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회귀? 아니, 왜요?>
누군가에는 찬란한 봄날 같은 인생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옥의 현신이자 연옥의 한가운데일 수도 있다.
그리고 회귀라고 누가에게나 환영받을 만큼 좋은 게 아니다.
― 회귀 전문가, 도르마무의 자서전 서문.
* * *
시야가 흐릿하다. 눈이 뻑뻑하고, 아프다. 속에서 올라오는 신물에 식도와 가슴이 뜨거운 물을 삼킨 것처럼 화끈거린다. 본능적으로 몸을 뒤척였다. 몸이 조금이라도 더 잠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잠은 깼고, 위와 목에서 간절하게 원하는 것은 시원한 물이었다.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정신은 절반 이상을 아직 침대 위에 놓아두고, 몸이 이끄는 대로 움직였더니 어느새 손에 시원한 물이 찰랑이는 컵이 들려 있다.
그리고 그 시원한 물이 식도를 타고 뱃속으로 들어간 순간에야,
“어?”
정신이 들었고,
“뭐?!”
이 상황을 이해했으면서, 동시에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었다.
“움직였어? 몸이?”
의지대로 움직이는 팔 그리고 다리. 생각해보니까 조금 전 잠결에 몸을 뒤척인 게 떠오른다. 그리고 멀쩡하게 몸을 일으켜 두 발로 서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이 파도라마처럼 스쳐간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빌어먹을 놈들에게 작업당해서 숨만 쉬는 식물인간이 아니었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은데?”
제법 깨끗하고 넓은 킹사이즈의 침대. 흐트러졌지만 세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한 이불. 바깥이 그대로 보이는 깨끗하고 투명한 창과 먼지가 거의 보이지 않는 깔끔한 방바닥. 그리고 그 위에 맨발로 선 내 발은 종말 속에서 씻지 못해 꼬질꼬질하던 그런 발이 아니라 깨끗하고 맨들맨들했다.
거기까지 둘러보고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고, 이제 막 눈을 뜬 곳이 ‘내 땅’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아? 어어?! 아!!”
1초 간격으로 ‘의아함’, ‘상황 파악’, 그리고 ‘원인’까지 순식간에 도달한다.
그리고 내가 눈을 뜬 이곳은 아포칼립스에서 버티게 해준 내 땅이 아니라는 것에서 출발한 의아함과 눈을 뜬 이 방은 아포칼립스가 시작되기 전, 내가 살던 주상복합 아파트이기 때문이라는 원인까지 순식간에 상황이 파악된다.
그 말은 곧,
“돌아왔어……? 왜?!”
지금 내가 숨을 쉬고 있는 이 순간이 아직 세상이 멸망으로 치닫기 전이라는 말과 같았다.
황당한 상황에 어리둥절하면서도 몸이 기억하는 대로 손을 뻗어 침대 옆에 놓은 차탁을 더듬어 스마트폰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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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6
12월 02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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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해지는 화면에 출력된 날짜. 조용히 들어온 빛을 따라간 시선. 넓은 거실의 창 아래로 바쁘면서도 평온한 일상. 누군가 이 광경을 본다면 ‘일상적이다’라고 말할 풍경.
“아……!”
그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난 감격이 듬뿍 담긴 눈물을 흘렸다. 투명하고 깨끗한 창에 바깥은 춥지만 안은 보일러로 따뜻한 온도 차이로 맺힌 뿌연 성애조차도 내게는 특별하게 다가왔다.
이 당연하다 못해 누구에게는 거추장스러운 이 일상의 장면이 그날 이후, 지구의 모든 사람이 꿈꾸고 원했던 장면이라는 것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아아.”
그리고 또 한 번 놀란다. 자동반사처럼 훔친 눈물이 물 부족으로 구릿한 얼굴 때문에 더럽지 않고 깨끗하고 투명하다는 것에.
그렇게 한참을 서서 바삐 움직이는 사람과 자동차를 눈에 담았다. 안온하고 평화로운 아침의 시간이 흘러가는 걸 그저 지켜만 봤다. 하염없이.
“아…….”
말없이 창밖만 바라보느라 잠긴 목에서 갈라진 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괜찮다.
“이제 죽자.”
앞으로 목을 쓸 일이 없을 테니까.
누군가 간절히 바란 사람에게 회귀는 축복이고 기회일 거다.
간절히 바라지 않은 사람이라도 인생을 다시 한번 살 수 있는 기회는 최소한으로 잡아도 행운이라고 여길 거다.
하지만 그 회귀한 사람이 종말이 올 걸 알고 있다면?
그 종말이 단순히 좀비 몇 마리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지독하고 처절할 정도로 인간의 삶을 문명 이전으로 떨어뜨리는 수준이라면?
게다가 회귀 전에 믿었던 동료에게 배신 당해 10년을 식물인간으로 인간 토템으로 살아서 지독한 인간 불신에 걸린 사람이 주인공이라면?
“죽어야지.”
난 단언컨대, 결단코, 절대로, 조금도, 회귀 따위 바라지 않았다. 회귀는 내가 생각해본 적도 없는 것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바라고 바란 것은 죽음 이후 다가올 완벽한 침묵과 휴식이었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며 한심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 귀환 회귀를 했는데 더 잘 살 생각을 해야지 왜 죽을 생각을 하냐고. 소설 같은 곳에서 보면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이 막 ‘좋아! 내가 히든피스를 다 차지해서 씹어먹어주마!’ 이러지 않냐고?
이보게. 친구.
다가올 지구의 아니, 인류의 종말에는 히든 피스 같은 게 없다네.
다가올 종말은 게임 같은 게 아니다. 그럼 상태창이 없냐고?
다행스럽게도 비슷한 게 있긴 하다. 그런데 왜 그러냐고?
아까도 말했다시피 종말은 단순히 좀비 몇 마리 혹은 소행성이 날아와 부딪치는 수준이 아니다. 굉장히 여러 과정을 거치며 지독하게 인간이라는 '종족' 자체를 말살하려 든다.
많이 축약하고 생략해서 비유하면 운빨X망 핵과금게임에 완전한 무과금으로 랭킹 안에 들어야 하는 수준이랄까? 아니, 그것보다 훨씬 어렵다.
그러니 회귀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체감한 내가, 회귀 직후인 이 순간 심사숙고하고 고민하는 유일할 주제는,
“어떻게 죽을까?”
자살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고통스럽지 않게 죽는 법. 그거다.
우우우웅―!
목을 맬까?
아냐. 그거 생각보다 금방 안 죽고 오래 고통스럽다던데.
우우우웅―!
아니면 그냥 심장을 푹?
이거야 말로 한 방에 못 찌르면 이거 진짜 X나게 오래 아플 텐데?
우우웅!!
번개탄을 피워?
화생방 생각에 PTSD 올 것 같아. 게다가 이건 그냥 피우는 게 아니라 테이프로 온갖 곳을 다 막고 그래야 하더만.
“아, 다 별로네.”
그런데 떠올린 방법들이 별로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우우우웅―!
심각한 고민을 지속적으로 방해하는 건 스마트폰의 진동이었다. 아마도 회사겠지. 무시하면 그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전화의 진동은 멈추지 않는다.
당연히 일생일대의 고민을 방해받아 신경질이 드러난 얼굴로 스마트폰을 거칠게 낚아챘다.
“여보세…….”
[뭐하느라전화를이렇게안받아!!!]
날카롭게 귀를 찌르는 여자의 목소리. 어딘가 익숙한 것 같지만, 한 번 상한 기분을 나아지게 할 정도로 반가운 목소리는 아니다. 더욱이 지금 나는 상대가 내게 내뿜는 일방적인 짜증을 들어줄 기분도 아니고.
“누구?”
[뭐?! 누, 누구?! 여자친구 목소리도 못 알아보는……!!]
아. 기억났다. 여자친구. 그래. 이맘때 여자친구가 있었다. 아마도 이 시기에 헤어진 거로 기억한다.
[휴, 됐어. 우리 그냥 헤어져.]
“…….”
이게 뭔 개소린가 싶었다가 깨달았다. 아직 헤어진 게 아니라는 걸. 이미 헤어진 후인 줄 알았는데.
“그럼 그러자.”
[뭐, 뭐?! 그럼 그러자고?! 오빠 지금 그러자고 한 거야?]
“개념이 종말을 맞았나. 미친년이 지가 헤어지자고 해놓고 그러자니까 왜 화를 내?!”
[뭐? 미, 미친년?! 오빠 지금 그게 여자친구한테 할 소리야?!!]
“헤어지자고 말한 년이 뭔 여자친구. 그리고 전화로 그딴 말을 통보하는 주제에 내가 못할 소리가 뭐 있어?”
[뭐, 뭐?!]
“아, 됐고!”
[야아아아아!!]
“왜애애애애애!! 귀 아프니까 닥치고 쳐들어. 마지막으로 하는 경고야. 앞으로 내 소식을 들어도 내 주변에 얼씬도 하지 마. 길가다가 우연히 날 봤어? 그럼 멀리 돌아가. 만약 눈앞에 나타났다? 그러면 평소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페미니즘 사상에 걸맞은 남녀평등의 쭉빵을 날려버릴 거니까! 끊어! 이 미친년아!”
가뜩이나 짜증이 쌓여 폭발 직전이었기에 짜증을 다다다 쏟아낸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고 닭살 돋게 하트가 들어간 이름의 번호를 ‘미친년’으로 바꾸고 차단했다.
나답지 않게 짜증을 내고, 험한 말이 나왔다. 어쩌면 나는 죽고 싶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침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다고 짜증을 낸 거고.
아마 맞을 거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그런데 그게 뭐.
자살할 놈이 그런 사소한 자아 성찰? 자기 객관화? 같은 거 해서 뭐해?
지금 와서 아무리 행복 회로를 빡세게 돌려봐도 내 미래는 전혀 가망이 없다.
“그럼 죽어야지.”
폭풍처럼 짜증을 쏟아내고 나자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내려갔는지 나도 모르게 방금 전화를 차단한 정신 나간 년이 저지른 회귀 전, 오늘 내가 겪었던 일이 여름날의 갑작스럽게 내리는 소나기처럼 떠오른다.
“아!!”
그때의 그 멍청하고 병신 같았던 내 흑역사까지도.
“아아아악!!”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