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그러니 응당 목숨으로 죗값을 치르게 해야지요.”
“뭐?”
가주의 푸른 눈동자를 응시한 바로 그 순간.
나는 커다란 얼음조각을 삼키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이 서늘해졌다.
‘바르톨로아 가주는…… 진심으로 하녀가 죽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당연하다는 표정일 리가 없다.
“컥, 억, 허억!”
얼어붙은 듯 차가운 침묵이 내려앉은 만찬장 안.
목을 쥐어뜯으며 버둥거리는 하녀의 신음만이 울렸다.
“물론 저깟 하찮은 목숨 하나로는 폐하의 진노가 풀리지 않으실 것은 압니다.”
“가, 가주. 지금 이게 무슨…….”
“그러니, 폐하의 마음이 편해지실 때까지.”
가주는 눈짓으로, 만찬장 곳곳에 그림자처럼 대기하고 있는 시종들을 가리켰다.
“저치들의 목숨을 차례대로 거두겠습니다.”
“…….”
“…….”
시종들은 겉으로는 무표정한 낯이었다.
하지만 내리깐 눈동자에는 짙은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만해.”
나는 몸을 홱 돌려, 가주가 권했던 의자로 향했다.
또각, 또각.
만찬을 위해 신은 하이힐 굽 소리가 대리석 바닥과 부딪쳐 섬뜩하게 울렸다.
자리에 앉은 내가 가주를 노려보았다.
“됐지?”
“……흐음.”
턱을 쓸어내린 가주가 싱긋 눈웃음을 지었다.
“역시 우리 폐하이십니다. 관대하시기도 하시지.”
짝!
가주가 박수를 한 번 쳤다.
그와 동시에 하녀가 거세게 숨을 삼켰다.
“헉……!”
하녀가 바닥에서 꿈틀거리며 거친 기침을 토해 냈다.
“콜록, 콜록. 컥!”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하녀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눈물 고인 눈으로 가주를 올려다보았다.
“허억, 허억, 헉…… 가, 감사…….”
“언제까지 바닥에서 그렇게 빌빌대고 있을 셈이지?”
하녀를 일별한 가주가 귀찮다는 양 휘휘 손을 저어 보였다.
“흉측한 꼴 보이지 말고, 이만 물러가거라.”
동시에 시종들이 우르르 몰려와 하녀의 양팔을 들어 올렸다.
그렇게 하녀가 질질 끌려 나간 후.
나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무슨 속셈이지?”
“속셈이라니요. 그리 말씀하시면 섭섭합니다.”
바르톨로아 가주는 나를 향해 부드럽게 눈매를 휘어 보였다.
“폐하께서 계속 식사를 거르신다고 하시기에, 걱정되는 마음에 자리를 마련한 거랍니다.”
“그래? 정말로 내 건강이 염려되었던 거라면, 그 낯짝을 내게 안 보여 주는 편이 가장 현명하지 않을까?”
기가 막힌 내가 코웃음을 쳤다.
“네 얼굴을 보며 식사하라니,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날 지경이거든.”
그러나, 내 날 선 대답을 모조리 듣고 나서도.
가주는 여전히 그린 듯한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뭐, 겸사겸사 폐하와 진솔하게 대화를 나눠 보고 싶기도 했답니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거잖아요?”
“나는 너와 대화 같은 건, 전혀……!”
“폐하께서는 귀한 제물이신걸요.”
제물?
그 낯선 단어에, 나는 바짝 몸을 긴장시켰다.
가주가 나와 시선을 맞추며 나긋하게 말을 이었다.
“폐하께서는, 제가 마왕으로 각성하기 위해 꼭 필요한 분이십니다.”
“…….”
바르톨로아 가주가 마왕으로 각성한다고?
……나를 이용해서?
“그,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내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마왕은 마신께서 선택하시는 존재인데, 도대체 무슨 생각을……!”
“아니지요. 저희는 바르톨로아인걸요.”
가주가 보란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폐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저희 바르톨로아 일족은 여러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가주. 그건…….”
“그런데도 여태껏…… 영원한 2인자의 자리에 머물러야만 했지요.”
새파란 눈동자에 희미하게 광기가 엿보였다.
“그러니, 이제는 영원한 1인자가 될 생각입니다.”
“…….”
나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물론 코앞에 닥친 죽음도 너무나도 두려웠다.
바르톨로아 가주는, 비록 어마어마하게 재수 없을지언정 제가 내뱉을 말을 지킬 능력은 있는 이였으니까.
그런 그가, 내가 제물이 될 거라고 뻔뻔하게 말할 정도라면.
정말로 나를 이용하여 마왕으로 각성할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내게 있어 가장 두려운 것은…….
‘인간계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무릎 위에 올려 둔 손을 와락 그러쥐었다.
비록 저 괴물 같은 작자의 속내를 완전히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인간계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만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네가 정말로 마왕이 되는 데에 성공한다면.”
나는 최대한 태연한 목소리를 내려 노력했다.
“인간계는 어떻게 할 거야?”
“흐음.”
순간 푸른 눈 위로 이채가 서렸다.
“어째, 폐하께서는 지금도 제게 살려 달라고 빌지 않으시는군요?”
“…….”
“하하, 보통은 자신의 목숨이 가장 중하지 않습니까?”
가주가 정말로 즐겁다는 양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뭐, 그래서 폐하를 대할 때마다 무척 재미있기는 하지만요.”
나는 지그시 이를 악물었다.
화가 났다.
저 작자가 장난감 다루듯 나를 쥐락펴락하는 게.
하지만 가장 화가 나는 건…….
‘우리 아빠들도, 라키도, 할아버지도…… 다들 위험할 수도 있는데.’
이런 끔찍한 상황에서도 아무런 대처조차 하지 못하는, 내 자신의 무능함이었다.
‘침착해. 흔들려서는 안 돼.’
커다랗게 심호흡을 한 내가 재차 물었다.
“그래서, 대답은?”
“제가 왜 대답해 드려야 하지요?”
“대답해!”
참지 못한 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자 가주가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식사 자리에서 언성을 높이는 건 예의에 어긋난답니다.”
가주가 까닥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러자 거대한 힘이 내 어깨를 짓누른다.
“윽…….”
어떻게든 버텨 보려 했으나 전혀 소용없었다.
나는 결국 의자 위로 털썩 무너져 내렸다.
그런 날 흥미롭게 바라보며, 가주가 나긋하게 입을 열었다.
“뭐, 모처럼 이렇게 폐하를 모셨으니. 제 오랜 염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볼까요.”
“…….”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바르톨로아 가주는 자못 가슴 아픈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마계의 영원한 2인자, 고귀한 바르톨로아. 이 이름이 얼마나 허망한지, 폐하께서는 아십니까?”
“…….”
때마침 음식들이 날라져 왔다.
갖가지 귀한 재료와 향신료를 사용한 사치스러운 음식들이 식탁을 채우기 시작했다.
가주가 우아한 동작으로 식기를 집어 들었다.
“우리 일족에게서는 단 한 번도 마왕이 탄생한 적이 없었죠.”
서걱.
날카로운 나이프가 레어로 익힌 스테이크를 커다랗게 썰어 냈다.
고기조각에서 붉은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그래서 저는 고민을 거듭했답니다. 우리 일족은 언제까지 2인자에서 멈춰 있어야 할까? 마신께서는 정녕 우리 일족을 선택할 생각이 없으신 걸까?”
가주가 스테이크를 포크로 찍어 올렸다.
커다란 고기 조각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가주가, 그를 입에 넣었다.
스테이크를 씹어 삼키는 그 찰나의 시간 동안.
……나는 마치, 내가 그의 입에서 씹히는 고기조각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꿀꺽.
가주의 목울대가 커다랗게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마신께서 우리 일족을 선택하시지 않는다면…….”
가주는 제 앞에 놓인 와인 잔을 집어 들었다.
“마신께서 직접 선택하신 마왕을, 우리 일족의 일부로 만들면 된다는 것을요.”
“그게 무슨 뜻이지?”
“간단해요. 제가 폐하의 마기를 흡수하는 겁니다.”
피처럼 붉은 와인을 한 모금 머금어, 목을 축인 후.
바르톨로아 가주가 빙그레 눈매를 휘어 보였다.
“제 마기를 모조리 폐하의 것으로 대체한다면, 제가 마왕이 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순간 나는 소스라쳤다.
“……미쳤어.”
“글쎄요, 머저리들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자더러 미쳤다고 손가락질하는 버릇이 있지요. 하지만.”
가주는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여태껏 그 누구도 닿지 못한 곳에 처음으로 닿는 이는, 보통 그 미친 사람이랍니다.”
그러고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내게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폐하, 식사 안 하십니까?”
“…….”
여태까지 입맛 떨어지는 소리만 지껄여 놓고서는, ‘식사 안 하느냐’라고 묻다니.
저 작자의 무신경함이란 정말 소름 끼친다.
그리고.
“네가 음식에 장난질을 해 놨을지 어떻게 알아?”
“이런, 설마 폐하께 대접하는 음식에 독이라도 집어넣었으려고요?”
가주가 귀엽다는 양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저 시선이 마치 과일을 품평하는 상인 같다.
과일이 다 익었는지, 언제쯤 수확해도 되는지, 상품성은 얼마나 되는지.
요모조모 살펴보는 저 집요함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