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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146)화 (147/163)

<154화>

“자, 잠깐. 뭐라고요?”

기절할 것처럼 놀란 세자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티티 양더러 마왕이라고 했다고요?”

-예, 확실합니다.

라키어스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또한 티티가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어제 열렸던 게이트는 마기와 제물 소모가 극심하여 다시 열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게이트를 막을 방법을 강구하고…….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듯 빠른 말씨였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감정을 애써 감추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국경 또한 지금보다 훨씬 더 단단하게 방비해야 한다고요.

“알았다. 그런데 라키어스.”

그런데 그때.

제자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지크프리트가 매섭게 질문을 던졌다.

“왜 타티아나가 직접 우리에게 설명하지 않는 거지? 그 애는 지금 어디에 있나?”

-…….

라키어스는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적어도 겉으로는 침착하게 들렸던 라키어스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티티는…….

라키어스가 쥐어 짜내듯 말을 이었다.

-그 마족이…… 티티를 협박했습니다. 티티가 함께 가지 않으면…… 게이트를 통해 마족들을 더 끌어들이겠다고요. 사람들을 학살할 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티티는…….

두서없는 말이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으며 이어졌다.

-그 마족과 함께 떠났습니다.

“뭐?”

세 용사는 제 귀를 의심했다.

동시에 라키어스가 절규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 애가, 제게 행복하라고…… 다른 사람들을 지키라고 했어요!

“……라키어스.”

-사실 전 티티를 지키고 싶었는데. 그 애를 지켰어야 했는데. 저는……!!

“정신 차려!!”

순간 키리오스가 벼락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그 작자가 누구인지는 우리도 몰라. 다만 공간이동 게이트를 열 정도라면, 최소한 다섯 마왕과 비견하는 강자일 거다.”

-…….

“그러니까 네가 그 작자를 막지 못했던 건 어쩔 수 없었던 일이야. 천재지변 같은 거라고!”

키리오스가 으르렁거리며 라키어스를 향해 쏘아붙였다.

“근데? 그래서 계속 그렇게 애새끼처럼 징징거리고만 있을 거야?”

-……키리오스 스승님.

“꼬마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했어! 그러니까 너도!!”

키리오스가 이를 갈아붙였다.

“너도 네가 해야 할 일을 해!!”

수없는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끝끝내 제 살을 깎아 내어 인류를 구해냈던 대마법사는.

피를 토하듯 고함을 내질렀다.

“제도의 사람들을 보호하고, 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치안을 강화해! 너는 황자잖아! 네게 주어진 의무를 행하란 말이다!!”

-…….

팔찌 너머로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아마도 라키어스는 지금, 무척 혼란스러울 터.

그를 보다 못한 지크프리트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라키어스. 최선을 다하되, 너무 무리하지는 마라.”

-……저는.

“지금 당장 아버지께 연락을 드릴 거다. 제도로 가시라고 말이다.”

라키어스가 조금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오를레앙 노공작님 말씀이십니까?

“그래. 너 혼자서 제도에서 버티기에는 너무 힘들 테니까.”

잔뜩 흥분했던 키리오스는 그제야 찔끔한 표정이 되었다.

라키어스는 아직 스물네 살밖에 되지 않았다.

심지어는 절친한 친구였던 타티아나까지 눈앞에서 사라진 상황.

쇠락했던 카를로를 되살리고, 몇 번이나 마수들과 사투를 벌여 승리한 젊은 영웅이라 한들.

현 상황이 버겁지 않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이리라.

잠시 후.

팔찌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스승님들은 제 나이에 이미 마계로 진격하셨는데.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롭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지크프리트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지.”

깊은 절망, 슬픔, 비탄, 자괴감.

엉망으로 뒤섞인 감정 때문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라키어스를 향해.

지크프리트가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그건 우리야. 네가 아니다.”

-…….

“우리의 기준을 무조건 네게 들이댈 생각은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러니…….”

지크프리트가 차분하게 말을 맺었다.

“너는 그냥,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돼.”

-……예.

뒤늦게 들려온 대답은.

방금 전처럼 혼란과 두려움에 가득 차 있지는 않았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통신이 마무리되고.

세 용사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너, 라키어스에게 너무 가혹하게 구는 것 아닌가?”

지크프리트의 핀잔에, 키리오스가 억울한 얼굴로 항변하려 했다.

“아니이, 나 때는……!”

나 때는, 을 몇 번이고 중얼거리던 키리오스가 제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었다.

“제기랄.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됐는데!”

“후회는 나중에 하도록 해요. 그럴 시간 없어요.”

세자르가 질색을 하며 키리오스의 말을 중간에서 끊어냈다.

회색 시선에 복잡한 빛이 어렸다.

“설마하니 티티 양이 마왕이었을 줄은 몰랐네요.”

과거에는 그저 때를 놓쳐서 노예 관리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노예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말을 들으니…….

“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마족들은 본디 힘을 숭상하는 족속.

하지만 마왕은 마신이 지목하여 탄생하는 신의 대리자다.

그러니 이론상으로는 타티아나처럼 어리고 연약한 마왕이 존재할 수도 있다.

마신이 지목하기만 한다면, 그 누구든 마왕이 될 수 있으니까.

“……나는 말이지, 마신이 인간계를 멸망시키려고 일부러 마왕을 다섯이나 지목했다고 생각했었거든?”

한참 고민에 빠져 있던 키리오스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그런데…… 사실 그게 아니었던 것 같아.”

“키리오스.”

“그러고 보면 꼬마는 처음부터 불안정한 마기 때문에 무척 고생했었지. 피를 토하고, 괴로워하고…….”

잠시 말끝을 흐리던 키리오스가, 지그시 어금니를 깨물었다.

“우리는 단순히 꼬마가 보유한 마기가 꼬마 자신을 공격한다고 생각했었어. 물론 그것도 마기가 불안정한 이유 중의 하나가 될 수 있겠지. 하지만.”

키리오스가 단호하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면?”

“……그건.”

“우리는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마기를 갈취당했고, 그래서 마기가 불안정했던 거라면?”

키리오스가 서늘하게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왜 꼬마의 마기를 갈취해야 하느냐, 그 의문이 남지.”

“설마…….”

세자르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키리오스는 세자르와 지크프리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꼬마가 마왕이었다면, 다섯 마족이 꼬마의 마기를 갈취해서 마왕 행세를 한 거라면.”

녹음을 닮은 진녹색 눈동자가 어둑하게 가라앉았다.

“상황이 꼭 들어맞아.”

“…….”

“…….”

침묵이 흘렀다.

키리오스가 날선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또한 당시 꼬마가 처해 있던 상황을 보면, 고위 마족을 다섯이나 골라서 마왕으로 선택할 여력은 없었겠지.”

그 순간.

세 남자는 타티아나를 처음 만났던 그때를 떠올렸다.

피죽 한 그릇조차 얻어먹지 못한 듯, 깡마르고 조그마했던 네 살배기 아이.

그런데도 그들을 향해 스스럼없이 미소 짓던…….

“그렇죠. 만약 티티 양이 다섯 마왕을 고른 배후라면, 우리를 치료해 주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글쎄, 그걸 치료라고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지크프리트가 쓴웃음을 지었다.

세자르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농을 던졌다.

“마침 티티 양이 없어서 하는 말이지만, 티티 양이 소독약을 부었을 때에는 정말 까무러치는 줄 알았답니다.”

“그랬나?”

“당연하죠. 이건 당해 봐야 알아요.”

세자르가 키득키득 웃음을 터뜨렸다.

그 후.

그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키리오스, 당신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최소한 그 과정에서 티티 양이 무척 괴로웠을 거라는 건 알겠네요.”

동시에, 세자르의 시선이 얼음장처럼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마기를 채취하는 게 보통 일은 아니었을 테니까요.”

“그렇지. 그리고 그 원흉이 꼬마를 다시 데려갔다면, 지금쯤 꼬마가 어떤 고초를 겪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고 말이야.”

마지막으로 지크프리트가 대화를 정리했다.

“타티아나가 마왕이건 마왕이 아니건 간에, 그 애가 우리 딸인 건 변하지 않아.”

그의 무뚝뚝한 얼굴 위로 희미하게 미소가 어렸다.

“원래 사랑은 내리사랑이라잖은가.”

“그래, 라키어스 녀석은 제국을 지키고 있으라고 해.”

키리오스가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인류는 한 번 구했으니, 이번에는 꼬마를 구하러 가야지.”

사납게 미소 짓던 키리오스가, 문득 의아한 얼굴이 되어 세자르에게 물었다.

“야, 세자르. 너 뭐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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