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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124)화 (125/163)

<132화>

라키어스는 아까 모네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기분을 상기했다.

차가운 손이 등골을 쓸어내리는 듯.

……섬뜩했었다.

‘그 눈빛, 도대체 뭐였을까.’

감정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마치 무생물 같은 눈동자.

그런 눈을 라키어스는 자주 보았다.

그러니까…….

‘마수들.’

마수들은 마기에 물들어 이지를 잃고, 살아있는 생물을 마구잡이로 공격한다.

그 마수들과 꼭 닮은 눈동자였다.

“…….”

이상하게 꺼림칙한 예감이 들어서.

라키어스는 저도 모르게 슬며시 미간을 좁혔다.

* * *

몇 시간 후.

나는 자꾸만 흘러나오려는 하품을 애써 삼키며,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아, 진짜 지루하다.’

햇빛을 머금어 새파랗게 빛나는 호수는 예뻤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또한 기분 좋았으나, 그뿐이었다.

‘어쩜 저렇게 재미없는 이야기만 할 수가 있지?’

황비는 뱃멀미가 있다며 뱃놀이에 불참했다.

자연스럽게 모두의 관심을 받는 모네가 뱃놀이의 주인공이 되었는데.

모네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에릭슨 자작부인이 특히 눈에 띈다.

“레이디 클로비스는 정말 현명하시네요!”

마치 입 안의 혀라도 된 것처럼, 모네의 별것 아닌 말에도 하나하나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저렇게까지 비위를 맞출 일이야?’

‘아무리 레이디 클로비스가 황비 마마의 비호를 받고 있다지만…….’

그 모습을 보던 레이디들이 다소 떨떠름해할 정도로.

보다 못한 레이디 한 명이 분위기를 환기하려 시도했다.

“레이디 클로비스께서는 혹시 꿈이 있으신가요?”

질문을 던진 레이디는 아마도,

‘좋은 집안과 혼사를 맺고 싶어요.’

‘제 이름으로 전시회를 한 번 열어 보고 싶어요.’

‘사교계에서 좋은 평판을 얻고 싶어요.’

……뭐, 이런 종류의 평범한 대답을 기대하고 있었겠으나.

“글쎄요, 저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던 모네는, 기대하던 것과는 다소 동떨어진 대답을 내어놓았다.

“인정받고, 사랑받는 게 꿈이에요.”

모네가 양 뺨을 붉히며 살포시 미소 지었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한 명쯤, 인정받고 싶은 분이 있는 법이잖아요?”

……그런가?

레이디들은 슬쩍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모네는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음

“언젠가 제게 그런 분이 생긴다면…… 그분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요. 그게 제 꿈이에요.”

순간 검은 눈동자 위로 기이한 빛이 번뜩였다.

“그것만큼 멋진 일도 없지 않겠어요?”

“…….”

“…….”

레이디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애써 감추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조금 알쏭달쏭해졌다.

‘그건 좀 아니지 않아?’

남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산다는 건.

결국 내 삶의 무게추가 나 자신보다는 타인에게 가 있다는 건데…….

“음, 저는 레이디 클로비스와는 생각이 조금 달라요.”

무심결에 입을 연 내가, 뒤늦게야 입술을 짓씹었다.

‘아차.’

속마음이 불쑥 입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그러자 모네가 휙 나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오를레앙 공녀님?”

“…….”

분명 부드러운 목소리와 눈빛인데도.

모네가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아…… 그게.”

나는 최대한 말을 고르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물론 남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기쁘겠죠.”

“그런데요?”

“다만 뭐랄까, 레이디 클로비스의 말씀은 자기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좀 더 방점이 찍혀 있는 것 같아서…….”

모네가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아니, 왜 저렇게 쳐다보는 건데? 무섭잖아!’

나는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인생을 직접 살아가는 사람은 저잖아요.”

“…….”

“인생의 주인은 저니까, 다른 사람에게 기준점을 맞추기보다는 저 스스로의 기준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순간 모네가 흠칫 어깨를 굳혔다.

마치 허를 찔리기라도 한 것처럼, 검은 눈동자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뭐야, 왜 저래?’

나는 당황스러운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한편 싸늘해진 분위기를 바꿀 요량인지, 다른 레이디들이 황급히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머나, 그럼 설마 레이디 클로비스께서는 누군가를 마음에 품고 계신 건가요?”

“아뇨,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예요.”

방금 전까지의 얼음장 같은 낯은 간데없이, 모네는 다시 한번 수줍은 레이디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

방금 전의 대화를 끝으로.

모네는 단 한 번도 내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 * *

붉은 노을이 만물을 적셨다.

사냥을 끝낸 신사들이 하나둘씩 귀환하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많은 사냥감을 잡은 신사는 어깨에 힘이 들어갔고, 그렇지 못한 신사는 다소 기가 죽은 모습이었다.

다만, 레이디 클로비스에게 최고의 사냥감을 바치겠노라고 호언장담했던 루돌프는…….

“2황자 전하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아까 전에 환궁하셨습니다. 그…….”

라키어스를 힐끔거리며 신사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손을 좀 다치셔서.”

순간 라키어스가 조소했다.

‘그럼 그렇지.’

제 몸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줄 아는 루돌프가, 그런 강렬한 통증을 참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솔직히 뼈는 상하지 않도록 힘 조절을 한 건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꽤 아프겠지.’

아마 지금쯤, 손 전체에 푸르고 붉게 피멍이 올라왔겠지.

물론 카를로의 기사들은 그 정도 부상에는,

‘얌마, 침 바르면 나아! 뭘 사내새끼가 그런 걸로 징징 짜고 있어?!’

라면서 핀잔을 줄 테지만 말이다.

순간 라키어스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카를로는 지금 어떨까.’

황제는 카를로를 제 소속으로 두기 위해 무리한 인사를 단행했고.

그리하여 라키어스는 인수인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카를로를 빠져나와야 했다.

최대한 후임자가 잘 알아볼 수 있도록, 인수인계 자료들을 만들어 둔다고 했지만.

그래도 그 정도로 괜찮을지…….

“후우.”

짧게 한숨을 내쉬던 라키어스가 슬쩍 시선을 들어 올렸다.

저 멀리, 호수를 여유롭게 유영하는 배가 한 척 보였다.

레이디들이 뱃놀이를 하는 배였다.

그런데.

‘저 사람, 티티 아니야?’

라키어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갑자기 뱃머리에 레이디 두 명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곁에 선 다른 레이디는 라키어스가 알 바 아니었지만.

바람결에 휘날리는 봄꽃을 닮은 분홍빛 머리카락은, 타티아나의 것이 확실했다.

그런데 그때.

‘잠깐.’

순간 라키어스가 두 눈을 부릅떴다.

레이디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 것 같던 타티아나가, 갑자기 배 너머로 추락한 것이다.

“티티!!”

경악한 라티어스가 곧장 말 위에서 뛰어내렸다.

* * *

카드 게임도 하고, 체스도 두고, 향긋한 차와 달콤한 티푸드도 즐기고.

그렇게 한참을 놀다가 지쳐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소강됐을 무렵.

레이디 한 명이 들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앗, 저기 보세요.”

흰 손끝이 호수 기슭을 가리켰다.

“사냥이 끝났나 봐요. 신사분들이 돌아오고 있어요!”

어디, 어디?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배의 난간 쪽으로 다가갔다.

호수 기슭을 따라 마련된 천막으로 신사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처음 말을 꺼냈던 레이디가, 짓궂은 목소리로 모네에게 말을 붙였다.

“그러고 보니 2황자 전하께서 레이디 클로비스께 사냥감을 바치기로 하셨죠?”

“그, 그렇기는 하지만…… 아직 그건 모르는 일이니까요.”

발그레하게 뺨을 붉히던 모네가 문득 나를 돌아보았다.

“오를레앙 공녀님.”

“네?”

설마하니 나를 부를 줄은 몰랐는데.

나는 얼굴에 화색을 띠며 모네를 마주 보았다.

모네가 나를 향해 방긋 미소 지었다.

“뱃머리 쪽으로 가면 신사들이 더 잘 보일 것 같아요. 함께 가실래요?”

“좋아요!”

모네가 드디어 화를 풀었나 봐!

나는 신이 나서 모네와 함께 뱃머리로 향했다.

“저기, 보이세요?”

모네가 뱃머리 너머를 가리켰다.

신사들이 삼삼오오 돌아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음, 그렇게까지 잘 보이는 것 같지는 않은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때마침 배가 가볍게 기우뚱거렸다.

이 정도 기우뚱거림은 몸을 가누는 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기에, 나는 쉽사리 균형을 잡았는데.

다만 문제는, 모네가 커다랗게 휘청거린 것이었다.

“앗!”

아무래도 발을 잘못 디뎠는지, 비틀거리던 모네가 내 손목을 홱 잡아챘다.

“이런, 괜찮아요?”

나는 모네를 마주 붙잡아 주려 했다.

그런데.

‘어?’

순간 나는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시야가 뒤집히는가 싶더니, 기분 나쁜 부유감이 느껴졌다.

그랬다.

나는 지금 배 너머로 추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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