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160)화 (161/163)

<에필로그 1화>

14. 사랑하는 그대에게

그 후.

아주 많은 일이 있었다.

일단 제국민들은, 현 데카르트 황실에게 어마어마하게 분노했다.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제국의 심장부인 제도에서, 무려 마족에 의한 공간이동 게이트가 열렸다.

심지어는 그 마족이 오를레앙 공녀더러 ‘마왕’이라 칭하며, 공녀까지 납치해 갔다.

그야말로 국가 위기라 칭하기에 모자람 없는 상황이 아닌가.

그러니 마땅히, 황제가 모두를 통솔하여 국난에 맞서야 할 텐데…….

‘어떻게 시민들을 남겨두고, 황실의 사람들만 피난을 갈 수가 있습니까!’

‘데카르트 황실은 제국민들에 대한 책임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겁니까?’

황실은 자신들의 의무를 다하기는커녕, 가장 먼저 시민들을 버리고 도망쳐 버리는 추태를 보였다.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에 반하여 라키어스를 향한 신뢰도는 더더욱 높아졌는데, 그 이유는.

‘치안대들은 모두 자리를 지켜라!’

‘시민들은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각자 자택에서 대기하십시오!’

첫째로 공간이동 게이트가 열렸던 초반에, 라키어스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혼란을 수습하던 모습을 시민들이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이었고.

둘째로는 오를레앙 노공작의 노고 덕택이었다.

‘이런 상황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지도자가 굳건히 버티고 있어야만 시민들도 안심할 수 있다. 알겠나?’

오를레앙 노공작의 지휘 아래에 모든 세력들이 결집했다.

오를레앙 기사단은 물론이고, 황실 기사단과 마탑, 그리고 대신전까지도.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던 것이다.

한편 모두가 발 벗고 상황을 수습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시민들은 당연히 필로멜 후작가를 곱지 않게 생각하게 되었다.

‘오를레앙 노공작께서는 먼 길을 마다 않고 돌아오셔서 상황을 수습하시는데…….’

‘필로멜 후작가는 도대체 뭘 하는 거야?’

황가의 최측근이자, 황비를 배출한 명문가인 필로멜 후작가.

매번 자신들이 가장 고귀하다며 어깨를 우쭐거리던 그들은, 이런 긴급한 상황에서 어떤 처신을 보였는가.

황제의 안전을 지켜야만 한다는 핑계로, 냅다 꽁무니를 빼지 않았나.

그 와중, 오를레앙 노공작은 자신의 가문이 라키어스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우리 공작가는 라키어스 1황자 전하를 돕기 위하여 이 자리에 있는 것이오.’

노공작이 형형한 눈빛으로 선언했다.

제도가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결정적인 도움을 준 공작가가, 1황자를 지지한다.

그 말은 시민들의 가슴에 깊게 남았다.

그리고 마지막 이유는…….

‘인간계와 마계 사이의 불가침조약을 이끌어 낸 장본인이니까.’

제도에서 공간이동 게이트가 열렸던 그때.

수많은 사람들이 오를레앙 공녀, 타티아나가 마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타티아나가 그들을 살리기 위해 제 발로 마계로 향했다는 것도.

그 후, 진실과 하얀 거짓말을 절묘하게 섞은 끝에.

마왕으로 각성한 오를레앙 공녀와 1황자 라키어스가 담판을 벌여서, 인간계와 마계 사이의 극적인 협상을 이끌어 냈다…… 는 평가를 이끌어낼 수 있었는데.

“어때? 인류를 구한 영웅으로 대접받는 기분은?”

나는 라키어스를 향해 짓궂게 웃어 보였다.

화려하게 단장된 대신전의 대기실 안.

라키어스가 내심 찔리는 기색으로 나를 마주 보았다.

“……양심이 아파.”

라키어스는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솔직히 내가 불가침조약을 이끌어 냈다는 거, 과장과 비약이 너무 심한 것 아니야?”

“왜 과장이라고 생각해?”

나는 손을 뻗어 라키어스의 옷깃을 정리해 주면서, 장난스럽게 되물었다.

“아빠들이랑 네가 없었으면, 설마하니 내가 불가침조약까지 맺었겠어?”

“거짓말.”

순간 라키어스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넌 내가 없었어도 마계와 인간계의 관계를 회복시켰을걸. 분명해.”

“…….”

정곡을 찔린 내가 입을 다물었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라키어스가 피식 미소 지었다.

“너는 누가 죽어가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성격이 아니거든.”

나는 두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라키어스를 흘겨보았다.

“정말, 너는 날 너무 잘 안다니까?”

밉지 않게 핀잔을 준 것도 잠시.

나는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래도 완전히 없는 말은 아니야. 너와 아빠들이 조금 더 안전한 환경에서 살아가기를 바라서, 불가침조약을 맺은 거라고.”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번 불가침조약을 맺으면서, 마족들과 인간들 양쪽 모두 얼마나 반발을 했는지 모른다.

아무래도 서로를 증오하며 살아갔던 기간이 너무 길었으니까.

그래서 나와 라키어스는 물론이고, 우리 아빠들까지 중간에서 엄청나게 진땀을 흘려야만 했다.

‘그래도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이었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라키어스와 우리 아빠들, 할아버지, 노라를 포함한 공작가의 사용인들.

그리고 지금은 새로운 생명을 받아서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고 계실 내 친부모님도.

모두 평화롭기를 바라고 있으니까.

게다가.

‘평화의 가치를 알고,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인간계의 황제가 탄생한 것도…… 커다란 성과지.’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라키어스의 모습을 위아래로 살핀다.

동시에 내 입술 위로 절로 흐뭇한 미소가 맺혔다.

‘음, 오늘도 잘생겼군.’

황제의 정복을 차려입고, 긴 망토를 두른 라키어스의 모습이 어찌나 헌앙한지.

보는 내가 뿌듯할 정도였다.

그랬다.

오늘은 라키어스가 황제로 즉위하는 대관식 날이었다!

제도를 내팽개치고 떠난 선황에 대한 제국민들의 분노가 어마어마했고.

결국 그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선황은 라키어스에게 강제로 양위하는 처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뭐, 현재 선황의 상태가 제대로 국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것도 맞았다.

‘싸고돌던 둘째 아들은 살해당하고, 그 충격에 황비 마마까지 미쳐 버리셨잖아.’

웬만큼 심지가 굳은 사람도 버티기 힘든 상황이지 않은가.

또한 내가 아는 선황은, 내가 봤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유약한 사람이었다.

하다못해 자신의 친아들까지 질투할 정도로.

그런데 바로 그때.

“1황자 전하.”

대기실로 들어온 사제가, 라키어스를 향해 깊숙하게 고개를 조아려 보였다.

“대관식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알겠네. 조금만 기다려 주게.”

라키어스의 말에, 사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대관식을 코앞에 둔 차기 황제의 긴장되는 마음을 배려하는 것일 터.

나는 응원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서, 라키어스의 손을 꽉 잡았다가 놓았다.

“잘해.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

아니, 정확히는 놓으려 했다.

라키어스가 멀어지려는 내 손을 재차 잡아채기 전까지는.

‘어라?’

내 눈이 조금 커졌다.

그와 동시에,

촉.

라키어스가 내 손등 위로 짧게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스치고 지나간 뜨거운 감촉이, 손등 위로 선명하게 남았다.

“…….”

나는 멍하니 라키어스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똑바로 맞받으며, 라키어스가 들으란 듯이 너스레를 떨었다.

“걱정은 붙들어 매시지요, 마왕 폐하.”

“뭐, 뭐?”

“누구 말씀인데 감히 제가 어기겠습니까?”

라키어스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너, 너!

내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이렇게 사람을 설레게 하는 건 반칙이랬지?!

* * *

나는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대신전의 신자석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세자르는 대사제로서 대관식을 집전해야 하기 때문에, 대신전 중앙의 제단에 먼저 가 있는 상태.

그러므로 날 반겨 준 사람은 두 아빠와 할아버지였다.

“오, 꼬마!”

“조금 늦었구나.”

대관식이 가장 잘 보이는 상석에 서 있던 키리오스와 지크프리트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만면에 미소를 지었고.

“아가, 왔느냐?”

할아버지께서는 반가운 기색을 숨기지 않으시며, 냅다 내 곁에 바짝 붙어 서셨다.

그러자 키리오스와 지크프리트가 도끼눈을 치켜뜨며 할아버지에게 항의했다.

“아, 노공작님. 이건 좀 아니지 않아요?”

“키리오스의 말이 옳습니다. 타티아나는 공평하게 우리 중앙에 세워야만…….”

“…….”

언제나처럼 아웅다웅하는 세 가족들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깊은 감회에 젖어 들었다.

‘너는 내 피를 물려받은 아이다. 내 아들이 네 아버지…….’

자신이 내 친할아버지라는 사실을 강조하던 바르톨로아 가주.

끝끝내 바르톨로아 일족이 내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를 주장하며, 내가 절대로 자신을 거절할 수 없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던.

그 오만방자한 사람이 떠올라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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