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95)화 (96/163)

<101화>

* * *

곧장 긴급회의가 소집되었다.

기사의 보고에 따르자면, 각 마을마다 설치된 성물이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탕!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라키어스가 거세게 책상을 내리쳤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잘 기능하고 있었어. 이렇게 갑자기 기능을 멈출 이유가……!”

그러던 중.

라키어스가 멈칫 어깨를 굳혔다.

“잠깐. 언제부터 성물이 작동을 멈췄지?”

“그, 보고받기로는 약 이틀 전부터라고…….”

기사가 바짝 긴장하여 답했다.

그 대답을 들은 라키어스가, 기가 막힌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헛웃음을 흘렸다.

“이전 사제께서 마지막으로 성물을 살피고 떠나신 게, 딱 세 달 전이네.”

성물은 보통 3개월에 한 번, 계절이 바뀔 때마다 관리한다고 했다.

또한 신임 차석사제가 이곳에 부임한 지도 약 두 달이 흘렀다.

그렇다면 차석사제에게는 여태까지, 성물을 유지 보수할 두 달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 성물은 기능을 멈췄고…….

‘그렇다면 현 차석사제는 부임 후, 성물에 아무런 조치조차 취하지 않았다는 뜻이잖아?’

싸늘한 침묵이 흘렀다.

“…….”

“…….”

잠시 후.

팔짱을 낀 채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세자르가,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침묵을 깨뜨렸다.

“정말, 타이밍이 나빠도 이렇게 나쁠 수가 있는지.”

그도 그럴 것이, 세자르가 직접 성물을 점검하러 가기로 한 날이 바로 오늘이었으니까.

세자르가 미간을 좁히며 말을 덧붙였다.

“아무래도 이 문제에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겠군요.”

* * *

다만 문제는, 소환된 차석사제는 현 사태에 대해 아무런 해결책도 내놓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죄송합니다!!”

차석사제는 머리가 땅에 닿도록 고개를 조아릴 뿐.

현 사태에 대한 해결책은 고사하고, 어째서 성물이 기능을 멈출 때까지 유지 보수조차 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조차 전혀 내놓지 못했다.

“제가, 정말로 그러려던 건 아니고……!”

중언부언 이어지는 변명을 참을성을 갖고 들어본 결과.

정말로 무능과 태만이었다…….

“성물 관리 때문에라도, 일부러 성물을 유지 보수할 수 있는 차석사제를 배치한 건데.”

세자르는 서늘한 얼굴로 차석신관을 응시했다.

“아무래도 차석신관은 역량에 비해 과분한 자리를 맡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대, 대사제님!”

차석사제가 거의 절규하듯 언성을 높였다.

“저, 저는 이렇게까지 심각한 상황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 항변에, 세자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되물었다.

“그래서요?”

“예, 예?”

“당신이 무능하다는 것쯤은, 그렇게 눈물 콧물을 흘려 대며 하소연하지 않아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세자르가 지긋지긋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결국 결론을 말하자면, 난 지금 나잇살을 먹을 대로 먹은 무능한 머저리의 뒤치다꺼리를 해 줘야 하는 상황에 처한 거군요.”

언제나 몸가짐을 정결케 하는 사제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폭언.

차석사제는 당황한 얼굴로 세자르를 응시했다. 

“대, 대사제님?”

“그 머저리가 당신 맞습니다. 무능하면 눈치라도 있어야지, 왜 사람은 계속 부르고 그러시죠?”

세자르가 맹수 앞의 쥐처럼 발발 떠는 차석사제를 흘겨보며, 짜증스레 대꾸했다.

“그러니 당신은 지금부터 얌전히 그 입 다물고 있는 편이 나을 거예요. 또한 신 앞에서 맹세하건데.”

세자르는 차석사제를 그야말로 벌레 바라보듯 바라보았다.

“당신은 물론이고 차석사제의 지위를 얻도록 추천한 작자들까지 모조리 목을 날려 버릴 줄 아세요.”

“…….”

연타로 쏟아지는 독설에, 차석사제는 그야말로 기절할 것 같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런 차석사제를 말끔히 무시하며, 세자르는 라키어스를 돌아보았다.

“라키어스.”

“예, 스승님.”

“아무래도 내가 카를로 전체에 신성 결계를 치는 편이 가장 빠르겠습니다. 그동안 사제를 불러다가 성물을 복구하도록 해요.”

뭐?

순간 나는 경악했다.

“자, 잠깐만요!”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목소리를 높여 세자르를 부른 채였다.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모였다.

‘아차.’

최대한 회의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있으려고 했는데, 이래서야 다 글렀다.

하지만 지금 세자르가 한 말은 도무지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죄송해요, 회의를 방해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일단 사과부터 한 후.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하지만 그건 너무…….”

머리가 온통 혼란했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말하려 애썼다.

“아무리 대사제라 해도 도시 전체에 신성 결계를 칠 수는 없어요. 몸에 너무 큰 무리가 간다고요.”

신성 결계.

말 그대로 신성력으로 펼치는 결계였다.

대충 성물의 역할을 사제가 대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이해하면 된다.

‘현재 카를로에 배치되어 있는 성물은…… 총 여섯 개.’

그 성물들이 유기적으로 공명하며, 마수들이 침입하지 못하는 결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물론 고위 마족들은 그 결계를 파훼할 수 있다지만, 그럴 수 있는 고위 마족들은 무척 드물었기에.

성물은 지금까지 효과적으로 카를로를 지켜 왔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신성 결계를 펼친다는 건, 셋째 아빠가 그 여섯 개의 성물이 짊어지던 부담을 홀로 짊어진다는 거잖아.’

나는 두 눈에 날을 세우고 눈앞의 세자르를 쏘아보았다.

“그건 저도 동감입니다.”

때마침 라키어스가 내 말을 거들고 나섰다.

“성물을 복구할 사제를 새로 불러들인다 해도 시간이 걸려요. 설마 그 시간 동안 혼자서 신성 결계를 유지하시겠다는 말씀은 아니시지요?”

“그 말 맞는데요.”

세자르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설마하니 새로 불러들이는 사제가, 차석 사제만큼 무능한 인간은 아닐 테니까요.”

그 신랄한 말에, 차석 사제가 채찍으로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어깨를 흠칫 굳혔다.

“일주일 정도면, 불러 온 사제가 그럭저럭 성물을 복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뭐, 그 정도 시간은 저 혼자서도 버틸 수 있을 것 같고요.”

다만 그 이상은 자신하기는 어렵지만요.

세자르가 평온하게 말을 덧붙였다.

흡사 ‘잠들기 전에 따뜻한 우유를 마시면 잠이 잘 온답니다’라고 말하듯, 그저 일상적인 어조였다.

“아니, 도대체 스승님께서는 스스로가 무슨 강철로 된 인간인 줄 아십니까?”

참지 못한 라키어스가 왈칵 성을 냈다.

“아무리 스승님이라고 해도 그렇죠! 그러다가 정말로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습니다!”

“라키어스.”

“여태까지 스승님들의 그 엄청난 구박을 견뎌 냈는데, 이젠 저더러 스승님의 병 수발까지 들라는 말씀이십니까?!”

“……어째 불순한 본심이 들어간 것 같은데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라키어스를 흘겨보던 세자르가, 이내 달래듯 말을 이었다.

“마왕과도 싸워 이겼는데, 고작 신성 결계 가지고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어요.”

“그래도!”

“또한, 이편이 더 효율적이에요.”

“…….”

그 말에, 처음으로 붉은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세자르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제가 성물을 복구하는 방안도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그건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순간 라키어스가 움찔했다.

“그러려면 제가 여섯 개의 성물이 있는 곳으로 직접 이동해야만 하는데.”

세자르가 서늘한 눈빛으로 라키어스를 응시했다. 

“그동안 마수들에게 유린당하는 영지민들은 어떻게 보호할 건가요?”

“하, 하지만.”

“차라리 신성 결계로 시간을 벌면서, 다른 사제가 안정적으로 성물을 복구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세자르가 차분하게 말을 맺었다.

“한쪽이 다소간의 부담을 짊어지는 대신, 카를로 전체의 사람들을 구할 수 있잖아요.”

라키어스는 차마 그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세자르가 쓴웃음을 지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지어요? 저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요.”

“……스승님은 이런 때까지 농담이 나오십니까?”

참담해하던 라키어스가 이를 악물며 세자르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세자르는 얄밉게 대꾸할 따름이었다.

“이런 중요한 사안을 두고 농담이나 할 리 있겠습니까? 제가 라키어스도 아니고요.”

그러고는 재차 능숙하게 일을 진행시킨다.

“그보다 빨리 움직이는 편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도시 전체를 덮는 거대 결계이다 보니, 이런저런 준비할 게 많아요. 일단 신전에 연락해서 사제를 급파하도록 하고…….”

……마치 이런 일쯤은 아주 익숙하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멍하니 그런 세자르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셋째 아빠는 신성 결계를 펼칠 생각인 거야. 그것도 일주일씩이나.’

치받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나는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하지만 세자르는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모두를 위해 자신이 위험을 무릅쓰는 것쯤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

그리고 난, 그게 너무나도…….

‘화가 나.’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세자르와 라키어스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모조리 놀란 얼굴이 되어 나를 돌아보았다.

“티티 양?”

걱정이 가득 담긴 세자르의 부름을 듣자마자, 감정이 제멋대로 들끓었다.

“……죄송해요.”

억눌린 대답만을 남겨 놓은 채.

나는 그대로 방을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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