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102)화 (103/163)

<110화>

똑똑.

짧은 노크 소리가 울리고.

한 청년이 비틀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스승님.”

라키어스도 꼴이 말이 아니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눈 밑으로는 검은 그늘이 졌다.

물끄러미 라키어스를 바라보던 세자르가 툭 질문을 던졌다.

“몸은 좀 어떤가요.”

그렇게 묻는 제 목소리가 낯설었다.

그 질문 하나에, 라키어스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제 잘못입니다.”

짓눌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가, 어떻게든 티티를 지켰어야 하는데.”

“…….”

“스승님께, 약속을 드렸었는데.”

간신히 버티고 섰던 라키어스가, 휘청거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털썩.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린다.

바닥에 이마를 댄 채, 라키어스는 이를 악물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티티에게 그 누구도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하도록…… 제가, 제가 지키겠다고…….”

“…….”

세자르는 망연한 시선으로 펑펑 우는 라키어스를 바라보았다.

라키어스와 타티아나가 실려 왔던 당시가 떠오른다.

온통 난장판이었다.

정신을 잃은 타티아나.

그리고 온몸이 만신창이인 라키어스.

사실 몸 상태만 따지자면, 타티아나보다 라키어스가 훨씬 더 심각했다.

마력이 한 번 엉망으로 뒤엉켰다가 정리되었고, 마족의 마기까지 몸에 침입했었으니까.

신성력은 몸의 상처는 회복시킬 수 있을지언정, 이미 손상된 생명력까지 회복시킬 수는 없다.

그러니 라키어스 또한, 며칠은 요양해야 하는데.

“……저 혼자 이렇게 멀쩡하게 돌아와서.”

라키어스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세자르는 치받는 감정을 억누르며, 뚝뚝 눈물만 흘리는 제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라키어스가 아예 원망스럽지 않다면 아마 거짓말일 것이리라.

몇 번이고 생각했었다.

그 자리에 라키어스가 아니라 자신이 있었더라면, 타티아나가 이렇게 혼수상태에 빠질 일은 없었을 텐데.

곱씹고, 자책하고, 치받는 분노를 억누르며, 몇 번이고 고뇌했다가.

“그런 한심한 꼴은 그만 보이지 그래요.”

……결국 라키어스는 잘못한 게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라키어스가 젖은 눈으로 세자르를 올려다보았다.

세자르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다시 뜨며, 명료하게 말을 이었다.

“당신도 피해자일 뿐입니다.”

남아 있던 마족의 시체를 조사해 본 바, 몇 가지 정교한 술식들이 걸려 있었다.

세자르가 직접 펼친 신성 결계를 뚫고 들어오고도, 결계의 주인인 세자르의 감각에 걸리지 않을 정도의 술식들이었다.

그걸 라키어스가 감지하고, 파훼하여, 타티아나를 지키라는 건.

……라키어스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저는 당신을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스승님.”

“그렇게 자책할 시간에, 이 일의 범인이 누구인지를 찾아내서.”

세자르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무릎에 올려둔 세자르의 손등 위로 뼈가 새하얗게 도드라졌다.

“이번 일의 책임을 묻도록 해요.”

“…….”

라키어스의 눈에 천천히 빛이 돌아왔다.

그런 제자를 향해, 세자르가 재차 못을 박았다.

“무엇보다도 티티 양은, 당신이 그렇게 자책하는 것을 바라지 않을 테니까요.”

“……후우.”

라키어스는 커다랗게 심호흡을 했다.

거칠게 얼굴을 쓸어내리며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아 낸다.

그러고는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러겠습니다.”

가볍게 예를 갖춘 라키어스가, 몸을 돌려 밖으로 빠져나갔다.

달칵.

방문이 닫혔다.

세자르는 잠든 타티아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조그마한 손을 꼭 움켜쥐었다.

그 손에는 무게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아서.

……다시 한번 가슴이 저며 왔다.

“어째 꼴이 우습군요.”

세자르는 눈물 고인 눈으로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이래서야…… 라키어스더러 울지 말라고 타박한 게 우스워지겠어요.”

툭툭 떨어지는 굵은 눈물이 타티아나의 손등을 적셨다.

세자르는 그대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티티 양.”

타티아나가 혼수상태에 빠진 후에야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었다.

이기적이라고 해도 전혀 상관없었다.

세자르는 인간들의 제국보다도, 전 인류보다도.

눈앞의 이 소녀가 훨씬 더 중요했다.

“정말, 제가 누군가를 이렇게 애틋하게 여기게 될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답니다.”

“…….”

타티아나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라는 상투적인 말.

타티아나가 쑥쑥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세자르는 그 말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자식이 부모를 일찍 잃으면 산에 묻고, 부모가 자식을 잃으면 가슴에 묻는다는데.”

피식 미소 지은 세자르가 딸아이의 손에 이마를 기댔다.

“옛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까…….”

기도하듯 중얼거린다.

“얼른 일어나세요.”

* * *

흐린 하늘 아래로, 새하얀 눈이 죽은 나비처럼 마구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춥지는 않았다.

따뜻한 옷가지와 담요가 몇 겹으로 내 몸을 감싼 덕이다.

“…….”

단단한 손이 내 이마를 쓸어내렸다.

다만 손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아볼 수가 없었다.

얼굴이 흐릿하게 보이도록 처리해 두기라도 한 양, 얼굴의 모양새가 도저히 인지가 안 된다.

다만 나를 간절히 내려다보는 푸른 눈동자만큼은, 봄날의 가장 맑은 하늘처럼 따스하게 빛났다.

남자가 내 몸에 몸을 굽히고는 무어라 속삭였다.

“…….”

하지만 역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툭.

떨어진 눈물이 내 얼굴을 적셨다.

따스했다.

그와 함께, 저 멀리서 한 여자가 다급하게 다가왔다.

온통 차가운 날씨 속에서도, 흩날리는 분홍색 단발만큼은 갓 핀 봄꽃처럼 선명했다.

여자 또한 얼굴이 흐릿하다.

다만 여자가 어떤 표정인지는 알 수 있었다.

여자는…… 눈물을 머금은 채로도 활짝 웃고 있었다.

동시에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티티 양.”

그 순간 난 깨달았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라, 셋째 아빠 곁이야.

* * *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특히 눈꺼풀은 무슨 추라도 달아 놓은 것 같다.

고작 눈을 뜨는 일이 이렇게나 힘들 줄은 몰랐다…….

나는 한참을 낑낑거린 후에야 슬며시 눈꺼풀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오는 건, 내 손등을 간질이는 은실 같은 머리카락.

세자르였다.

내 손에 이마를 기댄 채, 세자르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셋째 아빠.”

지독하게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세자르가 퍼뜩 고개를 들어 올렸다.

“티티 양?!”

세자르의 눈이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손을 들어 세자르의 눈가를 쓸어내렸다.

촉촉한 감촉이 느껴졌다.

“우시는 거예요?”

“아니, 이건…….”

세자르가 막막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얼굴을 마주하자, 나는 죄책감으로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느꼈다.

“울지 마세요.”

“…….”

“걱정 끼쳐 드려서…… 죄송해요.”

순간 세자르가 내 몸 위로 와락 무너져 내렸다.

“만약…… 만약 이대로 티티 양을 잃었더라면.”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

순간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처음이었다.

세자르가 이렇게 두려워하는 모습은.

“제가 조금 더 강했더라면, 티티 양이 그런 위험에 처해 있던 걸 눈치챘을까요?”

“셋째 아빠, 그건…….”

“정말, 이래서야 아버지 실격이에요.”

나는 이를 악물며, 세자르가 자괴감으로 어깨를 떠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니에요.”

나는 마구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은, 세 분이 제 아버지가 되어 주셨던 거예요.”

“티티 양.”

“저는 아빠들과 함께해서 너무나도 행복했어요, 그러니까…….”

그런데 그때.

똑똑.

짧은 노크가 울렸다.

“라키어스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벌컥.

문이 열리고.

라키어스는 나와 세자르가 서로를 붙들고 펑펑 우는 모습을 경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티티!!!”

거의 비명과도 같은 고함을 내지른 후.

라키어스가 내 침대로 날듯이 달려왔다.

“티티, 너 언제 깨어났어?! 몸은 괜찮아?! 기분은 어때?!”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저리 비켜요.”

세자르에 의해 옆으로 쭉 밀려났다…….

“티티 양과 내 오붓한 시간을 방해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

라키어스는 황당한 얼굴로 세자르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뜨악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스승님, 그, 혹시, 우셨……?”

붉은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미친 듯이 흔들렸다.

오히려 태연한 쪽은 세자르였다.

“왜요, 좀 울면 어때서요?”

세자르가 소매로 눈매를 닦아 내며 새침하게 대답했다.

“딸아이가 간신히 깨어난 상황인데, 감정이 격해지는 건 당연하지 않나요?”

“아, 아뇨. 이상하다는 게 아니라…….”

라키어스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나와 세자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런 라키어스를 빤히 보던 나는…….

“풋.”

결국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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