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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에 나만+장르가 이상하다-15화 (15/183)

15화

<아이언맨도 총 든 나쁜 사람 많이 죽였어요!>

뒤에서 꼼지락거리던 털보 놈이 벌떡 일어나 아이를 뒤에서 잡고 권총을 머리에 겨누면서 외쳤다.

“병신인가?”

만약 다른 상황이었다면 긴박한 인질극이 될 여지가 있었겠지만,

“차라리 칼을 꺼냈어야지. 멍청아.”

이제 지구에서 총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식품에 불과하다. 아, 들고 휘두르거나 던져서 맞추는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뭐?”

“쏴 봐. 나도 궁금하네.”

“미, 미친놈이! 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이 새끼야!! 지, 진짜 쏜다!!”

놈에게 태연히 다가가는 동안 오히려 잡혀 있는 아이보다 권총을 손에 쥐고 있는 저 병신 같은 놈이 더 겁을 먹은 것처럼 보였다.

“쏴 보라니까? 나한테 쏴 봐. 자.”

“으악!!”

놈의 팔을 비틀어 아이를 풀어주고, 권총을 내 이마에 밀착하고 겁을 주자 시선이 모인다. 시선이 모일수록 오히려 놈이 겁을 먹고 달달 떨더니 다리에 힘이 풀린 것처럼 주저앉는다. 이마에 대고 있던 총이 내 손에 들어온 건 당연한 수순.

내 쪽을 향해 있던 총구 방향을 바꿔 조금 전 아이를 인질로 삼았던 게 무색할 정도로 겁을 잔뜩 먹은 놈의 머리를 겨누었다. 그리고,

“빵!”

“흐악!!”

철컥!

조이는 맛 없이 바로 방아쇠를 당겼지만, 역시나 공이가 딱딱한 무언가를 때리는 허무한 소리만 난다.

“역시 안 되네. 거봐. 차라리 칼을 들었어야지.”

몸을 돌리고 어느새 준비한 건지 연단 비슷한 것을 만들어 놓은 곳으로 올라가 여러 감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눈을 훑으며 입을 열었다.

“다들 이상할 거야. 아니, 온통 이상한 것 투성일 거야.”

“…….”

“갑자기 자신이 살던 장소가 아니라, 엉뚱한 곳에 나타난 것도 이상하고, 내가 한국말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언어가 죄다 다른 너희가 조금의 오역 없이 모두 알아듣는 것도 이상하고, 내 옆에 있는 이들의 인간 같지 않음 움직임도 이상하겠지.”

“…….”

“아, 평소 너희 걸음으로는 이렇게 빠르게 이동할 수 없을 텐데, 제법 오래 걸어야 할 거리를 10여 분 만에 도착한 것도 이상할 거야. 조금 전에 총을 쐈는데 멀쩡한 것도 이상하고, 눈앞에 메시지가 출력되는 것도. 전부!!”

“!!”

“이상하지 않은 게 없을 거야. 그러나 지금 너희가 명심해야 할 건 그런 의문이 아니야. 이제는 이런 ‘이상함’이 ‘평범함’이 되는 세상이라는 걸 인정하는 거야.”

알아듣지 못할 내용이었으니 웅성거려도 할 말이 없는데, 사전에 뭔가 언질을 받은 건지, 아니면 세상이 달라졌다는 걸 아이라서 본능적으로 느낀 건지 8할에 해당하는 아이들은 오히려 더 똘망똘망 빛나는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대충은 알아들은 것 같군. 이제 그렇다면 이 자식들을 모은 이유부터 설명하겠다. 올리비아가.”

“예?!”

“대략 요점만 설명해.”

“예?!”

업무 짬처리를 당한 직원이 상사를 향해 눈으로 욕하는 것처럼 나를 지긋이 바라보던 올리비아가 마지못한 얼굴로 단상으로 향한다.

솔직히 난 이런 느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일종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느낌이랄까? 마치 산 속에서 조난한 사람이 119 헬리콥터를 본 것 같은 표정과 감정 말이다.

회귀 전에도 저런 눈빛 때문에 그렇게 자기희생적인 삶을 살았다. 절반 정도는.

이번 생에는 더 저런 눈빛을 받겠지만, 괜찮다. 이번 생은 그러지 않을 거니까. 단지 그냥 옛날 생각이 불현듯 떠올라 잠시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는 사이 올리비아가 대략적인 설명을 마쳤다. 지구는 변화하고 있고, 인간은 종말의 위기를 맞았으며, 외계의 생명체나 다름없는 괴물의 침입에 인간은 각성을 할 수 있다. 또한, 각성하지 않아도 지금 순간부터 자신의 카르마 포인트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까지.

“설명은 대충 끝냈고, 이제 이놈들을 잡아 온 이유를 알아야겠지.”

간략한 설명은 금방 끝났다. 대략 요약하면 ‘각성자가 아닌데, 마이너스 카르마가 높아 그늘이 질 정도면 사람은 최소 다섯 이상 죽인 살인범이다.’였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표정이 전보다 더 애절해졌다는 거다. 그러니까 살인범이 눈앞에 백 명이 넘는데, 아이들은 마치 어미를 바라보는 젖먹이처럼, 수만 쌍의 애절하고 반짝이는 눈동자에 기가 질릴 뻔했다.

‘이거 좀 이상한데?’

아이라서 겪는 트라우마라고 하기에도 너무 과하다. 뭔가 이상할 정도로 맹목적이라고 할까?

‘마치 각인 효과를 받은 새끼 새처럼……? 설마?!’

고유 능력 [영지].

무려 지구의 의지가 ‘하이 리스크 하이스트 리턴’이라고 장담할 정도의 클래스 [영주]에 하나밖에 없는 고유 능력.

내가 알기로 몇몇 상위 랭킹에 든 이들의 클래스는 아주 드물게 고유 능력이 두 개인 것도 있었다. 회귀 전에 그렇게 자랑하면서 증명한 놈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회귀 전에는 등장도 하지 않았으면서, 지구의 의지가 극찬한 [영주]라는 클래스의 고유 능력이 하나다?

영주(領主). 영지(領地). 그리고 영지민(領地民).

이 어딘가 비슷함이 느껴지는 단어들의 유사성이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다는 건가?

“음.”

가장 가까이 있는, 열 살이 안 된 것 같은 작은 키의 아이에게 다가가 몸을 낮춰 눈높이를 맞추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가야. 내가, 여기가, 지금 상황이 무섭지 않니?”

“저요?! 꺄아! 저요?!”

아이는 원하는 생일 선물을 받은 것처럼 돌고래 같은 비명을 지르며 기뻐했다. 분명히 이 분위기는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그 장면이 종말이 시작된 지금에 대비하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마치 인터넷에서 봤던 작은 새가 날갯짓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우와! 와아! 정말이죠?! 제게 말한 거죠?! 아! 전 하나도 안 무서워요! 아저씨는 그 아저씨잖아요!”

“그 아저씨?”

“회장 아저씨! 작년 여름엔 무지 덥고 힘들었는데! 내 방에 에어컨디셔너가 생긴 것도 아저씨 덕분이래요! 맛 있는 음식! 좋은 옷! 더는 냄새나지 않아요! 그래서 아저씨 좋아요! 보고 싶었어요!”

“…그래?”

“그리고 이상하게 아저씨는 하나도 안 무서워요! 이건 비밀인데요. 사실 저는 선생님들도 가끔 아주 조오끔 무섭거든요.”

속닥거리며 자신의 비밀을 몰래 알려주는 아이의 목소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 조용한 주변 분위기 때문에 못 들을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서 마른 웃음이 픽픽 세어나오는 데도 아이는 그저 내 눈을 바라보며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데 있죠. 아저씨~. 우리 이제 여기 사는 거죠? 회장 아저씨랑 같이? 네? 같이 사는 거죠? 맞죠?!”

“그…렇지? 맞단다.”

“우와!! 맞대! 맞대!”

갈색 머리카락이 팔짝팔짝 널뛰고, 주근깨가 있는 광대가 한껏 올라갈 정도로 신이 난 아이가 옆에 있는 아이들의 부러움 가득한 시선을 받는다.

‘이게 이래도 되나?’

내가 이들을 위해서 여러 투자를 한 것도 영향이 있는 것 같은데, 지금 반응을 보면 또 그것만이 이유가 아닌 것처럼 보인단 말이지.

비단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어른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갑작스럽게 변한 주변에 불안해 하던 것은 오히려 지금보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가 더 심했다. 지금은 그저 시선에서 나를 놓지 않으려는 게 눈에 보인다.

‘에이. 몰라. 나중에 기회가 되면 물어보기로 하고.’

“이제 저것들은 죽일 건데. 애들 보기에 괜찮겠으려나?”

올리비아와 아이들 사이사이에 있는 교사로 보이는 이들과 번갈아 시선을 맞추면서 물었는데,

“네. 오히려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호한 대답이 올리비아에게서 나왔다. 그 옆에 선 유다연 역시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인데?”

“적응해야죠. 그런 세상입니다. 이제.”

씁쓸하고 오래된 커피를 입에 머금은 것 같은 표정으로 아이들을 보면서 올리비아는 그렇게 말했다.

“당신들 생각은?”

보육 교사로 보이는 이들에게 물었으나, 돌아온 대답은 없다시피 했다. 당장 그들도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괜찮아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내 손가락을 덥석 잡은 건 작고 따뜻한 갈색의 작지만 거친 아이 손이었다.

“저 아저씨, 아줌마가 나쁜 거죠? 빌런! 히어로는 빌런 무찔러요!”

“그래도 눈앞에서 죽는 걸 보는 건 다를 건데?”

“괜찮아요. 아이언맨도 총 든 나쁜 사람 많이 죽였어요!”

어, 그래. 아이언맨이 잘못했네. 그건.

“그러니까 괜찮아요! 영주 님은 히어로니까요!”

“그……!”

『살존하지만, 드러나지 않았던 스탯. 관계 스탯 「충성(Allegiance)」을 개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클래스 [영주]의 전용 스탯 「위엄(Lordly-liness)」과 상호 작용하는 스탯입니다.』

『충성 스탯 「50」 이상일 때, 서브 클래스(Sub-Class) 영지민이 될 수 있습니다.』

『충성 스탯 「75」 이상이며, 서브 클래스로 영지민을 보유한 자는 영주에게 ‘직업’을 얻어 다른 서브 클래스로 전직할 수 있습니다.』

『충성 스탯 「80」을 초과한 영지민은 영주를 배신할 가능성이 한없이 낮아집니다.』

『충성 스탯 「90」을 초과한 영지민은 어떠한 경우라도 영주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충성 스탯 「100」에 도달한 영지민은 영주를 위해서라면 망설임 없이 죽음을 향해 뛰어듭니다.』

‘이건 또 뭐야?’

아 진짜, 이젠 나도 모르겠다. 이러면 회귀가 다 무슨 소용이야? 온통 모르는 일투성인데?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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