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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136)화 (137/163)

<144화>

그도 그럴 것이, 라키어스 본인이 마족을 마주쳤던 장본인이었으니까.

라키어스는 그때를 눈을 감고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제 몸이 상하는 것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라키어스에게 짓쳐 들던 마족과.

마력이 역류하며 온몸의 신경이 갈가리 찢겨져 나가는 듯한 통증까지.

하지만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라키어스를 미치게 만들었던 건, 제 눈앞에서 타티아나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과.

저 증오스러운 마족들과 마수들이 그가 지켜야만 하는 사람들을 짓밟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일단 필로멜 후작께서 제기하신 의문에 대해 대답해 드리죠.”

라키어스는 치받는 분노를 애써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저는 그게 왜 의문인지조차 이해가 잘 안 가지만 말입니다.”

“…….”

후작이 분한 얼굴로 라키어스를 노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라키어스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지만 말이다.

“먼저 고급 장교의 진급 문제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속을 알 수 없는 시선으로 후작을 응시하던 라키어스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필로멜 후작께서는 직접 마수와 싸워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 마수를 직접 대면하신 적이라도 있으십니까?”

“…….”

허를 찔렸다.

필로멜 후작은 평생을 제도, 그리고 풍요로운 필로멜 후작령에서만 살아온 사람이었다.

제국의 국경에 들끓는 마수 문제는, 필로멜 후작과는 너무나도 까마득하게 먼 일이었기에.

솔직히 남의 일처럼 여겼던 게 사실이었다.

“그, 그런 적은 없습니다만.”

순간 라키어스의 눈동자에 한심함이 서렸다.

“그런 경험이 전혀 없으시기에, 그런 책상물림이나 할 법한 의문을 제기하시는 겁니다.”

“뭐, 뭐라고요?!”

“제 진급 기준은 명확합니다. 전공, 그리고 인망이지요.”

라키어스가 딱 잘라 말을 이었다.

“첫째로, 현장 경험이 풍부할수록 휘하의 기사와 병사들을 살릴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며.”

“…….”

“둘째로, 누군가가 부하들에게 인망이 있다는 건. 그 사람이 최소한 제 아래의 부하들을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청문회에 참석한 귀족들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라키어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그건 살아남기 위한 최소조건일 뿐입니다.”

제게 쏟아지는 수많은 시선들 속에서도, 라키어스는 홀로 오연했다.

“저런 최소 조건을 갖춘 지휘관이 수십 수백이 있어도, 그런 지휘관들이 필사적으로 부대들을 지휘한다고 해도.”

주변을 한 바퀴 휘둘러본 라키어스가 담담하게 말을 맺었다.

“마수들과의 싸움에서는 그 누구든지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순간 귀족들은 입 안이 바짝 마르는 것을 느꼈다.

지금 이 순간, 그 단어가 유난히도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저 황자는 제 백성들을 위해, 제 한 몸을 던져 몇 번이나 사선을 넘어왔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저는 최소한 제 부대들을 이끌 자들에게, 최소조건을 갖춘 지휘관을 붙여 주고 싶었습니다.”

라키어스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리고 사선을 넘나드는 경험은…… 보통은 귀족들보다는 평민 기사들이 훨씬 많이 하게 되는 법이죠.”

“…….”

“…….”

싸한 침묵이 흘렀다.

라키어스는 재차 말을 이었다.

“또한 필로멜 후작께서는 제게, 평민에게 고급 행정관 시험 응시자격을 준 것을 문제 삼으셨는데.”

“그, 그렇습니다!”

라키어스의 기세에 눌려 있던 필로멜 후작이 허겁지겁 입을 열었다.

“고급 장교 문제는 그렇다 쳐도, 행정관 문제는……!”

“뭐, 황제 폐하를 향한 후작의 충성심이 갸륵한 건 사실이지만.”

하지만 라키어스는 후작의 말을 가차 없이 가로막았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그 충성심이 후작의 눈을 가린 것 같군요.”

“예?”

“각 영지에 일정한 자치권이 주어지는 건, 제국법에 적시된 영주들의 권리 아닙니까?”

“…….”

순간 후작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빠져나갔다.

“중앙부처에 소속된 관료가 아닌, 영지 내의 인사문제는 영주들에게 자율적으로 맡기는 것으로 압니다.”

“그, 그건…….”

“일례로 오를레앙 공작령의 고급 행정관은 평민 비율이 5할 이상입니다. 현 가주이신 오를레앙 공작께서 직접 평민에게 시험응시자격을 부여하셨지요.”

라키어스는 과장된 동작으로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그런데 어째서 필로멜 후작께서는, 오를레앙 공작가에는 이 부분을 문제 삼지 않으시고.”

“1황자 전하, 전……!”

“온갖 인재를 끌어모아 간신히 회생한 카를로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시는지요?”

그렇게 물은 라키어스가, 조롱하듯 눈매를 한껏 휘어 보였다.

얄미우리만치 아름다운 미소였다.

“또한 후작께서 제기하신 문제는, 자칫 잘못했다가는 귀족들의 자치권을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바.”

라키어스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문제 제기에 다소 신중하셔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듭니다.”

제기랄!

필로멜 후작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짓씹었다.

‘잘못 계산했다!’

솔직히 후작도 라키어스의 인사 문제가 제국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후작은 어떻게든 저 눈엣가시 같은 1황자를 청문회에 세워 명예를 깎아내려야 하는 입장이었고.

그러려면 든든한 뒷배가 되어 줄 황제의 자존심을 우선적으로 챙겨 줘야만 하거니와.

대부분의 귀족들은, 황실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고급 행정관 진급에 평민들을 배제하고는 했다.

고작해야 평민들을 진급시키는 문제 아닌가.

사실 귀족들 입장에서는, 그런 사소한 일로 굳이 황실에게 미운털이 박힐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 증거로, 귀족들 중에서도 명문가로 손꼽히는 필로멜 후작가만 해도.

행정관 진급 문제는 황실의 규정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귀족들의 입장을 간과했어.’

아무리 귀족들이 황실과 불필요한 분쟁은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해도.

명문화된 자신들의 권리가 침범되는 상황을 기꺼워할 리 없다.

그리고 라키어스는 교묘하게 그 부분을 걸고넘어진 것이다.

“저도 1황자 전하의 말씀이 옳다 여깁니다.”

귀족들이 작심한 표정으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번 청문회 자체가 억지였습니다.”

“애초에 1황자 전하께서는 쇠락해 가던 카를로를 회생시킨 영웅이십니다. 그런 분을 청문회에 세우는 게 말이나 됩니까?”

“옳은 말씀입니다!”

귀족들의 반발이 상상 이상으로 거세다.

그만큼 귀족들의 자존심이 크게 다쳤다는 뜻이리라.

필로멜 후작은 다급한 얼굴로 황제를 돌아보았다.

‘폐하!’

하지만 황제는 한심하다는 속내를 감추지도 않으며 이쪽을 노려보고 있을 뿐.

필로멜 후작을 지원해 줄 기미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후작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일이 이렇게 틀어졌으니, 더더욱 황제께서 나를 지원해 주셔야 하지 않는가!’

황제 폐하의 지지를 노리고, 일부러 이번 청문회를 황권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잡았는데!

심지어 후작이 이번 일을 계획한 이유는, 내심 황제가 차기 황제로 생각하고 있는 루돌프 2황자를 띄우기 위해서였다!

“…….”

한편 라키어스는 묘한 기분으로 저를 지지하고 나서는 귀족들을 바라보았다.

9년 전 대회의에서는, 그의 세 스승님과 오를레앙 노공작만이 라키어스의 의견을 지지해 주었는데.

지금은 귀족들이 대놓고 라키어스의 말에 동조하고 나서지 않는가.

‘아냐,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어.’

후작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황제의 흉흉한 시선이 끈질기게 뒤통수에 따라붙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폐하의 신뢰도 잃고, 귀족들에게는 미운털만 박힐 뿐이야.’

후작이 억지로 입술을 떼어냈다.

“카를로에 배치된 군사 말입니다.”

황제가 가장 불쾌해했던 문제.

뒤늦게야 제국령에 복속된 미천한 카를로에, 더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는 라키어스의 주장.

그 부분이라도 후벼 파 볼 생각이었다.

“…….”

라키어스는 물끄러미 후작을 바라볼 뿐,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저 붉은 시선에 쫓기는 기분이 든다.

후작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필요 이상의 군을 키웠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까?”

“필요 이상이라고요.”

“예. 1황자께서도 잘 아실 텐데요. 거대한 군을 유지하려면, 국고의 부담이 상당하다는 것쯤은 말입니다.”

순간 라키어스의 눈빛에 한심함이 어렸다.

그를 인지한 순간.

필로멜 후작은, 절벽 아래로 발을 잘못 디딘 듯한 아득함을 느꼈다.

‘실수했다.’

아마 평소였다면 꽤 효과적인 공격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다르다.

‘지금은…… 예언이 걸려 있어!’

최근 고서적이 완전히 해석되었고,

‘마왕을 경계하고 두려워하라.’

대놓고 그런 예언이 나왔다.

오랜 평화가 이어지며, 제국민들이 마족들에 대해 가졌던 두려움도 조금 희석되었지만.

저 예언이 나온 이후로는 상황이 일변했다.

제국민들이 마족들에게 가진 두려움도, 다시 한번 날카롭게 날을 세운 상황.

그런 상황에서, 카를로의 군대를 걸고넘어지는 건…….

‘좋지 않아.’

후작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런 후작을 한참 바라보던 라키어스가, 흘끗 루돌프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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