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세상이 망했다.
하지만 또 다르게 보면 세상은 망하지 않았다.
그래.
‘세상’을 인간이 아니라 지구라고 생각하면 망하지 않았다.
지구 입장에서는 무단으로 자신의 땅을 점거하고 있는 불법 체류자이면서, 바이러스이고, 해충이나 다름없는 인간을 내쫓은 것에 불과할 테니까.
인간의 세상이 망해간다.
듣도 보도 못한 존재가 나타나 여자를 겁탈하기도 하고, 직접 사냥해 어미가 보는 앞에서 아이를 오도독오도독 씹어먹는 세상이 도래했다.
그 세상에서 나는,
“촌장 오빠, 벌써……. 17년이나 지났네요.”
무려 17년이나 생존했고,
“촌장 오빠, 그동안 고생했어요.”
사람을 너무 믿어 9년 넘게 식물인간처럼 지냈으며,
[고생했구나. 나의 아이야.]
이제 그 끝이 오고 있다. 그래. 이제 편해지겠구나. 생의 끝이 다가오는 이 순간, 지구의 의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건 착각일까? 그런데 실제로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만약 지금 들리는 이 목소리가 사실이라면 간절한 내 부탁을…….
[그래. 네가 가이아 게시판으로 감상하던 그 자료들은 모두 삭제해주마.]
감사합니다. 역시 이 시대의 희망! 신과 같은 존재!
“다시 만나면 꼭.”
그나저나 걱정이네. 내가 죽으면 나를 간호하던 이 아이는 어떻게 되려나? 예쁘장하게 생겨서 분명히 좋지 못한 상황에 놓일 텐데.
내가 가진 카르마 포인트라도 양도할 수 있으면 나을 텐데. 카르마 포인트는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면 개인 간 거래가 되지 않으니. 쩝. 어쨌든, 고마웠어. 나도 이제 곧 이 지독한 고통에서 해방되겠지.
“먼저 인사해주기예요?”
그래.
“꼭 나를 기억해주기예요.”
그래.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조용히 해주련? 나도 마지막은 고요하게 가고 싶구나.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