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97)화 (98/163)

<104화>

뭐, 솔직히 그럴 수밖에 없겠지.

반박할 말이 없을 테니까.

그 약초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나밖에 모른다.

빨간 열매가 맺힌다는 특징 하나로만 찾기에는, 그런 식물 자체가 너무나도 많았다.

말로만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무엇보다도 나는…….

‘그림 실력이 처참하지.’

그렇다고 이 요새 도시에, 내 설명을 구체적으로 그려내 줄 전문 화가가 있을 리도 없고 말이다.

살다 살다 그림을 못 그리는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나는 허리를 곧게 세우며 말을 이었다.

“셋째 아빠는 신성결계를 펼치고, 라키어스도 도시 복구 작업을 하는걸요. 저도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어요.”

“티티 양.”

세자르가 만류하듯 나를 불렀다.

“그리고…… 만약 저 약초로 마수를 쫓아낼 수만 있다면.”

나는 옷깃을 꾹 움켜쥐었다.

“셋째 아빠가 더 무리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

세자르는 드물게 말문이 막힌 얼굴이었다.

나는 간절하게 말을 이었다.

“그 약초를 빨리 발견할수록, 신성 결계를 펼치는 시간을 하루라도 줄일 수 있잖아요.”

“……그건.”

“정말로 안 될까요?”

그 질문에, 세자르는 한참을 침묵했다.

나는 초조함을 억누르며 세자르의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 후.

세자르가 한숨을 섞어 대답했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들 하지만, 그 말을 제가 몸소 체험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설마!

나는 기대감으로 두 눈을 빛냈다.

“뭐, 티티 양의 말이 아예 일리가 없는 건 아닙니다. 확실히 신성 결계가 펼쳐져 있으면 크게 위험한 일은 없을 테니…….”

그렇게 운을 떼 놓고도, 세자르는 긴 시간 동안 복잡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뜨더니, 라키어스를 부른다.

“라키어스.”

“예, 스승님.”

라키어스가 자세를 바르게 하며 대답했다.

그러자 세자르가 음산한 목소리로 못을 박았다.

“티티 양의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다치면, 알죠?”

……순간 라키어스의 얼굴이 살짝 창백해진 것도 같았지만.

“물론이죠.”

이내 힘을 주어 대답했다.

동시에 세자르가 원망스럽게 나를 흘겨보았다.

“정말, 누굴 닮아서 저렇게 속을 썩이는지.”

“누구긴 누구겠어요, 셋째 아빠 닮아서 그러죠.”

나는 혀를 쏙 내밀며 대답했다.

신성 결계를 치겠다며 먼저 걱정시킨 게 누군데 그래?

“나 참.”

한 대 얻어맞은 표정이 되었던 세자르도, 결국 나를 따라 쓴웃음을 지었다.

* * *

그 시각.

차석사제는 불안한 얼굴로 책상에 놓인 꾸러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처음부터…… 황비 마마와 얽히는 게 아니었어.’

본디 그는 차석사제로 임명될 수조차 없는 무능한 사제였다.

차석 이상의 고위사제로 진급하려면 일정 이상의 신성력을 다룰 수 있어야 하는데, 그가 가진 신성력은 고작해야 평사제 정도였으니까.

다만 문제는, 그는 어떻게든 남들에게 떵떵거리며 보란 듯이 살고 싶었다는 점이었다.

까마득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열등감만 쌓여 가던 어느 날.

이 제국에서 가장 지체가 높은 여인이 은밀하게 손을 뻗었다.

‘나를 도와줄 수 있겠나? 그렇다면 나도 자네를 돕겠네.’

차석사제는 기꺼이 그 손을 잡았다.

그 후, 차석사제는 황비의 조력으로 능력에 비해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승승장구에 비례하여 황비의 은밀한 부탁들이 조금씩 늘어났지만, 그 정도는 들어주기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카를로 파견은…….

‘저, 저는 카를로에 갈 수 없습니다.’

차석사제는 처음으로 황비의 부탁을 거절했다.

카를로에 파견된다는 건, 곧 도시를 보호하는 성물을 관리해야 한다는 뜻.

하지만 차석사제에게는 성물을 관리할 능력이 없었다.

또한 성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그가 지위에 비해 신성력이 모자라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이었으므로.

카를로에 파견되는 것 자체가, 결국 차석사제의 직책을 잃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래? 아쉽군. 자네가 부패사제로 재판에 회부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는데.’

그 순간.

차석사제는 여태껏 자신이 받아 왔던 게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었음을 깨달았다.

황비가 주었던 수많은 뇌물과 혜택들이 그의 목을 조르는 올가미가 된 것이다.

‘자네가 해 줘야 할 일은 단 하나. 성물을 관리하지 말고 그대로 두는 것뿐이야.’

‘하, 하지만. 그렇게 되면 마수들이 카를로를 침입할 텐데……!’

‘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일세.’

두려워하는 차석사제에게, 황비는 다시 한번 달콤한 제안을 해 왔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 추후 자네가 이 일 때문에 신전에서 나오게 되더라도, 먹고살기에 모자람 없이 챙겨 줄 테니까.’

그제야 차석사제는 황비의 속셈을 깨달았다.

‘황비께서는…… 마수들이 카를로를 짓밟기를 바라시는 거야.’

마수가 카를로를 침입해 들어온다면, 그래서 피해가 크면 클수록.

영지를 다스리는 라키어스의 실책이 될 테니까.

그 와중, 라키어스가 밀려드는 마수와 맞서다가 목숨이라도 잃는다면 금상첨화다.

끈적한 늪 속에 발을 들인 기분이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질척한 진흙이 목까지 차오른 듯한 그런 막막함.

‘하지만 이제 물러날 수도 없잖아.’

꿀꺽 마른침을 삼킨 차석사제가 책상 위에 놓아 둔 꾸러미에 손을 댔다.

단단히 묶인 포장을 풀어내자, 엄지만 한 투명한 유리병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리병 안으로는 투명한 결정 같은 가루가 가득 차 있었다.

차석사제는 떨리는 손으로 그 곁에 놓인 쪽지를 집어 들었다.

<이것만 성공적으로 라키어스에게 먹인다면, 차석사제 자리에서 쫓겨난 후로도 꾸준히 뒤를 봐 주겠네.>

딱 한 줄의 문구가 쓰여 있었다.

“후우, 후우, 후…….”

그 쪽지를 촛불에 불태워 버린 차석사제가 커다랗게 심호흡을 했다.

‘그래. 눈 딱 감고 해치워 버리는 거야.’

황비 마마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신다고 하셨으니까.

그러니까…….

차석사제는 결연하게 약병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윽!”

누군가가 커다란 바늘로 관자놀이를 세게 찌르는 듯한 강렬한 두통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차석사제의 얼굴이 몽롱해졌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지? 아니, 그보다.”

이 약을 어떻게든 1황자 전하께 먹여야만 한다.

그 생각만이 전신을 지배했다.

‘그러고 보니, 1황자 전하께서는 매번 다른 기사들과 같은 식사를 하시지.’

그렇다면 기사들의 요리에 쓰는 소금 통에 약을 섞어 두면 되겠군.

그러면 한 번쯤은 약을 드실 테니까 말이야.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차석사제는, 곧장 밖으로 빠져나갔다.

* * *

‘응?’

카를로 주재 평사제, 애런은 기이한 광경을 보았다.

기사단의 보급 창고 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그 안에서 차석사제가 걸어 나온 것이다.

‘……분명 대사제께서 근신을 명하신 것으로 아는데?’

애런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게다가 사치스럽기로 유명한 차석사제와, 사치품이라고는 전혀 없는 기사단의 보급 창고라니.

맞지 않는 옷처럼 안 어울리지 않는가.

게다가.

‘저기는…… 1황자 전하와 직속 기사들의 보급품을 보관해 둔 곳 아닌가?’

정확히는 이번 출정에 쓸 보급품들을 정리해 둔 창고였다.

하지만 뭐랄까, 문제 삼기에는 애매했다.

원칙적으로 차석사제가 기사단 보급 창고에 드나드는 게 금지되지는 않았으니까.

“애런 사제님!”

때마침 저를 부르는 소리에, 애런이 얼른 대답했다.

“아, 예! 갑니다!”

마지막으로 뒤를 힐끔 돌아본 후.

‘설마 별일이야 있겠어?’

애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 * *

이틀 후,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이른 새벽.

신성 결계를 펼칠 준비가 모두 끝났다.

타티아나와 라키어스는 세자르와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몸 조심히 다녀와요, 티티 양.”

“네, 그럴게요. 셋째 아빠도 무리는 하지 마세요.”

“그래요.”

마지막으로 서로를 꼭 포옹한 후.

타티아나는 말에 올랐다.

그를 확인한 라키어스가 주변 기사들에게 신호를 주었다.

“출발한다!”

그를 시작으로, 기사들이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세자르는 두 눈을 가늘게 뜬 채, 까마득히 멀어지는 딸아이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저는…… 싫어요.’

딸아이의 젖은 목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렸다.

‘저더러 이기적이라고 하셔도 할 수 없어요.’

눈가가 발그스름하게 물든 채, 뚝뚝 굵은 눈물을 흘려내던 타티아나.

‘저는 카를로의 사람들보다는 역시, 셋째 아빠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요.’

그 아이가 어찌나 애틋한지.

어느새 이렇게, 가슴 깊은 곳에 자리 잡아 버려서.

너무나도 소중해서…….

“……후우.”

세자르는 긴 한숨을 흘려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