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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138)화 (139/163)

<146화>

진심이었다.

황궁에서 천천히 질식해 가던 라키어스를 구해 준 사람.

어렸을 적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

스승님들의 하나뿐인 딸.

그 모든 관계에 우선하는 절대적인 감정.

그는, 타티아나를…….

이성으로서 사랑하고 있었다.

* * *

어둠이 내려앉은 밤.

긴 소파 위에 두 남녀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루돌프는 모네에게 거의 반쯤 안기다시피 한 채, 소파에 구겨져 누워 있었고.

“오늘은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전하.”

모네는 루돌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는 중이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조소를 머금는다.

‘정말, 이렇게 무능해서야. 황비가 고생을 좀 하겠는걸?’

어떻게든 루돌프를 황제로 만들고 싶어 하는 황비.

그녀를 떠올리자마자, 모네는 황급히 입술을 짓씹었다.

자칫했다가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려 버릴 것만 같아서였다.

인간들은 어쩌면 이렇게 멍청한지!

평소에는 꽤 이성적인 황비도, 제 아들을 황제로 만들겠다는 허황된 욕심에 빠져 온갖 악수를 두지 않았나.

그런데 황비의 멍청한 아들은, 그 악수를 더 최악으로 만들어 버렸다!

‘차라리 한시바삐 제 아들이 머저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편이 나을 텐데.’

모네의 입술 위로 서늘한 미소가 어렸다.

청문회에서 탈탈 털린 루돌프는, 제 무능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완전히 정신이 나가 버렸다.

그런 루돌프를 조금 다독여 줬을 뿐인데.

루돌프는 훌륭하게 모네에게만 매달리는 멍청이가 되어 주었다.

‘뭐, 나쁘지 않아.’

루돌프가 모네에게 의지하는 만큼.

모네 또한 루돌프를 빌미로 황비를 흔들어 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때마침 루돌프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모네를 올려다보았다.

“……레이디 클로비스.”

내가 2황자의 어미도 아닐진대, 득달같이 나를 쫓아와서 징징거리기는.

순간 모네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으나.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지껄이든 상관없어요.”

그와는 별개로, 꽃잎 같은 입술은 나긋한 밀어를 루돌프의 귓속에 부어 넣었다.

“저는 2황자 전하가 최고라고 생각해요.”

그러자 루돌프가 절박한 목소리로 모네를 채근했다.

“그렇지? 라키어스 그 자식보다 내가 훨씬 더 낫지?”

“그럼요.”

모네는 그렇게, 어린애처럼 칭얼거리는 루돌프의 귓속으로 다디단 말을 쏟아냈다.

그런데 그때.

벌컥!

방문이 열렸다.

그 너머로 황비의 무섭도록 굳은 얼굴이 드러났다.

이를 악물며 방 안의 모습을 돌아본 황비가, 애써 만면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루돌프, 레이디 클로비스를 귀찮게 하면 안 되지.”

“어머나, 황비 마마.”

모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황비를 마주했다.

그러고는 쌩긋 웃어 보인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레이디 클로비스?”

“2황자 전하께서 이렇게 힘들어하시는데, 마땅히 제가 곁에서 위로해 드려야지요.”

저 계집이!

황비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한편 모네는 여전히 속 모를 미소를 만면에 걸고 있었다.

“미력하나마 2황자 전하의 힘이 될 수만 있다면, 저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답니다.”

“…….”

황비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러고는 엄격한 목소리로 제 아들을 부른다.

“루돌프.”

그러나 루돌프는 듣기 싫다는 것처럼 몸을 웅크릴 따름이었다.

순간 황비의 눈동자에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루돌프!!”

“아, 왜요!!”

루돌프가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와락 성질을 냈다.

“날 위로해 준다잖아! 그런데 왜 어마마마께서 참견이에요!!”

순간 황비의 얼굴에 충격이 어렸다.

그도 그럴 것이, 루돌프가 저렇게 황비에게 대든 건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루돌프.”

황비가 이를 악물며 타이르듯 말을 붙였다.

“지금 나한테 소리 지른 거니?”

“그게 왜요?”

루돌프가 도끼눈을 뜨며 제 어머니를 노려보았다.

“어마마마께서 나와 레이디 클로비스의 사이를 방해하지만 않으신다면, 저도 이렇게까지 나오지는 않아요.”

“너……!”

“지금 나를 위로해 주는 사람은 레이디 클로비스 하나뿐인데!!”

루돌프가 재차 악을 질렀다.

“어마마마가 도대체 뭐라고! 그걸 가로막아!!”

때마침 모네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황비 마마, 황공하오나 2황자께서 마음이 많이 힘드신 것 같아요.”

“…….”

“그러니, 2황자께서 조금 마음을 추스르신 후에 다시 대화를 나누시는 게 어떨까요?”

치솟는 분노에, 황비가 파르르 어깨를 떨었다.

황비는 무어라 쏘아붙일 것처럼 두어 번 입술을 달싹였다.

하지만.

‘한번 잘 생각해 봐.’

‘만약 내가 네 아들에게, 네가 그를 황제로 만들기 위해 어디까지 하고 있는지 말해 버린다면.’

‘이 나라의 황비인 네가, 인간들의 원수인 마족과 손을 잡고 있음을 폭로한다면…….’

‘루돌프는 무슨 반응을 보일까?’

독을 품은 장미처럼 요사스럽게 웃고 있는 모네.

그 향기에 취한 지 오래인 루돌프.

결국 황비는 눈을 감아 버렸다.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린 거지?’

처음부터 바르톨로아 가주와 손을 잡지 말았어야 했다.

저 악마 같은 계집을 황궁에 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내가 그럴 수 있었을까?’

황비는 바르톨로아 가주를 처음 만났던 그 밤을 떠올렸다.

그리고 가주가 보여 주었던 끔찍한 환상까지도.

잘린 목에서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던 더운 피.

바닥을 구르는 루돌프의 시체.

황비가 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루돌프의 시체를 붙들고 비명을 지르는 것뿐이었다.

‘가주는 능히 내 아들을 그렇게 만들 수 있어.’

온기라고는 전혀 없던 새파란 눈동자를 다시 떠올리며.

황비는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그럼…… 다음에 이야기하자꾸나.”

더 이상, 모네와 루돌프의 다정한 모습을 태연하게 보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황비는 그대로 방 밖으로 빠져나갔다.

달칵.

방문이 닫혔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아서, 황비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애써 힘을 주었다.

‘어쩌면 좋지?’

일이 제멋대로 꼬이고 있었다.

이번 청문회가 끝나기만 하면, 라키어스의 평판이 완전히 바닥으로 처박힐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선황후.’

순간 황비의 눈동자에 새파랗게 날이 섰다.

‘끝까지 당신은 내 발목을 잡는구나.’

기품 있고,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언제나 올곧았던 선황후.

‘내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만민의 어머니는 오로지 당신 한 명뿐이지.’

제국법상, 황제의 정실이자 만민의 어미로 칭송받는 황후는 단 하나였다.

그랬기에.

선황후가 세상을 떠난 후, 홀로 된 황제와 혼인하여 유일한 아내가 되었음에도.

황비는 영원히 황후의 지위를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루돌프가 황제가 되기를 바랐어.’

황비 자신이 지고의 자리에 오를 수 없다면, 자신의 아들이 그녀 대신 지고의 자리에 올라 주기를 바랐다.

선황후를 꼭 닮은 라키어스를, 루돌프가 벌레처럼 짓밟아 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한가.

라키어스는 제국민의 믿음을 한 몸에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루돌프는 정체조차 확실치 않은 마족 계집애의 치마폭에 휘감겨, 정신도 못 차리고 있지 않은가.

“……윽.”

해일처럼 밀려드는 절망감이 거세게 목을 졸랐다.

황비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깜깜한 시야가, 마치 저와 아들의 미래처럼 느껴졌다.

* * *

오늘 모네는 드물게 기분이 좋았다.

‘후후.’

오늘 두 눈으로 확인한 바, 그 머저리 같은 루돌프는 모네에게 홀딱 빠져 있었다.

심지어 루돌프를 빌미로 황비를 압박했더니.

그 고개가 꼿꼿하던 황비까지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나.

하지만 즐거워하는 와중에도, 손톱 밑에 박힌 가시처럼 쿡 찔러 들어오는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

그 사람은 바로…….

‘마왕.’

타티아나였다.

모네는 고서적 해석본을 발표하던 그날을 떠올렸다.

‘‘마왕이 인류를 멸망시킴으로써, 마족들에게 평화를 선사한다’라고 말입니다.’

‘마왕을 경계하고 두려워하라. 그런 의미죠.’

마왕 계집의 거세게 흔들리던 하늘색 눈동자를 똑바로 들여다보며.

또박또박 그렇게 말할 때의 쾌감이 아직도 선명하다.

하지만.

‘이 기분은 도대체 뭘까.’

처음에는 분명 속이 시원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만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

손톱 밑에 박힌 아주 자그마한 가시처럼.

어째서일까.

‘2황자 전하께서 그렇게 막말을 하시는데도, 그저 무표정하더라고. 아예 아무런 불만조차 없어 보였어.’

‘남이 나를 함부로 대하면 반발하는 게 당연한데, 레이디 클로비스는…….’

아이러니하게도, 모네의 입장을 처음으로 고려해 줬던 사람이 바로.

저 마왕 계집이어서 그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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