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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에 나만+장르가 이상하다-7화 (7/183)

7화

<네 몸을 치료했어. 아니, 각성시켰어.>

그러니까,

“아. 개빡치네.”

난 지금 화가 났다. 내 평생을 통틀어서 열 번이 넘지 않을 만큼 엄청.

“아이들이요? 안타깝네요. 어쩌겠어요. 종말이 시작되면 죽는 이들은 한둘이 아닌데. 어쩔 수 없죠. 유다연? 고마운 아이였죠. 그래서 뭐요? 지금, 빌어먹을 아포칼립스에서 아이들을 보호했던 제 앞에서 애들을 볼모로 협박하는 겁니까?”

당연히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에는 지구의 의지라는 상위 존재에 대한 필터 따위가 사라져 버렸다.

“…….”

“지금 정말 X 같은 상황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까? 애초에 그 계약이라는 거에 제가 주도하거나 참여했습니까? 아니면 내가 거수기 노릇이라도 했나? 아니지! 당신들이 한 거잖아! 똥은 너희가 싸놓고 대신 치워달라는 상황에서 협박?!! 하! X발!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뒈질 거. 손에 손 잡고 다 같이 뒈지면 되지.”

“너.”

“뭐! 어차피 뒈질 건데. 반말이 대수야? 좆 같아? 그럼 죽여. 왜? 못 죽이겠어? 그럼 내가 죽지 뭐. 이대로 자살도 못하게 막을 거라고? 그래.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내년 8월 되면 죽을 건데. 지금부터 8개월 개빡세게 욜로나 하지 뭐.”

유다연의 몸을 빌린 재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 게 보인다. 그게 뭐. 솔직히 회귀 첫날 그렇게 쫄 필요가 없었다. 어쩌면 그때는 말만 죽는다, 죽는다 하면서 사실을 나도 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제는 뭐. 다 귀찮다.

막말로 지들이 사기 계약 당해놓고 누구한테 화풀이를 건지.

인간 때문에 지구가 멸망한다?그래서 뭐?!

지구 나이가 45억 년이다. 그정도 살았으면 오래 산 거 아닌가? 그런데 거기서 더 살아보겠다고 삽질해서 똥물을 끼얹었으면 똥물을 뿌린 연놈들이 처리해야지!

어디 은근슬쩍 사실은 너희 때문이야, 라고 물타기로 덮어씌우려고?

“…….”

“…….”

불편한 침묵이 나와 유다연 사이에 내려앉았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만 하더라도 이런 분위기가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나도. 유다연도. 그리고 재신 역시도 그랬을 거다. 아마도.

“먼저 일어나지. 다시 보지 맙시다. 서로 불편한데.”

그리고 난 그런 불편한 침묵을 감내할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드드륵 소리가 나도록 거칠게 의자를 밀면서 일어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하면. 창피한 줄 아쇼! 상위 존재는 염병.”

씹어뱉듯이, 회귀 전부터 진짜 하고 싶었던 속마음이 담긴 일방적인 말을 뱉어내고 카페를 나섰다.

“젠장!”

명확하게 이유를 확정할 수 없는 짜증에 그렇게 침을 뱉듯이 중얼거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입이 쓰다. 그게 믿었던 신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에 대한 실망 때문인지, 아니면 나 자신에 대한 혐오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위에 자리한 암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유료 주차장에 주차한 차가 보이자 ‘유다연의 짐이 집에 있는데.’라는 생각이 스쳤으나, 될 대로 되라 싶었다.

지금 기분 같아서는 평생 입에 대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이 피우는 냄새도 싫어한 담배가 피워보고 싶을 지경이었으니까.

바로 집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다. 아니, 못했다. 대상이 명확하게 확정되지 않은 분노에 머리가 뜨거워졌다가 차가워졌다가를 반복했기에 이대로면 누가 조그만 시비를 걸어도 죽여버릴 것 같았기에 정처 없이 차를 끌고 돌아다녔다.

그렇게 서울 시내를 배회하다가 삼청동을 지나 북악스카이웨이에 차를 대고 사람이 없는 곳에 앉아 서울 시내 야경을 두 눈에 담았다.

별처럼 형형색색으로 반짝이는 서울의 겨울 야경. 이 아름다우면서도 생명력이 넘치는 야경이 몇 개월만 지나면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어휴. 이요한. 어리다 어려.”

보통의 사람이라면 조금 전처럼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화를 내고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지구의 의지들의 말일 빌리면 멍청한데 착한 나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에이! 어떻게든 되겠지. 빌어먹을 왜 날씨는 춥고 지랄이야.”

괜히 여기서 지지리궁상을 떨어봐야 나오는 것도 없고, 혼자 이게 무슨 추태인가 싶어 현타가 찾아왔다.

“일단 집에 가자.”

그렇게 한참을 밖에서 멍을 때리다가 도착한 집 앞에는,

“어?”

처음 만난 날 사준 옷을 입고 아침에 집을 나섰던 모습 그대로의 유다연이 쪼그리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

누가 봐도 울었다는 걸 알 수 있는 몰골이다. 눈이 퉁퉁 부었고, 눈물 자국이 주변에 가득했다. 아이의 안쓰러운 얼굴을 마주하니 짜증이나 분노보다,

“밥은?”

연민이 먼저 튀어나온다. 답답하다.

“훌쩍. 아직이요.”

“들어가자. 밥부터 먹어야지.”

그런데 유다연은 손을 꼼지락거리만 할 뿐, 열린 문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까 이상하네.

“내가 비밀번호 알려줬잖아? 왜 밖에서 이러고 있었어? 날도 추운데?”

“저 밉지 않아요? 오빠? 계속 옆에 있어도 돼…요?”

그제야 나를 만난 후, 항상 해맑던 아이가 처한 상황이 하나둘 떠올랐다. 갓난아기일 때부터 보육원에서 자라서 종말을 겪고 다시 회귀까지 경험한 아이가.

“네가 미운 게 아니라.”

“그래도! 재신 님이!”

“됐어. 그냥 아까는 나도 많이 감정적이었으니까. 춥다. 감기 걸리겠어. 빨리 들어와.”

“네!”

집 안으로 들어온 유다연의 볼이 온기에 발갛게 상기되는 걸 힐끔 보고 전자레인지에 데운 우유에 코코아를 타서 건넸다.

“재신이 나오라고 해도 돼.”

코코아를 호호 불어 마시다가 내 눈치를 보면서 고개를 살살 흔드는 걸 보면서 그녀가 어떤 상황인지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 아니에요!”

“괜찮아. 어차피 결론은 내야지. 종말을 대비하든, 안 하든.”

“…네.”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보며 대답한 유다연의 고개가 다시 툭하고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들린 유다연의 눈빛은 어딘가 시리고 섬뜩했다.

“그…….”

“미안.”

내가 막 뭐라고 따지기도 전에 대뜸 사과의 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찾아온 정적.

“어?”

“미안해.”

미치겠다. 진심으로. 사과를 받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 했다. 아니, 상상도 못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몇 번이나 말한 것 같은데, 인간에 비할 바가 아닌 존재인 지구의 의지가 어떻게 보면 하등한 인간에게 사과를 한 셈이다.

“변명을……. 내가 변명 이런 거 딱 질색인데. 이유를 잠깐 말해도 될까?”

“좋아. 나도 궁금했어. 안 그래도.”

아까 그 협박은 조금 뜬금없이 나왔다. 소설로 치면 개연성이 없었달까?

“나를 처음 만난 날, 내가 그랬지? 사기 계약을 당했다는 걸 알게 됐다고. 그리고 오늘 새벽까지 과거이면서 미래였을 뻔한 시간에 무슨 일이 지구에 벌어졌는지 알게 됐어. 아니, 그런 느낌이 아니야. 다르지, 달라. 보험으로 들어놓은 것의 곁다리 보상이라서 그런 걸까? 강제로 주입되는 느낌에 가까웠어.”

“기억이?”

“기억과 감정이. 너는 회귀를 경험했지만, 난 일방적인 덮어씌우기를 당한 느낌? 더욱이 난 인간이 아니라서 정보의 양에 한계가 없었어. 거기서 끝이 아니야.”

“뭐가 더 있다고?”

“난 단순히 내가 느꼈던 기억과 감정만 전해진 게 아니었어. 나만이 아니라, 모든 지구의 의지들이 느낀 감정과 정보를 며칠에 걸쳐 쉬지 않고 주입 당했어. 그 한탄과 후회, 자책, 절망 같은 감정들을. 내가 무슨 느낌이었을 것 같아?”

“고구마 수만 개를 며칠 동안 억지로 목구멍에 처박힌 느낌?”

“그래! 맞아! 그거! 젠장! 머저리 같은 것들! 그러니까 내가 그 계약 이상하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그런데 마냥 화를 낼 수도 없고, 안 될 걸 알면서도 1분만 빨리 떠올랐으면 어땠을까? 이런 후회를 하면서 지구의 의지를 모아서 설명도 하고, 이 아이를 찾아서 너를 만나게 하고, 네게 설명도 해야 하는데 넌 자꾸 죽는다고…….”

가만히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재신이 신이 아니라, 여러 감정을 가진 하나의 인격체로 보인다.

“맞아. 우리도 별반 다를 거 없어. 인간이나 마찬가지지. 실수하고, 화내고, 자책하고. 그래서 그랬어. 그리고 네 말도 맞아. 이건 우리의 실수야.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아. 미안해.”

“…좋아. 사과 받아들이지. 나도 많이 감정적이었어.”

“아니야. 내가 말이 심했지. 협박이었으니까. 그리고 고마워. 진심이야.”

유다연의 몸을 빌린 재신은 이전처럼 가식적이지 않은 진심이 담긴, 어딘가 후련해 보이기까지 한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까 하던 이야기 마저 해도 될까?”

“아. 그 전에. 뭐 좀 먹자. 다연이도 배고플 거야.”

“…그래.”

해맑게 웃으며 답하는 재신의 얼굴에 드러난 감정은 어쩌면 재신의 것이 아니라, 유다연의 것처럼 보일 정도로 순수했다.

파스타를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했다는 유다연을 위해 여러 종류의 파스타를 주문해서 우리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허겁지겁 먹어 치우고, 나는 차가운 커피를 재신은 예의 그 지독하게 달아서 혀가 아플 것 같은 흑당라떼를 받아들고 대화를 이어갔다.

“종말 이후,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하는 건 나중에 일이야. 하지만 지금부터 준비를 잘 한다면 너는 그리고 우리는 분명히 이길 수 있어. 그래서 우린 아니, 적어도 난. 너에게 모두 걸었어. 올인이야.”

“나한테?”

어느새 나는 이 반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걸 재신은 지적하지 않았고.

“그래.”

“뭘?”

“침략자를 모두 물리치고 지구가 지구로서 존재하기 위한 모든 방법을.”

“어떻게?”

대체 ‘내게 무엇을 봤기에 이토록 초지일관으로 기대를 거는 걸까?’ 하는 의문과 ‘로또 당첨금을 수령한 것 말고 무엇을 더 준비해야 할까?’ 하는 부담감이 경쟁적으로 차오른다.

“일단.”

따악―!

유다연의 몸을 빌린 재신이 손가락을 튕긴다. 그리고 그 순간 무언가 변했다.

“네 몸을 치료했어. 아니, 각성시켰어.”

“…뭐?!”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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