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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140)화 (141/163)

<148화>

* * *

아니,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카를로로 가신다고요?”

지금 난 오를레앙 타운하우스의 정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는 여행 준비를 마친 아빠들이 서 있었고 말이다.

나는 황당한 얼굴로 아빠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것도 지금 바로요?”

“응, 그러려고.”

키리오스는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고 대답했다.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역시 뭔가 이상해.’

평소 아빠들은, 나를 중간에 끼우지 않으면 서로 얼굴을 보는 것조차 귀찮아했다.

그런 사람들이 우르르 외출했다 돌아온 뒤에, 갑자기 ‘지금 당장 카를로로 갈 거야’라고 선언하다니?

거기다 우리 아빠들은 내뱉은 말을 몸소 지켰다.

집사에게 가볍게 짐을 꾸리라 이르고는, 당장 말부터 끌고 나온 것이다!

‘원래 저렇게 빠릿빠릿한 사람들이 아니었는데?’

나는 두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다가, 은근슬쩍 질문을 던졌다.

“혹시 마족들이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기라도 한 거예요?”

“응, 그거 맞아.”

키리오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가볍게 대답했고.

나는 기절할 것처럼 놀랐다.

“네에?”

“지금 국경에서 마족들이 결집하고 있대.”

“……그게 그렇게 태연하게 말씀하실 일이에요?”

“뭐, 그래봤자 별일 없을 테니까.”

키리오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가 직접 가잖아?”

마치 태양은 동쪽에서 떠서 서쪽에서 진다, 라고 이야기하듯.

아주 당연한 말투였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나는 내 아빠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 다시 한번 실감했다.

다섯 마왕을 토벌한 세 초월자.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전쟁을 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니.

하지만 나는 불안함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바르톨로아라는 변수가 있잖아.

우리 아빠들과 견주어도 전혀 밀리지 않는, 마족들의 영원한 2인자 말이다.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동시에, 누군가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러니까 꼬마는 축제나 즐기고 있으라고.”

걱정 말라고 말하기라도 하듯.

키리오스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만면에 머금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지크프리트가 말을 거들고 나섰다.

“여름맞이 축제, 기대하고 있었잖은가?”

“……첫째 아빠.”

“고작해야 마족들 때문에 축제가 취소되면 안 되지. 안 그래?”

……어떡해, 나 눈물 날 것 같아.

나는 코끝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세자르가 불쑥 손을 내밀었다.

“그래도 받아갈 건 받아가야죠.”

“네?”

“초콜릿 말이에요. 초.콜.릿.”

“…….”

난 황당함을 이기지 못하고 입을 딱 벌렸다.

동시에 세자르가 미심쩍은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설마 우리 몫은 준비하지 않았다거나?”

“아, 있어요!”

뭐야, 내 감동 돌려내!

나는 조금 뾰로통해진 채로 아빠들의 손에 초콜릿을 하나씩 올려놓았다.

그제야 아빠들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아 참, 그렇지. 나도 꼬마에게 줄 게 있는데.”

초콜릿을 소중하게 챙긴 키리오스가 내게 손을 까닥거려 보였다.

“손목 좀 내밀어 볼래?”

“네? 아, 네.”

나는 얼떨결에 왼손을 내밀었다.

키리오스는 마법사다운 섬세한 손길로 내 손목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달칵.

“팔찌?”

백금을 가늘게 세공하여 만든 팔찌였다.

팔찌에 꿰인 투명한 하늘색 크리스털 구슬이, 햇빛을 반사하여 화려한 빛을 뿜어냈다.

“연락용 마도구야. 이번에 새로 개발한 시제품이지.”

키리오스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그 크리스털을 깨뜨리면 나와 직통으로 연락이 가능할 거야.”

마치 ‘오늘 아침 식사는 크림스튜야’라고 말하기라도 하듯, 그저 여상한 어조였다.

하지만 나는 이 마도구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아니, 마법의 ‘ㅁ’조차 모르는 일반인들도 모를 수가 없을걸?

“우와아…….”

나는 두 눈을 반짝거리며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이거 엄청 대단하잖아?

어쩌면 키리오스는 ‘다섯 마왕을 퇴치한 영웅’에 더불어, ‘연락용 마도구를 개발한 대마법사’로 역사에 남을지도 모르겠다.

키리오스가 짓궂게 내게 말을 붙였다.

“나 사실 엄청 대단한 사람이라니까? 마탑에서 날고 긴다 하는 녀석들도, 이 마도구를 구동하는 회로 하나조차도 못 짜요. 알겠어?”

“우와, 진짜 대단해요!”

“……크흠.”

내 열렬한 반응에, 키리오스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의 목 뒤가 어느새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다만 아직은 일회용이야. 마력 안정화 작업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았거든.”

“그래도 엄청나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하셨어요?”

“크흐흠.”

내 칭찬 세례에, 키리오스의 목덜미는 더더욱 붉어졌다.

그가 재차 신신당부를 했다.

“어쨌든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연락해. 알았지?”

“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키리오스, 그만 출발하지.”

때마침 지크프리트가 키리오스를 불렀다.

고개를 끄덕인 키리오스가 나를 향해 씩 웃어 보였다.

“그럼 꼬마, 또 보자!”

“티티 양, 다시 만날 때까지 몸 건강히 있어야 해요!”

“잘 있거라. 알았지?”

아빠들이 제각기 나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나는 활짝 웃어 보였다.

“아빠들이야말로 조심히 다녀오세요. 빨리 오셔야 해요!”

내 말에, 아빠들의 얼굴 위로 희미하게 미소가 번져 나갔다.

“이랴!”

아빠들이 말을 박찼다.

나는 그 자리에 붙박인 듯 서서, 멀어지는 아빠들의 뒷모습을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이 기분은 도대체 뭐지?’

나는 욱신거리는 가슴을 꾹 억눌렀다.

오늘 이후로, 아빠들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할 것만 같은…….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 * *

며칠 후.

마침내, 사교 시즌의 대미를 장식하는 여름맞이 축제날이었다.

축제는 야시장이 열리는 저녁부터 시작되지만, 나는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몸단장을 하고 있었다.

“어머나.”

노라가 입술을 가리며 샐쭉 눈매를 휘어 보였다.

“데뷔탕트 파티 때에는 분명, 왜 이른 아침부터 치장을 시작해야 하냐고 투덜거리셨던 것 같은데…….”

노라의 목소리에 장난기가 가득 담겼다.

“오늘은 왜 이렇게 몸치장에 신경을 쓰실까요?”

“그, 그런 거 아니야!”

나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노라가 정색을 했다.

“앗, 그렇게 움직이시면 팩이 흘러내려요!”

아차.

나는 황급히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새를 못 참고, 또…….”

노라가 혀를 쯧쯧 차며 내 얼굴에 골고루 곡물 팩을 발라 주었다.

난 얌전히 자리에 누운 채 입술만 삐죽거렸다.

“그야 데뷔탕트 파티에는 라키어스가 참석할지 안 할지도 몰랐는걸.”

하지만 오늘 축제는, 라키어스랑 같이 놀러 가기로 미리 약속을 해 뒀단 말이지!

나는 눈을 감은 채 씨익 웃었다.

그러자 내 얼굴을 어루만지던 손길이 느려지는가 싶더니.

짓궂은 질문이 들려왔다.

“그렇게나 좋으세요?”

“으, 응? 뭐가?”

“1황자 전하 말이에요.”

“…….”

정곡을 찔렸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통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구나.

내가 라키어스를 좋아한다는 거, 이미 노라에게는 들킨 지 오래였구나…….

“그, 아빠들도 아실까?”

내 조심스러운 질문에, 노라가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저도 눈치챈 지 오래인데, 설마하니 세 분께서 모르시려고요?”

“여, 역시 그렇겠지?”

“뭐, 아직까지는 세 분 모두 현실도피를 좀 하시는 것 같기는 하지만요.”

노라가 한심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하하…….”

나는 어색한 웃음만을 흘렸다.

그러기를 잠시.

“있잖아, 노라.”

“네?”

“라키가 내가 만든 초콜릿을 좋아해 줄까?”

“뭐, 1황자 전하라면 초콜릿이 아니라 돌멩이 하나만 주워다 줘도 좋아하실 것 같기는 한데요.”

동시에 노라가 히죽거리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보다, 왜 1황자 전하의 초콜릿만 하트 모양일까요~?”

나는 움찔 어깨를 굳혔다.

아니, 그건 또 언제 본 거야?!

“이걸 가주님과 노공작님께 말씀드리면, 두 분께서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요? 궁금하지 않으세요?”

“마, 말 안 할 거지?”

“글쎄요. 아가씨께서 하시는 것을 봐서요?”

“노라아!”

나는 울상이 되어 목소리를 높였다.

동시에 노라가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농담이에요. 당연히 비밀을 지켜 드려야지요.”

나를 안심시켜 준 노라가, 내 뺨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기분이 좀 이상하네요.”

“뭐가?”

“아가씨를 처음 뵈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착각일까.

노라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것 같다.

“우리 아가씨께서 벌써 이렇게 어른이 되셔서, 데이트까지 하러 가실 줄이야.”

“……있잖아, 노라.”

나는 노라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다가, 불쑥 물었다.

“그래도 계속 나랑 같이 있어 줄 거지?”

“네?”

“내가 누군가와 가정을 차려서 공작가를 떠나게 된다거나, 혹시나 노라가 공작가를 떠나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더라도.”

나는 살그머니 노라의 옷깃을 붙들었다.

“그래도 꾸준히 나랑 연락해 줄 거지?”

노라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그럼요.”

눈매를 곱게 접으며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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