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134)화 (135/163)

<142화>

딱!

청량한 소리가 울리고.

“아야!”

라키어스가 정수리를 움켜쥐었다.

키리오스가 씨근덕거리며 라키어스를 노려보았다.

“우리 꼬마를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거, 금지야!”

“그런 눈빛이 도대체 뭔데요?!”

“있어, 그런 거!”

나는 복잡한 시선으로 옥신각신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나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언제까지 라키어스가 아빠들의 보호하에서 지낼 수는 없다는 것쯤은 말이다.

하지만.

‘라키가 고생하는 건, 이제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단 말이야!’

나는 억울함을 이기지 못하고 두 주먹을 와락 움켜쥐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나 고생했는데, 또 황가에게 발목을 잡히는 꼴을 보라고?

맹수가 자기 새끼를 절벽에서 밀어 가면서 강하게 키운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랬어!

마음 같아서는, 라키어스의 손끝에 잉크 한 방울조차 묻히기 싫단 말이야!!

* * *

그 후.

라키어스는 청문회 준비를 해야 한다며 타운하우스를 떠났다.

나는 심란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소파에 축 늘어졌다.

그러자.

“라키어스가 그렇게 걱정이 되나?”

지크프리트가 은근슬쩍 내 옆자리를 차지하고 물어 왔다.

“당연하죠!”

아니, 저걸 말이라고 해?!

나는 번쩍 고개를 들어 올렸다.

“왜 갑자기 황실에서 청문회를 열기로 결정한 건지, 아빠들도 다 아시잖아요.”

“타티아나.”

“할아버지는 공작령에 내려가신 지 얼마 안 되셨으니까, 청문회에 참석하시기는 어려울 테고. 거기다 아빠들마저 불참하시면…….”

나는 입술을 꾹 당겨 물었다.

“청문회에서 라키의 편을 들어줄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요.”

“뭐, 네가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한다만.”

지크프리트는 평온한 낯으로 내게 되물었다.

“라키어스 녀석을 조금 더 믿어 주는 게 어떠니?”

“…….”

순간 말문이 막힌 내가 입을 다물었다.

라키어스를…… 믿으라고?

동시에 세자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까 라키어스가 말했잖아요? 자신이 카를로에서 일한 시간은 거짓이 아니라고요.”

“……셋째 아빠?”

“저는 그 의견에 동의한답니다.”

세자르가 재차 나를 다독여 주었다.

“최선을 다한 시간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그러니 분명 라키어스도 이번 청문회를 잘 헤쳐 나갈 거예요.”

“물론 저도 라키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요…….”

영 불안한 마음에, 나는 말끝을 흐렸다.

“진짜야, 걱정 안 해도 돼.”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키리오스가 달래듯 입을 열었다.

왜 다들 저렇게 침착한 거지?

마치, 뭔가 짐작하는 부분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어리둥절하여 키리오스를 마주 보았다.

키리오스가 빙긋 웃었다.

잘 갈린 칼날처럼 날카로운 미소였다.

“두고 봐. 일이 재미있게 돌아갈걸?”

* * *

“……정말로 둘째 아빠의 말이 맞잖아?”

신문을 살펴보던 나는 얼떨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번 청문회에 관한 특집 기사가 신문의 1페이지 전면을 뒤덮고 있었다.

<1황자 전하, 청문회에 서다!>

나는 빠르게 그 아래의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1황자 전하를 향한 청문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황실에서는 ‘1황자께서 카를로의 영주로 재직했던 9년 동안, 제대로 업무를 수행했는지 검증하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본지의 조사 결과, 카를로는 1황자 전하가 영주직을 맡은 이래로 눈부신 발전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오를레앙 공작가의 상단과 접촉하여, 꾸준한 식량 수급의 길을 열어 낸 것은 주목할 만하다.>

오오.

라키어스에 대해 엄청나게 호평하고 있네?

솔직히 모네가 승승장구하는 소식을 신문으로 받아 볼 때에는, 내심 조금 기가 죽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예언의 해석된 내용이…… 그렇잖아?

‘마왕을 경계하고 두려워하라, 라고 했던가.’

그 해석 자체가, 마치 나를 저격하는 것 같았단 말이지.

그런데.

‘라키어스를 지원하는 기사를 실어 주다니!’

이렇게 예뻐 보일 수가!

사람의 마음은 정말 간사하다니까?

<마수를 쫓는 약초를 찾아내어 재배에 성공한 것도 고무적이다.

약초 재배에 성공한 이래로, 카를로는 4년 동안 실질적으로 마수의 침입을 단 한 번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 그래. 그렇다니까?

우리 라키어스가 얼마나 유능한데!

나는 두 눈을 반짝이며 다음 문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또한 황실에서는 1황자께서 사회의 불안을 가중한다고 주장하였다.

1황자께서 마족들을 조금 더 경계해야 한다고 직언을 올린 것에 대한 화답으로 보인다.

하지만 마족들을 경계하는 건 황실의 당연한 책무일뿐더러.

이번에 해석된 예언서에서도 마왕의 발호를 주의하라는 전언이 나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황실의 대응이 석연찮다는 건 부정할 수가 없다.>

……아니, 예언 내용을 떠올리자마자 바로 이 부분을 언급할 필요는 없잖아.

나는 조금 떨떠름해졌다.

나, 인간들을 멸망시킬 생각 같은 건 추호도 하지 않는다니까?

<불공정한 청문회가 아닌지, 정말로 이 청문회가 필요한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다.>

그렇게 기사가 마무리되었다.

‘와아.’

나는 코끝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뭐랄까, 라키어스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는 나 자신도 잘 알고 있지만.

그걸 언론에서 인정해 주는 모습을 보는 건…….

‘뿌듯하네.’

자식이 훌륭하게 성장한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 걸까?

……그건 그렇고, 이번 예언서의 일 때문에 마음이 계속 무거웠었는데.

‘이렇게 라키어스를 돕는 방향으로 전개될 될 수도 있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예언서 자체가 마왕을 경계하는 내용으로 해석되었고, 그 때문에 제국민들이 마족에 대해 경계심이 높아진 상황.

그래서 마족을 좀 더 조심해야 한다는 라키어스의 의견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리라.

그 후.

여론은 계속해서 라키어스에게 호의적으로 형성되었는데…….

* * *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귀족 신사들이 드나드는 사교 클럽.

“이번에는 세 용사께서는 청문회에 참석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네? 어째서입니까?”

“글쎄요. 최대한 공정하게 청문회에 임하기 위해서라고 전해 듣기는 했습니다만…….”

잠시 말끝을 흐리던 신사가, 신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사실 한쪽만 최대한 공정하게 진행하려 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크흠, 흠.”

“흠.”

그 날선 어조에, 자리에 모여 앉은 신사들이 제각기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처음 말을 꺼낸 신사는 작정한 듯이 말을 쏟아냈다.

“이번 청문회가, 크게 명분이 없는 건 모두가 알고 있지 않습니까.”

“뭐, 자작께서 아예 틀린 말씀을 하신 건 아니지요.”

때마침 다른 신사가 말을 거들고 나섰다.

“솔직히 눈이 발바닥에 붙어 있어도 알아볼 수밖에요. 1황자 전하께서 영주직을 맡은 이래로, 카를로가 유례없이 번창했다는 것쯤은 말입니다.”

“하기야…….”

“오죽하면 저 승냥이 같은 언론마저도 1황자 전하를 감싸겠습니까?”

그를 시작으로, 침묵하던 몇몇 신사들도 은근슬쩍 제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1황자 전하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율이 높은 반면, 황실에 대한 지지율은 바닥을 기고 있는데…….”

“굳이 지금 같은 시기에 1황자 전하를 청문회에 세워야 하는지, 솔직히 좀 의문이군요.”

“거기다 황제 폐하께서, 1황자께서 마족 문제로 사회 불안을 야기한다며 진노하셨다고 하던데.”

신사 한 명이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사실 마족과 마왕을 경계하자고 주장하는 건, 원론적인 얘기 아닙니까?”

“맞습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황실이 그러면 안 되지요.”

“황실의 의무는 외부의 침략에서 자국민을 지키는 것일 텐데요.”

그러던 중.

처음 말을 꺼냈던 신사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내려앉았다.

“그나저나 이번 청문회를 요청한 사람은 2황자 전하이시라지요?”

“맞습니다. 필로멜 후작가에서 그 요청을 지지했고요.”

신사들이 시가를 뻐끔거리며 대화를 이었다.

“뭐, 여러모로 2황자께 유리한 상황이기는 하죠. 세 용사께서도 불참을 선언하셨을 뿐더러, 지금은 오를레앙 노공작께서 공작령으로 내려가시지 않았습니까.”

“1황자 전하를 지지하는 세력들은 모두 불참하는 거나 마찬가지지요.”

“뭐, 무리해서라도 지금 시기에 청문회를 개최하려 한 그 마음은 알겠습니다만…….”

뿌옇게 올라가는 시가 연기 사이로, 은밀한 목소리들이 뒤섞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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