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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118)화 (119/163)

<126화>

* * *

그리하여 약속 당일.

라키어스보다도 먼저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으니.

“……아빠들?”

바로 키리오스와 세자르였다.

나란히 거실의 소파에 버티고 앉아서, 굳건히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꼰 채였다.

그 어떠한 말도 듣지 않을 것처럼 완고한 자세.

“아니, 이러시면 안 되지요.”

곁에는 집사가 붙어서 어떻게든 두 사람을 설득하려 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무조건 오를레앙 타운하우스에 있을 거라고 전해 줄래요?”

“아, 나도.”

세자르와 키리오스의 시큰둥한 표정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별 효과는 없는 것 같다.

나는 어리둥절하여 두 사람에게 물었다.

“두 분 모두 여기는 웬일이세요? 다들 일이 바쁘신 걸로 아는데.”

“현명하신 지적입니다, 아가씨.”

집사가 피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응접실에, 대신전과 마탑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대기 중입니다.”

“헉, 진짜야?”

나는 집사와 마탑 사람들, 그리고 대신전 사람들에게 마음속으로 심심한 위로를 보냈다.

보아하니 두 사람이 일을 내팽개치고 뛰쳐나온 탓에, 바짓가랑이라도 잡아 보려고 쫓아온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저래?

“그, 사람들이 저렇게 기다리잖아요. 무슨 일로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돌아가시는 게…….”

나 또한 은근슬쩍 두 아빠를 설득해 보려 했지만.

“안 돼.”

“안 돼요.”

두 사람은 그야말로 칼같이 거절했다.

저 단호한 반응에, 나는 조금 심각해졌다.

뭔가 심각한 일이라도 터진 건가?

그러지 않고서야, 계속 저렇게 버티고 있을 이유가 없잖아.

그런데 그때.

키리오스가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우리 꼬마가 그렇게 예쁘게 치장하고…… 라키어스 그 자식을 만나러 간다니…….”

“…….”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아, 그러니까 지금 이러고 있는 이유가…….

“설마 저랑 라키어스가 오늘 함께 외출하기로 해서 그런 거예요?”

“당연하죠!”

세자르가 정색을 했다.

“우리 귀한 딸을 웬 놈팡이가 독점하려 드는 상황 아닌가요!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어요?!”

미안해, 라키.

이제는 ‘이 자식’에서 ‘놈팡이’까지 떨어져 버렸어…….

심지어는 뒤늦게 거실로 내려온 지크프리트와 할아버지마저,

“오늘만은 네 녀석들이 타운하우스에 쳐들어온 것을 이해해 줄 만하군.”

“옳은 말이다.”

나란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정말 기가 막혀서!’

그런데 그때.

“1황자 전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노라가 공손하게 우리에게 알려 왔다.

그 뒤로, 라키어스가 성큼성큼 거실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티티, 데리러 왔…… 헉.”

웃는 얼굴로 나를 부르던 라키어스가 헛숨을 삼켰다.

그럴 수밖에.

세 아빠는 물론이고, 할아버지까지 흡사 귀신같은 얼굴이 되어 라키어스를 돌아봤으니까!

“설마 우리에게 허락조차 없이 꼬마를 데리고 갈 생각이었냐?”

“라키어스, 정말 너무한 것 아닌가요?”

“저 녀석도 오를레앙 타운하우스에 출입 금지령을 내려 놨어야 하는데.”

그래, 두 눈을 희번득 빛내는 아빠들이야 그렇다 치자.

하지만.

“성년 핑계를 대시다니, 1황자께서 이렇게 치졸하신 분은 몰랐습니다.”

우리 할아버지…… 정말 저러시던 분이 아니었는데.

나는 막막한 기분으로 네 사람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제가 라키에게 외출하자고 한 거예요. 같이 놀러 가고 싶어서요.”

그 순간.

그야말로 얼음 같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세 아빠와 할아버지는 그야말로 배신감에 가득 찬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거짓말이긴 한데.’

이 사람들에게는 충격요법이 좀 필요할 것 같다.

그러한 판단에, 나는 팔짱을 끼며 네 사람을 흘겨보았다.

“오늘 이 외출을 제가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타, 타티아나.”

어찌나 놀랐는지, 그 침착하던 지크프리트가 말까지 더듬었으나.

나는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라키 좀 그만 괴롭혀요. 알았죠?”

어깨를 으쓱인 내가 라키어스를 올려다보았다.

“가자, 라키.”

“…….”

하지만 라키어스는 걸음을 옮기기는커녕, 멍하니 나를 내려다볼 따름이었다.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재차 라키어스를 불렀다.

“라키?”

“아, 응.”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라키어스가 내게 대답했다.

“그래, 나가자.”

그러고는 다소 뻣뻣한 동작으로 나를 에스코트하여 밖으로 빠져나간다.

‘어라?’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어쩐지 라키어스의 얼굴이 조금 붉어진 것처럼 보이는데.

내 착각인가?

* * *

우리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내가 운영하는 캐릭터 상품 가게였다.

솔직히 여기를 방문할 생각은 없었는데, 라키어스가 의외로 가 보고 싶어 하더라고.

“그야 티티가 직접 여기까지 사업을 성장시킨 거잖아.”

라키어스가 다정하게 대답했다.

“꼭 한 번,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어.”

……저렇게 달콤하게 눈웃음을 짓는 건 반칙 아냐?

사람을 제멋대로 설레게 만들면 어떡해!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바람에, 나는 괜히 새침하게 시선을 피해 버렸다.

그러자 라키어스가 간절하게 나를 불렀다.

“티티, 왜 그렇게 눈을 피해?”

“으, 응?”

“내가 혹시 실수라도 한 거야? 그래서 그래?”

“…….”

나는 할 말이 궁해졌다.

그렇잖아, 차마 여기서 너 때문에 두근거려서 그랬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하려고 했는데…….

“원래 다른 레이디들에게도 그렇게 웃어 줘?”

내 입이 제멋대로 움직여 버렸다…….

라키어스가 멍하니 두 눈을 깜빡였다.

“뭐?”

하지만 한 번 터져 나온 말은 주체할 줄 모르고 계속 쏟아져 나왔다.

“너, 다른 레이디들 사이에서 네가 얼마나 인기가 많은 줄 알아?”

“그, 그래?”

“당연하지. 내 주변 레이디들 중에, 너보고 멋있다는 사람이 수두룩해.”

나는 문득 데뷔탕트 파티장의 모습을 떠올렸다.

레이디들의 라키어스를 향한 선망의 눈빛.

그 속에서, 홀로 담담하기에 더더욱 도드라졌던 라키어스.

그리고.

‘일단 능력이 출중하시잖아요? 무력이며 지성까지 빠지는 부분이 없으신걸요.’

‘듣기로는 세 용사님들에 뒤이어, 초월자의 경지에 다다를 수도 있다고 하던데요.’

‘게다가…… 무척 잘생기셨다고요!’

레이디들 사이에서 꺄아아, 터져 나오던 그 탄성까지.

순간 나는 속이 뒤집어지는 것을 느꼈다.

라키어스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을 잘 아는데도.

“너는 아무 생각 없이 웃어 주는 거겠지만, 다른 사람은 네 행동 하나하나에 설렐 수도 있다고. 그러니까…….”

“그럼 넌?”

내 횡설수설을 묵묵히 듣고 있던 라키어스가 불쑥 물었다.

뜻밖의 질문에,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지고 말았다.

“……어?”

“넌 어떠냐고.”

뭐야, 농담이지?

그런 생각으로 라키어스를 돌아봤더니, 라키어스가 곧바로 나와 눈을 마주쳐 왔다.

장난기라고는 전혀 없는 진지한 시선이었다.

“아, 그러니까…….”

나는 입술만 달싹였다.

‘이, 이럴 때는 뭐라고 말해야 해?’

머릿속이 혼란해졌다.

내가 너를 이성으로서 신경 쓰고 있는 것 같다고?

다른 레이디들이 네게 호감을 보이는 게 질투가 난다고?

……그랬다가 지금의 친구 관계까지 깨져 버리면?

나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던 라키어스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돌렸다.

“뭐, 티티 넌 당연히 나를 멋있다고 생각해 주겠지.”

나는 방금까지 난처해했던 것조차 잊고, 입을 딱 벌렸다.

“뭐어?”

“우리 그래도 꽤 오래 알고 지냈잖아. 그러니까 예의상 그 정도 생각은 해 줄 거지?”

“…….”

“나 멋있다고 생각하는 데에 돈 드는 것도 아니잖아.”

라키어스가 뻔뻔하게 대꾸했다.

나는 기가 막힌 얼굴로 라키어스를 노려보았다.

정말 분한 건, 저 말이 진실이라는 거다!

때마침 마차가 멈춰 섰다.

훌쩍 마차에서 뛰어내린 라키어스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부디 제게 공녀를 에스코트할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그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나는 라키어스의 손바닥을 꽉 꼬집는 것으로 응대했다.

“아야. 아파요, 공녀.”

“아프라고 꼬집은 겁니다만, 1황자 전하?”

나는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부러 엄살을 부리던 라키어스가 내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다만 네가 하나 착각하고 있는 게 있어.”

“착각이라니, 뭐가?”

“다른 레이디는 너처럼 대하지 않아.”

방금 전까지의 장난기는 싹 빠진, 진지한 목소리였다.

“나는…… 그러니까.”

잠시 말끝을 흐리던 라키어스가 단호하게 말을 맺었다.

“너라서 그냥 웃음이 나온 것뿐이야.”

“…….”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라키어스는 담담하게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네가 싫다면, 다른 레이디들과는 좀 더 거리를 둘게.”

“그,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순간 난 질겁하여 대답했다.

아니, 내가 조금 질투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네 인간관계를 망쳐 놓고 싶은 건 아니었거든?

나는 라키어스가 무표정한 얼굴로 레이디들을 대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오늘 1황자 전하 보셨어요?’

‘뭔가 고민이 있으신가 봐요. 그 우수에 찬 모습이라니!’

……음, 이럴 가능성이 더 높기는 하네.

나는 뭔가 애매한 기분이 된 채, 라키어스의 에스코트를 받아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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