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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111)화 (112/163)

<119화>

갓 피어난 푸른 수국처럼 청초한 레이디 한 명이 거울 속에서 나를 마주 보았다.

온몸을 감싸는 섬세한 레이스 드레스와, 귓불에서 달랑이는 물방울 모양의 드롭 사파이어 귀고리까지.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꽤 봐줄 만한 것 같은데.’

나는 괜히 드레스 자락을 매만져 보았다.

혹시라도 오늘, 라키어스가 데뷔탕트 파티에 참석한다면.

그리고 이렇게 공들여 치장한 나를 본다면.

‘……날 조금이라도 예쁘다고 생각해 줄까?’

때마침 노라가 잔뜩 들뜬 목소리로 내게 권유했다.

“얼른 내려가요. 다른 분들께 지금 모습을 보여드려야지요.”

그 순간.

나는 설렘이 싹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노공작님과 가주님이 아니라, ‘다른 분들’이다.

그랬다.

내 사교계 데뷔를 맞이하여, 세 아빠들은 아침부터 오를레앙 타운하우스에서 죽치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다들 좋아하실 거예요.”

“그럴까?”

“당연하죠. 저만 해도 무척 기쁜걸요.”

노라가 감회에 젖은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 아가씨께서 이렇게 건강하게 성년을 맞이하시다니…….”

……그렇구나.

노라는 내가 마기 폭주로 몇 번이나 앓아눕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이었다.

나야 내가 25살 때 마왕으로 각성하기에, 마기가 폭주해도 최소한 죽지는 않으리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노라는 그 긴 시간 동안, 내가 정말로 목숨을 잃지나 않을지 전전긍긍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내 아빠들이랑, 할아버지도 마찬가지겠지.’

어쩐지 가슴이 뭉클해져서, 나는 나도 모르게 입술을 당겨 물었다.

그러자 노라가 질색을 하며 날 만류했다.

“세상에, 그렇게 입술을 깨무시면 안 돼요. 입술 화장이 망가진다고요!”

“미, 미안.”

“어휴, 정말…….”

노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화장도구를 가져 왔다.

질색을 하던 것과는 달리, 화장을 고쳐 주는 그 손길은 무척이나 부드러워서.

나는 괜히 코끝이 맵싸해졌다.

* * *

난 노라의 에스코트를 받아 1층으로 내려갔다.

나를 발견하자마자, 거실에 앉아 있던 아빠들과 할아버지까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와, 꼬마.”

가장 먼저 말문을 연 사람은 키리오스였다.

“그렇게 차려입으니까 너 진짜 레이디 같다?”

“당연하죠, 최근에 성년도 지났잖아요.”

나는 씩 눈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키리오스의 눈매가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그래도, 우리 꼬마가 이렇게 어른이 된 모습을 보게 되다니…….”

철썩!

동시에 누군가가 키리오스의 등짝을 거세게 후려쳤다.

“정말, 주책 좀 그만 부려요.”

세자르였다.

키리오스는 다른 의미로 눈물을 찔끔 흘리며, 세자르에게 두 눈을 부라렸다.

“아, 아프잖아!”

“오늘은 티티 양이 사교계에 데뷔하는 첫날이잖아요. 설마 이 기쁜 날에 눈물 콧물 빼고 있을 생각은 아니죠?”

“…….”

세자르의 핀잔에, 키리오스가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동시에 세자르가 방긋 웃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우리 티티 양, 평소에도 예뻤지만 오늘은 더하네요.”

“감사합니다. 아빠들도, 할아버지도 정말 멋져요.”

나도 밝게 대답했다.

참고로 이건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오랜만에 파티용 예복을 차려입은 세 아빠들은, 그야말로 명화 속에서 걸어 나온 것 같았으니까.

희귀한 미중년이신 할아버지는 어떻고?

그런데 생각해 보니, 우리 아빠들을 주제로 한 예술작품들이 꽤 있는 걸로 아는데.

‘명화 속에서 걸어 나왔다’라는 상투적인 표현이, 어쩌면 사실이 될 수도?

“역시 그 귀걸이, 우리 손녀에게 잘 어울릴 줄 알았다.”

때마침 할아버지가 뿌듯하게 입을 열었다.

난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정말 보는 눈이 있으시죠. 오늘 드레스도 귀걸이에 맞춰서 차려입은 건데, 어때요?”

“그야 우리 손녀는 무엇을 걸치든 잘 어울리겠으나…….”

두어 번 헛기침을 한 할아버지가 흐뭇하게 대답하셨다.

“오늘은 독보적이구나.”

“헤헤.”

그렇게 할아버지와 마주 보며 웃던 중.

시선이 느껴져서 돌아보니, 지크프리트가 물끄러미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애틋한 시선이었다.

“타티아나, 정말 고생 많았다.”

“……첫째 아빠?”

“이렇게 건강하게 어른이 되어서, 데뷔탕트 파티에도 참석하는 모습을 보여 줘서…….”

드물게 말끝을 흐리던 지크프리트가 엷게 미소 지었다.

“정말 고맙구나.”

“…….”

어떡해, 꾹 참고 있었는데.

정말로 눈물이 날 것만 같아…….

보다 못한 세자르가 질색을 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 왜 이렇게 분위기가 축축 처져요? 오늘은 좋은 날이잖아요!”

“맞아, 얼른 황궁으로 출발하자고.”

키리오스도 맞장구를 쳤다.

아빠들의 호들갑에, 나는 나오려던 눈물이 쏙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나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우리는 황성으로 향했다.

* * *

그리고 마차 안.

난 뜻밖의 어마어마한 난관에 봉착했다.

“그래서.”

지크프리트가 팔짱을 끼며, 엄중한 표정으로 주변을 휘둘러본 것이다…….

“타티아나의 파트너는 누구로 정하지?”

아니, 아직도 내 파트너가 정해지지 않은 거였어?

지금쯤이면 이미 모든 합의를 끝내셨어야 하지 않나요?!

나는 입을 딱 벌렸다.

그와 함께, 세자르가 사르르 눈매를 접으며 포문을 열었다.

“티티 양, 저는 티티 양의 성년식을 집전한 사제잖아요?”

“그, 그렇죠?”

“성년식을 집전한 사람이 데뷔탕트 파트너도 되는 편이, 여러모로 보기 좋지 않을까요?”

……와,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인데.

저 성스러운 얼굴로 진지하게 말하니까, 의외로 그럴듯하게 들리잖아?

“야, 헛소리 좀 작작 해라.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야 하지 않냐?”

동시에 키리오스가 반기를 들었다.

“차라리 그냥 꼬마를 독점하고 싶다고 말해.”

“그럼 독점하도록 내버려 둘 건가요?”

“그거야 안 될 말이지.”

“쳇.”

세자르가 불만스럽게 혀를 찼다.

그러거나 말거나, 키리오스는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나를 돌아보았다.

“꼬마, 이번엔 나랑 파트너 할 거지?”

하지만 내게는 대답을 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는데.

바로 그 시점에, 지크프리트가 ‘데뷔탕트 파트너 쟁탈전’에 난입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따질 거면, 나는 타티아나의 법적인 아버지 아닌가.”

“뭐야?”

정색하는 키리오스를 향해, 지크프리트가 빳빳하게 고개를 들어 보였다.

“그러니 당연히 내가 파트너가 되어야 하지 않나?”

아, 이제 법적인 관계까지 나오는 거야?

나는 그냥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

“어째, 요새 젊은 것들은 노인공경을 할 생각을 안 하는구나.”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할아버지였다.

“손녀의 데뷔탕트 파트너가 될 거라고, 내가 공작령 사람들에게 얼마나 자랑했는지 알아?”

그렇게 할아버지는 깨알같이 스스로의 나이와 체면을 강조하셨다.

어째,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연회장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내 파트너가 정해지지 않을 것만 같은…….

때마침 마차가 부드럽게 멈췄다.

마침내 황성에 도착한 것이다.

차창 너머의 화려한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짧은 감회에 젖어들었다.

‘그러고 보면 황성에 방문하는 것도 오랜만이네.’

어렸을 적, 라키어스가 아직 황성에 머무를 때에는 몇 번씩 들락날락거렸으나.

라키어스가 카를로로 떠나고부터는 거의 오지 않았다.

황제 폐하께서 세 용사들, 그러니까 우리 아빠들을 다소 부담스러워하는 경향도 있었거니와.

‘혹여나 황비 마마나 루돌프 자식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하루 종일 재수가 없단 말이지.’

입을 삐죽이던 내가 문득 미간을 좁혔다.

‘아니, 잠깐만.’

아무리 데뷔탕트 파티라지만, 묘하게 우리 마차 주변에만 사람이 많은 느낌이었다.

정확히는 이쪽으로 시선이 몰린 듯한데…….

달칵.

지크프리트가 마차 문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확 쏠렸다.

“오를레앙 공작가의 마차에요!”

“세상에, 이번 데뷔탕트 파티에 세 용사님들께서 오신다는 게 사실이었나 봐요!”

그 순간.

나는 왜 사람들이 이쪽을 잡아먹을 듯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맞다, 우리 아빠들…… 제국에서 제일 인기 많은 사람들이었지?’

나는 피로한 시선으로, 힐끗 아빠들을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딸인 내가 봐도 번쩍번쩍한 미모다.

게다가 세 사람 모두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초월자들이라서, 주름살은커녕 여전히 20대의 미모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세 아빠들 중 그 누구라도 내 파트너가 된다면.

‘오늘 데뷔탕트 파티 내내, 저 열렬한 시선들이 내 뒤꽁무니에 달라붙는다는 거지?’

완전 부담스러워!

나는 결연한 목소리로 할아버지를 불렀다.

“할아버지.”

“응?”

“제 파트너는 할아버지께서 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 순간 난 보았다.

할아버지의 얼굴 위로 번지는 승리의 미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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