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157)화 (158/163)

<165화>

* * *

하루를 꼬박 새운 기나긴 전투가 끝났다.

바르톨로아 가주의 명령을 받은 특수부대는, 끝끝내 소가주의 수급을 베어 내어 본성으로 귀환했다.

하지만 그 대가로, 특수부대원 중 살아남은 사람은 지휘관 단 한 명뿐이었다.

지휘관은 텅 빈 제 왼팔을 내려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 누가 소가주님 아니랄까 봐…….”

카이젠은 인간 여자를 홀로 도망시키고, 저 혼자 남았다.

어떻게든 그 여자만큼은 살리고 싶었던 것이리라.

아마도 그만큼 그녀를 사랑했던 거겠지.

그 냉혈한이, 제 아버지 외에 누군가를 그렇게 소중하게 여길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소가주님은…… 바르톨로아 가주님을 쏙 빼닮은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그건 지휘관의 착각이었던 듯하다.

‘어떻게든 소가주님께서 살아남으셔서, 추후 그분께서 새로이 가주가 되셨더라면.’

바르톨로아 일족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었을 터.

그런 카이젠을 영영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지휘관은 못내 씁쓸했다.

* * *

그리고 며칠 후.

우연히 그 근처를 지나던 노예 상인이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응? 이게 뭐야.”

커다란 고목 나무 근처에 누군가가 쓰러져 있었다.

가까이 간 노예 상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인간?”

고요히 눈을 감은 인간 여자였다.

몸은 상처라고는 하나도 없이 깨끗했으나, 이미 숨을 거두었다.

아무래도 죽기 전에도 몸 상태가 그리 좋지만은 않았던 듯하다.

그 상태에서 오랫동안 추위에 시달리고, 오랫동안 움직여서 탈진한 게 치명적으로 작용한 것 같은데…….

그런데 그때.

“아웅…….”

조그만 옹알이가 들려왔다.

여인 근처로 다가선 노예 상인은, 그녀의 품 안에 조그만 아이가 안겨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기?”

여인을 쏙 빼닮은 솜털 같은 분홍색 머리카락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딸인 듯하다.

어찌나 아이를 소중히 보듬었는지, 아이의 새하얗고 포동포동한 살갗에는 생채기 하나조차 없었다.

아이를 싸맨 포대기 안으로는 조그만 쪽지가 들어 있었다.

<아이의 이름은 타티아나입니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타티아나? 인간 계집아이치고는 거창한 이름이군.”

쪽지를 확인한 노예 상인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도 그럴 것이, 타티아나라는 이름의 뜻은 고대어로 ‘행복’이었으니까.

아기를 요리조리 살펴보던 노예 상인이 짧게 혀를 찼다.

아이를 보호하듯 휘감은 마기가 어찌나 강력한지, 피부가 찌릿해질 지경이었다.

“거참, 이렇게 수많은 보호 마법이라니…….”

꽤 수상한 아기였다.

애초에 보호 마법을 중첩하여 거는 것 자체가 무척 어렵거니와.

보호 마법을 구현한 마기의 구성 또한 무척 정교하다.

아마도 이 보호마법을 건 사람도 상당한 고위 마족인 듯하다.

보호 마법을 시전한 당사자는, 아무래도 이 아기를 정말 소중하게 여겼던 것 같은데.

노예 상인이 미심쩍은 시선으로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도대체 이 애…… 정체가 뭐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

노예 상인이 멈칫 어깨를 굳혔다.

상인의 눈은 어느새 몽롱하게 풀려 있었다.

때마침 카이젠이 딸아이를 생각하며 걸어 두었던 인지 왜곡 마법이 작동한 것이다.

“생각해 봤자 뭐 하겠어, 어차피 인간 계집애일 뿐인데.”

어깨를 으쓱인 노예 상인이 아이를 안아 들었다.

긴 설원을 가로지르며, 노예 상인이 저벅저벅 걷기 시작했다.

여인의 시신만이 홀로 남았다.

하지만 그 여인의 표정은 사뭇 부드러웠다.

그나마 아이를 누군가가 데려가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마음 깊이 안도하는 것처럼.

* * *

내 뺨 위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엄마. 아빠.”

나를 이 세상에 보내 준 내 친부모님은, 인간과 마족 사이의 오랜 증오를 딛고 서로를 사랑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를 품었다.

증오가 아닌 사랑으로써.

‘티티, 사랑하는 내 딸.’

‘너는 나와 내 아내가 사랑했다는 증거이자 결실이고.’

‘우리 삶의 기적이란다.’

아빠의 그 말을 곱씹던 내가, 다시 한번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언제나 가슴 깊은 곳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나는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

태어나서는 안 될 존재가, 여태껏 아득바득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하지만…….

‘나는 잘못된 존재가 아니었구나.’

난 사랑으로 태어난 사람이었고, 내 친부모님도 나를 무척 사랑해 주셨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어찌나 가슴이 벅차오르는지.

-내가 널 왜 선택했는지 알겠니?

동시에 부드러운 목소리가 내게 물었다.

마신.

나를 자신의 대리인으로 선택한 절대자.

비록 마신께서는 내가 마족의 모습으로 현신하시지는 않았다.

하지만 위대한 존재가 바로 내 곁에 머무르고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제 추측으로는.”

잠시 망설이던 내가 대답했다.

“인간과 마족 사이의 오랜 반목을 멈추기 위해서, 라고 생각해요.”

-정답이란다. 똑똑한 아이구나.

가벼운 웃음소리가 내 귓가를 간지럽혔다.

-사실 우리는 너희가 이렇게까지 반목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단다. 너희가 신화시대라고 부르는 그 시절에는, 인간과 마족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서 살았었거든.

아.

순간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다면 예언서에서 느껴졌던, 마력과 마기가 뒤섞인 듯한 그 기운은…….”

-마기와 마력의 근원이란다.

마신께서는 흔쾌히 내게 답하셨다.

-그 근원에서부터 마력과 마기가 다른 방향으로 진화한 거야.

……그렇구나.

먼 과거에는, 마족과 인간이 정말로 한 뿌리를 가졌던 거였어.

나는 새로이 깨달은 사실에 어깨를 떨었다.

동시에, 마신께서 다정하게 말을 이었다.

-너는 마족과 인간 사이에서 최초로 태어난 혼혈이지.

“최초의 혼혈…….”

나는 그 단어를 곱씹었다.

마신께서 상냥하게 말을 덧붙이셨다.

-게다가 다른 세계에서 온 영혼이기도 해.

다른 세계.

마신께서는 지금, 한때 내가 속해 있었던 지구의 조그마한 반도 국가를 말씀하고 계셨다.

-양측의 피, 그리고 다른 세계의 영혼까지. 여러 곳에 뿌리를 둔 너라면, 두 종족의 고충을 모두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단다.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던 내가 문득 질문을 던졌다.

“그럼 제가 읽었던 책은 무엇인가요?”

이 세계의 주인공인 라키어스.

그리고 라키어스의 영원한 연인이었던 모네.

그 두 사람이, 폭주하여 이성을 잃은 ‘마왕 타티아나’를 물리쳤던 그 이야기 말이다.

-그건 미래의 한 갈래란다.

순간 마신의 목소리가 깊게 가라앉았다.

-정확히는, 마족과 인간의 갈등을 끝내 봉합하지 못한 미래라고 보면 되겠지.

“…….”

나는 잠시 침묵했다.

하기야, 인간의 손에 마왕이 소멸하게 된다면.

인간들과 마족들의 갈등은 최고조에 도달하게 될 테니까.

“그렇다면, 제가 만약 라키어스의 손에 토벌되었다면.”

나는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그 후의 미래는 어떻게 되나요?”

-모네, 그 아이가 라키어스를 배반했겠지.

“…….”

전혀 상상치도 못한 대답에, 나는 꼴깍 마른침을 삼켰다.

마신의 목소리에 희미한 안쓰러움이 깃들었다.

-그 아이는, 그때도 바르톨로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네가 토벌당한 그 순간, 바르톨로아 일족이 미리 준비해 두었던 마법진이 발동되었을 거란다.

……음, 그런 거라면.

잠시 눈치를 살피던 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마신께서 빛의 신과 적대하신다는 이야기는…….”

-아하하!

마신께서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셨다.

-그래, 너희 필멸자들은 가끔 재미있는 상상을 하더구나. 하지만 우리가 굳이 서로를 적대할 필요가 있겠니?

어쩐지 마신께서 있지도 않은 어깨를 으쓱이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하면.

내 착각일까?

-정말로 그런 거라면, 내가 너를 굳이 내 대리자로 선택하여 갈등을 봉합할 이유가 없잖니. 그저 인간들을 멸절시키라 명령하면 그만인 것을.

……듣고 보니 그렇기는 한데.

잠시 눈치를 살피던 내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하지만 바르톨로아 일족이 말하기를, 마신께서 미개한 인간들을 멸절시키라며 신탁을 내리셨다고…….”

-아, 바르톨로아.

그 순간.

내내 유쾌했던 목소리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그 아이들은…… 여러모로 영악하더구나.

“…….”

-내가 내린 신탁을 그렇게까지 제 입맛대로 해석할 수 있을 줄이야. 그 솜씨에는 나도 조금 놀랐단다.

신탁을 제멋대로 해석했다, 라…….

나는 납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르톨로아 일족은 신탁이 내려오는 신전을 장악하고 있었으니까.

마신께서 내리시는 신탁을 처음으로 받아 볼 수 있다면, 신탁을 저 편할 대로 해석하는 것도 용이할 것이리라.

-그래서.

때마침 마신께서 내게 물으셨다.

-이제 돌아갈 준비가 되었니?

“…….”

나는 가만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

날 감싸고 있는 압도적인 공간을 오래오래 시야에 담는다.

어둠과 빛이 제멋대로 뒤엉키고, 반짝이는 별무리, 소용돌이치는 구름이 무한정 펼쳐진 곳.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나며, 그 숨을 다하여 다시 거대한 흐름으로 돌아가는…….

세계의 근원.

‘내 친부모님도 이곳을 거쳐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셨겠지.’

비록 그분들이 지금 어디에 계신지는 알 수 없지만.

앞으로 그분들께서 평화로이 살아가시려면…….

“네, 준비됐어요.”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마신께서 흡족하게 내게 답하셨다.

-그럼 이제, 너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로 돌아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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