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손등으로 입가를 가리며 이쪽을 빤히 바라보던 라키어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시선을 확 피해 버린다.
‘뭐, 뭐야?’
나는 멍하니 두 눈을 깜빡였다.
저 반응 도대체 뭔데?
그러니까 지금, 라키어스가…….
‘부끄러워하고 있는 거야?!’
나는 라키어스 쪽으로 총총 다가가, 그의 수려한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왜, 내가 잘생겼다고 하는 게 싫어?”
“아,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이제 라키어스는 말까지 더듬고 있었다!
세상에, 왜 라키는 잘생긴 데다가 귀엽기까지 한 거지?
무심결에 그렇게 생각하던 내가 속으로 탄식했다.
‘망했다.’
귀여워 보이면 다 끝난 거라던데!
“그럼 왜 자꾸 시선을 피하는 거야?”
“그거야 네가 자꾸 쳐다보니까…….”
“왜? 너무 잘생겨서 쳐다보는 건데? 아까는 잘생겼다고 말하는 게 싫지 않다며?”
나는 집요하게 라키어스의 말꼬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러자 라키어스가 거의 울상이 되어 내게 애원했다.
“그만해, 정말.”
우와.
나는 입을 딱 벌렸다.
발그레해진 뺨, 촉촉하게 젖은 눈매.
어찌할 바 모르고 내리깐 나비 같은 속눈썹까지!
‘너무 예쁘잖아!’
미모 하나만으로 목석의 애간장까지 녹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마 라키어스일 거야.
나는 진지한 얼굴로 못을 박았다.
“라키, 너 앞으로는 그런 표정은 나한테만 짓는 거야. 알았지?”
“뭐?”
“빨리 알았다고 해!”
내가 재차 채근하자, 라키어스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말하는 표정이 도대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럴게.”
“어떤 표정이냐면…….”
나는 엄숙하게 선언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귀여운 표정이야.”
“제발, 그만 좀 놀려.”
라키어스는 어떻게든 표정을 가리고 싶은지, 양손을 움찔거렸으나.
아쉽게도 그의 손에는 내가 사들인 간식들이 가득 들려 있었다.
‘아, 귀여워 죽겠네!’
내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그, 티티!”
한편 내 음흉한 시선을 더 견디지 못하겠는지, 라키어스가 허겁지겁 근처에 있는 천막을 가리켰다.
“우리 타로라도 볼까?”
“타로?”
나는 라키어스가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축제에서 흔히 볼 법한 조그마한 점집이었다.
“좋아, 재밌겠다.”
여기서 더 놀리면, 정말로 라키어스가 눈물이라도 한 방울 또르르 흘릴 것 같았기에.
나는 이쯤에서 라키어스를 놓아주기로 했다.
“얼른 가자.”
내 장난에서 벗어난 라키어스가 잽싸게 걸음을 옮겼다.
‘아니, 너무 대놓고 안도하는 거 아냐?’
라키어스의 붉어진 목 뒤를 흘겨보던 나는, 그만 피식 웃어 버렸다.
앞으로도 잘생겼다는 말을 잔뜩 해 줘야지.
그럼 저런 표정을 또 볼 수 있겠지?
……앗, 어쩌면 나 중증일지도?
* * *
우리는 천막을 걷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함인지, 목걸이와 반지를 주렁주렁 착용한 점술가가 우리를 반겼다.
그러고는 다 알겠다는 듯 싱긋 눈매를 휘어 보인다.
“연애 점 봐 드릴까?”
“아…….”
순간 나와 라키어스는 동시에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렇구나.’
나와 라키어스, 남들의 눈에는 연인처럼 보이는구나.
새삼스럽게 그런 실감이 났다.
점술가가 재차 능글맞게 농담을 걸었다.
“호호, 연애 시작하신 지 얼마 안 되셨나 봐요?”
“그, 그게.”
“알았어요, 알았어. 더 안 물어볼게요. 두 사람 다 얼굴 터지겠네요.”
점술가가 손사래를 치며 내게 권유했다.
“일단 카드를 세 장 뽑아야 해요. 누가 뽑을래요?”
“티티, 네가 뽑아.”
라키어스가 내게 양보해 주었다.
“앗, 고마워.”
나는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카드 세 장을 골랐다.
카드를 나란히 늘어놓은 점술가가, 첫 번째 카드를 뒤집었다.
카드 위로는 다정하게 서 있는 두 명의 남녀가 그려져 있었다.
“어머나, 연인 카드네요.”
“연인 카드요?”
“네. 사랑이 시작되었다는 의미인데…… 두 사람, 마음이 통한 지 얼마 안 됐죠?”
아뇨, 정확히는 고백조차 하지 못했는데요.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동시에 점술가가 두 번째 카드를 뒤집었다.
벼락을 맞아서 무너지고 불타오르는 탑.
그 위로는 사람들이 절망에 찬 표정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점술가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이건…… 탑 카드예요. 여기 벼락이 치는 모습이 보이시나요?”
점술가가 손가락으로 탑 꼭대기를 가리켰다.
탑 위로 벼락이 번쩍이고 있었다.
“두 사람의 관계에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 사고가 일어날지도 몰라요. 조심하는 게 좋겠네요.”
……아니, 저게 무슨 카드이기에 저렇게까지 표정이 썩어 들어가는 거람?
나는 조금 떨떠름해졌다.
점술가가 황급히 마지막 카드를 뒤집었다.
“그리고 마지막 카드는…….”
카드를 확인한 점술가의 얼굴에 안도가 어렸다.
“세계네요.”
세계?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금발의 여자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중앙에 서 있었다.
카드의 네 귀퉁이로는 사람과 독수리, 소, 사자의 머리가 그려져 있는데.
……솔직히 아무리 봐도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두 사람의 관계에 고난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모두 극복할 수 있을 거예요.”
점술가가 우리를 향해 빙그레 웃어 보었다.
“마침내 행복해질 테니, 서로를 믿고 굳건히 나아가도록 해요.”
* * *
우리는 다소 떨떠름한 기분이 되어 밖으로 빠져나왔다.
“…….”
“…….”
에이, 재미로 보려고 했던 것뿐인데.
괜히 분위기만 애매해졌잖아?
입술을 삐죽이며 주변을 돌아보던 나는, 순간 두 눈을 크게 떴다.
‘아.’
빛으로 빚어낸 터널이 우리 앞에 쭉 뻗어 있었다.
여름맞이 축제를 상징하는 루미나리에였다.
“……예쁘다.”
내 입술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라키어스 또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러네, 여름맞이 축제의 루미나리에가 무척 화려하다더니…….”
활짝 피어난 꽃, 화려한 성벽, 보는 것만으로 눈이 아찔해지는 격자무늬까지.
빛을 이용하여 만들어 낸 온갖 풍경들이 어둠 속을 수놓고 있었다.
거기에 활짝 피어난 장미까지 어우러지자, 그야말로 환상으로 빚은 양 아름다웠다.
그 아래로 레이디와 신사들이 삼삼오오 손을 잡고 거닐고 있었다.
몇몇 레이디들은 자신이 챙겨 온 달콤한 선물들을 신사에게 수줍게 내밀었는데.
선물을 받아 드는 신사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다들 행복해 보여.’
그러고 보면 여름맞이 축제에는 속설이 하나 있었다.
루미나리에 아래에서, 레이디가 제 마음을 상징하는 달콤한 것을 건네며 고백하고.
신사가 그 고백을 받아들인다면…….
‘새로이 맺어진 두 연인은 영원히 행복할 수 있다지?’
나는 힐끔 라키어스를 옆얼굴로 바라보았다.
새삼 팔에 걸고 있는 손가방이 묵직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 초콜릿을 줘야 할 텐데.’
입 안이 바짝 말랐다.
만약 라키가, 우리 사이가 친구일 뿐이라고 선을 긋는다면.
……그렇다면 지금의 스스럼없는 관계조차 지키지 못할 텐데.
밀려드는 긴장감에, 나는 목 뒤가 빳빳하게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솔직히, 라키도 조금은…… 나를 이성으로 느끼고 있지 않을까?’
난 아까 전 라키어스가 보였던 반응을 떠올렸다.
‘내가 너무 잘생겨서?’
‘응.’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순식간에 확 달아오르던 수려한 얼굴과.
어찌할 바 몰라 하며 나를 바라보던 그 눈동자와.
부끄러워하면서도 미소 짓던 그 모습까지.
‘……모조리 내가 라키어스에게 설렜던 때와 비슷한 반응인걸.’
그 순간.
나는 마음을 정했다.
“라키.”
라키어스가 흘끗 이쪽을 돌아보았다.
화려한 루미나리에를 등진 그 모습이 눈물겹도록 아름다워서.
나는 긴장이 되는 와중에도 조금 멍해지고 말았다.
“그, 사실 내가 너한테 줄 게 있는데.”
순간 붉은 눈동자가 조금 커졌다.
“내게?”
“응.”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방에 손을 집어넣었다.
초콜릿 상자를 움켜쥐는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그리고.
“너, 너무 큰 부담은 갖지 말았으면 좋겠어.”
나는 라키어스에게 초콜릿 상자를 내밀며, 횡설수설 말을 이었다.
“그냥, 너랑 나랑 친구로 지낸 지도 오래되었잖아? 그래서 챙겨 주는 거니까…….”
“…….”
라키어스는 속을 알 수 없는 시선으로 초콜릿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강요하는 건 절대 아니야. 부담스럽다면 편하게 거절해도 괜찮아.”
정말, 중언부언하는 내 모습이 바보 멍청이 같아서.
‘어떡해.’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초콜릿.”
동시에, 라키어스가 억눌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말로 친구로서 주는 거야?”
“으, 응?”
나는 살그머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라키어스가 어둑하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나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