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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에 나만+장르가 이상하다-11화 (11/183)

11화

<멸망, 시작되다.>

그것들은 태생이 잘못 설계되었다. 그래. 그렇게 말해야 한다. 어쩌면 신의 실수였을까?

아니다. 신은 실수하는 존재가 아니니.

어쩌면 그것은 신의 설계 아래서 탄생하지 않은 존재일 거다.

그것은 지독한 환경에서도 쉬이 죽지 않을 정도로 질긴 생명력을 가졌으며, 포식자의 위치에 쉽게 오를 수 있을 만큼 괴물 같은 육체 조건을 가지고 태어나서 한달이 되기 전에 성체가 된다.

그런 이점을 과하게 때려 박았기 때문일까? 그것은 공존이라는 측면이 전혀 없는 백해무익한 생명체다. 유전자에 생산성이 없는 포악한 생명체.

오히려 이것들만 존재하는 차원은 먹을 것이 부족하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그 끝이 멸망에 이른다.

그렇기에 자멸하지 않기 위해서 약탈을 할 수밖에 없게 설계된 것들.

약탈을 위해서 광기에 쉽게 물들고 전투와 살육을 위해 살아가는 것들.

그것들을 지구에서는 ‘그린스킨’이라고 불렀다.

―차원 시스템의 4번째 보고서 중에서.

* * *

서울의 밤하늘엔 별이 잘 안 보인다.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다.

하지만 그것도 서울을 조금 벗어나기만 해도 제법 많은 별을 볼 수 있다. 강화도와 김포를 연결하는 강화대교의 불빛이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김포의 캠핑장의 누워 밤하늘에 박혀 자신의 빛을 과시하는 별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눈에 새길 기세로.

‘좋네.’

좋다. 회귀한 뒤로 밤하늘과 별을 보는 건 언제나 좋았지만, 이제는 다시 보기 힘든 밤하늘이기에 더 애달프게 다가오는 풍경이고 광경이며 장관이다. 쏟아질 것 같은 별빛을 하염없이 보던 어느 순간 해가 뜨고 있다. 깨끗한 바다 위로 장엄하게 떠 오르는 일출을 바라보는 내 뒤로 하나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요한님.”

“이쪽은 준비 끝났어. 다들 준비 잘했어? 올리비아, 이런 날도 정장을 입고 오면 어쩌려고? 편한 거 입으라니까?”

“전 이게 편합니다.”

“아닐걸? 너 나중에 분명히 후회한다. 그나마 치마가 아니라서 다행이긴 한데.”

“괜찮습니다.”

“그래라. 유다연 너는 알만한 애가 왜 교복이야? 그리고 너 고등학생 아니잖아? 스무 살 아냐?”

“그냥 입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거 제가 다니던 학교 교복 아니에요. 아이돌들이 입는 교복 느낌의 옷이라고요.”

“아……. 그래.”

다연이는 처음에만 해도 여리여리하고 순두부 같은 성격이었는데, 편해지고 나니까 말괄량이가 따로 없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닌데, 가끔 종잡을 수 없다고 할까?

솔직히 말하면 옷은 상관없다. 어차피 방검복을 입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은 꺼내서 한 명, 한 명 말을 건 건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다.

한국 시각으로 오전 7시 55분.

침공이 시작되기 5분 전. 여러 지구의 의지의 사제들은 그동안 훈련한 무기를 들고 서 있었다.오늘만큼은 전 세계에 퍼져 있던 사제 31명이 모두 이곳 김포에 모여 있었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괴물 놈들이 떨어지는 곳.

한국에서 가장 많은 괴물이 떨어지는 곳.

한국에서 가장 먼저 괴물의 하이브가 지어지는 곳.

그곳이 바로 이곳 김포 북쪽과 강화도 그리고 북한의 개성 남쪽 일대다. 무엇보다,

“여기에 간부 놈이 떨어진다는 거 확실하지?”

“네. 오빠.”

병사 계급에 해당하는 놈뿐만 아니라, 병사를 이끌고 전진기지 건설을 위한 간부 계급의 괴물 놈이 떨어지는 곳이 바로 강화도 북쪽 문수산이다.

“그럼 각성 전이고 혹시 모르니까 다들 방독면 착용해. 특수 방검복도 착용하고.”

나를 제외한 모두가 한 명도 빠짐없이 방독면을 착용하고 피부가 외부로 노출되는 것을 모두 차단하면서 점검이 끝나기 무섭게 한국 시각으로―영국의 서머타임(UTC+1)적용으로― 오전 8시가 되자마자,

『현재 시각 GMT(그리니치 평균 시) 00시 00분.』

『차원 「지구」의 주요 거주 종족 ‘인간’의 마이너스 카르마가 플러스 카르마의 666배에 도달했습니다.』

지구에 사는 사람이라는 생물이면 모두가 듣고 보게 될 시스템 메시지가 출력된다.

한국인인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나라, 모든 인종, 모든 언어를 불문하고 들려온 음성이었으며, 자고 있거나 깨어 있는 것과 무관하며, 청력과 시각에 이상이 있는 것도 상관없고, 심지어 시끄러운 클럽 안에 있거나 헤드폰이나 이어폰을 끼고 시끄러운 음악을 듣는 것도 관계가 없었다.

마치 이 시각의 지구를 전체를 볼 수 있었다면, 모든 인간이 하던 일을 멈추고 허공을 응시하는 것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에 따라 차원 「지구」의 여러 의지는 거주 인격체 ‘인간’을 [무해] 범주에서 [유해] 범주로 이관함에 합의했습니다.』

『[유해] 범주의 거주 인격체 ‘인간’의 개체 수가 75억을 돌파했습니다.』

『이에 행성 「지구」의 의지는 마이너스 카르마의 근원을 소거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차원 유지 프로토콜에 따라 백신 투여 절차가 지금부터 진행됩니다.』

이건 나중에 지구의 의지에게 듣게 된 일이지만, 집주인인 지구의 의지가 세입자인 인간에게 나가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방을 빼라고 경고를 몇 번이나 했음에도 패악을 부린 악덕 세입자를 강제로 내쫓는 거라나?

“요한님!”

다른 나라는 어떨지 모르지만, 한국 시간으로는 막 여명이 밝아지던 주변이 어느새 해가 떠 전등이나 불이 없어도 세상을 식별할 수 있을 법한 시간,

『첫 번째, 총 세 개 차원의 침공이 순차적으로 시작됩니다.』

반짝이는 메시지 사이로 하늘에서 무수히 떨어지는 불꽃이 보인다.

『두 번째, 모든 화약의 무기화를 전면 금지합니다. 현 시간부로 화약이 들어가는 모든 무기가 금지됩니다.』

당연히 이 사실을 알고 있기에 우리가 준비한 건 화약 무기 따위가 아니다. 오른쪽 허리에는 특별히 개조한 고전압 테이저건을, 그리고 양손으로 리피팅 크로스보우(Repeating Crossbow), 동양식으로 하면 연발 사격이 가능한 석궁을 들고, 바닥에는 페로텅스텐 합금 중 하나인 고속도강으로 만든 냉병기를 박아놓고 대기하고 있다.

또한 우리가 선 곳을 중심으로 테이저 쇼크웨이브라는 클레이모어 비슷하게 생긴 폭동 제압형 장비를 원형으로 이백여 개 설치해놨다. 테이저 X26을 수십여 개 동시에 발사해 다수의 인원을 기절, 제압하는 방식의 무기이며, 일종의 테이저건의 클레이모어 형태의 대량 제압형 무기다.

『세 번째, 원자번호가 큰 중원소의 핵에너지 활용을 금지합니다.』

세 번째 조건은 무슨 말인지 이과가 아니면 못 알아듣겠지만, 간단히 설명하면 원자폭탄 같은 핵무기와 원자력 발전을 모두 금지하는 내용이다.

수소 폭탄을 쓰면 되는 거 아니냐고? 그래. 그 비슷한 질문을 지구의 의지 중, ‘문화(文化)’의 사제가 했었지. 그리고 뜻밖에도 이과 출신인 올리비아에게 오지게 욕을 먹었더랬지.

수소 폭탄의 기폭제가 원자 폭탄인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면서. 그런 거다.

이 계약이 처음부터 ‘인간의 박멸’이 목적이었다는 게 여기서 드러난다. 인간이 외세에 대항할 수 있는 가장 자유로운 수단인 화약 무기와 핵무기를 금지했다는 부분에서 말이다.

뭐, 레이저 무기 시스템이 일부 도입되고 있지만, 그딴 거 어차피 못 쓴다. 소형화가 불가능한 무기이기도 하지만, 이 사건이 터지기 수년 전부터 만들었으면 모를까, 고작 석 달 가지고는 고정된 곳에 ‘설치’해서 제한적인 용도밖에 못 쓴다.

혹시 몰라 사 놓긴 했는데.

‘나중에 영지가 건설돼 봐야 알겠지.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일단 이게 워낙 첨단 무기이기 때문에 고장 나면 끝이다. 관련 기술자를 섭외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정밀한 부품을 만들 시설을 만들 수 없다.

콰앙―! 쿠우웅―!

잠깐 생각하는 사이 김포의 문수산과 강화도의 당산 그리고 개성의 남쪽을 Y자 형태로 흐르는 한강으로 기괴한 몰골의 존재들이 떨어졌다.

푸른색 피부에 노란 눈동자, 툭 튀어나온 주둥이에 아무렇게 돋아난 날카로운 이빨, 온몸에는 기이한 문신이 가득하고, 길쭉한 두 팔은 똑바로 선 자세였음에도 땅에 닿을락말락 한다. 그리고 체형은 모두 제각각이며, 종족도 하나의 종족으로 보이지 않는다.

차원 침공의 첫 번째 종족. 인간 멸족의 선발대. 강간마. 식인족.

“그린스킨…….”

통칭 ‘그린스킨’으로 불리는 괴물 놈들의 악취가 벌써부터 코에 닿는 느낌이다. 저절로 인상이 찡그려지고, 짜증이 솟구친다.

주변에 아무렇게나 박아뒀던 창을 신경질적으로 집어 레드 랭크의 마력을 부여하고,

“흐읍!”

투척한다.

쒜에에엑!

섬뜩한 소리를 내며 날아간 창이 근육질의 그린스킨의 머리를 뚫고, 그놈 뒤에 있는 놈의 가슴까지 관통하는 걸 확인하기 무섭게,

『First Blood!』

『인류 최초로 침략자를 살해했습니다.』

『마이너스 카르마보다 플러스 카르마의 양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보상으로 ‘각성’을 부여합니다.』

『오류. 이미 각성한 각성자입니다.』

『보상을 수정합니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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