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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162)화 (163/163)

<에필로그 3화>

“아…….”

말문이 막힌 라키어스는 한참을 입술만 달싹였다.

그러고는.

“티티, 그걸 거기서 찾아내면 어떡해…….”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어깨를 축 늘어뜨린다.

드러난 귓바퀴가 어찌나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는지, 손을 대면 붉은 물이 묻어날 것만 같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나는,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귀여운데?’

하, 귀엽고 웃기게 느껴지면 갈 데까지 간 거라던데.

답이 없다, 정말…….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한탄과는 별개로, 저렇게 부끄러워하는 라키어스는 정말정말 귀여웠기에.

나는 일부러 두 눈을 가늘게 뜨면서 라키어스에게 핀잔을 주었다.

“일단 말은 바로 해야지. 네가 책상 서랍을 열어서 보여 준 거잖아?”

“…….”

그러자 라키어스의 귓바퀴는 물론이고, 목덜미까지 더더욱 빨개졌다.

우와, 저기서 더 붉어질 수 있는 거였어?

나는 속으로 음흉하게 웃었다.

“라키?”

“…….”

“라키이.”

목소리를 늘여 라키어스를 부르자, 라키어스가 움찔 어깨를 굳혔다.

그럼에도 여전히 고집스럽게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게, 라키어스답다고 해야 할지…….

“계속 그렇게 얼굴 가리고 있을 거야?”

“…….”

“응? 얼굴도 안 보여 주고, 나 좀 서운한데에.”

그러자 라키어스가 손가락을 슬쩍 벌리더니, 그 사이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흑, 어떡해. 너무 귀엽잖아!’

……하지만 그건 그거고.

나는 은근슬쩍 라키어스에게 물어보았다.

“그래서 저 반지 케이스는 뭔데?”

“…….”

“서랍에 저렇게 애지중지 넣어 놓은 것을 보아하니, 무척 아끼는 물건 같은데. 응?”

그렇게 몇 번이고 라키어스를 떠보았으나.

라키어스는 그저, 잔뜩 토라진 얼굴이 되어 입술을 꾹 다물 뿐이었다.

‘도대체 뭐야?’

처음에는 여유로웠던 나는 점차 초조해졌다.

‘설마, 아니겠지?’

저 반지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전개는 아닐 거야. 그렇지?

나는 나도 모르게 음산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누구야?”

“뭐?”

“저 반지 받을 사람, 누구냐고.”

이렇게까지 정색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라키어스가 다른 여자에게 저 반지를 끼워 주는 상상을 하자마자…….

‘됐어, 이런 상상은 하지 말자. 내 정신건강에 너무 안 좋아.’

나는 지그시 이를 악물었다.

그러자 라키어스가 기가 찬 얼굴로 내게 쏘아붙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 내가 너 말고 누구한테 반지를 주겠어?”

“그, 그래?”

저 대답을 듣자마자, 나는 바닥까지 떨어졌던 기분이 확 들뜨는 것을 느꼈다.

정말, 나도 완전 중증이잖아?

한편 라키어스는 한숨을 푹 내쉬며 제 앞머리를 헝클어뜨렸다.

“하아, 좀 더 멋지게 청혼하고 싶었는데…….”

“잠깐만. 청혼?”

나는 귀를 의심했다.

동시에 라키어스가 머리를 헝클이던 손을 내렸다.

어느새 차분한 얼굴이 된 라키어스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 반지, 우리 어마마마에게서 유일하게 내게 물려주신 거야.”

……선황후 폐하의 유품이라고?

나는 놀란 토끼 눈이 되어 라키어스를 바라보았다.

그, 그런 귀중한 물건을 지금 내게 주겠다는 거야? 진짜로?

“카롤링거 왕실에서 대대로 물려져 내려온 보물이래. 어머니께서 결혼하실 때 혼수품으로 가져오셨다고 했어.”

딸깍.

케이스 뚜껑이 열렸다.

백금으로 만든 링 가운데에 커다란 핑크 다이아몬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정확히는 중앙의 핑크 다이아몬드를, 조그마한 다이아몬드가 자잘하게 감싼 모양새였는데.

반짝반짝 빛나는 그 모습이 흡사 빛으로 빚어 낸 꽃송이 같았다.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생긴다면, 그 사람에게 주라고 말씀하셨는데…….”

내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워 준 라키어스가, 재차 입을 열었다.

“티티.”

붉은 눈동자가 전에 없이 진지하다.

“난 내 평생을 너와 함께하고 싶은데, 너는 어때?”

“……나는.”

나는 입술만 달싹였다.

솔직히 청혼까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싫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기뻐.’

라키어스가 나와의 관계를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해 주었다는 사실이.

한참을 반지를 내려다보던 나는, 충동적으로 라키어스의 목을 끌어안았다.

순식간에 거리가 가까워졌다.

“티티?”

당황한 라키어스가 살짝 어깨를 굳혔다.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멈춰 선 내가, 살포시 눈매를 접어 내렸다.

“라키, 넌 내 남편이 될 사람이니까…….”

촉.

입술과 입술이 맞닿았다.

새가 쪼는 듯한 짧은 입맞춤 끝에, 나는 멋쩍게 질문을 던졌다.

“……이 정도는 해도 되지?”

솔직히 나도 키스는 처음이어서, 소설에나 나올 법한 진한 키스는…… 좀 어려웠다.

으, 고작해야 이런 키스로도 이렇게나 설레다니.

로맨스 소설에서 나오는 연인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멀쩡할 수 있는 거야?

괜히 민망한 마음에 후다닥 뒤로 물러나려는데.

“티티.”

라키어스가 내 허리를 휘감아 나를 저지했다.

‘어라?’

멈칫한 내가 라키어스를 올려다보았다.

새카맣게 가라앉은 붉은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내려다보았다.

“시작은 네가 한 거야. 그렇지?”

뭐?

되물을 틈조차 없었다.

내 허리를 감싸 안은 라키어스의 손에 바짝 힘이 들어가는가 싶더니.

라키어스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뜨거운 입술이 갈급하게 내 입술을 삼킨다.

삽시간에 온몸이 달아올랐다.

‘아.’

거친 해일에 휩쓸리는 기분이 이러할까?

달뜬 호흡이 엉망으로 뒤엉켰다.

내뱉는 숨 하나조차 놓치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라키어스는 집요하게 내게 키스했다.

“……흣.”

등골에 오싹오싹 소름이 돋았다.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은 황홀한 감각.

어떡해, 여태까지 이런 감각을 모르고 살았다는 게 억울해…….

그런데 그때.

똑똑.

다소 마뜩잖게 들리는 노크 소리가 울리고.

그 뒤로 뚱한 목소리가 뒤따랐다.

“들어간다아-”

헉!

퍼뜩 정신을 차린 나와 라키어스가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아니, 잠깐만…….”

하지만 라키어스의 대답 따위는 전혀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는 듯이.

벌컥!

집무실 문이 열렸다.

가장 먼저 보인 건, 키리오스의 장미처럼 붉은 머리채였다.

“아니, 내가 내 제자 집무실에 들어가는데 노크까지 해야 해?”

“그래도 오늘 대관식을 치렀는데. 황제 폐하라고는 불러 주지 그러나?”

“쳇.”

지크프리트의 핀잔에, 키리오스가 들으란 듯이 혀를 찼다.

그와 함께 세자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티티 양, 티티 양이 왜 여기에 있는 건가요?”

“아, 오늘 라키가 야근할 것 같아서요. 그래서 좀 도와주려고 왔는데…….”

“네에?”

세자르는 당장이라도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할 것처럼 기겁했다.

그러고는 정색을 하며 라키어스를 쏘아본다.

“어딜 감히 우리 티티 양을 부려 먹……!”

하지만 세자르의 고함은 끝내 완성되지 못했다.

“……잠깐.”

으스스한 목소리와 함께, 세자르가 삐걱삐걱 고개를 돌려 나를 돌아본 것이다.

더 정확히는, 세자르의 시선은 내 왼손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향해 있었다.

회색 눈동자가 못 볼 것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내 반지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티티 양.”

세자르는 평소 버릇처럼 짓곤 하던 화사한 미소조차 집어치우고는, 정색을 하며 내게 물었다.

“그 반지는 도대체 뭔가요?”

“아, 이거요?”

나는 자랑스럽게 왼손을 쫙 펴 보였다.

다이아몬드 반지가 빛을 머금고 눈부시게 빛났다.

“저 청혼 받았어요.”

“…….”

“…….”

“…….”

싸늘한 침묵이 흘렀다.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사람은 키리오스였다.

“너…… 너……!”

라키어스에게 마구 삿대질을 하던 키리오스는, 숫제 뒷목을 잡고 쓰러지려 들었다.

“어떻게, 우리 꼬마에게 감히 청혼을……!!”

동시에 지크프리트가 허겁지겁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지?”

“음…….”

잠시 눈동자를 굴리던 내가 방긋 미소 지었다.

“좋다고 했는데요.”

“뭐라고?!”

“티티 양, 티티 양은 아직 결혼하기엔 너무 어려요!”

“우리가 꼬마를 어떻게 키웠는데!”

아빠들의 두 눈이 광기로 희번덕 뒤집어졌다.

“그…… 스승님들?”

살기를 느낀 라키어스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라키어스 저 자식부터 족쳐야 해!”

“잡아요! 아, 도망치잖아요!”

“변명은 일단 다리몽둥이부터 분질러 놓고 듣도록 하지!”

체면조차 내려놓은 아빠들의 고함 소리와,

“아, 저도 이제 초월자라고요! 순순히 맞고만 있지는 않을…… 악!”

라키어스의 비명이 성대하게 어우러졌다.

그 소란스러운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나와 라키어스가 결혼하기까지, 앞으로도 상당한 난관에 봉착할 것 같다.

그래도.

‘아빠들도, 라키어스도…… 모두 내 곁에 있으니까.’

지금 이 순간,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에필로그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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