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온 세상의 돈을 쓸어 담아 보자꾸나>
아랫집에서 조금 까칠하게 항의가 들어왔지만, 나는 조금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앞으로 이 집에 머물 날이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근데 생각보다 영지의 구성이 단출하네. 성벽하고 성문에 병영에 성소? 영주 저택 같은 것조차 없어? 그리고 영지민이 머물 집 같은 건?”
“당연하지. 화이트 랭크잖니?”
“그런데. 재신. 제가 다른 건 다 대충 이해가 되는데 말이지. 고유 능력 [영지]에 속한 이거 말이야. 이거. ‘성소(Sanctum)’는 뭐지? 종교 단체인 건가?”
궁금하면서 가장 꺼림칙했던 걸 물었다. 아포칼립스에서 가장 꺼림칙하고 불필요하며 최악인 것 중 하나가 종교쟁이기에.
“흐음~? 글쎄. 그건 네가 알아가야지. 내가 전부 다 말해줄 수 없단다.”
“음?”
이제 와서? 아까도 열심히 다 설명해주고서는?
“아니지. 아니지. 난 문제를 냈고, 맞춘 건 너잖니?”
그게 그거 아닌가?
“완전 다르단다. 엄청난 차이가 있어. 내가 직접 다 설명해주는 것과 네가 알아내서 긍정과 부정만 해주는 것에는 1,000배가 넘는 카르마 포인트의 차이가 있단다.”
“…그 정도라고?”
“사기 계약을 했다는 걸 깨닫고, 네 앞에 나타나 각성을 시켜주고 클래스를 개화시켜 준 모든 행동이 단순히 내가 화가 나서 막 퍼준다고 생각하는 거니? 이 모든 행동이 아무런 대가 없이 이뤄질까?”
모른다. 그런 거.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문제였으니까.
“그래. 그럴 수 있겠네. 난 아니, 우리는 이미 우리와 대등한 격을 지닌 존재와 계약을 맺었단다? 그런 계약을 맺은 당사자 중 하나인 내가, 이렇게 뒤에서 이런 수작을 부리는데, 아무런 대가가 없을까?”
“어?”
설마 죽는 건가? 다 잘 먹고 잘살자고 하는 일인데? 내가 회귀 전, 제일 지긋지긋했고, 싫어하는 소리가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 같은 소리다.
“어머?! 그 정도는 아니란다? 그리고 대가는 잘못된 판단을 한 지구의 의자가 치르기로 했으니까. 다만 그런 힘이라도 나중에 언제 필요할지 모르니 최대한 아끼는 거고. 그나저나 너 정말 착하구나? 어쩜 좋니. 너를.”
조금 전에 ‘착하다’라고 말했을 때와 다르게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시선에는 염려가 담겨 있다. 시선을 마주한 내가 착각할 여지도 없이 확실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지구의 의지들이 너를 이용하는 건 맞는단다. 너를 중심으로, 너를 앞세워, 지구라는 차원이 쓰레기장이 되는 걸 막으려는 것 역시 부인하지 않겠어. 하지만 아이야, 내가 앞서 말했듯이 나는 네가 다시 상처받고 혼자 희생하는 걸 원하지 않는단다.”
앳되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의 입으로, 눈으로, 입술로 그리 말하는 재신(財神)에게서 진하고 선명한 애절함과 모성애가 전해지는 건 이상하지만, 또 이상하지 않다.
“그건 괜찮아. 그리고 밖에서는 그 몸으로 그런 말 하지 마. 안 그래도 아까 카페에서도 다 이상하게 봤잖아. 어려 보이는 여자애한테 존댓말 꼬박꼬박하는 거.”
“크크큭. 하긴. 사진 찍는 사람도 있던데? 나를 막 무슨 재벌 같은 거라고 쑥덕대면서?”
“쩝. 그리고 착각하는 게 있는데, 난 더는 희생만 하지는 않을 거야.”
“그래. 그거면 됐다. 그럼 아까 하던 걸 계속해 볼까? [성소]에 대해 궁금했지? 감(感)이 좋구나. 이전에는 없었으나, 잘못된 계약임을 깨달은 우리가 새롭게 넣은 거란다. 무슨 기능을 하는지는 나중에 알아보렴.”
“좋아.”
“자, 이제 이 만남을 끝낼 시간이구나. 네게 필요한 건 돈이겠지? 다행히 나는 재신(財神)이면서 동시에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지구의 의지이며, 다른 지구의 의지에게서 전권을 위임받아 더 힘이 강해졌단다. 그럼 이제부터 뭘 할까?”
“돈을 벌러 가는 건가?”
“그래! 맞아! 온 세상의 돈을 쓸어 담아보자꾸나.”
* * *
갑자기, 아니 뜬금없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게 등장한 ‘JS이노베이션’이라는 회사는 세계 각지를 돌며 돈을 물 쓰듯이 쓰기 시작했으며, 아는 사람만 아는 기업으로 관심을 모았다.
한국에 본사가 있다는 것과 광산, 숲과 호수, 여러 종류의 농장과 바다에 인접한 해안처럼, 일관성이 없이 땅을 사들인다는 것 정도였다. 일방적으로 재화를 소비하는 형식의 회사가 아예 없는 건 아니기에 본래라면 이들이 관심을 끌 이유가 없다.
정보를 집착적으로 모으는 이들이 JS이노베이션이라는 회사에 관심을 가진 그 시작은 그 회사에 속한 직원이 보유한 말도 안 되는 수준의 협상 능력 때문이다.
애초에 땅이라는 게 단순히 돈만 많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땅에는 여러 이권이 얽혀 있고, 또 사연이 있는 땅도 많다. 오히려 돈을 준다고 해도 안 파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또한, 분쟁 지역에 걸쳐 있는 땅은 당연히 말할 것도 없이 구매할 수 없다.
그런데 그냥 땅도 아니고, 여러 자원이나 휴양지로 쓸 법한 곳이나, 커피 농장 같은 쉽게 거래가 안 되는 땅을 포함한 넓은 땅을 너무나 쉽게 사들인다. 그것도 제법 저렴한 가격에.
단순히 땅만 사는 게 아니라, 그렇게 사들인 땅에 무조건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위한 시설을 짓고 보호받지 못하고 내몰린 상처 많은 아이들을 제한 없이 받아들였다. 마치 이럴 때 쓰려고 돈을 번 것처럼.
그리고 조사를 한 이들이 놀라 기겁하며 더 깊게 파고들게 된 원인은 이 회사가 등록된 지 아직 30일이 안 됐다는 것 때문이었다.
벌써 굴리는 금액이 수천억을 넘어 조 단위로 집계되고 있는 회사가 고작 한 달도 되지 않은 신생 회사라니?
낮도깨비 같은 이 회사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여러 곳에서 달려들었지만, 그 주인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정보를 모으던 이들은 이런 수준의 보안을 유지하는 회사가 있다는 것에 놀라며, 정보를 얻는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나둘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였다.
“뭐?! 뉴스? 인터뷰?”
정체를 꽁꽁 감춘 것처럼 보였던 JS 이노베이션의 대표가 뉴스룸에서 인터뷰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맨붕에 빠진 건.
“이럴 거면 애초에 밝히던가! 왜 숨긴 건데?! 이거 완전 개또라이 새끼 아냐?!!!”
이유야 어찌 되었든, 기업에서 주목하는 존재가 나온다는 소식에 여러 비밀스러운 시선이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의 뉴스룸으로 모였다.
“안녕하세요. JS이노베이션 대표 이요한입니다.”
멸망한 세상에서 회귀한 유일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지구의 의지에 의해 각성한 유일한 존재인 이요한이었다.
뉴스룸에서 시작한 인터뷰는 금방 이슈가 되었다. 그런데 이요한이라는 젊은 대표는 바로 다음 날, ‘뉴퀴즈온더블럭’이라는 예능에 또 나왔다.
뉴스룸이 깜짝 등장과 함께 간단한 자기소개였다면, ‘뉴퀴즈온더블럭’은 좀 더 깊고 세밀한 자기소개였다.
“이요한 대표님. 어제 뉴스룸이 나간 뒤로 난리가 났어요. 이게 실례되는 질문이라는 건 알지만, 혹시 부모님이 재벌이세요?”
“하하하. 아닙니다.”
그리고 이요한은 국민MC의 질문에 차분한 음성으로 하나씩 대답을 채워갔다.
부모님이 스무 살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것부터, 중견그룹에 이른 나이에 입사해 회사 생활을 했다는 것을 거쳐 여자 친구의 일방적이고, 예의 없는 이별 통보를 받았다는 사실까지.
“네에?! 대표님을요?!”
“아, 하하. 그때는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었거든요.”
“아니, 평범하긴요. 그래도 당시 **사에 다니고 계셨고, 집도 있으셨다면서요?”
“그러게요. 뭐, 제가 부족했나 봅니다.”
“허, 참.”
“그런데 그 일방적인 이별 통보가 상처가 되었을까요? 갑자기 세상이 노래지는 것 같더니, 쓰러졌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가 암이라는 거예요.”
“예?!”
뉴스에서는 회사에 대해서 말했다면, 지금은 개인사에 대한 이야기. 그러니 두서없을 만큼 굴곡진 인생 이야기에 두 진행자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이걸 믿어야 할지 몰라 허둥댔다.
“근데 더 웃긴 건 뭔 줄 아세요?”
“여기서 뭐가 더 있나요? 그게 뭔가요?”
“그 참담한 진단을 받고 회사와 주변을 정리한 그 주말. 제가 로또에 당첨되었다는 겁니다. 하하. 인생 참 웃기더라고요. 그렇지 않나요?”
두 진행자는 아무런 말을 못 하고 입을 떡 벌리고 이요한을 바라봤다. 해맑게 웃으며 암을 말하는 존재는 어디에도 암을 품고 있는 환자처럼 보이지 않고, 누구보다 생명력 넘치고 건강해 보였다.
하지만 이요한 대표는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로또 당첨금을 받았고, 욜로라는 느낌으로 돈을 쓰다가 자신이 후원하는 보육 기관의 상황에 기꺼이 토지를 구매했다는 것을.
물론 이전 생, 그러니까 회귀 전의 일이었지만, 어쨌든 여자 친구와 헤어진 것도 맞고, 암에 걸렸던 것도 맞고, 로또에 당첨된 것도 맞으니까. 거짓말은 아니다. 조금 다를 뿐이지.
“그런데 그렇게 보육 시설의 땅을 돌려주고 나니까. 뭔가 해야겠더라고요. 세상에 남아 있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돈을 흥청망청 쓰고 끝인가?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방금까지 해맑게 웃던 이요한의 얼굴에 짙은 자책의 감정이 드러나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긴다.
“그 뒤로 도움이 필요한 보육 시설을 찾아 ‘구매’했어요.”
“구매요?!”
“네. 정말 파렴치하고 때려죽이고 싶은 노옴……. 아니, 사람이 많더라고요.”
“아…….”
그러면서 보육 시설에서 학대받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예시로 꺼내놨다. 그럴 때마다 경악하는 두 진행자의 표정은 점점 진해졌고.
“그렇다고 신고하고, 죄를 증명하고 어쩌고 하면 제 시한부 인생이 끝이 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그 시설과 권리 일체를 구매했어요. 값을 넉넉히 주고.”
“아니. 그래도! 그런 사람들을!!”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진 않았어요. 신고 했죠.”
“아! 신고하셨어요?! 어떻게요?”
“제가 빨리 비워달라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증거를 여기저기 흘리면서 남겼더라고요. 곳곳에. 제가 다 찾은 건 아니고, 돈을 쓰면 전문가분들이 오셔서 찾아주세요. 아직 뉴스 못 보셨죠? 이제 이 방송이 나가면 곧 뉴스에 그 인간들 나오겠네요. 그쵸??”
“하하하하.”
순간 분위기가 무거워졌지만, 웃음으로 흘려버리고 이야기는 쭉 이어졌다.
“그런데 돈이 점점 줄어들었을 때, 나를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어요.”
“찾아온 사람들이요?”
“네. 피해자들이요. 내가 미처 손을 쓰기 전에, 과거에, 고통을 당했던, 성인이 된 사람들. 그들이 왔어요. 그게 바로 우리 회사, JS이노베이션의 시작입니다.”
이요한이 한 말은 거의 사실이었다. 그는 아끼지 않고 돈을 써서 보육 시설을 사들였고, 징벌했으며, 돈의 절반을 썼을 때, 그를 찾아온 이들이 있었다.
다만 사실과 다른 점이라면 그때 찾아온 사람들은 피해자가 아니라, 몇몇 지구의 의지에 선택 받은 성녀 혹은 성자 같은 개념의 사제들이었다는 거다.
“하나 같이 능력이 뛰어난 분들이었어요. 여러 분야에서. 우리 회사는 자원 개발 회사처럼 알려졌지만, 사실 우리가 땅을 사들인 목적은 하나예요. 아이들이요.”
“아이들이요?”
“네. 아이들.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나이의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보호를 해주는 일. 그렇게 보육 시설을 짓고, 아이들을 보살피려니 땅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산 땅에서 온천이 터지고, 광물이 발견되고, 그러더라고요. 하하.”
“그냥 땅을 사셨을 뿐인데 말입니까?”
“네에! 제가 뭐, 돈 욕심이 있겠어요? 어쩌겠어요? 가지고 있어 봐야 얼마 즐기지도 못할 텐데요.”
해맑게 자신의 마지막을 말하는 이요한을 보면서 베테랑 예능인인 두 진행자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했다. 자신의 시한부 인생을 너무나 해맑게 말하는 이요한 때문에. 무엇보다 시종일관 ‘내’ 회사가 아니라, ‘우리’ 회사라고 말하며 즐거워하는 그를 보면서 울지도 그렇다고 웃지도 못했다.
그렇게 시한부 인생 JS이노베이션 대표 이요한의 인터뷰는 그 주 주말 방송과 유튜브에 업로드되었고,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
종말을 대비하기도 바쁜 이요한은 왜 뜬금없이 뉴스와 예능에 나온 걸까?
그가 관종인 걸까?
그건 이요한과 그의 회사 직원인 JS 이노베이션만이 알 일이다.
이유가 단순하진 않겠지만.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