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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에 나만+장르가 이상하다-14화 (14/183)

14화

<영지 선포>

영지를 선포하는 건 해당 능력을 발현한 순간 내가 서 있는 곳을 기점으로 영지가 설정된다. 그런 설명이 있었다.

당연히 사전에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 나와 우리 일행이 어디에 영지를 건설할지를 이것저것 따져가며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힌트가 지구의 의지들을 통해 전해졌다. 해보면 안다나? 그래서 지금 이곳 바다와 강, 그리고 산이라는 조건이 모두 적용된 김포에서 고유 능력을 발현했다.

파아앗―!

파란색 홀로그램이 눈 앞에 펼쳐진다. 일명 ‘눈뽕’이라고 하는 섬광탄을 맞은 것처럼 눈이 부신데, 내 주위로 모인 일행은 오히려 실눈을 뜨고 있는 나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눈이 빛에 익숙해졌고, 푸른색 빛으로 이뤄진 홀로그램이 나를 중심으로 밟은 땅에 이어질 영지라는 걸 알아차리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흠. 공터에는 나중에 내성 같은 게 들어서려나? 이게 성벽인가?”

영지 중심에는 누가 보더라도 일부러 비워 둔 것처럼 보이는 아주 넓은 공터와 한쪽에 이슬람 모스크 양식의 종교 시설을 떠올리는 둥근 지붕의 건물이 떡 하니 들어섰다. 또한, 영지 경계를 따라 솟은 성벽이 영지를 둥글게 감싸고 있으며 동서남북 네 방향에 성문이 있다.

특이한 건 산과 강으로 보이는 지형이 성벽 바깥이 아니라 성벽 안쪽, 그러니까 영지 안쪽에 있었고, 그만큼 성벽 전체의 길이가 엄청 길다. 축소된 홀로그램 상으로도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원래 이런가? 아니지 않나? 성벽 바깥에 농경지나 산이 있는 거 아닌가?”

[영주]라는 클래스를 얻은 뒤, 영지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해서 삽화나 역사서 같은 것도 찾아보고 그랬다. 그런데 그때 봤던 영지랑 어딘가 다르다.

영지의 성벽이 아니라, 국경지대의 장성(長城)이 떠오를 정도로 성벽이 길다. 생각보다 훨씬 긴 성벽을 빤히 바라보자, 성벽이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푸른색 홀로그램이 확대된 거다.

‘이래도 되나?’

너무 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확대한 성벽을 확인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무네.”

재질이 나무였다. 흔히 말하는 목책 같은 느낌으로. 이 정도라면 이해할 수 있다. 나무라고 무시할 수준도 아닐 거고.

거기까지만 확인하고 영지를 소환하겠다고 결심하자,

『최초 영지 건설 이후, 영지를 이주하기 위해서는 대량의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가 필요합니다. 지금 위치를 중심으로 영지를 건설하시겠습니까?』

여러 의미가 담긴 시스템 메시지가 출력됐다.

‘옮길……, 수도 있는 거였어? 영지를? 통째로?!’

대량의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옮길 수 있는 게 어딘가.

‘아, 일단은 오케이.’

또 생각에 빠지려는 순간 주변에서 걱정스럽게 나를 보며 사부작사부작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우, 우와!!!”

“와아아아!!”

“이게 영지에요? 와아아!”

“어디까지 넓은 거야!”

내 눈만 어지럽히던 푸른 홀로그램이 크게 확장되며 모두의 눈으로도 볼 수 있게 됐다.

푸른빛으로 윤곽만 나타내던 영지는 어느새 기존의 북한의 영역인 개성과 강화도를 넘어서는 넓이로 퍼졌다.

‘진짜 이래도 돼?’

북한에서 ‘남조선 애미나이, 지금 선 넘은 거네? 이거이 도발하는 게 아니고 뭐이간? 인민의 힘으로 불바다를 만들어주갔어!’ 이러면 어쩌냐?

걱정도 잠시.

영지가 건설되는 건 다른 토지를 침범하고 그러는 게 아니었다. 이건 마치 내가 밟고 있던 땅이 마치 빽빽한 문장 속에 파란색 폰트로 붙여넣기를 한 것처럼 ‘화악!’ 넓어지면서 새로운 땅이 생겨난 거나 마찬가지.

“?!”

새롭게 생겨난 토지 위로 작은 홀로그램으로 봤던 것들이 중심에 있는 공터를 시작으로 착착 들어서기 시작한다.

어디선가 나타난 나무들이 기어이 빼곡하고 단단하게 목책을 이루고, 마찬가지로 나무로 된 성문이 내려와 자리를 잡는다.

“와아!”

“비슷한 게임 같은 거 본 것 같은데?”

“이야~. 우리 대장 멋있다~!”

작은 소음도 없이, 기적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입이 떡 벌어지는 넓이의 영지가 완벽하게 들어서기까지 걸린 시간이 딱 1분이다.

『최초 영지(領地)[Rank: Red] 건설이 완성됐습니다.』

『지금부터 일반 능력 [영지 관리]의 잠금이 해제됩니다. 일반 능력 [영지 관리]의 랭크가 영지 랭크에 맞춰집니다. 랭크가 상승합니다.』

『기존의 영주 소유의 토지를 밟고 있던 영지민 19,763명의 영지민이 영지로 이동됩니다.』

파아아아앗―!!

동시다발적으로 영지 곳곳에서 빛무리가 일어나면서 인종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은 다양한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뭐, 뭐야?! 이거?!”

“어?! 난 자고 있었는데?”

“여긴?”

“선생…님?”

웅성대며 갑자기 바뀐 환경에 놀란 이들. 다만 생각보다 소란스럽지 않은 이유는 영지민의 80% 가까운 인원이 성인이 아닌, 우리가 돌보는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영지 관리. 카르마 포인트 노출.”

일반 능력 [영지 관리]의 잠금이 해제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오르기 무섭게 나는 이 능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회귀 전, 누군가 그랬다. 고유 능력은 ‘권능’에 가깝고, 일반 능력은 권능을 다룰 수 있게 해주는 ‘재능’에 가깝다고.

지금까지 영지가 없어서 잠겨 있던 재능이 개화되면서 저절로 고유 능력 [영지]에 대해서 이해하고 다룰 수 있게 됐다.

단순히 내 허락과 상관없이, 단순히 내 소유의 땅을 밟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이곳으로 이동된 사람들이다. 저들 중에는 악인이나 분탕종자, 사기꾼 등이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일반 능력 [영지 관리]로 영지민이 된 이들의 카르마 포인트를 노출시켰다. 마치 게임에서 NPC 위에 이름과 직책이 뜨는 것처럼.

플러스 카르마와 마이너스 카르마 포인트가 각각 출력됨과 동시에 플러스 카르마가 높은 사람과 마이너스 카르마가 높은 사람의 외형이 달라진다.

정확하게는 그들의 머리 위에 있는 숫자에서 빛이 흘러나온다. 플러스 카르마가 많을수록 찬연한 밝은 빛이, 마이너스 카르마가 높을수록 어둡고 음울한 그림자가.

밝은 빛이 영지민 몸을 감쌀 때는 그저 그랬던 반응이 어둡고 음울한 그림자로 얼굴이 뒤덮인 사람이 나오자 본능적으로 그 사람에게서 멀어졌다.

“가서 잡아 와.”

“네! 오빠!”

“알겠습니다.”

“다녀올게요~.”

영지는 넓었지만, 영지 중앙에 위치한 내성이 들어설 공터와 최대한 가까운 곳에 소환된 이들을 모으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웬만한 3층 주택보다 더 높게 지어진 이곳, 건물의 5층 높이에서 뛰어내렸음에도 다친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이게 바로 각성자와 비각성자의 차이다.

전성기의 단련한 운동선수라고 해도 스탯이 화이트 30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그 화이트 랭크를 넘어 레드 랭크에 진입한 각성자들.

“어어! 이거 안 놔!”

“넌 뭐…켁!!”

“꾸엑!”

각자 반항하는 폼이 제법 폭력적이지만, 저렇게 야리야리하고 아름다운 여성들에게 기절하거나, 정신이 깨어 있는 상태로 머리나 목이 잡혀 끌려오는 걸 보면 각성자가 가진 힘이 얼마나 인외의 힘인지를 확연하게 증명해주는 장면이다.

내가 구매한 세계 각지의 땅은 각자 독특한 무언가가 있다. 하다못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산이라도, 그 안에는 최소한 양질의 철광석이라도 묻혀 있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우리가 설립한 보육 시설뿐만 아니라, 여러 자원이 매립된 지역이 대부분이다. 당연히 내가 그리고 우리가 계획한 사람이 아닌, 예상 밖의 인원이 소환될 수 있다는 것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지금 타이밍은 각성한 사람이 전 세계 70억 인구를 뒤져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즉, 현시점에서 마이너스 카르마가 존재하는 것도 어처구니없는 일인데, 마이너스 카르마가 플러스 카르마의 열 배 이상 되는 사람은,

“개자식이지.”

상종하면 안 되는 인간쓰레기이자, 잠재적 약탈자가 될 연놈들이다. 약 2만의 인간 중, 무려 1,107명이나 되는 놈들이 개자식들이다.

심지어 이 2만 중에는 아이가 75%에 해당하는 1만5천이고, 아이들을 돌보는 성인들은 우리가 특별히 선별한 존재들이 태반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림자에 휩싸일 정도의 악인이 1,107명이라는 건 엄청난 거다.

‘저러니 지구의 의지가 인간을 박멸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거지.’

2만에 약간 미치지 못하는 무작위 인원 중, 인간이 동족을 ‘두 번 이상’ 살해한 경험이 있는 인원이 1,107명이나 있다는 거니까.

“아니 잠깐만. 그렇게 넘어가기에는 너무 많은데? 살인범이, 그것도 최소 둘 이상 죽인 살인범이 5%가 넘는다는 소리잖아? 100명 중에 5명이 살인자야? 그것도 둘 이상을 죽인?”

“요한님.”

괴물의 피가 묻은 오피스 레이디 정장을 입고 달려오는 올리비아의 얼굴에는 예상치 못한 문제를 마주한 난감함이 드러난다.

“무슨 일 있어?”

“몇몇 나라의 보육 시설을 습격하려는 이들과 습격한 이들이 있었답니다. 특히 아프리카 쪽에 속한 국가에서요.”

“…왜?”

보육원을 굳이? 어디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보육원에 돈을 쌓아 놓은 것도 아닌데?

“이유는 여러 가지라고 판단됩니다. 건물이 다른 건물에 비해 좋게 지어졌고, 식량도 넉넉한데다가, 여러 비싼 물건들이 있었다는 것도 이유일 겁니다. 또한, 건물이나 물건은 덤이고 아이들을 원하는 놈들도 있으니까요.”

“애들? 애들은 뭐하게?”

“어릴 때부터 데려다가 미리 교육해서 병사로 써먹는 거죠. 왜 그런 사진 못 보셨어요? 열 살도 안 된 것 같은 아이들이 AK 소총을 들고 있는 거?”

“그딴 것도 조기 교육하나? 미친놈들. 어쩐지 개새끼들이 많다 했어.”

“그러게요. 깜짝 놀랐지 뭐예요.”

올리비아가 각성의 영향인지 평소와 달리 더 장난스러운 말투로 보고하는 사이에 한 명도 빠짐없이 마이너스 카르마가 넘치는 개자식들은 내성 성문 앞에 차곡차곡 모여들었다.

“[영지 관리] 전체 공지. [이곳으로 모여라.]”

공지가 나간 순간부터 사람들이 이동하는 게 느껴진다. 이건 일반 능력 [영지 관리]가 아니라, 고유 능력 [영지]의 영향인 것 같았다.

고유 능력의 강제력인지, 아니면 방금까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휙휙 움직이며 몇몇 사람을 쥐어패는 걸 봐서 그런 건지,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아이와 어른 구분하지 않고 모두 내성 앞에 모여들었다.

그렇게 막 사람들이 대부분 모였을 때,

“우, 움직이지 마!!”

뒤에서 꼼지락거리던 털보 놈이 벌떡 일어나 아이를 뒤에서 잡고 권총을 머리에 겨누면서 외쳤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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