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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103)화 (104/163)

<111화>

한숨을 푹 내쉰 세자르가 입을 열었다.

“라키어스, 이리 오세요.”

그러자 라키어스가 괜히 제 발이 저렸는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아뇨, 일단 두 분부터 회포를 푸시고…….”

“그런 부분을 배려할 거였으면, 애초에 눈치를 챙겨서 침실에 들어오질 말았어야죠.”

세자르가 삐딱하게 핀잔을 주었다.

나는 그런 세자르를 보며 내심 조금 안도했다.

‘다행이야. 평소의 세자르로 돌아온 것 같아.’

나는 걱정스럽게 라키어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는 몸은 어때? 괜찮아?”

“나야 금방 나았지.”

쾌활하게 웃어 보인 라키어스가 재차 말을 이었다.

“그보다 정말 고마워, 티티. 네가 날 구해 줬다면서?”

“으, 응?”

“기사들이 그러는데, 네가 내 마력 폭주를 진정시켜 줬다고 하던데.”

순간 세자르가 놀란 얼굴을 했다.

“티티 양이 라키어스의 마력 폭주를 진정시킨 거라고요? 자가 회복을 한 게 아니라요?”

“예. 티티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꼼짝없이 폐인이 되거나, 죽었겠죠.”

어깨를 으쓱한 라키어스가,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런데 언제 마력을 그렇게 능숙하게 다루게 된 거야? 티티 넌 마법은 배우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

순간 나는 어깨를 움찔했다.

세자르가 이채가 서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티티 양이 누구 딸인데요. 마법을 아예 안 배웠을 리 없잖아요.”

일단은 나를 감싸 주었다.

“하긴…….”

라키어스는 그럭저럭 납득한 기색이었다.

아무래도 적당히 넘어간 것 같지?

동시에 세자르가 아주 할 말이 많지만 일단은 참겠다는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그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들어보죠.”

“아…… 그러니까요.”

나는 순간 머리가 새하얗게 물드는 것을 느꼈다.

그냥 명령을 내렸더니 마족이 움직임을 멈췄고, 그대로 쓰러져 죽었다고는 말할 수 없잖아?!

하지만 허투루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어차피 세자르는 마족의 시체를 살펴봤다고 했어.’

그 말은 즉.

거짓말을 했다가 들키면 더 곤란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나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오리발을 내밀었다.

“마족이 라키어스를 공격하다 말고, 갑자기 눈을 뒤집으며 쓰러졌거든요.”

솔직히 아예 거짓말도 아니었다.

그냥 그전에 내가 멈추라고 명령했고, 마족이 그 명령에 따른 사실만 생략했을 뿐.

다행히 라키어스도 당시 기절해 있었기에, 그때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별다른 의문 없이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기야, 그럴 수도 있겠어요.”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세자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 마족의 몸에 술식이 여러 가지 새겨져 있더라고요.”

“술식이요?”

“예. 예전 오를레앙 공작령에서 발견되었던 그 술식을 강화한 종류입니다. 마기를 감추는 종류에요.”

나는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야 이해가 갔다.

세자르와 라키어스가 마족의 침입을 눈치채지 못한 이유 말이다.

“그 외로도 신체 능력을 한계까지 끌어내는 술식도 있던데…….”

세자르가 눈살을 찌푸렸다.

“대충 살펴보니, 생명력을 태워서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는 종류더군요.”

“그 말씀은…….”

“술식의 기능이 다하면 죽는 거죠.”

세자르가 단언했다.

그 잔인성에, 나와 라키어스는 모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아마 술식을 새긴 이는, 상대를 살아 있는 생명이 아니라 도구로 생각한 거겠죠. 그러지 않고서야 저런 술식은 새길 수 없어요.”

“…….”

“…….”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게다가 수상한 점은 또 있습니다.”

잠시 후.

라키어스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 마력 말입니다. 왜 폭주했는지,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어요.”

“그건…… 왜 그랬는지 저도 궁금하네요.”

세자르가 미간을 좁히며 대답했다.

“아마도 가장 확률이 높은 건, 미리 마력에 영향을 주는 약물을 섭취하는 것인데…….”

나는 멈칫했다.

마력을 폭주시킨다, 라.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치는 잔상이 있었다.

무심하게 나를 내려다보는 새파란 눈동자.

기괴한 모습으로 바닥을 기는, 한때는 살아 있었던 ‘무언가’들.

……그리고 내 손 안에 놓인 피처럼 붉은 알약까지.

‘바르톨로아 일족.’

마기를 폭주시키던 알약과, 마력을 폭주시키는 약물.

그 방식이 너무 똑같지 않은가.

나는 무심결에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그때 폭주를…… 아.”

동시에 난 무언가를 떠올리고 말을 멈추었다.

허공을 멍하니 올려다보던 마족의 몽롱한 눈동자와.

그 마족이 규칙적으로 퍼뜨리던 특정한 파장을 가진 마기까지.

“티티 양?”

세자르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그때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 마족이요. 신호를 보내듯이 규칙적으로 마기를 퍼뜨렸어요.”

“아, 맞아. 그랬지.”

내 말을 들은 라키어스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전까지는 제가 우위를 점하고 있었는데, 마기를 감지한 후부터 마력이 엉키기 시작했어요.”

“……그랬군요. 그 부분은 확실히 수상하네요.”

세자르가 드물게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한편 나는 마음이 복잡했다.

만약 정말로 라키어스가 그 마기의 파장에 감응하여 마력이 폭주한 거라면.

‘바르톨로아는…… 내가 도망친 이후로도 계속해서 실험들을 하고 있었던 거야.’

좀 더 효과적인 술식과 약물을 개발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 와중에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희생됐을지.

……나는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

세자르가 라키어스에게 말을 붙였다.

“라키어스, 잠시만 자리를 비켜 주겠어요? 티티 양과 단둘이 할 말이 있어요.”

“아, 예.”

몸을 일으킨 라키어스가 마지막으로 내게 안부 인사를 건넸다.

“그럼 몸조리 잘해, 티티.”

“응, 고마워.”

그렇게 라키어스가 자리를 피해 준 후.

세자르는 단도직입적으로 내게 물었다.

“혹시 마기를 제어할 수 있게 된 건가요?”

“네?”

“라키어스의 엉킨 마력을 풀어냈다면서요. 그러려면 분명 섬세한 마기 제어가 필요할 텐데요.”

아.

나는 멍하니 두 눈을 깜빡였다.

깨어난 이후, 워낙 정신이 없어서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나는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그러고 보면, 라키어스의 엉킨 마력을 모조리 정리했던 그 순간.

‘온몸을 얽어매고 있던 무언가가 완전히 끊어져 나간 것 같았어.’

그 상쾌했던 감각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호시탐탐 내 목숨을 노리던 마기는 그저 조용하기만 하다.

나는 시험 삼아 몸속의 마기를 살짝 움직여 보았다.

그러자 마기는 내 명령에 따라 부드럽게 움직여, 세자르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를 느낀 세자르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확대되었다.

“세상에.”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세자르의 아름다운 얼굴 위로 천천히 미소가 번졌다.

비 개인 하늘 아래로 내리 쬐이는 햇살처럼, 선명하고 맑은 미소였다.

“티티 양!”

그와 함께, 커다란 팔이 냅다 나를 감싸 안았다.

세자르가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는 나를 와락 끌어안은 것이다.

‘셋째 아빠가 이렇게 눈물이 많은 줄은 몰랐는데.’

나는 괜히 속으로 시큰둥하게 생각했다.

그러지 않으면 나도 눈물 콧물을 흘려가며 펑펑 울 것 같아서였다.

“셋째 아빠, 너무 자주 우는 거 아니에요?”

“이럴 때 울지 않으면 언제 우나요?”

세자르가 젖은 목소리로 핀잔을 주었다.

“맞는 말씀이에요.”

고개를 끄덕인 나는, 힘을 주어 세자르를 마주 포옹했다.

“정말, 정말 잘됐어요.”

세자르가 뛸 듯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나도 자꾸만 코끝이 시큰해져서.

나는 세자르의 품에 고개를 폭 파묻었다.

* * *

카를로는 빠르게 안정화되었다.

급파된 사제들 덕택에 성물들은 모두 복구되었다.

세자르는 직접 대신전에 연락을 넣었고, 카를로를 관할하는 새로운 고위 사제가 내려오기로 결정되었다.

또한 마수들을 몇 마리 생포하여 실험한 결과, 내가 발견한 약초는 실제로 마수를 쫓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라키어스는 약초를 본격적으로 재배해 보겠노라며 의욕을 보였다.

거기다 기쁜 소식은 하나 더 있었는데.

“확실히 마기가 안정되었군요. 이제는 더 이상 걱정할 필요 없겠어요.”

며칠간 내 몸을 면밀히 관찰한 결과.

세자르가 마침내 완치 판정을 내려 준 것이다!

“축하합니다, 티티 양.”

“감사합니다!”

더 이상 나는 시한부가 아니다!

지긋지긋했던 마기 폭주여, 이제는 안녕!

그런데 그때.

우리가 앉아 있던 거실로 누군가가 걸어 들어왔다.

라키어스였다.

“아, 라키!”

반갑게 라키어스를 부르던 내가 멈칫했다.

“왜 그래? 혹시 무슨 일 있어?”

그도 그럴 것이, 라키어스의 표정이 무섭도록 굳어 있었으니까.

저렇게 딱딱한 얼굴은, 카를로에 마수가 침입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래로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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