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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123)화 (124/163)

<131화>

“……네?”

“그렇잖아요? 저는 기베르티 소백작의 청혼을 거절했는걸요.”

나는 얄밉게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 덕택에, ‘일을 해서 수입을 얻는 천박한 여자’가 기베르티 백작가의 새로운 안주인이 되지 않을 수 있었잖아요?”

그 천박한 여자에게 혼사를 맺자면서 매달린 쪽이 누구였더라?

내 말의 속뜻을 알아차렸는지, 에릭슨 자작부인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뭐, 뭐라고요?!”

저렇게 말 하나하나에 분해할 거면서, 왜 가만히 있는 사람을 먼저 공격하고 그런담?

나는 시큰둥하게 자작부인에게 대꾸했다.

“기베르티 백작가의 체면도 있으니, 추후 이 빚은 잘 챙겨 주시리라 믿어요.”

“공녀님! 그게 무슨……!”

발끈한 에릭슨 자작부인이 언성을 높였으나, 아쉽게도 그녀는 항변을 채 끝까지 이을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때마침 누군가가 대화에 끼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아, 레이디 클로비스라고 하셨습니까?”

루돌프였다.

‘쟨 지금 신사들이 대기하는 천막에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그새 쪼르르 달려와서 모네에게 껄떡거리다니, 하여간 예쁜 건 알아 가지고.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느라 무진 애를 썼다.

한편 모네는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2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루돌프가 의기양양하게 모네에게 선언했다.

“이번 사냥감은 클로비스 영애에게 바치려고 합니다. 당연히 받아 주시겠지요?”

“영광입니다, 전하.”

모네가 살포시 미소 지었다.

그 긍정적인 반응에, 아무래도 루돌프는 아무래도 자신감이 하늘 끝까지 차오른 듯했다.

날 힐끔힐끔 곁눈질하는 꼴이, 아무래도…….

‘뭐야, 이거 설마 나더러 질투라도 하라는 거야?’

나는 그냥 기가 막혔다.

동시에 황비가 다소 조급하게 루돌프에게 말을 붙였다.

“이런, 루돌프. 너는 그만 사냥을 하러 가야 하지 않니?”

어라?

비록 말투는 상냥하지만, 어쩐지 루돌프와 모네가 대화를 나누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듯한 느낌이 나는데…….

‘내 착각인가?’

나는 조금 의아해졌다.

그러던 중.

나는 무심결에 라키어스가 있는 천막을 돌아보았다.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루돌프를 바라보던 라키어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살짝 윙크를 해 보였다.

‘라키도 참.’

나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어 버렸다.

동시에 라키어스가 흘끗 모네를 돌아보았다.

‘아.’

나는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그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것처럼, 모네가 라키어스를 돌아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설마, 여기서부터 사랑의 불꽃이 튀는 건가?!’

난 긴장한 얼굴로 두 사람을 관찰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

“…….”

두 사람은 무심하게 시선을 돌려 버렸다.

어라, 생각보다는 서로를 크게 의식하는 것 같지 않네?

나는 오묘한 기분이 되었다.

* * *

그리하여 본격적으로 사냥회가 시작됐다.

레이디들은 뱃놀이를 하러 가고, 신사들은 사냥 숲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또래의 신사들이 모여 있다 보니, 젊은 청년 특유의 허세를 부릴 법도 하건만.

“…….”

“…….”

지금은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왜냐하면 한 명이 일당백을 하고 있었으니까.

“하하, 오늘은 어떻게든 최고의 사냥감을 잡아야겠군!”

그 사람은 바로.

수많은 몰이꾼들을 거느린 채, 왕처럼 거들먹거리고 있는 루돌프였다.

“그럼요. 당연히 그러실 수 있을 겁니다.”

겉으로는 루돌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신사들은 못내 떨떠름한 낯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루돌프는 아까 전부터…….

“이번에 레이디 클로비스를 사냥회에서 가장 빛나는 레이디로 만들어 줄 생각이야.”

은근슬쩍 자신이 모네에게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며, 다른 신사들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었으니까.

‘시끄럽군.’

라키어스는 미간을 좁히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뭐, 저 정도야 라키어스가 굳이 상관할 정도는 아니었다.

루돌프가 수많은 염문설을 퍼뜨리며, 경쟁자인 신사들을 견제하는 건 하루 이틀 보는 게 아니었거니와.

라키어스는 레이디 클로비스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으니까.

‘차라리 그 시간에 티티에게 무엇을 잡아다 줄지 고민하는 게 낫지.’

타티아나.

그의 오랜 소꿉친구를 떠올리자, 라키어스의 표정이 저절로 부드러워졌다.

‘사냥감은 안 잡아 와도 되니까, 몸조심해.’

‘다치면 혼날 줄 알아. 알았어?’

고작해야 짐승 따위는 라키어스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가 다칠까 봐 전전긍긍하는 그녀의 표정이 눈앞에 선했다.

그러나.

“솔직히 오를레앙 공녀가 그럭저럭 봐줄 만하게 생겼다 한들, 레이디 클로비스보다는 한참 못하잖아?”

재차 울리는 루돌프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라키어스의 발이 멈칫 멈추었다.

루돌프는 들으란 듯이 타티아나에 대한 험담을 쏟아냈다.

“공녀랍시고 콧대만 높아서는.”

“그, 2황자 전하…….”

신사들이 어찌할 바 몰라 하며 서로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루돌프는 더더욱 기세등등하게 말을 이을 따름이었다.

“그래 봤자 어차피 양녀일 뿐인데. 세 용사만 아니면 별것도 아닌 주제에…….”

“루돌프.”

싸늘한 목소리가 울렸다.

라키어스가 얼음장 같은 시선으로 루돌프를 쏘아보고 있었다.

“스스로의 천박함을 당당하게 외부에 떠벌리는 그 자만심에는 경의를 표하지.”

“뭐, 뭐?”

“나라면 창피해서라도 입을 닥치고 있을 텐데 말이야.”

“야, 너 말 다 했어?!”

루돌프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러나 라키어스는 그에 위축되기는커녕, 가소롭다는 듯이 루돌프의 시선을 맞받았다.

“레이디들이 옆에 끼고 다니는 용도의 액세서리도 아닐진대, 누가 예쁘네 누가 낫네 떠들어 대는 것 말이야.”

라키어스가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너무 천박하지 않나?”

그 노골적인 말에, 신사들이 꼴깍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라키어스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또한 내가 알기로, 오를레앙 공녀는 황비 마마를 제외하면 현재 제국에서 두 번째로 신분이 높은 여성일 텐데.”

“그, 그건……!”

“네 가벼운 주둥이 하나 때문에, 황가와 오를레앙 공작가의 관계에서 혹시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헉.

정곡을 찔린 루돌프가 헛숨을 들이쉬었다.

라키어스가 재차 못을 박았다.

“그 책임은 당연히 네가 져야 할 텐데, 네게 책임을 질 능력이나 있나?”

“너, 말 다 했……!”

“분노한 스승님들을 네가 말릴 수 있느냐는 소리야.”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사들은 내심 속이 시원했다.

‘솔직히 오를레앙 공녀를 계속 험담하는 게 영 불편했는데…….’

‘1황자 전하께서 저렇게 제지해 주시니 다행이로군.’

오를레앙 공녀가 누구인가.

제국의 유일한 공작가인 오를레앙의 외동딸이자, 세 용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레이디 아닌가.

“정말, 어찌나 주둥이를 쉴 새 없이 놀리는지. 네가 손이 아니라 입으로 사냥하는 줄 착각할 정도라니까.”

라키어스가 루돌프를 위아래로 뜯어보다 말고, 지그시 입술 끝을 밀어 올렸다.

선명한 비웃음이었다.

“하긴 네 기나긴 자기자랑을 듣고 있으면, 사냥감들이 지긋지긋해서 쓰러질지도…….”

“이, 이 자식이!”

루돌프는 참지 못하고 라키어스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고개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가뿐히 그 주먹을 피한 라키어스는, 오히려 날아오는 주먹을 제 손으로 움켜쥐었다.

“이것, 놔!”

루돌프는 라키어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구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라키어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주먹을 붙든 손아귀에 힘을 가할 따름이었다.

“윽…… 크윽…….”

루돌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바들바들 어깨를 떨던 루돌프가 비명처럼 외쳤다.

“아악, 놓으란 말이야!!”

그제야 라키어스는 손에서 힘을 풀었다.

루돌프가 제 손을 감싸 쥐며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너무 엄살 부리는 거 아냐? 뼈에는 이상이 없도록 잘 조절했는데 말이야.”

라키어스가 얄밉게 질문을 던졌다.

루돌프가 눈물 고인 눈으로 라키어스를 노려보았다.

“이 미친 새끼가! 내가 널 가만둘 줄 알아?! 오늘 일은 아바마마께 고해서……!”

“이건 뭐, 어린애도 아니고.”

저를 향해 쏟아지는 욕설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듣던 라키어스가, 시큰둥한 얼굴로 되물었다.

루돌프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시뻘게졌다.

“뭐, 뭐?!”

“아바마마께 일러바친다는 말을 너무 당당하게 하네.”

“야!”

“하던가. 뭐, 능력이 없으면 혓바닥이라도 잘 놀려야겠지만…….”

마지막으로 루돌프를 일별한 라키어스가, 짧게 조소하며 자리를 벗어났다.

“네가 최초로 혓바닥으로 사냥감을 잡는 데 성공한 사람이 될 수도 있지. 그럼, 잘해 봐.”

“저 개자식이!!”

루돌프가 재차 발악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라키어스는 훌쩍 사냥 숲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진짜, 루돌프 새끼 눈이 어떻게 됐나. 레이디 클로비스보다 티티가 훨씬 더 예쁘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중.

라키어스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보다, 모네 클로비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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