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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115)화 (116/163)

<123화>

* * *

우여곡절 끝에 데뷔탕트 파티가 끝났다.

타티아나는 결국 세 용사와 노공작까지 차례로 춤을 춘 후에야, 오를레앙 타운하우스로 돌아가는 마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또 봐, 라키!”

마차 창문 너머로 고개를 쏙 뺀 채, 타티아나가 밝게 인사를 건넸다.

라키어스 또한 그녀를 따라 미소 지었다.

“조심히 들어가.”

그렇게 타티아나를 돌려보낸 후.

라키어스는 기묘한 허전함에 사로잡혔다.

‘왜였을까.’

라키어스는 아까 전, 데뷔탕트 파티에서 있었던 일을 곱씹어 생각했다.

루돌프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타티아나에게 손을 내밀고.

‘저와 첫 춤을 추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물었던 그 순간.

‘어째서 그렇게까지…… 돌아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까?’

혼란스러운 기분에, 라키어스는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이상한 점은 더 있었다.

타티아나의 첫 춤이 왜 그렇게 중요하게 느껴졌는지.

어째서 무리하면서까지 데뷔탕트 파티 일정에 맞춰서 제도에 돌아왔는지.

왜 때맞춰 돌아오지 못할까 봐 초조해했는지.

카를로에 있을 적, 잠잘 시간까지 쪼개어 가며 사교댄스를 배웠는지…….

수많은 의문이 머릿속을 채웠다.

아무래 고민해 봐도,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라키.’

달빛에 부드럽게 젖어 든 목련.

그 아래에 흩날리는 봄꽃 같은 분홍빛 머리카락.

그를 향해 해사하게 웃는 얼굴.

……자꾸만 그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서.

‘루돌프가 아니라 해도 싫은 건 마찬가지야.’

차마 타티아나에게 말하지 못했던 내밀한 진심이 불쑥 튀어 올랐다.

‘네가, 나 아닌 그 어떤 남자와도 춤추는 건…… 싫어.’

그런데 그때.

그리 반갑지 않은 사람이 라키어스를 찾아왔다.

“저, 1황자 전하.”

황제의 직속 시종이었다.

라키어스가 흘끗 시종을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지?”

“황제 폐하께서 무척 분노하고 계십니다.”

시종이 목소리를 낮춰 빠르게 속삭였다.

“황궁으로 돌아오셨음에도, 폐하를 먼저 찾아뵙지 않고 데뷔탕트 파티에 참석하셨다고…….”

“…….”

라키어스는 골이 지끈지끈 아파 오는 것을 느꼈다.

사실 라키어스는 황궁에 돌아오자마자, 황제를 가장 먼저 찾아뵈려고 했었다.

하지만.

‘필요 없다.’

황제는 매몰차게 거절했고.

결국 라키어스는 떨떠름한 기분으로 연회장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 이렇게 트집을 잡으실 줄 알았지.’

라키어스는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애써 억눌렀다.

“지금 찾아뵙겠네.”

* * *

황제의 침실 앞에 도착한 라키어스가, 커다랗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번에는 또 무어라고 화를 내실지.’

잠시 후.

라키어스가 침실 밖에 대기한 시종에게 명령했다.

“고하게.”

“예, 전하.”

고개를 끄덕인 시종이 황제에게 고했다.

“황제 폐하. 1황자 전하께서 알현을 청하십니다.”

“당장 꺼지라 해라!”

닫힌 문 너머로 새된 목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라키어스는 이미 알고 있었다.

여기서 이대로 물러난다면, 아마 황제는 더더욱 진노할 것이리라.

아까 전에는 타티아나의 데뷔탕트라는 중요한 행사가 잡혀 있었기에, 황제가 화를 내건 말건 그냥 몸을 돌렸으나…….

‘지금은 그럴 수가 없지.’

라키어스는 한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들어가겠습니다.”

달칵.

문이 열렸다.

동시에 라키어스의 얼굴로 커다란 사기 꽃병이 날아들었다.

쨍그랑!!

사기 꽃병이 벽과 부딪쳐 산산조각 났다.

고개를 기울이는 것만으로 사기 꽃병을 피해 낸 라키어스가, 덤덤한 시선으로 발밑에 흩어진 꽃병 조각들을 내려다보았다.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내 얼굴조차 보지 않고 이번 데뷔탕트 파티에 달려갔다지?”

황제가 들으란 듯이 빈정거렸다.

“평생 카를로에 처박혀서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굴더니, 제도의 생활이 아주 재미있나 보아?”

“제게서 카를로의 영주 직위를 회수하신 분은 폐하이십니다.”

“…….”

황제가 싸늘하게 라키어스를 노려보았다.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가질 만한 애정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그 시선에 가득 찬 감정은.

“네가 카를로를 그럭저럭 다스렸다고 해서, 용사들의 제자라고 해서.”

지독한 질투와 시기심, 그리고 열등감이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찬탄을 받는다고 해서…….”

황제가 치받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나지막이 헐떡였다.

“이 제국이 모두 네 발밑에 있는 줄 아느냐?”

“폐하.”

“황제는 나다. 네가 아니란 말이다!”

황제가 빠드득 이를 갈아붙였다.

라키어스의 무덤덤한 얼굴을 볼 때마다, 전대 황후가 떠올랐다.

언제나 옳은 말만 했고, 그 존재만으로도 카롤링거에 대한 부채감을 자극하던 여자.

아마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황제가 입 안의 혀처럼 구는 황비에게 속절없이 빠져들었던 이유는.

그런데 그때.

“황비 마마와 2황자 전하께서 알현을 청하십니다.”

“……들라 해라.”

아까 라키어스를 대할 때의 날 선 태도는 간데없이, 황제가 누그러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황비와 루돌프가 침실로 들어섰다.

“세상에, 바닥에 화병은 왜 깨진…… 이런, 선객이 있었군요.”

황비는 라키어스를 곱지 않은 눈으로 흘겨보았다.

그새 술을 몇 잔 마셨는지, 얼굴이 불콰해진 루돌프가 라키어스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뭐야, 왜 네가 여기 있어?”

그러고는 홱 고개를 돌려 스스럼없이 황제를 부른다.

“아바마마! 아까 저 자식이 글쎄, 제가 오를레앙 공녀에게 춤을 신청하는데 대뜸 끼어들지 뭡니까?!”

루돌프가 들으란 듯이 일러바쳤다.

“저 자식 때문에 제가 큰 창피를 당했습니다!”

그러자 황제가 미간을 찌푸리며 라키어스에게 쏘아붙였다.

“형답게 굴 거라. 공녀와의 춤이 뭐라고 동생에게 그리 모질게 구느냐?”

“…….”

평소에는 아들 취급조차 해 주지 않았으면서, 이럴 때만 형이라니.

라키어스는 저도 모르게 조소했다.

한편, 다소 흥분이 가라앉은 황제는 대충 손을 휘저어 보였다.

“물러가거라.”

“…….”

잠시 황제를 빤히 바라보던 라키어스가, 정중하게 예를 갖추었다.

“편히 쉬십시오.”

라키어스는 그대로 방을 빠져나왔다.

문틈 너머로, 화기애애한 세 가족을 흘끗 바라본다.

동시에 방문이 닫혔다.

탁.

마침내 가족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

예전에는 저 화목한 가족을 마주하며, 소외감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그를 아껴 줄 사람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라키.’

그를 부르는 다정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티티.’

라키어스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아까 전의 날 선 조소와는 달리, 봄날 햇볕처럼 따스한 미소였다.

게다가 타티아나뿐 아니라, 엄격하지만 사려 깊은 스승님들도 곁에 있었다.

그러니까.

‘난 괜찮아.’

라키어스는 성큼성큼 복도를 가로질렀다.

그 발걸음이 사뭇 가벼웠다.

* * *

황제가 잠들 때까지 곁을 지킨 후.

황비는 신경질적인 걸음걸이로 자신의 침실로 향했다.

“오만방자한 계집애 같으니라고!”

황비가 빠드득 이를 갈았다.

“감히 내 아들을 거절해!? 그래 봤자 출신도 모르는 천한 계집 주제에!”

루돌프의 춤을 거절한 것만 해도 속이 뒤틀릴 지경인데.

그 상황에서 타티아나가 선택한 사람은…….

“라키어스, 그 망할 종자라니!!”

황비가 재차 바락바락 고함을 내지르자, 궁인들은 숨소리조차 죽이고 허리를 숙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저렇게 황비가 신경이 곤두설 때마다 그 분풀이로 궁인들에게 경을 치는 게 예사였으므로.

“언제까지 그 망할 종자에게 내 귀한 아들이 발목을 잡혀야 해!”

황비가 쌔근쌔근 숨을 몰아쉬던 그때.

‘뭐지?’

순간 황비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책상 위에 못 보던 편지가 한 통 놓여 있었던 것.

그 순간.

황비가 두 눈을 부릅떴다.

‘설마!’

쾅!

다급하게 침실 문을 걸어 잠근 황비가, 뛰듯이 책상 쪽으로 다가갔다.

<조만간 아이를 하나 보낼 거야.

그 아이가 어떤 일을 하든, 최대한 협조해 줬으면 좋겠군.

그럼 잘 부탁하네.>

최소한의 인사조차 생략한 채, 용건만 적어 내린 편지.

비록 발신인조차 적혀 있지 않았으나, 누가 보냈는지 알 수밖에 없었다.

“……바르톨로아 가주.”

황비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지?’

등골에 바짝 소름이 돋았다.

황비는 공포에 젖은 눈으로 편지를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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