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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145)화 (146/163)

<153화>

라키어스가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왜 너는…….”

“…….”

나는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되어 라키어스를 응시했다.

여태까지 나는 내가 마왕이라는 사실을 숨겨 왔는데.

나 때문에 이 모든 사달이 난 것이나 다름없는데.

모두를 기만했는데.

그런데도…….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

더 이상 괴로워하는 라키어스를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나는 슬며시 고개를 빗겨 내리며 모네를 불렀다.

“레이디 클로비스.”

모네는 바닥에 엎드린 채 잠잠했다.

아무런 반응조차 없는 그녀를 향해, 나는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당신이 누구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든 그건 당신의 자유예요. 하지만 그 감정이 누군가가 억지로 심어 둔 가짜 감정이어서는 안 돼.”

아까 바르톨로아 가주가 했던 말이 귓가에 어른거렸다.

‘그 일조차 해내지 못한다면, 애초에 내가 널 제작할 이유조차 없었겠지.’

얼음장처럼 차갑던 목소리.

그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내 손에 쥐여졌던 붉은 알약과, 한때 내가 목격했었던 수많은 실험체들.

또한 내가 떠난 이후로도 계속해서 실험이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니, 아마도 모네는…….

“당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누군가에게 계속 휘둘리다가 삶을 마감하게 될 뿐이에요.”

나는 마지막으로 모네를 일별했다.

“……지금처럼 말이에요.”

그와 동시에, 흥미롭게 나를 지켜보던 가주가 불쑥 입을 열었다.

“이 정도면 작별 인사는 충분히 한 것 같군요.”

“…….”

나는 적의에 가득 찬 눈으로 가주를 올려다보았다.

동시에 가주가 내게 정중하게 손을 내밀었다.

“오시죠.”

내 몸이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티, 티티!”

라키어스가 기절할 것처럼 놀라서 나를 붙들려 했다.

하지만 그 손은 허무하게 허공을 가로지를 뿐.

붉은 눈동자에 확 불이 붙었다.

“제기랄!”

라키어스가 이를 악물며 하늘로 몸을 튕겨 올렸다.

“라키!”

나는 두 눈을 부릅떴다.

“쯧.”

혀를 찬 가주가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라키어스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발악해 봤자, 버러지는 버러지인 것을…….”

그와 동시에.

퉁!!

투명한 벽에 막히기라도 한 것처럼 라키어스가 튕겨져 나갔다.

기절할 것처럼 놀란 내가 가주를 돌아보았다.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고 했잖아!”

“예, 그랬죠. 그래서 막아내고만 있잖습니까?”

그러나 가주는 태연한 얼굴로 나를 마주 볼 따름이었다.

“마왕께서는 아마도, 저 버러지가 여기서 더 다치기를 바라지 않으시겠지요.”

“…….”

“그렇다면 마왕께서 저 버러지를 말리시면 됩니다.”

나는 망연하게 라키어스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제발, 라키.’

몇 번이고 짓씹은 입술이 터졌는지, 입 안에서 비릿한 맛이 돌았다.

한편 라키어스는 어느새 다시 내 쪽으로 도약하고 있었다.

쾅! 쾅! 콰쾅!!

몇 번이고 몸을 부딪쳐 온다.

흡사 불길에 달려드는 부나방처럼.

아무리 발악해도, 내게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내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라키, 그만해.”

순간 라키어스가 고장 난 태엽 인형처럼 덜컥 몸을 멈췄다.

나는 꼿꼿하게 허리를 세웠다.

“……티티.”

라키어스가 신음처럼 나를 불렀다.

난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 라키어스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금실처럼 반짝이는 머리카락.

언제나 내 가슴을 뛰게 했던 수려한 얼굴.

특유의 다정한 미소와, 짓궂었던 목소리와, 마주 잡은 손의 따스한 체온까지.

최대한 머릿속에 담으려 애썼다.

그 후.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아름다운 붉은 눈동자를 마주하며…….

나는 최대한 밝게 미소 지었다.

“안녕, 행복해야 해.”

그 속삭임을 끝으로.

하늘에 열린 균열이 나와 가주를 집어삼켰다.

* * *

사위는 그저 고요했다.

밤하늘을 기괴한 빛으로 물들이던 균열도.

오만한 눈빛으로 발아래의 군중들을 내려다보던 바르톨로아의 가주도.

말끔히 사라졌다.

다만 타티아나만이 자리에 없었다.

“…….”

끔찍한 악몽을 꾸고 깨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여전히 현실감이 없었다.

라키어스는 평화로운 밤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다리에 천천히 힘이 풀린다.

털썩.

꺾인 무릎이 거세게 돌바닥과 부딪쳤다.

하지만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티티.”

라키어스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동시에 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티티.”

툭.

뜨거운 눈물이 바닥에 떨어졌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타티아나가 떠나는 모습을 멍청하게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다.

‘어떻게…… 이렇게 무력할 수가.’

스스로의 한심함을 참을 수가 없어서.

라키어스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라키.’

끝까지 라키어스의 행복을 비는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아서.

‘안녕, 행복해야 해.’

눈물 고인 눈으로도 미소 짓던 그 모습이, 심장을 저며 와서…….

“아아아아악!!”

라키어스는 바닥을 쥐어뜯으며 짐승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 * *

아직 해조차 뜨지 않은 이른 새벽.

성벽 위에 올라선 지크프리트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그 너머를 바라보았다.

“최근 국경에 자꾸만 마족들이 모여드는군.”

일반인들의 눈에는 비록 꼬물거리는 검은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겠지만.

초월자인 그의 눈에는 선명하게 보였다.

검은 점들은 모조리 마족이었다.

더 수상한 건.

‘……부대 형식으로 질서정연하게 무리를 이루고 있다는 거야.’

다섯 마왕은 죽은 지 오래였다.

그러니 더 이상 마족들을 통솔할 존재는 없는데도.

저 마족들은, 마치…….

‘누군가의 지휘를 받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때마침 키리오스가 지크프리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을 걸었다.

“야, 어째 너 표정이 썩어 들어간다?”

“너는 말을 해도 꼭.”

“썩어 들어가는 걸 썩어 들어간다고 하지, 그럼 기뻐 날뛰고 있다고 하리?”

얄밉게 깐족거린 키리오스가 도열한 마족들을 흘끗 돌아보았다.

“뭐, 저 꼴을 보고 있으면…… 얼굴을 구길 수밖에 없다는 건 이해하지만.”

두 사람은 나란히 침묵했다.

이렇게 마족들과 대치하고 있자니, 과거 마족들과 벌였던 전투들이 다시 떠올랐다.

피에 절여져 무뎌진 검 끝.

전장을 찢어발기는 끔찍한 단말마.

갓 뿜어져 나오는 피에서 훅 끼치는 더운 열기와 피비린내.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워도.

제가 죽는 것 따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것처럼, 당장이라도 두 눈을 까뒤집으며 달려들던 마족들까지.

그 모든 끔찍한 기억을 털어내려는 양.

키리오스가 일부러 더 밝은 목소리를 내어 입을 열었다.

“꼬마는 어제 재밌게 놀았을까?”

타티아나.

그들의 딸을 떠올리자마자, 두 사람의 입술 위로 부드러운 미소가 어렸다.

“그랬겠지. 어젯밤이 여름맞이 축제였으니까.”

“뭐야, 그럼 라키어스 자식도 꼬마한테 초콜릿 받았겠네?!”

키리오스가 두 눈을 부라렸다.

동시에 누군가가 시큰둥한 목소리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당연하죠. 솔직히 티티 양이 이번 여름맞이 축제를 얼마나 기대했어요?”

뒤늦게 성벽으로 올라온 세자르였다.

“라키어스는 횡재했네요, 우리 티티 양을 독점할 기회도 다 얻고. 짜증 나게.”

“…….”

“…….”

지크프리트와 키리오스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불퉁한 얼굴이 되었다.

타티아나가 라키어스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모르지 않아서였다.

어쩌면 타티아나 본인보다도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아버지였으니까.

솔직히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다.

타티아나와 라키어스는 서로를 이성으로 인식할 법한 나이였고.

그나마 타티아나가 누군가와 맺어져야 한다면, 라키어스가 가장 나은 선택지라는 것쯤은.

하지만.

“우리 꼬마가 연애라니…….”

키리오스가 음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딸아이의 연애란, 어쩔 수 없이 아버지들을 침울하게 만드는 법이다.

두 눈을 뻔히 뜬 채, 곱게 키운 딸아이를 요사스러운 여우 새끼가 홀랑 집어가는 꼴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니.

그야말로 세상이 뒤집어지는 충격이었다.

그런데 그때.

“응?”

키리오스가 문득 제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연락용 팔찌가 걸려 있었다.

타티아나에게 주었던 것과 한 쌍으로, 딸아이의 연락을 가장 먼저 받기 위해 일부러 지니고 있었는데.

“꼬마?”

-…….

팔찌 너머로 얼음 같은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키리오스 스승님.

지독하게 가라앉은 제자의 목소리를 듣는 그 순간.

세 용사들은 일이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무슨 일이야.”

-어젯밤, 제도에 공간이동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뭐라고?!”

순간 세 용사는 경악했다.

인간도, 마족도, 그 어떤 종족도.

신의 영역이라 일컬어지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제약을 아주 잠시라도 벗어나려면…….

‘엄청난 제물이 필요할 텐데.’

키리오스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동시에 라키어스가 최대한 담담하려 애쓰며 말을 이었다.

-그 게이트를 통해 마족이 하나 침입했습니다.

“마족이라고?”

-예. 스승님들과도 비견될 만한 강자였습니다. 그 마족에게 대항해 보려 했지만 손끝조차 대지 못했어요.

세 용사는 서로 빠르게 시선을 교환했다.

그들이 직접 키워 낸 수제자, 라키어스.

인간, 마족들을 통틀어 찾아봐도 라키어스보다 강한 자들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제자였기에 높게 평가하는 게 아니었다.

객관적인 사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라키어스는 초월자 직전에 다다른 강자였으니까.

그런 그가 저렇게 말한다는 건...

‘……다섯 마왕에 필적하는 마족이 존재하고 있다는 건데.’

한편 라키어스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마족이 티티더러 ‘마왕 폐하’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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