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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126)화 (127/163)

<134화>

“…….”

말문이 막힌 내가 입을 다물었다.

라키어스가 서늘한 시선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런데 왜 나를 말렸어?”

……역시 내 짐작이 맞았구나.

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사실 호수에 떨어질 적, 모네가 나를 내려다보던 그 무표정한 얼굴이 계속 눈에 밟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 하나만으로 의심하기에는 너무 과하다고 여겼다.

배가 기우뚱거리는 통에, 모네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커다랗게 휘청거렸던 건 사실이었으니까.

균형을 잡으려 나를 붙들다가, 실수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애써 그렇게 생각하려 했다.

왜냐하면.

‘모네는 이 세계의 여자주인공이니까.’

원작에서의 모네는 선량하고 다정한 인물이었고.

나는 그런 모네를 응원했었다.

하지만…….

나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레이디 클로비스가 악의를 가지고 나를 호수에 빠뜨린 게 맞는지, 완전히 확신이 서지 않아서 그랬어.”

“…….”

“또한 레이디 클로비스는 사람들의 호감을 한 몸에 얻고 있으니까. 증거도 없이 섣불리 지목했다가 네가 괜히 곤란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나는 고개를 꼿꼿이 세웠다.

“라키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레이디 클로비스가 나를 공격한 게 맞는 거겠지.”

“……티티.”

못내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라키어스에게, 나는 방긋 웃어 보였다.

“걱정 끼쳐서 미안해. 앞으로는 네가 마음 쓸 일 없도록 할 거야.”

진심이었다.

비록 모네가 원작의 여자주인공이고, 웬만하면 원만한 관계를 맺고 싶었던 건 사실이었지만.

나, 그리고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적대하는 건.

그대로 보아 넘기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 정말.”

복잡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던 라키어스가 이마를 짚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아까는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고.”

그런 라키어스를 물끄러미 마주하던 내가, 배시시 눈매를 접어 보였다.

“그래도 정말 고마웠어.”

“뭐가?”

“날 구해 주고, 나 대신 레이디 클로비스에게 이 문제를 따져 주려고도 했잖아?”

“…….”

순간 라키어스는 허를 찔린 표정이 되었다.

내친김에, 나는 진심을 담아 칭찬을 건넸다.

“그때 너, 엄청 멋있었다?”

그 순간.

라키어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깜짝이야.

왜 갑자기 일어나고 그래?

나는 어리둥절해져서 라키어스를 올려다보았다.

동시에 라키어스가 시큰둥한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너, 각오해.”

“응?”

“오늘 있었던 일들, 스승님들께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할 테니까.”

“……저, 라키?”

내 얼굴에서 핏기가 싹 빠져나갔다.

“제발, 라키어스 님. 한 번만 자비를…….”

“싫어.”

마지막으로 나를 흘겨본 라키어스가 내 침실을 빠져나갔다.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난, 문득 미간을 좁혔다.

어째 라키어스의 귓바퀴며 목덜미가 붉어 보이는데…….

‘쟤도 감기 걸린 거 아냐?’

고개를 갸웃거리던 것도 잠시.

나는 이내 그 의심을 털어 버렸다.

뭐, 라키어스는 아빠들이 인정해 준 강자이니까.

설마하니 호수에 한 번 빠졌다고 감기에 걸릴 리가 없지.

그나저나 라키어스가 아빠들에게 오늘 일을 모조리 고해바친다고 했으니…….

“하아아…….”

나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기나긴 한숨을 내뱉으며 침대 헤드에 스르륵 몸을 기댔다.

내게는 예지 능력 따위는 전혀 없는데도, 앞으로 일주일간 내 미래가 어떨지 훤히 그려졌다.

그건 바로.

세 아빠와 할아버지가 만들어낸 과보호 지옥에 갇히는 미래였다…….

그럼에도 자꾸만 마음이 놓이는 이유는.

나는 닫힌 문을 힐끔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라키에게 내 마기를 들키지는 않은 것 같지?’

아까 호수에 빠졌을 때에는, 마기가 제멋대로 각성해서 정말 곤란했었다.

그나마 예전처럼 몸속에 흐르는 마기가, 주인인 나 자신을 적대하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하마터면 들킬 뻔했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것도 잠시.

나는 배시시 웃었다.

뭐, 어찌 보면.

아빠들과 할아버지에게 잔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 자체가 행복인 거니까.

날 걱정하고 아끼는 사람들.

내가 마왕임을 들킨다면, 다시는 누리지 못할 따스한 애정.

이미 저 애정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한 번 봄날 햇볕의 따스함을 만끽해 본 사람은, 다시는 추운 겨울 속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나도 그랬다.

“…….”

난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이기적이라고 해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절대로 이 행복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 * *

어둠이 내린 밤.

막 1황자궁으로 들어서던 라키어스는, 그리 반갑지 않은 사람을 만났다.

“……레이디 클로비스?”

모네 클로비스였다.

모네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라키어스를 올려다보았다.

“정말 죄송해요. 오늘 일로 1황자 전하께도 폐를 끼친 것 같아서…….”

금방이라도 눈물 한 방울을 또르르 흘려낼 것만 같은 모습.

그 자태가 어찌나 가냘픈지 모른다.

하지만.

“글쎄요, 사과할 사람은 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라키어스는 냉담하게 대꾸했다.

“다만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네?”

“아까 오를레앙 공녀를 일부러 호수에 빠뜨리신 거, 다 봤습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모네가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무슨 오해를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오해가 아니라는 것쯤은, 레이디 클로비스 본인이 더 잘 아실 텐데요.”

그 말에, 모네가 움찔 어깨를 굳혔다.

라키어스가 짓씹듯 말을 맺었다.

“아까는 오를레앙 공녀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서, 따지지 않고 물러났습니다만.”

“……1황자 전하.”

“앞으로는 행동을 좀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알겠습니까?”

그 말을 끝으로, 라키어스는 휙 몸을 돌렸다.

모네는 한참을 가련한 눈빛으로 라키어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하, 우습네.”

라키어스가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모네가 비웃음을 터뜨렸다.

어차피 그 정도로는 죽지도 않을 텐데, 유난 떨기는.

타티아나 폰 오를레앙.

마왕 주제에 인간계에 기어들어 와서, 세 초월자 밑에 숨어 꾸역꾸역 목숨을 붙여 온 버러지.

하지만 모두가 저 계집만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나.

……심지어는 바르톨로아 가주님까지도.

모네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이건 불공평해.”

모네 자신은 가주님께 단 한 톨의 관심이라도 나눠 받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는데.

타티아나 저 계집은 그저 마왕이라는 이유로……!

잠시 후.

모네는 치솟는 분노를 간신히 가라앉혔다.

‘진정하자. 일단은 가주님께 도움이 되어야 하니까.’

바르톨로아 가주님.

그분을 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었다.

아니, 해야만 했다.

그렇게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돌아서려던 그때.

모네는 불현듯 누군가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다만 뭐랄까, 레이디 클로비스의 말씀은 자기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좀 더 방점이 찍혀 있는 것 같아서…….’

‘인생의 주인은 저니까, 다른 사람에게 기준점을 맞추기보다는 저 스스로의 기준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마왕이 아무것도 모르고 지껄이던 그 말들.

그저 우습기 짝이 없는 이상론이었다.

‘머리가 얼마나 꽃밭이면, 저렇게 속 편한 말이나 지껄이고 있을까.’

모네는 그렇게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그 말을 들었던 그때만큼은, 조금이나마 마음이 흔들렸던 것도 같기도…….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순간 모네는 입술을 짓씹었다.

‘됐어, 더 생각하지 말자.’

애써 생각을 끊어 낸 모네는 신경질적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짜증 나.’

그 별것도 아닌 말을, 모네는 끝내 완전히 떨쳐 내지는 못했다.

* * *

달칵.

침실 문이 닫혔다.

라키어스는 문에 기대선 채, 긴 한숨을 내뱉었다.

“후우.”

방금 전, 레이디 클로비스를 마주쳤던 때.

‘정말 죄송해요. 오늘 일로 1황자 전하께도 폐를 끼친 것 같아서…….’

눈매를 촉촉하게 적시며 그를 올려다보는 모네를 마주하자마자, 어찌나 기가 막히고 화가 나던지.

눈앞이 새하얗게 물든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았다.

‘아냐, 화가 나는 건 당연하지.’

라키어스는 애써 스스로를 납득시키려 했다.

‘애초에 피해자인 티티를 두고, 나한테 사과하는 것부터가 마음에 안 들어. 면피용인 게 빤히 보이잖아?’

어쨌거나 타티아나가 크게 다치지 않아서 그건 다행이었다.

속으로 그렇게 안도하던 차.

‘……그건 그렇고, 아까의 그 느낌은 뭐였을까.’

라키어스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호수 안에서 느꼈던 그 강렬한 이질감.

인간과는 완전히 근본부터 다른, 절대적인 그 누군가를 마주하여 압도당하는 감각.

‘역시 내가 예민했던 거겠지?’

애초에 그럴 일이 없지 않은가.

타티아나는 그저 그의 사랑스러운 친구일 뿐인데.

순간 라키어스가 멈칫했다.

‘친구라.’

평소에는 당연히 그녀를 친구라고 칭했을 텐데.

이상하게 지금은 그 단어가 낯설었다.

아니, 정확히는.

‘……마음에 안 들어.’

라키어스는 문득, 물에 흠뻑 젖어서 맨살이 비쳐 보이던 타티아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나마 레이디들만 모여 있던 자리라서 망정이지.

만약 그 자리에 다른 남자가 있었고, 혹시나 그들이 타티아나의 젖은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면…….

‘제기랄.’

앙다문 턱에 지그시 힘이 들어갔다.

“아, 정말.”

라키어스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였다.

더 이상 스스로를 속이는 건 불가능했다.

아무래도 그는, 타티아나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친구가 아닌 이성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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