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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108)화 (109/163)

<116화>

“그보다, 저 안에 뭐가 있는 것 같은데.”

“음, 뭔가 위험한 게 설치되어 있는 것 같지는 않고…….”

비밀 공간을 면밀히 살펴본 후.

세자르가 주머니에 대충 찔러 넣었던 예식용 장갑을 다시 꺼내 들었다.

장갑을 낀 후, 비밀 공간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아마도 혹시 저 안에 든 물건이 체온에 손상될까 봐 걱정한 것이겠지.

그 후.

세자르의 손에서 들려 나온 물건은…….

“……두루마리?”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양피지 두루마리였다.

세자르가 조심스럽게 두루마리를 펼치자, 빼곡하게 적힌 고대어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꼴깍 마른침을 삼켰다.

‘세상에.’

물론 난 유물 감정이나 고대어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식이 없지만.

최소한 고대어가 지금은 잊힌 신화시대에 사용됐던 언어라는 것쯤은 안다.

‘그렇다면 저거, 엄청난 유물일지도 모르겠는데?!’

한편 세자르는 복잡한 표정이 되어 키리오스를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제가 살다 살다 키리오스 당신에게 도움을 받게 될 줄은 몰랐네요. 이렇게 귀한 유물이 발견될 줄이야…….”

“야, 뭐라고?”

키리오스가 대번 도끼눈을 떴다.

“마족들 토벌할 때만 해도, 내가 네 목숨을 얼마나 많이 구해 줬는데!”

순간 나는 움찔 어깨를 굳혔다.

그렇지, 아빠들은 마족들을 지독하게 혐오했었지.

……새삼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냐, 괜히 이런 생각 하지 말자.’

지금도 충분히 아빠들과 행복한데, 부정 탈라.

고개를 휘저어 생각을 털어낸 내가 두루마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래서 저 두루마리에는 무슨 내용이 담겨 있을까?

* * *

그 날 밤.

평소라면 잠들고도 남았을 시간이었지만.

오늘의 나는 말똥말똥하게 눈을 뜨고는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정말 대단했었지.’

두루마리가 발견되자마자, 대신전은 물론이고 학계며 마탑까지 발칵 뒤집어졌다.

학자들이며 마탑의 사람들까지 우르르 몰려드는 통에, 정말 정신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뭐, 그럴 만도 하다.

무려 신화시대의 유물이 발견된 건데, 뒤집어지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이렇게 완벽하게 보존된 고서적은 처음입니다!’

‘이번 기회에, 정말로 고대어를 완벽하게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학자들은 고대어가 무슨 뜻인지를 해석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켰다.

그리고 마탑은…….

‘세상에, 신화시대의 마법이 지금까지 유지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래도 물건이 삭지 않도록 유지해 주는 보존 마법인 것 같은데…….’

두루마리와 벽돌에 남은 기이한 기운에 주목했다.

비록 비밀 장소를 감추고 있던 술식은, 세자르의 신성력에 의해 파훼되었지만.

두루마리에 걸려 있는 고대 마법은 아직 살아 있었으니까.

게다가 마법을 구성하는 마력도 특이했다.

‘이 기운은 도대체 뭘까요?’

‘이거, 기존의 마력과는 종류가 다소 다르지 않나요?’

‘그렇다고 마력이 아닌 건 또 아니잖습니까?’

마법사들은 머리를 싸맨 채 끙끙거렸다.

다만 나는 저 정체 모를 기운이 뭔지 알 것 같았는데.

‘마기…… 아닐까.’

정확히는 마기와 마력이 뒤섞인 느낌이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마력과 마기의 원시적인 형태라고나 할까.

같은 근원을 가진 힘이 다른 방향으로 진화했다고 설명하면 되려나?

‘하지만 그럴 리가 없지.’

나는 내심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화시대 이래로, 인간과 마족은 계속해서 대립해 왔었다.

그런 두 종족이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을 리 없잖아?

‘거기다 뭐, 내가 고민할 일도 아니지.’

제국 유수의 재원들이 모조리 달라붙었으니 말이다.

고대어의 해석도, 고대마법에 대해서도 알아서 조사하겠지.

나는 그쯤에서 두루마리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

왜냐하면 내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까.

‘라키가 내 데뷔탕트 파트너가 된다고……?’

그런 가정을 하자마자 양 뺨이 화끈 달아올랐다.

현실적으로는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대부분의 귀족 소녀들은, 부모님이나 나이 많은 형제가 데뷔탕트 파트너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혹여나 들뜬 아이들이 엇나가지 않도록 살펴보는 역할을 겸하기 위함이었다.

드물게 동갑내기가 파트너를 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러려면 최소한 약혼관계는 되어야 하지.’

그러니 아마 나도, 아빠들 중 하나가 내 파트너가 되어 주시지 않을까 싶지만.

……그래도.

‘라키가 데뷔탕트 파티에 참석한다면, 춤 한 곡은 함께 출 수 있을지도?’

어떡해, 라키어스와 춤을 춘다고 상상하니까 괜히 부끄러워!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뭐, 이러는 게 무슨 의미겠어.’

나는 발을 동동거리는 것을 멈추고, 스르륵 몸을 굴려 다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제 슬슬 여자주인공이 등장할 시점인걸.’

그 순간.

커다란 바늘로 쿡 찔린 것처럼 가슴 깊은 곳이 아릿해졌다.

원작에서의 흐름은 대충 이렇다.

라키어스가 세상을 도탄에 빠뜨리는 마왕을 토벌하러 출발하기 전, 어려운 사람들을 여럿 도우며 명성을 쌓아나가던 때.

라키어스가 큰 부상을 입게 된다.

‘세상에, 괜찮으신가요?’

그런 그를 우연히 여자주인공이 발견하고, 치료해 주면서 처음으로 얽히게 된다.

클로비스의 성녀.

여자주인공, 모네의 별명이었다.

그녀는 비록 신성력 같은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어린 나이로도 이런저런 선행을 베풀며 유명세를 얻었다.

거기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외모와, 클로비스 자작가의 외동딸이라는 신분까지.

그것만으로도 모네가 찬양받기에는 충분했는데, 모네는 한 세계의 여자주인공답게 아주 특별한 선택을 한다.

‘저도…… 당신과 함께하겠어요.’

라키어스를 만난 후.

모네는 종군 간호사가 되어 마왕 토벌에 따라나선 것이다.

귀족가의 레이디로서 누릴 수 있는 편안한 삶을 포기하고, 마왕 토벌이라는 고귀한 목표를 실현하러 떠난 모습에.

사람들은 입을 모아 모네를 찬양했다.

‘물론 원작이 많이 비틀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 세계의 여자주인공이잖아?’

나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라키어스가 스무 살이 조금 넘었을 무렵, 모네를 처음 만났으니까.

‘……조만간 모네도 등장하겠지.’

입술을 잘근거리던 나는, 신경질적으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됐어, 잠이나 자자.’

하지만 애써 마음을 다독인 노력은 간데없이.

나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 * *

고서적의 발견은 그야말로 제국 전역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고서적을 조사하는 일은 크게 진척이 없었는데.

일단 고대마법을 구현하는 기운이 현재 사용되는 마력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기도 했고.

고대어 같은 경우는…….

‘뭔가 비교하여 해석할 판본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게요. 이래서야 언제 온전한 문장을 완성할 수 있을지…….’

기존에 보유한 고대어의 사료가 너무나도 적었다.

비교하여 맞춰 볼 수 있는 자료가, 고작해야 대신전에 물려져 내려오는 경전 원본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고서적에 대한 열기가 다소 가라앉은 시점.

“아가, 잘 있었느냐?”

갑자기 할아버지께서 기별조차 없이 제도로 올라오셨다.

“할아버지?”

나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할아버지가 양팔을 활짝 펼치며 인자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셨다.

“이리 온.”

일단 놀라는 건 놀라는 거고, 반가운 건 반가운 것이었기에.

나는 쪼르르 달려가서 할아버지의 목을 와락 끌어안았다.

“말씀도 없이 제도에는 어쩐 일이세요?”

“그야 우리 손녀가 올해 데뷔탕트를 치르지 않느냐.”

……설마?

나는 멈칫하며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께서 흐뭇한 얼굴로 내게 대답하셨다.

“이 할아버지가 우리 손녀의 데뷔탕트 파트너가 꼭 되고 싶구나.”

아, 역시.

나는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눌렀다.

한편 할아버지께서는 시종일관 진지한 얼굴이셨다.

“우리 귀한 손녀에게 혹여 다른 놈들이 껄떡거리기라도 하면 큰일이야.”

“네에?”

“걱정이 되어서 잠도 안 오더구나. 그러니 이번에 이 할아비가 파트너로 들어가서, 잘 살펴보고 있을 테니…….”

그런데 그때.

시큰둥한 목소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건 제가 신경 쓸 터이니, 아버지께서는 이만 돌아가시지요.”

지크프리트였다.

할아버지가 정색을 하며 지크프리트를 노려보았다.

“너는 이 애비가 오랜만에 제도에 왔는데, 어째 반기지도 않아?”

“…….”

불만스러운 시선으로 할아버지를 위아래로 뜯어보던 지크프리트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그럼 타티아나의 데뷔탕트 파트너 자리를 제게 양보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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