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창고>
“소유물의 조건이 뭐야? 아무거나 만지면 다 우리 거야?”
하지만 언제나처럼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인과율 어쩌고 하면서 대가가 크다는 거겠지. 그러니 몸으로 부딪쳐보는 수밖에 없다.
방금 제시 모건의 행동에 따른 메시지는 ‘잃어버린 소유물’이라는 조건과 ‘영지민’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영지민이라는 지위와 소유권에 대한 조건을 변경한다면?
“제시! 저기 멀리 있는 마을회관! 거기서 아무거나 집어와!”
“네~! 요한 오빠!”
제시 모건은 유다연과 함께 나를 ‘오빠’라고 부르는 몇 안 되는 사제다. 명랑한 대답 뒤, 붉은 마력이 제시의 몸에서 흘러나와 그녀를 감싼다. 육체 스탯을 일시적으로 상승시켜주는 버프일 거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이 부서지고 제시 모건이 빠르게 멀어진다. 그리고 대략 30분 정도가 지났을 때, 멀리서부터 빠르게 가까워지는 인영이 보인다.
“여기요! 오빠!”
제시는 마을회관의 많은 물건 중, 특이한 걸 집어왔다.
“너 그게 뭔 줄 알아?”
“몰라요! 그냥 예쁜 카드 같아서 가져왔어요~.”
마을회관에 있는 여러 물건 중, 제시가 가져온 건 손때가 묻은 화투 한 목이었다. 그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꽃이랑 여러 그림이 그려진 예쁜 카드 같겠지.
‘일리가 있긴 하네. 내 소유가 아닌 건 영지민이 습득했다고 해도 창고로 바로 이동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건 확인.’
“줘봐.”
“네에~!”
화투를 내가 손에 쥐자,
『소유권이 명확하지 않은 물건 ‘화투’를 창고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오류! 창고가 건설되지 않았습니다. 창고를 건설해주십시오.』
메시지가 여지없이 출력된다.
영지민과 영주는 창고로 옮길 수 있는 권한이 다르다. 소유권이 명확하지 않다는 건, 소유권자가 여럿이라는 의미도 되지만,
‘죽었을 때도 적용된다는 뜻인데?’
사망한 후에도 적용된다. 즉, 종말의 시간이 지날수록 창고로 즉각적으로 옮길 수 있는 물건이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좋네. 아니지.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닌가?”
하지만 이게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조금 전 제시 모건이 마을회관에서 화투를 손에 잡았을 때, 별다른 메시지가 출력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즉, 시간이 흐를수록 효과적인 일명 ‘파밍’을 위해서 영지민뿐만이 아니라 나 역시도 발로 뛰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영지 바깥으로.
그리고 그것은 나 역시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회귀 전처럼. 그렇게 불현듯 찾아온 트라우마 같은 걱정거리는,
“주인님. 괜찮으세요?”
이제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 내 옆에 딱 붙어서 마치 근거리 경호를 담당하는 것처럼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이 아름다운 엘프 덕분에.
“아아. 괜찮……?”
“!!”
엘리아나는 자신의 걱정 어린 시선에 대답하는 나를 두고 갑자기 가타부타 말이 없이 시위를 당겼다. 그녀의 활에는 화살이 걸려 있지 않았는데, 시위를 당기는 순간 노란색 마력 화살이 생성되는 신기한 장면을 선보였다.
땅과 수평으로 겨누던 활을 대뜸 하늘을 향해 높이 치켜들더니,
“흠…….”
숨을 멈추는 것과 동시에 시위를 놓아버렸다. 하나의 점이 되어 하늘로 날아간 노란색 마력 화살이 구름보다 조금 낮은 지점에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터졌다.
“엉? 뭐야?”
“퍼밀리어와 비슷한 무언가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인님. 이 땅을 확인하기 전에 요격에 성공했습니다.”
엘리아나의 말에 나는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한국과 주변 지역을 담당한 그린스킨 총사령관이 마법사나 주술사라는 것을 말이다.
‘아마 주술사겠지. 그린스킨이라는 종족이 수식을 정립하고 계산해서 진리에 다다르는 마법사는 될 수 없으니.’
이건 차차 고민할 문제이고,
‘창고(Depot) 건설.’
먼저 창고를 건설해달라는 메시지를 두 번이나 봤으니까, 창고 건설이 먼저다.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 1,000 포인트를 소비하여 「창고」를 건설하시겠습니까?』
‘그래.’
영지 조감도와 함께 초록색 영역으로 창고를 설치할 수 있는 공간을 표시한다. 내성의 여러 공터 중 한 곳을 선택하자,
『영지 건물 「창고[Rank: White]」를 건설하기까지 5시간 59분 59초가 남았습니다.』
『가신(家臣) 한 명이 존재합니다. 영지 건물 건설 시간이 5% 단축됩니다.』
『5시간 41분 55초가 남았습니다.』
『카르마 포인트 950 포인트를 소비하여 건설 대기 시간을 무시하고 즉시 건설 완료할 수 있습니다.』
영지 관리 메시지와 함께 창고 정보가 뇌리로 스며든다.
‘생각보다 너무 작은데?’
창고의 크기는 가로 100m, 세로 150m, 높이 25m다. 저래서는 여기 있는 컨테이너가 1할도 못 들어갈 거다.
지금 성벽 밖에 블록처럼 쌓여 일종의 성벽처럼 보이는 셀 수 없는 수의 컨테이너는 하이 큐빅이라고 불리는 40ft 컨테이너다. 스텐다드 40ft 컨테이너보다 높이가 1ft(0.3m) 더 높은 컨테이너로,
40ft(12.2m) × 8ft(2.44m) × 9.5ft(2.9m)
이런 규격이다. 컨테이너선의 단위는 TEU로, 20ft 컨테이너 1개가 1TEU다.
1만 TEU면, 20ft 컨테이너 1만 개를 실을 수 있는 선박이라는 뜻이다. 40ft는 5천 개 실을 수 있는 거고.
일전에 뉴스에 나와 난리가 난 수에즈 운하를 막았던 에버그린이 20,124TEU고, 가장 큰 컨테이너선이 23,964TEU라는 걸 참고하고, 성벽 밖에 쌓인 컨테이너의 산을 본다면 기겁할 법한 광경이다.
사방에서 몰려들어 포위당할 것을 염려해서 우리가 등을 진 김포의 문수산 쪽으로 성벽처럼 쌓여 있는 컨테이너는 대략 4만 개가 조금 넘는다.
이걸 여기까지 옮기는 데 들어간 비용만 천문학적. 오히려 왜 이걸 여기에 쌓는지 의아해하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빈틈없이 창고에 넣는다고 해도 4,310개 정도가 최대다.
『마이너스 카르마 포인트 950포인트를 소비하여 창고를 즉시 건설합니다.』
창고를 즉시 건설로 바꿨다. 그리고 넓게 퍼진 지구의 사제들, 이제는 각성자가 된 이들이 빠르게 컨테이너에 접촉한다.
『영지민 유다연이 탐색 중, 잃어버린 소유물을 채집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창고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영지민 샤디아 알마가 탐색 중, 잃어버린 소유물을 채집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창고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영지민 산드리아 밀레나가 탐색 중, 잃어버린 소유물을 채집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창고로 이동하시겠습니까?』
…
…
‘자동 입고.’
무분별하게 눈을 가릴 정도로 떠오르는 메시지를 치우면서 창고로 자동 입고되도록 설정을 변경하고 잠깐 창고 내부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다가,
‘어라?’
시간이 제법 흘러버렸다. 얼핏 보기에도 이상하리만치 컨테이너가 많이 줄었다. 거의 4분의 1은 사라진 것 같다. 그렇다면 벌서 1만 개의 컨테이너가 창고로 들어갔다는 건데?
‘내가 계산을 잘못했나?’
혹시 몰라 스마트폰의 계산기 애플리케이션으로 계산해봐도 마찬가지. 생각보다 훨씬 많이 들어간다.
“컨테이너 챙기고 내성으로 돌아와. 먼저 창고로 가볼 테니까.”
창고가 이상하다. 아무래도 이 창고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그런 창고가 아닌 것 같다는 촉이 왔다.
“엘라.”
“네. 주인님. 노임. 실라페.”
급한 마음에 이름만 불렀는데 용케 알아듣고 바람의 중급 정령과 땅의 중급 정령을 소환했다. 그 덕분인지 영지 최외곽인 성벽에서 중앙까지 5분도 걸리지 않고 도착했다. 땅의 정령이 땅을 밀어주고, 바람의 정령이 공기저항을 없애줌으로.
그렇게 도착한 창고의 문을 열자마자 난 이 상황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건지 알아차렸다. 아니, 정확한 수치는 몰라도 어떤 기작인지는 말이다.
“공간 확장?”
밖에서 볼 때도 창고는 넓었다. 창고의 영어 명칭이 Warehouse나 Storage가 아니라, 대규모 창고나 버스나 차량을 수납하는 거대한 창고나 기차역을 뜻하는 Depot이다. 그 말을 곧, 다른 기작 없이도 창고가 크다는 뜻이었다.
“그걸 고려해도 이건 너무 큰데?”
어느 정도냐고? 문에서 반대편 끝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건 보통 커진 게 아니다.
『창고 건설 후, 최초로 창고로 입장하셨습니다. 고유 능력 [영지] 부속 건물 「창고」의 로그가 업데이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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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 [Rank:White]
모든 종류의 자원을 저장할 수 있는 대규모 창고입니다. 이후 개방되는 여러 영지 시설의 부속 저장고 같은 것과 차원과 맥락을 달리합니다.
1. 영지 랭크에 따라 내부에 적용되는 공간 확장률이 상승합니다. 현 랭크(White) 기준 8배 적용 중입니다.
2. 영주 혹은 영지민의 모든 획득 부산물을 창고로 이동시킬 수 있습니다.
3. 생산 시설 혹은 가공 시설을 건설한 후, [도로]를 이어주면 자동 재료 보급과 생산물 자동 보관 프로세스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4. 「자판기」 생성 이후, 창고의 물건을 자판기에 등록할 수 있습니다. 모든 자원은 자판기 최초 등록 시, 1개를 영구적으로 소비합니다. 단, 창고 랭크가 일정 랭크 이상 도달해 있어야 합니다.
5. 특별한 연구 시설과 생산 시설을 건설하면, 몬스터 사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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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