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116)화 (117/163)

<124화>

10. 모네 클로비스

데뷔탕트 파티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사교 시즌이 도래했다.

여기저기서 약혼 소식, 혹은 간간이 결혼 소식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신사들은 관심이 가는 레이디의 타운하우스에 선물을 보내거나, 가끔은 직접 들러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오를레앙 타운하우스도 예외는 아니어서, 나도 꽤 많은 초대장이며 선물들을 받았다.

다만 신사들 본인들은 타운하우스에 얼씬도 하지 못했는데.

‘어딜 떨거지들이 우리 손녀에게 껄떡거리려 들어?’

할아버지가 두 눈을 부릅뜨고,

‘옳으신 말씀입니다, 아버지.’

오를레앙의 가주인 지크프리트가 동의했으며,

‘꼬마의 결혼은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챙겨 줄 생각이니까.’

‘굳이 티티 양이 수준 낮은 남자들을 번거롭게 만나 볼 필요는 없지요.’

키리오스와 세자르까지 한 손 거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현재.

난 신사들은커녕, 헬렌을 포함한 레이디들과 함께 티타임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 기베르티에서의 티타임에서 처음 만났던 레이디들이었다.

시간이 흘러 약혼자가 생긴 레이디도 있고, 결혼한 레이디도 몇몇 있었지만.

우리는 계속 우정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사냥회네요!”

레이디 중 한 명이 신이 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사냥회.

레이디들에게는 데뷔탕트 파티가 있다면, 신사들에게는 사냥회가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신사의 무용을 뽐내는 자리인데, 사냥감을 많이 잡는 게 신사들 사이에서 자존심 싸움이 될 정도였다.

한편 레이디들에게도 사냥회는 중요했는데, 신사들이 마음을 준 레이디에게 사냥감을 바치는 풍습이 있어서였다.

레이디들 입장에서는 사냥감을 많이 받을수록 명예로운 일이 된다.

사냥회가 마무리되면, ‘여름맞이 축제’라고 불리는 축제를 끝으로, 사교 시즌이 종료되는데…….

“이번에 사냥회에서는 누가 사냥감을 제일 많이 잡을까요?”

“저도 궁금하네요.”

“이번에는 기사 가문으로 유명한 베르뉴 가의 차남도 참석한다고 하던데요.”

“뭐, 그분도 꽤 뛰어난 기사이신 건 사실이지만.”

어깨를 으쓱이던 레이디가 불쑥 말했다.

“하지만 역시 제일 가능성이 높은 건 1황자 전하가 아니실까요?”

나는 갑자기 튀어나온 라키어스의 이름에, 귀를 쫑긋 세웠다.

“카를로에 계실 적, 마수 퇴치까지 직접 하셨다고 들었어요.”

“어머나, 그렇다면 평범한 짐승들은 눈에 차지도 않으시겠네요.”

그렇게 한참을 레이디들이 재잘재잘 떠들던 중.

“그러고 보니, 이번 데뷔탕트 파티 말이에요.”

갑자기 화제가 내게로 쏠렸다.

“공녀님께서는 2황자 전하를 거절하시고, 1황자 전하와 첫 춤을 추셨잖아요?”

“아…… 그게.”

나는 무심결에 데뷔탕트 파티를 떠올렸다.

춤을 출 적, 내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 쥐던 라키어스의 단단한 손과.

내게 나지막이 소곤거리던 듣기 좋은 목소리와.

코끝을 스치던 상쾌한 향기까지.

“…….”

순간 얼굴에 훅 열이 올랐다.

그러자 내 곁에 앉아 있던 레이디들의 얼굴 위로 장난기가 번졌다.

“세상에, 역시 공녀님께서는 1황자 전하께 호감을 갖고 계신 거로군요!”

“아, 아니에요!”

“에이, 격렬한 부정은 긍정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예전부터 친하게 지내셨던 건 알았지만요.”

레이디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던 중.

다른 레이디가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제가 공녀님이어도 1황자 전하께 설레기는 할 거 같아요.”

……뭔가 정곡이 찔린 기분인걸.

나는 떨떠름한 시선으로 레이디를 바라보았다.

“일단 능력부터 출중하시잖아요? 무력이며 지성까지 빠지는 부분이 없으신걸요.”

“듣기로는 세 용사님들에 뒤이어, 초월자의 경지에 다다를 수도 있다고 하던데요.”

“그뿐이에요? 행정 능력까지 갖추고 계시잖아요.”

“맞아요. 1황자께서 카를로에 부임하신 이래로, 카를로는 유례없이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게다가…….”

처음 화제를 꺼냈던 레이디가, 목소리를 낮추며 짓궂게 눈매를 휘어 보였다.

“무척 잘생기셨다고요!”

레이디들 사이에서 꺄아아,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역시 그렇죠?”

“솔직히 2황자께서도 준수하시다고 생각했는데, 1황자 전하 곁에 계시니 빛이 바래던걸요.”

“저희 어머니께 얼핏 들었는데, 돌아가신 황후 폐하께서 미모로 그렇게나 유명하셨대요. 1황자께서 그 미모를 물려받으신 건 아닐까요?”

나는 괜히 입술만 잘근거렸다.

안 되는데.

라키어스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나만 알았으면 좋겠는데.

‘잠깐.’

순간 나는 멈칫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그런데 그때.

똑똑.

노크 소리가 울렸다.

나는 잡생각을 떨쳐내며 황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들어와.”

다과를 나르는 하녀이려나 싶었는데, 웬일로 노라였다.

게다가 다소 곤혹스러운 표정.

“저, 아가씨.”

머뭇거리던 노라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잠시 귀를 빌릴 수 있을까요?”

“무슨 일인데?”

나는 어리둥절해져서 노라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노라가 내 귀에 나지막이 소곤거렸다.

“지금 타운하우스에 기베르티 백작 대부인, 그리고 소백작께서 찾아와 계십니다.”

……으응?

나는 귀를 의심했다.

“그 두 사람이 도대체 왜?”

“말씀으로는 노공작님을 뵈러 찾아오셨다고 해요. 하지만 노공작님께서 계시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는데도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셔서…….”

노라가 다급하게 속삭였다.

동시에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내게 말을 붙인다.

“오를레앙 공녀, 이렇게 느닷없이 찾아뵙게 되어 미안해요.”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이었다.

“배, 백작대부인. 공녀님께 방문 요청도 넣지 않으시고 이리 찾아오시면…….”

“어머나, 친척 좋다는 게 뭐겠어.”

노라가 황급히 백작대부인을 말리려 들었으나, 백작대부인은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뜨악한 얼굴로 백작대부인과, 백작대부인의 뒤편에 서 있는 후덕한 체형의 청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쭈뼛거리며 주변의 눈치를 살피던 청년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웃어 보였다.

거의 몇 년 만에 만나는 볼프렌이었다.

동시에 백작대부인이 살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손자가 숫기가 없어서, 내가 대신 좀 말해 주려고 찾아왔어요.”

순간 레이디들이 서로 빠르게 눈짓을 주고받았다.

‘기베르티 소백작께서 여긴 어쩐 일로 오셨을까요?’

‘글쎄요. 이런 시기에 레이디의 타운하우스를 방문한다는 건…….’

레이디들은 흘끗 기베르티 소백작을 곁눈질로 살펴보았다.

잘 차려입은 정장.

손에 든 커다란 꽃다발.

그리고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저 모습까지.

‘……청혼뿐이잖아요?’

침묵이 흘렀다.

나뿐 아니라, 레이디들까지 모조리 경악하여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물론 제국에서 사촌부터 결혼이 허락되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건 그냥 법적으로 그렇다는 소리였다.

실제로 친척끼리 결혼한다면,

‘세상에, 결혼할 사람이 아무리 없어도 그렇지. 친척들끼리 혼사를 맺는다고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기가 막혀서!’

‘저 혼사를 진행하다니, 저 가문의 어른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 거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 결혼을 두고두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아주 진귀하면서도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된다…….

“자, 잠깐만요 백작대부인. 이건 좀…….”

보다 못한 노라가 백작대부인을 재차 만류하려 했으나,

“어딜 천한 것이, 높으신 분들의 대화에 끼어들어?”

백작대부인이 두 눈을 날카롭게 뜨며 노라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고는 사근사근하게 내게 말을 붙인다.

“우리 손자가 공녀에게 청혼을 하고 싶대요.”

“…….”

청혼까지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야만 할 수 있는 남자라니, 이거 실화야?

나는 다른 의미로 할 말을 잃어버렸다.

백작대부인이 워낙에 제 손자를 둥개둥개 싸고도는 통에, 혼사 얘기가 오가던 레이디들이 질겁하며 도망쳤다고는 들었는데.

실제로 그런 모습을 보게 되니까…….

‘진짜 없어 보이네.’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이 얼른 볼프렌을 채근했다.

“뭐 하니? 공녀께 꽃다발을 드리지 않고.”

“아, 예.”

퍼뜩 정신을 차린 볼프렌이 내게 꽃다발을 내밀었다.

“공녀님. 혹시 저와 결혼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

오, 다짜고짜 용건부터 말하는 청혼이라.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내게, 볼프렌이 횡설수설하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결혼하면, 오를레앙 공작가에게도 좋은 일일 겁니다.”

“공작가에도 좋은 일이라고요?”

나는 날 선 목소리로 되물었다.

한편 내 질문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볼프렌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럼요. 아무래도 공녀께서는 양녀이시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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