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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133)화 (134/163)

<141화>

“그렇다면 ‘평화를 선사한다’라는 표현이 남았죠. 저희는 그 표현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모네는 내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마왕이 인류를 멸망시킴으로써, 마족들에게 평화를 선사한다’라고 말입니다.”

“…….”

심장이 쿵 떨어져 내렸다.

사람들의 얼굴 위로 경악이 번졌다.

“인류를…… 멸망시킨다고요? 그래서 평화를 선사해요?”

“어떻게 이럴 수가!”

“인간들을 그렇게나 학살한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멸망까지 이야기한다고요!”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증오와 두려움을 내비쳤다.

나는 긴장감으로 목뒤가 빳빳하게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 걸까.

저 혐오의 시선이 내게 쏟아진다고 생각하자…….

‘무서워.’

난 정말로 인간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는 없는 걸까?

나는 그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나 큰 욕심인 걸까?

때마침 지크프리트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타티아나, 왜 그러지?”

“네? 뭐가요?”

찔끔한 내가 되레 오리발을 내밀었다.

동시에 모네가 안심하라는 것처럼 방긋 웃어 보였다.

“하지만 이건 신화시대 사람들의 생각일 뿐, 저희의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사람들이 혐오와 두려움에 얼룩진 시선으로 모네를 바라보았다.

모네가 낭랑하게 말을 이었다.

“여태껏 제국은 마족들과의 오랜 전쟁에서 잘 버텨왔지 않나요?”

“하.”

순간 내 곁에 서 있던 라키어스가 기가 막힌 조소를 흘렸다.

나 또한 라키어스의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제국이 잘 버텼다고 말하기에는, 제국 대신 피를 흘려 준 존재들이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마족과 맞서며 인류를 지키다가 멸망해 버린 카롤링거.

수없이 스러진 이름 모를 병사들.

……그리고 내 아빠들까지.

“그러니 이번에도 우리는 잘 해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모네의 목소리는 이른 아침 햇살처럼 상쾌하기만 했다.

“이 예언서의 목적은, 증오스러운 마왕을 주의하라고 후손들에게 경고해 주기 위함이에요.”

“경고라…….”

귀빈 중 한 명이 모네의 말을 곱씹었다.

모네가 그쪽을 돌아보며, 커다랗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마왕을 경계하고 두려워하라. 그런 의미죠.”

어느새 조용해진 중앙 홀 안에서, 모네의 말만이 또렷하게 울렸다.

“인류의 적, 세계의 거악인 마왕의 존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모네의 검은 눈동자가 나를 다시 한번 일별했다.

“혹여나 마왕이 발호했을 시…… 빠르게 처단할 수만 있다면.”

그러고는 방긋 눈웃음을 짓는다.

“우리에게는 아무런 일도 없을 거랍니다.”

나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어째서일까.

모네가 내뱉는 저 모든 말들이…….

나를 향한 것처럼 느껴졌다.

* * *

그렇게 발표회가 끝난 후.

루돌프가 모네에게 후다닥 다가갔다.

“레이디 클로비스!”

“어머, 2황자 전하.”

루돌프를 돌아본 모네가 맑은 미소를 머금었다.

루돌프가 헤벌쭉 웃었다.

“정말 잘했어!”

원예 모임에서 한껏 모욕을 주었던 건 간데없이, 루돌프의 만면에는 자랑스러움이 가득 어려 있었다.

“레이디 클로비스가 고대어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정말 놀랐다니까?”

“과찬이세요, 전하.”

거기다 학자들이며 사제들까지, 모네에게 말을 붙이지 못해 안달이었다.

“레이디 클로비스, 정식으로 제국 대학에 입학할 생각은 없으시오?”

“맞습니다. 레이디가 합류해준다면, 신화시대를 조사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모네는 삽시간에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다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세자르는 다소 묘한 표정이었다.

“넌 왜 그런 표정이야?”

키리오스가 슬쩍 질문을 던졌다.

“그게, 사실은 전 레이디 클로비스와 생각이 조금 다르거든요.”

“생각이 다르다고?”

“약속의 사람이 돌아와서 우리 모두를 평화롭게 만든다, 라고 했지요?”

세자르가 미간을 좁히며 키리오스에게 되물었다.

“그걸 저렇게 부정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을까요? 또 다른 초월자가 나타나서, 인류와 마족의 오랜 갈등을 봉합한다고 해석해도 내용은 들어맞잖아요.”

“음, 내용만으로 따지면 그렇기는 한데.”

“뭐랄까, 평생을 마족들과 싸워 왔던 제가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세자르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너무 과격한 해석이 아닌가 싶어서요.”

“뭐, 어쨌든 마족들을 경계하고 대비하는 일이 나쁜 건 아니니까요.”

때마침 라키어스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혹여나 마왕이 다시 탄생한다면, 마족들을 규합하여 인간계를 공격할 수도 있는 거고요.”

“글쎄, 어차피 우리는 고대어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는 처지잖은가.”

지크프리트가 힐끔 나를 곁눈질로 바라보더니, 한 마디를 거들고 나섰다.

아무래도 인간과 마족의 혼혈이라는 내 처지를 배려한 듯했다.

“그러니 이쯤하지. 우리끼리 갑론을박해 봤자 뾰족한 해석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까.”

지크프리트의 의중을 눈치챘는지, 키리오스와 세자르도 입을 다물었다.

동시에 라키어스가 걱정스럽게 내게 말을 붙였다.

“티티, 왜 그래? 표정이 안 좋아.”

“아무것도 아니야.”

고개를 가로저은 내가 애써 웃어 보였다.

가슴 깊은 곳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품고 살아가는 기분이었다.

‘만약 내가 마왕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마저…… 나를 외면하게 될 거야.

따스했던 시선은, 언제 그랬냐는 양 차갑게 식어 내리고.

나를 경멸하겠지.

그리고 내게는…….

내 비밀을 고백하고, 내 사랑하는 사람들의 실망한 시선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 * *

하지만 그런 감상적인 기분에 빠져 있을 시간도 얼마 없었다.

며칠 후.

황실에서 말도 안 되는 발표를 했기 때문이었다.

“청문회라고?!”

나는 기겁하여 눈앞에 앉은 라키어스를 마주 보았다.

라키어스는 평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명목상으로는 카를로의 영주 업무를 제대로 수행했는지 검증하는 자리라고 하더라.”

“아니, 이게 무슨…….”

나는 그저 기가 막혔다.

열다섯 살부터 스물네 살까지.

라키어스는 9년이라는 시간을 쇠락했던 카를로에 바쳤고, 마침내 카를로를 다시 재건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황실은 도대체 무엇을 했지?

그저 손을 놓고, 카를로가 회복되는 모습을 구경하고만 있다가.

카를로가 멀쩡해지자마자 홀랑 빼앗아 가지 않았나?

그런 주제에, 뭐? 청문회?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 보려는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잖아!

“거기다 황제 폐하께서 진노하셨거든. 내가 사회의 불안을 가중시킨다고 말이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이번에 해석된 예언 말이야.”

갑자기 그 예언은 왜?

나는 덜컹 심장이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런 예언까지 나왔으니, 마계와의 국경인 카를로에 예산을 좀 더 배정해야 한다고 요청했거든.”

라키어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번에는 그래도 좀 내 말을 들어주실 줄 알았는데…….”

“…….”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그것도 잠시.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해 주었으면 좋겠나?”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지크프리트가 라키어스에게 물었다.

“청문회에 참석하여 도움을 주기를 바라나? 그 정도는 어렵지 않다만.”

“아뇨.”

라키어스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스승님들께 수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면구스러운데, 언제까지나 스승님들께 의지할 수만은 없지요. 게다가…….”

라키어스의 입술 위로 희미하게 미소가 어렸다.

여유로운 미소였다.

“제가 카를로에서 일했던 시간은 거짓이 아니니까요.”

“흠, 그래?”

지크프리트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첫째 아빠!”

나는 대번에 두 눈을 부릅떴다.

“그렇게 순순히 알겠다고 하시면 어떡해요! 아빠들이 힘이 되어 주셔야지요!”

“글쎄, 라키어스가 필요 없다고 하잖나.”

그러나 지크프리트는 어깨를 으쓱일 따름이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나는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키리오스와 세자르를 휙 돌아보았으나.

“뭐, 라키어스가 알겠다고 하면 그냥 둬도 되지 않나?”

키리오스는 귀찮음이 가득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고,

“라키어스도 이제 저 정도는 스스로 해결할 줄 알아야지요.”

세자르도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는 라키어스 본인까지도,

“티티, 나 못 믿는 거야?”

길고 풍성한 속눈썹을 예쁘게 팔랑이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그런 건 아니지만.”

난 울상이 되어 라키어스를 마주 보았다.

동시에 키리오스가 라키어스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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