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127)화 (128/163)

<135화>

11. 청문회

약 일주일 후.

감기를 말끔히 털어낸 나는, 타운하우스의 입구에 선 채 아쉬운 얼굴로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조금 더 계시다가 가시면 좋을 텐데요.”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할아버지께서 오를레앙 공작령으로 돌아가시는 날이었으니까.

“아니다. 더 이상 공작령을 비워 둘 수는 없으니까.”

할아버지께서는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으셨다.

나도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할아버지께서는 광대한 오를레앙 공작령을 총괄하시는 분이시다.

오래 자리를 비울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사실, 원래는 데뷔탕트 파티까지만 참석하고 공작령으로 돌아가시려고 했었는데…….

‘뭐? 내 손녀가 사냥회에서 호수에 빠졌다고?!’

기겁을 하시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세상에, 이 열 좀 봐라. 기침은 안 나느냐? 뜨거운 약차라도 좀 마시는 게 어떠냐?’

솔직히 객관적으로 가벼운 감기였음에도, 할아버지는 못내 걱정을 감추지 못하셨다.

흑, 이렇게 천사 같으신 할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인데.

아쉬워하는 게 당연한 거 아냐?!

“할아버지…….”

“아가…….”

우리는 애틋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심술궂은 목소리가 불쑥 대화에 끼어들었다.

“얼른 출발하셔야지요, 아버지.”

곁에 서 있던 지크프리트가, 어느새 아니꼬워 죽겠다는 표정이 되어 우리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가시는 길에 야영이라도 하시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저, 저 녀석!”

할아버지께서 두 눈을 부라리며 언성을 높이셨다.

“아비가 돌아간다는데 아쉬워하지는 못할망정!”

“뭐, 이만하면 하실 건 다 하고 가시는 거잖습니까?”

그러나 지크프리트는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일 따름이었다.

그 후.

음산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타티아나의 데뷔탕트 파트너도 하셨고요.”

“하긴, 그건 그렇지.”

더 기가 막힌 건, 그 말을 듣자마자 할아버지의 기세가 수그러졌다는 점이었다…….

그뿐이랴?

갑자기 할아버지가 씩 웃으시더니, 지크프리트를 은근슬쩍 떠보기 시작하셨다!

“왜, 부러워 죽겠느냐?”

“…….”

순간 지크프리트의 얼굴에 짙은 패배감이 서렸다.

동시에, 할아버지의 양어깨에 갑자기 힘이 잔뜩 들어갔다.

저 득의양양한 표정은 도대체 뭐람?!

“역시 부러운 게로구나. 그렇지?”

“얼른 출발하시지요, 아버지.”

지크프리트가 이를 악물며 대꾸했다.

“……그, 조심히 돌아가세요.”

나는 그냥 배웅에나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대번에 애틋한 표정이 되어 나를 돌아보셨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꼭 연락하고. 응?”

참다못한 지크프리트가 와락 언성을 높였다.

“아, 안 가십니까?! 이러다가 출발하시기 전에 해 떨어지겠습니다!!”

* * *

그렇게 할아버지께서 떠나신 후.

“드디어 아버지께서 돌아가셨군.”

지크프리트는 흡사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한 얼굴이 되었다.

‘으이구, 인류를 구했다는 용사가 저렇게 유치해도 되는 거야?’

첫째 아빠, 어째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어려지는 것 같단 말이야.

지크프리트를 흘겨보던 내가 노라를 돌아보았다.

“아, 노라. 레이디 클로비스에게 선물 답례는 했어?”

“네, 말씀하신 대로 신경 써서 보냈습니다만…….”

대답하는 노라의 표정이 영 떨떠름하다.

하기야, 그럴 수밖에.

나는 모네가 선물과 함께 보내 왔던 편지 내용을 떠올렸다.

<타티아나 공녀님께.

간밤 편안하게 보내셨는지요.

감기에 걸려서 편찮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직접 찾아뵙는 것이 도리겠으나, 상황이 여의치 못하여 그러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애정을 담아서 선물을 동봉합니다.

제가 직접 고른 스카프인데, 아프실 때에는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목에 두르고 있으면 따뜻하지 않으실까 합니다.

부디 쾌유하시기를 빕니다.

공녀님을 언제나 존경하는,

모네 클로비스.>

사실 편지만 봤을 때는 굉장히 정중했다.

‘다만 그 선물이란 것이…….’

나는 오묘한 기분으로 소파 위에 걸쳐져 있는 스카프를 힐끔 바라보았다.

요리 보고 저리 봐도 저렴해 보이는 원단.

백 걸음 밖에서 보아도 눈에 띌 법한, 요란하고 유치한 무늬.

그랬다.

저게 바로 모네가 내게 보낸 선물이었다…….

‘그래도 모처럼 선물로 받은 거니까, 어떻게든 사용해 보긴 해야겠지?’

그렇게 내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스카프를 목에 둘러보고 있자니,

“타티아나.”

지크프리트가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불렀다.

“그 걸레짝 같은 스카프는 도대체 뭐지?”

“그으…….”

차마 모네에게 선물이랍시고 받았다고는 할 수 없어서.

애매하게 웃어 보인 내가, 스카프를 벗어서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말이지, 상대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면 이런 선물은 보내지 않을 텐데.

심지어는 저 기베르티에서 보내 온 장갑도 재질 자체는 고급스러웠다.

비록 디자인은 촌스러웠을지라도 말이다.

일단 트집을 잡히기는 싫었기에, 노라에게 신경을 써서 답례하라고는 해 두었지만…….

일부러 계속 내 신경을 건드리는 건가?

‘이거 점점 짜증 나는데.’

나는 슬며시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원작의 여자주인공과 얼굴을 붉히고 싶지는 않았기에,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참고 넘기려 했는데.

며칠 후.

내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내 귀에 이상한 소문이 들어온 것이다.

최근 사교계에서 은밀하게 퍼지고 있다는 그 소문은 바로…….

* * *

사교계의 떠오르는 샛별, 모네 클로비스.

황비를 후견인으로 둔 것으로도 모자라, 눈부신 미모로 2황자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그녀.

최근 사교계에서는, 그런 모네가 오를레앙 공녀에게 박대를 받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레이디 클로비스 말이에요, 공녀님께서 물에 빠지신 것에 책임을 느끼셨나 봐요. 어찌나 자책하시던지…….’

한껏 안타까운 표정으로 중얼거리던 에릭슨 자작부인이, 돌연 두 눈에 날을 세웠다.

‘솔직히 공녀님의 사고가 레이디 클로비스의 탓은 아니잖아요? 그건 그냥 불운한 사고였을 뿐이라고요.’

그, 그런가?

레이디들은 조금 어리둥절했다.

물론 배가 기우뚱거렸고, 그래서 미처 몸의 균형을 잡지 못했다는 건 안다.

하지만 아무리 실수라 한들 공녀를 붙들었고, 그래서 공녀가 호수에 빠진 건 사실 아닌가?

‘레이디 클로비스께서는 아무 말 말라고 하셨지만,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서 말이에요.’

하지만 자작부인은 계속해서 열변을 토할 따름이었다.

‘심지어 레이디 클로비스께서는 눈물까지 보이셨다고요! 제가 직접 봤다니까요?’

‘……그, 그러셨나요?’

‘뭐, 자작부인께서도 마음이 좋지 않으시겠네요.’

자리에 앉은 레이디들은 떨떠름한 낯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뭐, 저 말에 신빙성이 아예 없지는 않으리라.

에릭슨 자작부인은 레이디 클로비스의 뒤꽁무니를 금붕어 똥처럼 따라다니기로 유명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래도 레이디 클로비스께서는 공녀님이 걱정되어 직접 선물을 골라서 보내셨는데…….’

자작부인은 긴장감을 고조시키려, 일부러 커다랗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고는 열띤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글쎄, 공녀께서는 대번에 하녀에게 선물을 넘겨 버리셨다고 해요!’

‘네에? 오를레앙 공녀께서요?’

레이디들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번졌다.

신이 난 자작부인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선물이 마음에 안 들어도 그렇지, 그래도 최소한 선물이 어떤 건지는 확인해 봐야 하지 않나요?’

‘으음…….’

‘레이디 클로비스께서는 비록 직접 찾아가시지는 못해도, 선물까지 챙겨 보내시는 성의를 보이셨는데. 최소한 사람의 성의는 알아줘야 할 것 아니에요?’

하지만 레이디들은 쉽사리 자작부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공녀님께서 그렇게 상식이 없으신 분은 아니실 텐데요.’

‘그런 식으로 무례하게 구실 분은 아니세요.’

‘아니죠!’

자작부인이 대번에 정색을 했다.

‘세 용사께서 공녀님의 아버지 역할을 하고 계시잖아요. 그래서 콧대를 세우는 거라고 봐요.’

‘설마, 그럴 리가요.’

레이디들이 못내 미심쩍은 표정을 감추지 못하던 바로 그때.

자작부인이 은밀하게 목소리를 낮춰 말을 이었다.

‘거기다 솔직히…… 공녀님께서 여태까지 처신을 다소 잘못하신 건 사실이잖아요.’

‘세상에,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레이디들이 화들짝 놀라 에릭슨 자작부인을 바라보았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번에 데뷔탕트 파티에서 2황자 전하의 춤을 거절하신 것도 말이에요.’

자작부인은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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