 손톱만 한 그믐달이 흘리는 달빛으로는, 밤의 어둠을 밀어내기엔 역부족인 듯.

방 안은 여전히 어둡기만 했다.

“가주님.”

그 부름에, 달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우아한 중년의 사내가 뒤를 돌아보았다.

심복은 저도 모르게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마계의 영원한 2인자, 고귀한 바르톨로아의 가주.

저분을 주군으로 섬긴 지 벌써 10년이 넘었는데도.

……빙해처럼 새파란 저 눈동자를 마주할 때마다, 여전히 기묘한 압박감이 들고는 한다.

“오를레앙에서 린츠 상단의 존재를 알아챘습니다.”

“아.”

가주가 짧게 혀를 찼다.

“그래도 조금은 쓸모가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 버러지에게 기대하는 게 아니었어.”

약 4년 전.

바르톨로아 가주는 수하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건 바로, 인간들의 상단 하나를 포섭하는 것.

아무래도 마족들이 직접 인간계에 들어가서 움직이기에는 제약이 따르니, 일단 인간들을 이용해 보려 함이었는데…….

“린츠 상단이 어떤 처분을 받았는지를 보고 드리겠습니다.”

“됐어, 뻔하지.”

바르톨로아 가주가 귀찮다는 양 손사래를 쳤다.

“오를레앙은 지크프리트의 가문이잖은가. 그렇다면 지크프리트가 직접 처리했을 테고 말이야.”

“예,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그 작자가 얼마나 철두철미한지는 나도 잘 알지.”

가주의 미간 위로 깊은 주름이 졌다.

“타 지역에 퍼뜨려 놓은 마도구는 모조리 회수하여 폐기했을 테고, 마족에 대해 경계를 강화하려 할 터.”

“맞습니다. 대회의 개최를 요청했다 하더군요.”

“대회의? 아, 그…… 버러지들이 여럿 모여서 의논이랍시고 한다는 그 모임?”

바르톨로아 가주의 입술 사이로, 피식 바람 새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현실적으로 전쟁을 벌이기는 어려울지라도, 그래도 마족이 활개 치는 걸 좌시하지는 않겠다…… 뭐 이건가. 너무 물러.”

가주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덧붙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 세 초월자들은 인간들에 대해 상당히 온정적이니까.”

바르톨로아 가주에게 있어, 인류의 세 구원자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였다.

마계의 절대적인 규칙은 약육강식.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희생시켜 번영한다.

그런 마족의 입장에서, 세 영웅은 마땅히 인간들을 짓밟으며 모든 것을 취해야만 했다.

하지만 세 영웅은 그러지 않았다.

연약한 인간들을 연민했고, 자신이 가진 힘에 책임감을 가졌다.

누군가가 약한 이들을 착취하는 것을 어떻게든 막으려 했다.

현실적으로는, 모두가 다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그를 꿈꿨다.

‘유일하게 버러지에서 벗어난 초월자들이, 남은 버러지들에게 애정을 버리지 못해 아등바등하는 꼴이라니…….’

바르톨로아 가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간들이란 그래서 안 되는 법이지.’

가주는 그쯤에서 세 영웅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그 외로도 신경 쓸 문제는 많았으니까.

가령…….

“그건 그렇고, 이번 마도구는 꽤 신경 써서 제작했었는데. 설마하니 우리 폐하께서 직접 훼방을 놓으실 줄은 몰랐어.”

마왕, 타티아나.

마신이 선택한 연약한 반인반마 계집.

세 용사가 마왕을 참칭한 다섯 마족을 도륙한 사이, 어떻게 쥐새끼처럼 도망을 쳤으리라 생각했었는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인간들의 제국에 숨어들어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찌나 기가 찼는지 모른다.

게다가 세 용사를 용케 구워삶아서, 그들의 보호까지 받고 있다니.

“폐하께서 몸 건강히 잘 살아 계시는 모습을 보니, 기쁘기가 한량없군.”

“가주님.”

“다만, 이번에 느낀 바로는…… 버러지에도 종류가 있다는 거야.”

바르톨로아 가주의 입술에 걸린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바닥을 기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버러지와, 최소한 짓밟으면 꿈틀거릴 줄은 아는 버러지 말이지.”

새파란 눈동자가 춤을 추듯 반짝였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적어도 꿈틀거릴 줄 아는 버러지를 포섭해 보도록 할까.”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심복은, 차가운 손이 느닷없이 등허리를 쓸어내리기라도 한 것처럼.

……이유 없이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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