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나만+장르가 이상하다-5화 (5/183)

5화

<이거 왜 이렇게 많이 줘?>

“진짜 빡세게 개욜로다!”

시한부 인생에 갑자기 찾아온 로또 당첨. 욜로를 외치고 보름 정도를 돈 쓰는 재미와 노는 재미로 보내던 어느 날. 그날은 노는 게 아니라,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지루해졌냐고? 그럴 리가!

놀아봤냐? 그것도 근 스무 살 이후 8년을 아등바등하며 아끼며 살다가 로또를 맞아서 돈이 넘쳐난 상태에서?

절대 지루할 수 없다. 특히나 하루하루 점점 심해지는 통증을 진통제로 참으면서 내 삶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걸 실감하고 있는데, 지루할 리가 없지.

내가 갑자기 노는 걸 멈춘 이유는 별것이 아니다. 오랜만에 널브러져서 TV를 보고 있는데 메신저가 왔다. 봉사활동을 하는 단체 채팅방이었다.

나는 고아는 아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다. 막 대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아버지와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내가 월급쟁이이면서 주상복합아파트의 집을 얻을 수 있었던 건 두 분의 보험금 덕분이다. 나름 중견기업에 간신히 드는 기업이라서 대출도 잘 됐고.

아무튼, 그런 일로 군대를 전역한 이후 종종 봉사활동을 다녔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기 위안이었고, 그 아픔을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다는 건방진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

단체 채팅방의 내용은 이 모임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정기적으로 후원도 하는 보육 중 한 곳이 법적인 문제로 거의 3억이 넘는 돈을 내지 않으면 내쫓길 위기라는 내용이었다.

이걸 땅 주인을 향해 일방적으로 뭐라고 하기도 어려운 게, 땅 주인이 사망하고 그 아들들이 유산으로 받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차를 몰아서 도착한 보육원은 여전했다. 6차선의 양재대로를 기준으로 길 너머에는 고층의 아파트 단지가 있다. 그리고 차선을 기준으로 반대편에는 야트막한 언덕이 있다.

마치 양재대로가 이쪽과 저쪽을 구분하는 경계선 같다고 느꼈다. 피해 의식일지도 모르겠지만.

“안녕하세요. 원장님.”

“어머?! 신우 씨? 평일에 어쩐 일이세요?”

우리 모임은 최소한 1년에 세 번 정도는 이 보육원을 찾았고, 집과 여기까지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서 개인적으로도 분기마다 한 번씩은 들렀기 때문에 원장님은 나를 바로 알아보셨다.

지금의 원장님의 얼굴만 보면 보육원에 그런 문제가 있었는지 전혀 모를 정도로 평소와 같았다. 조금의 그늘도 보이지 않은 채로 커피를 권하시며 내가 찾아온 용건을 말하길 기다리셨다.

“소식 들었습니다.”

그 말이 어떤 방아쇠였을까? 원장님의 얼굴에 감춰져 있던 그늘이 드러났다.

“이거.”

“이게 뭐……?”

아마 원장님은 내가 돈을 조금이나마 보태러 왔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건넨 건 갈색의 서류 봉투였다. 그리고 그 안에는,

“시, 신우 씨?”

“네. 등기권리증입니다. 땅문서라고도 하죠?”

“이, 이게 어떻게?!”

“제가 샀습니다. 이 땅.”

“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이해를 못 하실 법도 하다. 시세가 자그마치 1억 9천만 원이 넘었으니까.

“그리고 이거.”

이번에야말로 흰색 봉투를 건넸다.

봉투를 열어 보신 원장님의 눈이 커지면서 수표와 나를 몇 번 번갈아 보시더니, ‘탁!’ 하는 소리가 나도록 책상에 봉투를 내려놓고 두어 번 크게 한숨을 내쉬신다.

“신우 씨. 무슨 일 있죠?”

이런 게 연륜인가 싶었다. 그러면서도 진심으로 걱정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계셨다.

“네.”

딱히 숨길 일도 아니기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어차피 1년도 안 돼서 알게 될 테니까. 어떻게 알게 되냐고?

“저 죽는답니다. 암이래요. 얼마 못 산다고 하네요.”

“…네에?”

“그런데 제가 가족이 없어요. 아시잖아요? 그렇지 않아도 가기 전에 제가 봉사하던 보육원에 재산 나눠드리려고 했어요. 그걸 조금 이르게 시작한 것뿐입니다. 등기권리증과 같이 들어 있는 문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땅은 제가 죽으면 희망 보육원에 기증하는 걸로 되어 있습니다.”

“시, 신우 씨……. 흑!”

원장님은 항상 이런 분이셨다. 내 과거, 부모님이 스무 살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말을 했을 때도 이렇게 나를 대신해서 울어주셨다.

“그리고 수표는 사실 계좌이체 해도 되는데, 해 보고 싶었어요. 드라마나 영화 보면 막 천만 원짜리 수표를 한 장도 아니고, 여러 장 흔들거나 던지거나 하잖아요. 하하.”

내가 말을 돌리고 싶다는 걸 아신 원장님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억지로 웃으시면서,

“네. 멋있어요! 흑.”

멋있다고 하시다가 기어이 눈물을 쏟으셨다. 우시면서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지 외려 내가 달래드려야 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우시던 원장님이 막 진정이 되셨을 무렵 배달시킨 치킨과 피자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날.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남은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그 길을 본 것 같았다.

다음 날도 나는 아침 일찍 희망 보육원을 찾았다. 전날 쇼핑 어플로 아이들 옷과 신발을 비롯한 생필품 등을 잔뜩 주문해 놓은 상태였다. 그걸 받고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기뻐하는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다른 두 곳의 보육원을 돌면서 돈을 물 쓰듯이 썼다. 땅을 사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대량으로 주문하면서.

진심으로, 정말로, 빈틈없이 행복한 나날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세상이 망하기 전까지는.

* * *

“오빠?”

“어. 미안. 그래서 돌봐달라는 건 무슨 뜻이야? 보육원에 무슨 문제가 생겼……? 아, 벌써 그때인가?”

보육원 땅에 문제가 생긴 시기가 이맘때긴 할 거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뭔데. 편하게 말해.”

“아까 만난 지구의 의지님이……. 앞으로 오빠랑 같이 활동하라고.”

“그래? 그걸 뭐, 그렇게 어렵게 말해?”

“그게……. 여, 여기서 같이.”

“아.”

어렵게 꺼낼만한 이야기이긴 하다. 학생처럼 교복을 입고 있지만, 내가 알기로 한 달이 남지 않은 올해가 지나면 유다연은 성인이 된다. 그리고 예쁘장한 막 성인이 된 여자가 나 같은 사람이랑 같은 집에 살아야 한다는 건 여러모로 힘든 일일 거다.

“불편하면 내가 나중에 그분을 만나서 잘 말해줄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아뇨! 그게 아니라. 오, 오빠가 불편할 것 같아서.”

“불편할 게 뭐 있어. 방은 넉넉하니까 편하게 써.”

“네! 오빠!”

“아, 수녀님께 미리 연락드려야 하는 거 아냐?”

“이미 했어요! 사실 저 보육원 오늘 나왔거든요!”

“어? 그럴 수 있어?”

“네. 오빠도 알겠지만, 요즘 보육원 어려워서……. 헤헤.”

해맑게 웃으면서 볼을 긁적이는 유다연을 보면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어쩌면 저 아이들에게는 지금 이 세상이 종말의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게 아닐까 하고.

“오빠?”

“아. 음. 돈이 많이 필요하겠다.”

앞으로 일을 생각하면. 보육원도 보육원이지만. 말랑말랑한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아, 회사!”

오늘은 평일이다. 당연히 출근을 안 하고 쨌으니, 회사에서는 난리가 났을 거다.

“그럼 먼저……. 병원……. 아니지. 내시경 하려면 공복이어야 하잖아? 그럼 먼저 로또부터.”

병원을 예약하고 몇 가지 인터넷으로 조사하고,

“같이 나갈래?”

아직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유다연에게 권했다.

“정말요?!”

“그러자. 밖에서 맛있는 것도 먹고, 옷도 좀 사야겠다.”

“네. 오빠.”

해사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유다연의 행동에 그녀의 단발머리가 찰랑거리며 춤을 춘다. 그녀의 기분을 대변해주는 것처럼.

“오빠! 제가 부축할게요!”

많이 낡은 겉옷을 챙겨 입은 유다연이 생글생글한 얼굴로 내 옆에 선다.

“나 환자 아닌데?”

“아닌데요? 오빠 환잔데요? 암환자잖아요.”

“…그것도 알고 있었어?”

“신문 봤다니까요?”

“아무튼 부축하는 건 그림이 이상해.”

그렇게 집을 나온 우리는 차까지 몰고 여러 지역을 돌며 로또 판매점을 돌았다. 괜한 관심을 끌고 싶지 않아서냐고? 그건 반만 맞다. 오히려 난 관심을 끌어야 한다. 문제는 돈벼락 맞은 젊은 졸부가 아니라, 조금 쪽으로 관심을 받아야 한다는 거다.

일단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니까.

“회귀한 첫날인데, 바쁘게 움직여야겠네.”

오랜만에 시간을 쪼개가며 바쁘게 돌아다녔다. 얼추 일을 정리했을 때, 하루가 다 가고 붉은 노을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평화롭고 깨끗한 하늘. 그 위를 명작의 유화의 한 장면처럼 물들인 붉고 노란 노을.

그걸 또 하염없이 한동안 바라만 봤다.

지옥에서 회귀한 첫날은 아침의 풍경에 눈물을 흘리고, 저녁의 노을에 감동했으며,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야경을 보며 황홀해했다.

딱 거기까지.

말랑말랑한 감정은 그날 하루만 누릴 수 있는 사치다.

지금이 12월 초.

종말이 시작되는 8월까지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여유를 부릴 틈이 없다. 대비에 대비를 더해도 부족하다.

* * *

주말까지 주변 정리하는 데 시간을 썼다. 회사는 예상대로 갑작스러운 퇴사에도 별 다른 말이 없었다. 전처럼 편의를 봐줘서 따로 인수인계에 시간을 쏟지 않아도 됐다. 다행스럽게도.

토요일의 로또 추첨 방송에서는 예상대로 당첨이 확정됐다. 서울 각지를 돌면서 추가로 구매한 로또가 9장, 다시 말해 총 10장의 당첨된 로또 용지가 내 서랍에 있다는 뜻이다.

월요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났다. 아니, 회귀한 이후 일찍 일어나고 있다. 필요한 만큼 잠을 자고, 진통제를 꾸준히 복용하면서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서 여러 일을 동시에 준비하고 처리하는 중이다.

서대문역 근처에 있는 농협 본점은 이미 한 번 가본 경험이 있다. 회귀 전에.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미 한 번 와봤기 때문일까. 1등 당첨금을 여러 개 수령해야 함에도 긴장이 되지 않았다.

“오빠! 당첨금 받으시면 저 떡볶이 사주세요!”

“떡볶이 가지고 되겠어? 스테이크도 사줄 수 있어. 이 아저씨가 그 정도 능력은 돼.”

“꺄하하하~. 스테이크 안 좋아해요. 떡볶이가 좋아요! 어묵이랑 달걀 추가하고 김말이 넣어서!”

“그래. 그래.”

유다연에게 돈을 빼앗기거나 허투루 쓰일 걱정? 그런 건 하지 않는다. 그럼, 사람을 쉽게 믿는 거냐고? 그것도 아니다. 사람에게 배신 당해서 고통의 10년을 보낸 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유다연을 믿는 이유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있다.

과거, 그러니까 회귀 전, 유다연은 우직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나를 간호했다. 식물인간을 간호하는 일이다. 단순히 힘들고 귀찮다는 말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현재, 무려 지구의 의지가 선택한 아이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다가올 멸망을 대비하기 위해서.

미래, 앞으로 9개월 남짓 뒤, 지구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백악관 지하에 있다는 벙커가 아니라, 내가 서 있는 땅이다. 이걸 나도 알고 유다연도 안다.

결론적으로 유다연은 나를 배신하지 않을 아이이고, 배신할 수도 없는 아이이며, 배신할 이유가 없는 아이다.

“여기 있습니다. 입금 확인해주십시오.”

로또 당첨금을 찾았다. 당첨금을 찾는 과정에서 문제도 없었다. 열 장이나 되는 복권을 보고도 당연하다는 듯이 금액을 입금했다. 그 흔하다는 적금 권유도 없었다.

이상한 건 그것만이 아니다.

“이거 왜 이렇게 많이 줘?”

당첨금이 많다. 예상보다 2배는 되는 거 같다. 아니, 잠깐만. 이거 2배가 넘겠는데?

회귀 전 내가 당첨된 회차의 로또 1등 금액은 총 201억인가 그랬다. 대충 200억이라고 알고 있다. 나를 제외하고 두 명의 당첨자가 있다. 이번에는 내가 열 장을 샀으니, 총 열두 장의 1등 당첨 번호 중, 내가 10장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럼 약 167억. 세금 33%를 제외하면 112억. 내가 계획하고 예상한 수령액이 112억이다. 그런데 통장에 찍힌 금액은 236억.

“많으면 좋은 거 아니에요?”

“…….”

그러고 보니 이상하다. 떡볶이를 열심히 건져 먹고 있는 아이는 내가 받은 돈에 대해서 조금도 관심이 없고 놀라지도 않는다. 진짜로 떡볶이만 사달라고 한다. 다해서 2만 원도 안 되는 메뉴를.

기사를 봤으면 내 당첨금이 얼마인지도 다 알 텐데. 그걸 의아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느새 자리를 옮겨 우리는 매콤한 떡볶이 냄새가 아니라, 진한 커피 향이 나는 카페로 옮겨왔다. 그리고 카페에 들어서기 무섭게,

“너 의외로 눈치가 제법이다?”

유다연은 유다연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었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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