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131)화 (132/163)

<139화>

‘아니야, 그 계집은 모든 것을 갖고 있잖아.’

모네가 절박하게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그래서 그렇게 여유로울 수 있는 거야. 그런 거야.’

계집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모네가 바라마지않는 바르톨로아 가주님의 관심과.

그 모든 것을 욕심쟁이처럼 움켜쥐고 있으니까.

‘……그래서, 올곧을 수 있는 거야.’

모네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실은 그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모네의 심장을 시시각각 조여 오는 이 감정의 이름은…….

열등감이었다.

‘됐어, 이런 생각은 그만하자.’

잠시 후.

모네는 타티아나에 대한 생각을 애써 머릿속에서 밀어냈다.

‘그보다는 2황자 문제를 해결해야만 해.’

인간계에 입성한 이래로, 모네는 루돌프에게 꽤 공을 들였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황비를 옭아매는 데에 2황자 이상으로 효과적인 패도 없었으니까.

아들 사랑이 지극한 황비는 2황자만 들먹이면 꼼짝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로 2황자가 꽤 기분이 상했지.’

2황자는 망나니인 주제에 의외로 체면치레를 중시했다.

그런 2황자 앞에서, 마왕 계집이 대놓고 모네의 무례를 지적한 것이다.

평소 모네를 옆에 끼고 다니며, 은근슬쩍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내게 매달린다.’라며 과시하던 2황자였다.

모네에게 흠집이 난다는 건, 즉.

모네를 장식처럼 데리고 다녔던 2황자의 안목이 별 볼 일 없다는 증명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그렇게까지 팔팔 뛰었을 테지.’

……다이아몬드인 줄 알고 동네방네 자랑했던 귀중품이, 사실은 유리알임을 깨달은 것처럼 말이다.

다만.

‘앞으로도 2황자는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거야.’

황비를 쥐락펴락하는 데에도.

사교계에서 입지를 단단히 하여, 마침내 바르톨로아 가주님께서 명령하셨던 ‘그 일’을 이루는 데에도 말이다.

그러니…….

‘일단 상황을 좀 뒤집어야겠지?’

마침 아까 황비와 독대하며, 현 상황을 뒤집을 만한 계기도 하나 마련해 두었고 말이다.

‘뭐, 이런 경우까지 생각해서 안배한 건 아니었지만…….’

나쁘지 않네.

모네가 빙긋 미소 지었다.

비릿한 미소였다.

* * *

며칠 후.

레이디 클로비스가 고서적 해석 작업에 합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듣자하니, 무려 황비가 모네를 직접 고서적 해석 작업에 추천했다고 했다.

꽤나 파격적인 인사였기에 처음에는 이런저런 반발이 있었다.

그러나 그 반발은 이내 쏙 들어갔는데.

왜냐하면…….

<레이디 클로비스의 엄청난 성취! 고서적의 첫 번째 줄을 해석해 내다!>

<대신전 박물관에서 발견된 고서적은, 신화시대에 남겨진 기록물로 확인되었으며…….>

<제국 대학 학장의 단독 인터뷰! 이번 기회에, 신화시대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도 있겠노라 공언하다!>

<황실에서도 이례적으로 기대감을 보여…….>

모네가 고서적 해석 작업에 합류한 이래로,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성취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계와 마법계, 대신전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언론까지.

그야말로 제국 전체가, 연일 모네와 그녀가 이루어 낸 압도적인 결과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야, 세자르. 모네인가 뭔가 하는 걔, 좀 어때?”

오랜만에 가족끼리 함께 하는 저녁 식사.

불현듯 식탁 위에 오른 ‘모네’라는 화제에, 나는 샐러드로 향하던 손을 멈칫 멈추었다.

키리오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실력이 좀 있기는 한가 봐? 우리 애들도 별로 불만을 가지지 않더라고.”

실력 지상주의인 마탑 사람들이 불만을 가지지 않을 정도라니.

그 말은 즉.

최소한 모네가 고대어 해석에 대해, 다른 학자들과 비교해서도 떨어지지 않는 실력을 가졌다는 소리였다.

‘하기야 원작에서도 모네는 고대어에 소질이 있다고 나왔으니까…….’

때마침 지크프리트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레이디 클로비스가 합류한 이래로, 고서적 해석 작업이 굉장히 빠르게 진척되고 있다지?”

“뭐…… 그렇죠.”

한편 세자르는 다소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키리오스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런 세자르를 바라보았다.

“뭐야, 표정이 왜 그래? 걔 일 못 해?”

“아뇨, 그렇지는 않아요. 레이디 클로비스의 고대어 실력은 상당하더군요. 조금 놀랐습니다.”

“그럼 좋은 거 아냐? 왜 뭐 씹은 표정을 하고 있는데?”

“하, 키리오스. 식사하는 자리에서 꼭 그런 저속한 발언을 해야겠어요?”

세자르가 미간을 좁히며 핀잔을 주었다.

그러고는 미심쩍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그냥…… 현 상황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요.”

“뭐가 이상한데?”

“레이디 클로비스 말예요, 지나치게 유능하지 않나요?”

세자르가 묘한 얼굴로 키리오스에게 되물었다.

“유능한 게 왜? 좋은 거 아냐?”

“하아, 당신처럼 머리를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작자가 마탑의 수장이라니. 마탑의 미래가 어둡군요.”

“뭐야?”

키리오스가 두 눈을 부라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자르는 어깨를 으쓱일 따름이었다.

“솔직히, 고대어는 제국 유수의 학자들조차 제대로 접근하기 힘든 언어입니다.”

“…….”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세자르를 흘겨보던 키리오스가, 더 말해 보라는 것처럼 고개를 까닥였다.

“제국 대학에서 오랫동안 연구해 온 학자들도, 이번 고서적이 발굴되고 나서 해석에 골머리를 썩었죠.”

“뭐, 그건 그렇지.”

“심지어는 대사제의 직함을 달고 있는 저도, 고대어에 대해서는 거의 조예가 없습니다. 물론 저는 평민 출신이고, 고대어 같은 고급 교육을 받을 일은 아예 없었기는 하지만…….”

잠시 말끝을 흐리던 세자르가, 불쑥 키리오스에게 물었다.

“키리오스, 당신은 고대어 할 줄 아나요?”

“내가 한가하게 언제 그걸 배우고 있어? 마법 연구하기에도 바쁜데.”

“못한다는 소리군요.”

“…….”

키리오스는 괜히 분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자르는 지크프리트를 돌아보았다.

“지크프리트, 당신은요?”

잠시 눈동자를 굴리던 지크프리트가, 애써 태연한 척 대꾸했다.

“고대어는 제국 귀족의 필수 교양에 포함된 과목이 아니다.”

“알겠습니다. 고대어는 모른다는 거죠?”

“…….”

그 말에, 지크프리트도 키리오스와 마찬가지로 오묘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세자르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들어 봐요. 우리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몇 년, 혹은 몇십 년씩 고대어를 전공한 학자들조차도 여태껏 저 고서적의 글줄 하나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어요.”

“그건…… 그렇지.”

“그런데, 저렇게 새파랗게 어린 레이디가 능숙하게 고대어를 해석해 낸다고요? 그것도, 단순히 취미로 독학한 실력으로?”

세자르의 질문에, 지크프리트가 슬그머니 미간을 좁혔다.

“확실히 듣고 보니 좀 이상하군.”

“그렇다면 말이야.”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키리오스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레이디 클로비스인가 하는 애가 나처럼 똑똑할 가능성은?”

“그게…….”

세자르가 질색하는 표정으로 키리오스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듯, 한참을 입술을 달싹거린 끝에.

한숨을 푹 내쉬며 목소리를 쥐어 짜낸다.

“제 입으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솔직히 당신은…….”

“나 뭐?”

“최소한 마법에 대해서는…… 몇백 년 만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이지 않나요.”

말을 맺은 세자르가 역겹다는 양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한편 그런 반응은, 칭찬을 들은 당사자인 키리오스도 마찬가지였는데.

“……너 오늘 뭐 잘못 먹었냐?”

키리오스는 뜨악한 눈빛으로 세자르를 응시하더니, 제 앞에 놓인 스테이크 접시를 미심쩍게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지크프리트에게 불쑥 질문을 던진다.

“야, 지크프리트. 너 혹시 음식에 독이라도 탔어?”

지크프리트가 기가 막힌 얼굴로 되물었다.

“탔겠나?”

“그치?”

……누가 친구 아니랄까 봐, 저 썰렁한 대화는 도대체 뭐람.

난 떨떠름한 얼굴로 두 아빠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나와 마찬가지로 떨떠름한 표정을 하던 세자르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나도 참, 저것들을 믿고 마왕을 토벌하러 떠났다니…….”

“너 은근히 우리를 무시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랑 키리오스를 동급 취급하는 건 좀 심한데.”

지크프리트가 정색을 했다.

키리오스가 지크프리트를 향해 눈살을 찌푸리며 으르렁거렸다.

“야, 지크프리트, 너 말 다 했냐?”

“아, 그만 좀 해요.”

보다 못한 세자르가 손을 휘저어 대화를 끊어 놓았다.

“어쨌든,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방금 전까지 시니컬하게 핀잔을 주던 건 간데없이.

세자르는 어느새 진지한 낯을 하고 있었다.

“날카로운 송곳은 결국 주머니를 뚫고 나오는 법이에요. 우리의 경우만 봐도 그렇죠.”

그저 사실을 이야기하듯 담담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키리오스와 지크프리트도 그를 부정하지 않았다.

하기야, 우리 아빠들은 어렸을 적부터 각 분야의 천재로 이름을 날렸으니까.

공작위를 물려받은 지크프리트는 제외하더라도.

키리오스와 세자르는 제각기, 역사상 최연소로 마탑주와 대사제 자리를 거머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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