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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128)화 (129/163)

<136화>

‘어떻게 보면 1황자 전하와 2황자 전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신 것 아닌가요?’

‘에릭슨 자작부인, 말조심하세요!’

‘맞아요, 누가 듣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요?’

질겁한 레이디들이 자작부인의 말을 틀어막으려 들었다.

하지만 자작부인은 기어코 입을 놀렸다.

‘거기다 이번에 저희 오라버니의 청혼을 거절하신 것도…….’

그렇게 은근슬쩍 한 마디를 더 얹으려던 자작부인이, 레이디들의 싸늘한 시선에 찔끔 놀라 입을 다물었다.

‘그건 기베르티 백작가에서 청혼을 너무 무례하게 해서 그런 거잖아요.’

‘애초에 친척들끼리 혼사를 맺기는 왜 맺나요?’

‘세 용사들께서 얼마나 화가 나셨으면, 직접적으로 기베르티 백작가에게 제재를 하고 나섰겠어요?’

‘그런 말씀은 하지도 마세요. 아시겠어요?’

수없이 쏟아지는 핀잔에, 결국 자작부인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요새 이런 소문이 떠돌고 있더라고요.”

말을 마친 헬렌이 흘끔 내 눈치를 살폈다.

“어째 에릭슨 자작부인은 결혼을 해서도 전혀 변한 게 없네. 사람이 일관적이기는 해.”

짧게 조소한 내가 재차 헬렌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쨌든, 그 자리에 레이디 클로비스는 아예 없었다는 거지?”

“네. 직접 떠들어 댄 사람은 에릭슨 자작부인뿐이었어요.”

……그렇단 말이지.

나는 두 눈을 날카롭게 빛냈다.

이 말도 안 되는 소문이 퍼져 나가는 동안, 모네가 직접적으로 한 일은 단 하나뿐이었다.

에릭슨 자작부인 앞에서 구슬피 눈물을 흘린 것.

‘거기다 나에 대한 험담을 하지 말라면서, 자작부인을 만류하기까지 했다지?’

자신에게는 화살이 돌아오지 않도록, 혹여나 상황이 뒤집혀도 발뺌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행동한 게 티가 난다.

결국 자작부인 뒤에 숨어서, 자기 마음대로 사교계의 분위기를 쥐락펴락하고 있지 않은가.

‘더는 못 봐주겠네.’

마음을 정한 내가 날 선 미소로 헬렌을 마주 보았다.

“그러고 보니, 레이디 클로비스가 주기적으로 모임을 개최한다지?”

“네, 맞아요. 뭐라더라, 원예 모임이라고 하던데요.”

“알았어. 고마워.”

나는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모네의 얼굴을 한 번 볼 때가 된 것 같다.

* * *

며칠 후.

모네가 주최하는 원예 모임이 시작되기 30분 전.

황비와 모네는 싸늘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먼저 포문을 연 사람은 황비였다.

모네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양, 연신 예쁘게 속눈썹을 팔랑이며 황비를 마주 보았다.

“속셈이라니?”

“……너, 내가 모를 줄 알고 그따위로 되묻는 거야?”

황비가 뼈마디가 새하얗게 도드라지도록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제도에 온 이래로, 계속 내 아들과 붙어 다니고 있잖아!”

“그래서?”

모네가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되물었다.

그 태연자약한 태도에, 황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 주제도 모르는 계집이! 내 아들에게 접근하지 말란 말이야!”

날 선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모네는 그저 화사하게 눈매를 접어 내릴 따름이었다.

“어머나, 주제도 모르는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의 멍청한 아들이지.”

“뭐야?!”

“그렇잖아?”

모네는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미천한 인간 주제에, 감히 나와 어울리려 드는 것 자체가 주제도 모르는 짓 아닌가?”

“……너!”

황비가 두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모네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입이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야지.”

“뭐, 뭐라고?”

“내 눈에는, 내가 네 아들에게 접근하는 게 아니라…….”

또각, 또각.

모네가 구두 굽 소리를 내며 황비의 코앞으로 다가갔다.

“오히려 네 아들이 내게 접근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니야?”

그러고는 보란 듯이 제 목을 드러내 보였다.

희고 가느다란 목 위로, 오팔과 진주를 화려하게 엮어 낸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이 목걸이 보여? 네 아들이 나한테 선물로 주더라고.”

모네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뭐라더라, 이 목걸이를 볼 때마다 자기를 떠올려 달라나?”

“이 미친……!”

황비가 아득 이를 갈아붙였다.

당장이라도 모네의 머리채를 휘어잡기라도 할 것처럼, 살벌한 기세였다.

“한번 잘 생각해 봐.”

하지만 다음 순간, 모네의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황비는 덜컥 굳어지고 말았다.

“만약 내가 네 아들에게, 네가 그를 황제로 만들기 위해 어디까지 하고 있는지 말해 버린다면.”

“……뭐?”

“이 나라의 황비인 네가, 인간들의 원수인 마족과 손을 잡고 있음을 폭로한다면…….”

그 자리에 얼어붙은 황비를 향해, 모네가 나긋하게 소곤거렸다.

“루돌프는 무슨 반응을 보일까?”

“…….”

황비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짓씹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저 분을 이기지 못하고 바들바들 어깨를 떨 뿐, 결국에는 아무런 항변도 하지 못한다.

그런 황비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던 모네가 불쑥 입을 열었다.

“아참, 그렇지. 당신이 나를 몇 가지 도와주었으면 하는데.”

“……도와달라고?”

“그래.”

모네가 살짝 턱을 치켜올리며 황비를 응시했다.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오만한 눈빛이었다.

“첫째로는, 대신전에서 고서적이 발견되었다지?”

“그게 왜?”

“왜긴 왜야. 그 고서적을 해석하는 과정이 지지부진하다고 하던데.”

모네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내가 도와주려고 그러지.”

도대체 왜?

무슨 속셈으로?

황비의 입 안으로 수많은 질문이 맴돌았다.

하지만 황비가 이유를 묻기도 전에, 모네가 되물었다.

“황비의 추천이라면 나도 고서적을 해석하는 데에 한 자리 차지할 수 있겠지. 안 그래?”

“…….”

목을 조르는 듯 기이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입술만 잘근거리는 황비에게, 모네가 나긋하게 말을 이었다.

“두 번째 부탁은…… 너희 인간들의 사교 시즌 중에 여름맞이 축제라는 게 있더라?”

“그, 그건 왜.”

“별 건 아니고. 내게 축제를 집행하는 권한 일부를 양도해 주겠어?”

“…….”

순간 황비의 눈동자가 의심으로 가늘어졌다.

모네가 해사하게 미소 지었다.

“뭐, 내가 직접 주최하겠다는 건 아니고. 그냥 축제를 좀 더 아름답게 꾸며 보려고 그래.”

“축제를…… 꾸민다고? 어떻게?”

“그건 네가 알 바 아니고.”

대놓고 황비의 말을 묵살해 버린 모네가, 쌩긋 눈매를 휘어 보였다.

“권한, 양도해 줄 거지?”

“…….”

황비는 조가비처럼 꾹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모네의 눈빛에 서서히 날이 서기 시작했다.

“대답.”

“…….”

“안 해?”

황비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짓씹었다.

겉보기로는 그저 가냘픈 귀족 레이디일 뿐인데도.

모네를 앞에 둔 황비는 지금, 거대한 맹수의 아가리에 고개를 처박기라도 한 것만 같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황비는 이를 악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지.”

“좋아. 그럼 난 원예 모임이 있으니까 이만 나가 볼게, 응?”

모네는 가냘픈 손을 들어, 조롱하듯 황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화 풀고.”

“…….”

“다음에는 웃는 얼굴로 보자. 알았지?”

황비가 치를 떨며 모네를 노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모네는 약을 올리듯 우아하게 제 치맛자락을 들어 올릴 따름이었다.

흠잡을 데 없는 궁중식 예법이었다.

“황비 마마의 커다란 보살핌에 언제나 감사드려요.”

그 말을 끝으로.

모네는 방 밖으로 휙 나가 버렸다.

“이, 이런…….”

황비는 아득바득 이를 갈면서 닫힌 방문을 노려보았다.

“이 망할 계집이!!!”

황비의 눈동자에 불꽃이 튕겨 올랐다.

분을 이기지 못한 황비가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움켜쥐고 내던졌다.

“아악!!”

와장창!

닫힌 문밖으로, 값진 도자기들이 깨져 나가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린다.

모네는 밖에 선 채 가만히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훗.”

모네가 입술 끝을 비틀어 올렸다.

선명한 비웃음이었다.

그녀는 그대로, 춤추듯 가벼운 걸음으로 황비궁을 빠져나갔다.

* * *

햇볕이 맑게 내리쬐는 오후.

나는 보무도 당당하게 황궁으로 입궁했다.

“저, 저분은 오를레앙 공녀님이시잖아?”

“도대체 왜 저런 차림을?”

궁인들이 뜨악한 낯으로 나를 곁눈질했으나, 나는 도리어 가슴을 활짝 펴며 황궁의 정원으로 들어섰다.

화려한 노란 장미가 만발한 가운데.

밀짚모자를 쓴 모네가 전정 가위로 장미꽃을 꺾고 있었다.

그 자태가 어찌나 청순한지,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아름다운 요정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고 보니…… 저 장미.’

나는 한들한들 흔들리는 노란 물결을 바라보며, 슬쩍 미간을 좁혔다.

‘모네가 직접 갖고 온 품종이라고 했지?’

최근 제도에서는 크고 탐스러운 노란색 장미가 연일 유행 중이었다.

단숨에 사교계의 샛별로 떠오른 모네가, 원예 모임을 개최하며 장미의 유행을 선도하게 된 것이다.

‘뭐, 내 알 바는 아니지만.’

모네의 우아한 모습을 먼발치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이내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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