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미친놈들아! 그만해!!>
성벽의 존재 의의는 이쪽은 일방적으로 공격하고, 적은 일방적으로 방어해야 한다는 불합리함에서 오는 이득에 있다.
프랑스에서 성벽을 부르(Bourg)로 불렀는데, 이것이 부르주아의 어원일 정도로 성벽 안쪽은 야만의 시대에도 안전함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성벽의 ‘불합리함 가까운 이득’만을 기대하기에는 적의 숫자가 너무 많다.
“오지게 많네. 바글바글하다. 이제 한강은 진짜 먹으면 안 되겠다. 오늘 하루 만에 그린스킨 5만 마리가 목욕했어.”
“오빠. 이쪽은 한강 하류로 보는 게 맞지 않아? 바다와 가깝잖아? 한강 상류는 다른 곳이겠지.”
“그런가? 그럼 서해가 오염되는 건가?”
“응응. 조개구이 좋아했는데. 쭈꾸미도.”
분명히 성벽의 이점이 사라졌는데, 유다연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걱정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왜냐고?
“준비는 다 했어? 이따 상황 파악 못하고 전투 중에 장난치면 혼나.”
가장 먼저 각성한 각성자들. 그러니까 지구의 의지가 손수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존재로 삼은 이들. 지금까지야 성벽에 의지해서 클래스와 무관하게 연사 석궁만 날렸지만,
“제대로 해.”
이제는 아니다.
“네에~!”
대표로 대답한 유다연은 사제다. 그것도 그냥 하급 힐을 발휘하는 보통 사제가 아니라,
“홀리―웨폰(Holy―Weapon).”
고작 레드 랭크 최상위 수준에서 백에 가까운 각성자의 무기에 일제히 홀리 웨폰을 부여할 수 있는 버퍼이기도 하다.
신성력.
그린스킨을 필두로 이후 지구에 침공하는 모든 빌어먹을 것들에게 상성상 우위를 점하게 하는 힘이다. 달리 표현하면 지구의 의지의 힘이라고 할까?
“좋아요! 폭발은 예술이죠!”
올리비아는 손에 들고 있던 석궁을 바닥에 내려놓고 선명하게 빛나는 두 팔을 휘젓는다. 그녀의 손길을 따라 마력이 휘몰아치고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다가,
“익스―플로전!!”
의지를 담은 외침에 ‘비밀스러운 술법’이 모습을 드러낸다.
콰콰콰쾅!!
폭약 수십 개를 터트린 것 같은 굉음이 바글바글 달려드는 그린스킨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 것도 그때였다.
단순히 마법 계열 각성자는 모두 올리비아와 같은 힘을 발휘할까? 유다연처럼 오십이 넘는 각성자의 무기에 신성력을 부여하는 건?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더욱이 침공 첫날인 오늘은 절대 아니다.
엄연히 따지자면 이들은 각성자 랭킹, 그러니까 그린스킨 침공 직후부터 각성한 순서대로 순위를 매기는 그 각성자 랭킹에 50위 안에 드는 각성자다.
본래 모든 것이 그렇지만, 이런 순위 매김에서 앞에 선다는 건 특별함과 같은 뜻이다. 거기에 더하여, 올리비아와 유다연을 비롯한 지구의 의지가 선별한 이들은 각성과 동시에 자신이 모시는 지구의 의지에게 특별함을 부여받았다.
올리비아가 신비 중 하나인 마법을 마치 수십 년 다뤘던 것처럼 능숙하게 다루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올리비아의 마법에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면 초록색 바퀴벌레 떼 같던 바닥에 커다란 공백이 생긴 것은 그 폭발이 단순히 소리만 요란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한다.
“좋아. 우리도 간다!”
열 명이나 되는 남녀가 성벽에서 줄 하나에 의지해 아래로 뛰어내린다. 네이선을 필두로 한 전사 계열로 각성한 각성자들이다.
바닥에 발이 닿기 무섭게 앞으로 튀어나가 그린스킨을 부숴버린다. 특히나 앨리샤와 벨라, 이 쌍둥이 자매는 똑같은 모양의 창과 방패를 들고 서로의 위치를 수시로 바꿔가며 순식간에 그린스킨을 죽이는 일련의 과정은 흡사 영화 300에 나오는 스파르타의 전사를 떠오르게 한다.
네이선과 리암, 빌리, 에단, 마이클, 제임스까지. 여섯 명의 남자들은 특수 제작한 방검복을 입은 채로 각자 각성한 능력에 따라 대검이나 두 자루의 검 혹은 장검과 방패 등을 장착하고 날뛰는 중이다.
마법으로 이목을 한 번 모으고 전사들이 날뛰면서 재차 어그로를 분산시켰다.
그러는 사이에 소형 석궁이 아니라 대형 석궁을 손에 쥐고 있는 각성자들이 있다. 각성 전 첫 번째 전투에서 쇼크웨이브 격발 장치를 손에 들고 있던 도로시를 비롯한 궁수 계열 각성자들이다.
“오라버니? 그거 꺼내주세요. 그거.”
그리고 이 도로시가 말하는 그거는,
“출고. 휘발유 20리터. 100개.”
화약이 사라진 세상에서 폭발물에 비견될 법한 화력을 내는 몇 안 되는 재료인 휘발유를 말하는 거다. 말통이라고 불리는 20리터 기름통 100개가 성벽에 순식간에 나타난다.
“자, 우리 꼬마 각성자들은 이거 하나씩 들고 가는 거예요~. 그리고 지정해주는 포인트에 던지는 거예요! 어렵지 않죠?”
“네에!!”
“네!”
…
어리지만, 충성 스탯이 높아 각성하게 된 아이들. 몸은 아이지만, 각성으로 성인 군인보다 더 강한 육체 능력을 보유한 아이들은 20리터 말통을 너무나 가볍게 하나씩 손에 쥐고 성벽 위를 달려간다.
“오라버니~. 더요!”
“그래……. 근데 너 왜 아까부터 나를 오라버니라고……?”
“네?”
“아니다. 출고. 휘발유 20리터. 400개.”
“셋에 날리는 거예요!”
“네에~!”
“네에!”
누가 들으면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박터트리기라도 하는 줄 알겠다.
‘하긴 뚝배기도 대갈‘박’이긴 하지.’
그렇게 성벽으로 균일하게 흩어진 500개의 말통이,
“하나~. 둘~. 셋!!”
유다연의 순수하고 경쾌한, 마력이 담긴 신호에 맞춰 동시에 하늘을 난다. 동시에 그 뒤를 맹렬히 쫓아 공중에서 말통을 터트리는 건 궁수 계열 각성자가 날린 대형 석궁의 대형 볼트들이다.
단순히 석궁의 힘으로 말통을 맞췄다면 터지진 않았겠지만, 각성자의 힘이 담긴 화살은 한 번에 대여섯 개의 말통을 터트릴 충분한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뿐만이 아니다. 특수병과 파수꾼의 화살은 애초에 가볍게 설계된 말통을 부수기에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화살이 쏘아지기 전부터 마력을 뭉텅이로 뿜어내는 존재가 성벽 위에 존재한다. 지금까지 거론 되지 않았던 지구의 의지의 사제 중 한 명인 세이디다. 세이디 월터스. 백인과 거리가 멀 것 같은 ‘청초한’이라는 형용사가 어울리는 여인.
평소 말이 없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세이디는 ‘공간 술사’라는 특수 계열로 각성했다. 그리고 말통과 화살이 충돌하기 직전,
“…귀환!”
성벽 밖, 땅에서 그린스킨의 녹색을 물결을 방해하던 이들의 등에서 빛나던 독특한 문양이 섬광으로 변한 순간 열 명의 전사들은 성벽 위에 나타났고, 500개의 말통이 허공에서 터지며 성벽 밖에는 휘발유의 비가 내렸다.
“공겨어어어억!!”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마법사 계열 각성자와 원거리 계열 각성자들의 마력이 휘몰아치며 휘발유가 냄새로 코가 마비될 것 같은 그린스킨의 머리 위에 각양각색의 불덩어리들이 쏟아져 내린다.
콰르르―! 콰콰쾅―! 화르르르르르.
곳곳에서 뭉쳐 있던 휘발유 구덩이와 마력이 섞인 화염이 만나며 굉음을 터트리는 것도 잠깐이다. 어느새 화염은 탁한 녹색의 물결인 그린스킨을 뒤덮는 붉게 타오르는 거대한 파도가 되었다.
그린스킨은 씻지 않는다. 애초에 목욕이라는 개념이 없는 괴물들. 그들의 몸에는 일단 불에 붙기만 하면 쉽게 꺼지지 않게 하는 무언가가 잔뜩 있다. 그리고 일단 입 근처로 오면 맛부터 보는 족속들이다. 위에 휘발유로 듬뿍 적셔졌으니,
“Krrrrrrrrrrrrrrrrrrrrrrrrrrrrr!!!”
비명조차 어딘가 고장 난 것처럼 갈라져 울려 퍼진다. 인간보다 커다란 덩치의 초록 괴물이 꿈틀대면서 타죽는 모습은 충분히 지옥의 재림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마! 이게 바로 지구의 과학이다! 다시는 지구인을 무시하지 마라! 빌어먹을 빡빡이들아!”
조금 특정 계층에게 굉장한 항의가 들어올 법한 내용이었지만, 도로시의 통렬한 외침처럼 그 지옥을 바라보는 천 명에 가까운 인간은 눈에는 기쁨과 성취감만이 가득하다. 왜 안 그렇겠나. 저 지옥에 빠져 죽어가는 게 인간을 잡아먹기 위해 온 괴물들인데.
“좋아.”
또한, 지옥을 떠오르게 할 정도로 불길과 휘발유와 그린스킨의 역한 기름으로 생긴 검은 연기에 가려진 지금이야 말로,
“엘리아나.”
적의 눈을 속이고 엘리아나를 적극적으로 쓸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네. 주인님.”
“저기 뒤에 보이지? 호위병에게 둘러싸여서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는 쓰레기 같은 것들. 꼴에 간부급이라고 일반적인 불에는 멀쩡해 보이는 저것들. 저격 가능하지?”
“네.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 그럼 지금 죽이자.”
“네.”
적어도 3km는 떨어져 있는 적의 저격을 명령했음에도, 마치 저녁에 라면이나 먹자는 말을 들은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다.
태연한 대답 만큼이나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활을 왼손에 옮겨 쥐고 시위를 당기는 것에도 일말의 망설임이나 신중함은 없다. 옐로 랭크임을 증명하듯 노란색 마력 화살이 나타났다 싶은 순간 시위를 놓고, 다시 빠르게 당기고 놓기를 반복한다.
정확히 일곱 번.
시간 차이를 두고 쏜 일곱 개의 마력 화살이 동시에 정예 부대의 간부로 보이는 그린스킨에게 날아간다.
어떤 화살은 그린스킨을 관통해 뒤에 있는 놈까지 죽이고, 어떤 화살은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주변을 지키고 있는 수호병까지 처리했다.
‘눈 깜짝 할 사이’라는 말이 절묘하게 들어맞을 정도의 찰나의 순간, 동시에, 13개의 정예 부대의 그린스킨 간부들이 사라졌다. 간부를 수호하던 수호병력과 함께.
“…와.”
그저 감탄 밖에 나오지 않는 기예. 10년을 넘게 식물인간이 되어 가이아 게시판 죽돌이였던 회귀 전의 나도 보지 못했던 아름다울 정도로 기술적인 활 솜씨다.
『그린스킨 정예 부대장 열두 마리, 천(千)대장 한 마리, 그리고 그들을 수호하는 근위부대를 격살하셨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업적입니다!』
『최초로 동시에 아홉(9)기를 초과하는 수의 간부 그린스킨을 처치하셨습니다!』
『최초로 천(千) 급 간부 그린스킨을 처치하셨습니다!』
『보상을 산정 중입니다!』
“엉? 이게 왜 떠?”
“네?”
“아니…….”
정확한 의문점은 이게 왜 나한테 뜨느냐는 점이다. 엘리아나가 잡았는데 왜 내 업적으로 산정되느냐고. 그것도 내가 처음으로 트롤을 잡았을 때처럼 보상을 산정하는데 시간이 걸릴 정도로?
“허공에 메시지 같은 거 안 보여? 예를 들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업적입니다!’ 같은?”
“아니요.”
정작 그린스킨을 처리한 엘리아나에게는 아무런 메시지가 출력되지 않는단다.
『보상 산정을 끝마쳤습니다.』
『1. 72시간 동안 영주가 획득하는 모든 카르마 포인트가 100% 증가합니다.』
『2. 72시간 동안 영지민이 획득하는 모든 카르마 포인트가 50% 증가합니다.』
『3. 영지로부터 얻는 모든 카르마 포인트의 획득량이 영구적으로 10% 증가합니다.』
『4. 영주 전용 스탯이 대폭 상승합니다. 「위엄」 스탯이 레드 랭크의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5. 영주 전용 아이템을 수여합니다.』
『6. 현재 그린스킨과 전투 중임을 확인했습니다. 해당 전투가 종료된 후, 전투 결과에 따라 보상이 추가로 책정됩니다.』
『5번 보상을 수여할 아이템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의견충돌이 발생했습니다. 지구의 의지가 각자 자신의 힘이 담긴 아이템을 수여하기 위해서 논쟁하는 중입니다.』
‘미친놈들아! 그만해!!’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