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144)화 (145/163)

<152화>

“웃기지 마.”

내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저 게이트를 유지하는 데만 해도, 계속해서 마족들을 제물로 바치고 있잖아. 휘하의 마족들을 얼마나 갈아 넣을 생각……!”

“맞습니다.”

가주가 내 말허리를 잘라내며 무심하게 대꾸했다.

“하지만 폐하, 잘 생각해 보십시오.”

“뭐?”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와,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석이란…….”

온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푸른 눈동자가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역시 가치가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

바르톨로아 가주가 들으란 듯이 푹 한숨을 내쉬었다.

“무엇보다도 저는 폐하를 꼭 모셔 가야만 하는 입장이라서 말이지요.”

“……너.”

“그만큼 제가 폐하께 진심이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고는 과장된 동작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역시 폐하께서는 쉽사리 결정을 내리시기는 어려우시겠지요? 그러니 제가 미력하나마 도움을 드려야겠군요.”

“도움이라고?”

“그럼요. 마침 이 장소에, 하등 쓸모라고는 없는 버러지들이 이렇게나 우글거리니…….”

새파란 눈동자가 어쩔 줄 몰라 하는 군중들을 흘끗 스쳐 지나갔다.

“폐하께서 저와 함께하지 않으실 시에는, 이 버러지들이 어떤 최후를 맞이할지에 대하여.”

가주의 입술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한 번 본보기를 보여 드리는 것도 좋겠지요.”

본보기라니?

내 얼굴에서 핏기가 싹 빠져나갔다.

“폐하께서 저와 함께 가지 않으시면, 저의 수하들을 불러들이겠노라 말씀드렸지요?”

그런 내 표정을 감상하기라도 하듯, 꼼꼼히 뜯어보며.

바르톨로아 가주가 나긋하게 말을 이었다.

“그들이 이 버러지들을 말끔하게 청소해 줄 겁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는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바르톨로아 가주는 그런 나를 귀엽다는 양 바라볼 따름이었다.

“뭐, 다만 그들은 저보다는 조금 더 잔혹하겠지요.”

사람들의 눈동자에 공포가 알알이 들어찼다.

그런데 그때.

“가주님!”

누군가의 새된 목소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모네였다.

“가주님, 이렇게 다시 뵙게 되어서 정말로 영광이에요.”

모네가 해사한 얼굴로 가주에게 재차 말을 붙였다.

“제가 드디어 게이트를 열었어요!”

마치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런 모네와는 달리, 가주의 얼굴은 그저 무표정했다.

……하다못해 발밑에 떨어진 쓰레기를 보아도, 저것보다는 조금 더 온화한 시선일 텐데.

“그래서?”

가주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동시에 모네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가, 가주님?”

“그건 네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않느냐?”

가주는 무심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 일조차 해내지 못한다면, 애초에 내가 널 제작할 이유조차 없었겠지.”

“네? 그, 그게 무슨…….”

새카만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뭐, 여태까지 수고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바르톨로아 가주는 성의 없이 고개만 까닥일 따름이었다.

“마침 잘 됐다. 네게 새로이 내릴 임무가 하나 더 있으니까.”

“이, 임무요?”

“그래.”

고개를 끄덕인 가주가 모네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대로 가볍게 허공을 움켜쥐자.

“……컥!”

모네가 두 눈을 부릅떴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아귀에 목을 잡히기라도 한 것 같다.

“컥, 커억, 헉……!”

손톱을 세워서 목을 마구 긁어 댔지만, 모조리 허사였다.

모네의 흰자위에 핏발이 서는가 싶더니.

천천히 눈이 뒤집혔다.

“보이십니까, 폐하?”

가주가 나긋하게 내게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저는 쓸모가 다한 도구를 폐기할 예정입니다.”

“폐, 폐기라고?”

“예. 부디 이 도구를 폐기하는 과정이…….”

내게 조곤조곤 설명을 해 주는 저 목소리가, 지독하리만치 상냥해서.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폐하의 결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지금 이 순간.

바르톨로아 가주는 말하고 있었다.

내가 그와 함께 가지 않으면.

모네의 목을 꺾어 버리는 것을 시작으로, 이 게이트를 통해 마족들을 불러들일 것이고.

그 마족들은 제도의 모든 사람들을 휩쓸어 버릴 거라고.

또한, 마족들 앞에 선 사람들은.

모조리 모네만큼이나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리라고.

‘제정신이 아니야!’

물론 저 게이트는 시시각각 제물들의 목숨을 삼켜 유지되고 있으니, 오래 유지될 수는 없다.

특히 게이트를 통과하는 데에도 마기가 엄청나게 소모될 테니까.

실제로 고위 마족이 저 게이트를 통해 제도에 들어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할 터.

하지만.

‘하급 마족을 불러들이는 건, 마기 소모가 상대적으로 덜하지.’

하급 마족을 열 명만 제도에 풀어놓는다고 가정해도, 오랫동안 평화에 젖어 있던 제도를 혼란에 빠뜨리기에는 충분하다.

또한 내가 아는 바르톨로아 가주는…….

‘그 정도는 저지르고도 남아.’

한편 나와 집요하게 눈을 마주친 채로, 가주는 모네의 목을 움켜쥔 손에 점점 더 힘을 주었다.

“커억…….”

모네가 벌레처럼 몸을 바르작거렸다.

“뭐 하는 짓이야!”

보다 못한 내가 발작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당장 그 손 놔!”

눈앞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타오르는 분노가 일말의 이성까지 집어삼킨다.

“너는…… 너는 사람의 목숨을 도대체 뭐라고……!”

“쯧.”

한심하다는 양 혀를 찬 가주가, 가르치듯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는 언제나 지나치게 상냥하시고, 지나치게 자비로우시지요.”

“……너.”

“하지만 도구는 그저 도구일 뿐이고.”

가주가 단호하게 말을 맺었다.

“버러지는 그저 버러지일 뿐이지요.”

그 말을 끝으로.

가주는 당장이라도 모네의 목을 부러뜨려 버릴 것처럼 힘을 주었다.

그 순간.

나는 결정을 내렸다.

“갈게.”

가주의 푸른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나는 이를 악물며 말을 이었다.

“너를 따라갈 테니까. 일단 레이디 클로비스를 놔줘.”

“흐음.”

가주가 빤히 날 바라보더니, 뻗은 손을 거둬들였다.

동시에 모네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바닥에 엎드린 채 거세게 숨을 헐떡인다.

“헉, 허억, 헉……!”

고개 숙인 모네의 얼굴에서 땀과 눈물이 뒤섞여 뚝뚝 바닥으로 떨어졌다.

평소 모네가 보여 주던 고아한 자태는 흔적도 없다.

그 모습을 싸늘하게 지켜보던 내가 날 선 목소리로 요구했다.

“내가 순순히 널 따라가면, 다른 사람들은 건드리지 않는 거지?”

“…….”

“약속해.”

내가 재차 채근한 후에야.

가주는 커다란 은혜를 베풀기라도 하는 양,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나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내게 조금만 시간을 줘.”

“뭐, 버러지들에게 작별 인사라도 하실 생각이십니까?”

“…….”

나는 사나운 시선으로 바르톨로아 가주를 노려보았다.

피식 웃음을 터뜨린 가주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뭐, 경애하는 폐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그 정도 시간이야 드리지 못할 것도 없지요.”

난 당장에 라키어스를 돌아보았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라키어스가 흠칫 어깨를 굳힌다.

나는 지그시 어금니를 깨물었다.

“지금까지 숨겨서 미안해.”

“……뭘?”

라키어스가 간절히 나를 바라보았다.

이 모든 일은 거짓말이라고, 그저 끔찍한 악몽을 꾸는 것뿐이라고.

……제발 그렇게 말해 달라고.

눈빛으로 내게 애원하고 있었다.

‘나도 그러고 싶어.’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커다랗게 심호흡한 후, 입을 연다.

“저 마족의 말, 모두 사실이야.”

“티티.”

“나는 마신의 선택을 받은 마왕이야.”

순간 붉은 눈동자가 쩡 얼어붙었다.

“더 빨리 말해 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그, 그게 무슨.”

“너와 아빠들은 나를 진심으로 대해 줬는데, 나는 끝까지 거짓말만 한 것 같아서…….”

너무나도 죄스러웠다.

수많은 거짓들을 쌓아 올린 끝에.

끝끝내 이런 상황에 몰리고 나서야 진실을 말하는 내가…….

‘혐오스러워.’

당장이라도 그런 라키어스를 끌어안고,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었지만.

……슬프게도 그럴 시간이 없었다.

“내가 저 마족과 함께 가지 않으면, 저자는 정말로 제도를 짓밟을 거야.”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려 노력했다.

그러고는 키리오스가 주었던 연락용 팔찌를 풀어서, 라키어스의 손에 쥐여 주었다.

“아빠들에게 연락해서 국경을 더 단단하게 방비하라고 해.”

나는 일그러진 하늘을 흘끗 올려다보았다.

“저 게이트, 유지하는 데에 너무 많은 마기와 제물이 소모되는 종류야. 그러니까 아마 다시 열기는 어려울 거야.”

“티티, 잠깐…….”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둘째 아빠와 셋째 아빠에게 게이트를 막아야 한다고도 전해 주고…….”

나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짓씹었다.

그러고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너도, 너를 믿는 다른 사람들을 지켜줘.”

“…….”

라키어스가 멍하니 날 응시했다.

아마 지금의 내 얼굴은 엉망진창일 것이리라.

그래도 나는 있는 힘껏 입술 끝을 밀어 올렸다.

“너는 황족이고, 이 나라의 국민들을 지킬 의무가 있는 사람이니까.”

순간 라키어스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왜 그렇게 말해?”

“라키.”

“너도…… 내가 지켜야 하는 사람인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