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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에 나만+장르가 이상하다-24화 (24/183)

24화

<무한으로 즐겨요냐?>

과한 보상이다. 과하다는 말보다 더한 무언가로 표현하고 싶지만, 당장 떠오르지 않아서 과하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세상일이 그렇다. 머피의 법칙처럼 나쁜 일이 몰려오는 것처럼, 좋은 일도 연달아 일어나고, 경악할 일 역시도,

“주인님.”

단발로 끝나지 않는다. 엘리아나가 보기 드물게 놀란 눈을 한 것만 봐도 그렇고,

“응?”

“앞에…….”

눈앞에 동동 떠 있는 반지에서 하나의 색이 아니라 무지개처럼 여러 색을 동시에 내뿜고 있는 걸 보면 확실하다.

“미친놈들.”

누군가 작정했다는 게 느껴진다.

이거 비슷한 거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이 있다. 무지갯빛을 뿜어내는 아이템. 주인을 선택하는 아이템.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아이템. 카더라 식으로만 전해지던 아이템.

“이거 실존하는 거였어?”

붉은색의 ‘일반’ 등급도 아니고,

노란색의 ‘민담’ 등급도 아니고,

초록색의 ‘역사’ 등급도 아니고, 파란색의 ‘설화’ 등급도 아니며,

보라색의 ‘신화’ 등급도 아니다.

도시 전설로만 내려오던 무지개처름 일곱 빛깔로 빛나는 ‘창세(Genesis)’ 등급.

장비의 등급을 설명하기에 앞서 먼저 각성자 장비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를 설명해야 등급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

장비는 그린스킨을 비롯한 침략자 괴물들을 사냥하다 보면 나온다.

당연한 소리를 뭐 이렇게 거창하게 하는 거냐고? 이 아이템 시스템은 게임처럼 몬스터를 죽이면 렌덤하게 아이템을 드랍하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영지를 건설하기 전, 그때 상대한 그린스킨들은 모두 죽었고, 그 시체는 그대로 사라졌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땅으로 녹아내린 눈처럼 지구로 스며들었다.

시체를 지구가 먹는 거냐고? 비슷하지만 다르다. 지구의 의지는 자신들이 사기를 당했다는 걸 깨닫고 어떻게든 지구가 오염되는 걸 막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 혹은 대가가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업’,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카르마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지구의 의지는 그린스킨이라는 종족이 가지고 있는 지독한 악업에 주목했고, 그 시체에서 그 업을 추출했다고 한다. 여기부터는 내가 아는 게 아니라, 재신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니까.

그린스킨을 일정 개체 이상 사냥하면 시체가 지구에 스며들고 그것이 업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그중 일부를 환급해서 돌려주는 게 장비다. 그래. 여기서도 느껴지지 않는가. 지독한 인간혐오가.

그리고 설명에서 눈치 빠른 사람은 알아차렸겠지만, 이 장비가 등장하게 된 건 멸망이 시작하자마자가 아니라, 지구가 오염되기 시작한 뒤, 그러니까 시기상으로 2년 가까이 지난 뒤였다.

이번에는 조금 빨라지겠지만, 역시 1년은 지나야 할 거라고 짐작했는데, 웬 걸? 눈앞에 떡 하니 나타났네?

‘그것도 창세 등급이.’

일반(Normal) 등급은 말 그대로 일반 등급이다. 마력을 받아들이는 모든 종류의 장비들. 마력을 받아들일 수만 있으면 된다. 즉, 영지민들이 사용하는 연발 석궁도 어떤 의미에서는 일반 장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아이템화가 된다면 말이다.

민담(Folktale) 등급은 소소하게 전해지는 구전이 담긴 장비들이다. 그 범위가 동네 수준으로 전해지는 옛날이야기, 도시 전설 같은 것들이 스며들어있다. 신기한 것은 대부분의 민담에는 ‘무서운 이야기’가 스며든다는 거다.

예를 들어, 화장실 귀신이 사용하던 부엌칼이라던지, 참전 용사가 사용하던 철모 같은 거나, 마을을 지키는 서낭당의 금줄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지역마다 아니, 학교마다 학교 괴담 하나씩은 있으니까.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역사(History) 등급은 말 그대로 역사적인 인물이 쓰던 물건이 나오는 거다. 한국으로 치면 김유신의 말이라던가, 양만춘의 활 같은 것들.

설화(Legenda) 등급은 민담 같은 이야기에 역사가 더해진 것들이다. 예를 들면 주몽의 활, 부여의 해모수가 썼다는 용광검 같은 역사에 기록되어 있으나, 너무 말이 안 돼서 쉬이 믿을 수 없는 효과를 지닌 것들.

마지막으로 신화(Mythology) 등급은 말 그대로 신들이 사용하던 이야기를 담았다. 제우스의 아스트라페, 포세이돈의 트리아이나, 북유럽 신화의 수르트가 사용하는 레바테인 같은 것들까지. 말 그대로 신화에 등장하는 무기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내가 계속 ‘이야기가 담겨 있다.’라고 설명했다. 단순히 그 무기가 아니라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한 이유는 장비는 이야기에 나오는 것 같은 외관을 지니고 있지 않다. 평범한 외형에 이야기에 나오는 ‘효과’가 담겨 있는 게 포인트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유명한 역사 급 무기 이순신 장군의 쌍룡도는 ‘물 위에서 전투 시, 지지 않는다.’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무조건 이기는 게 아니라, ‘지지 않는다.’였지만 이 무기를 가진 각성자는 부산에서 바다를 낀 거대한 쉘터를 형성해서 왕처럼 살았다.

창세(Genesis) 등급은 언제 이야기 해줄 거냐고?

모른다. 말했잖은가. 도시 전설 같은 이야기라고.

멸망 이후, 인터넷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유튜브 같은 것도 당연하고. 그러나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은 지구의 의지들은 인간이라는 종족이 너무나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것에 공감했다.

그래서 인간의 스트레스 해소와 본능적으로 정보를 모으려는 습성을 위해 카르마 포인트로 언제, 어디서든 이용할 수 있는 게시판을 만들었다.

그곳에는 유튜브처럼 동영상을 올릴 수도 있고, 공략 글을 올릴 수도 있으며, 경매장처럼 물건을 거래할 수도 있다. 카르마 포인트만 내면, 손가락으로 터치지 않아도, 의지만으로 보고 들을 수 있다.

식물인간이 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카르마 포인트로 게시판을 샅샅이 뒤지며 영상을 보는 일뿐이었다. 글을 쓰는 건 할 수 없지만.

아침에 트롤을 잡으면서 ‘고인물 챌린지’ 같은 게 유행했다고 했잖은가. 어디서 챌린지가 유행했겠나. 세상이 망했는데, SNS 같은 게 될 리가.

그곳에서 음모론처럼 떠들던 이야기가 있었다. 신화 등급 이상의 아이템이 있을 거라고, 이름은 창세 혹은 태초 등급일 거라고.

그것도 식물인간으로 누워만 있다 보니 시간이 남는 나니까 아는 수준의 도시 전설이다. 보통 각성자는 바빠서 그런 음모론 같은 글은 읽지도 않았을 거다.

‘그런데 그게 진짜 있는 거였어?!!! 실화라고?!’

여전히 자신의 존재감을 발휘하는 반지를 조심히 잡았다. 반지를 손에 쥔 순간,

“읏?”

머릿속을 파고는 정보와 몸으로 들어오는 기이한 힘에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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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 군주의 인장 [Rank: Genesis]]

태고(太古)라고 명명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근원’들의 이야기와 힘을 담은 반지입니다.

1. 「정복(征服)」의 힘이 담겨 있습니다.

2. 「번영(繁榮)」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3. 「통치(統治)」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4. 「군주(君主)」의 이야기와 힘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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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하는 「정복(征服)」, 「군주(君主)」, 「통치(統治)」, 「번영(繁榮)」은 모두 지구의 의지의 이름이다. 즉, ‘이야기’와 ‘힘’의 주체가 지구의 의지라는 말이 된다. 유다연의 몸일 빌려 단순히 동행하는 것만으로도 돈을 쓸어 담게 했던 재신의 그 힘을 떠올려보면.

“이런 걸 고작 인간인 내게 준다고? 이거 지구의 의지들에게 문제가 생긴 거 아냐?”

[문제는 없습니다.]

단호하면서도 명료한 여성의 음성이 귀 아니, 머릿속을 울린 건 그때였다.

“뭐……야?”

[마스터께 처음으로 인사를 올립니다. 저는 [정복 군주의 인장]에 속한 자율 능동 관리 시스템입니다.]

응? 뭐? 자율 능동 뭐? 그게 뭔데?

[편하게 에고 소드의 에고 같은 것과 비슷하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물론 제가 검 같은 것에 갇힌 검령(劍靈)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지만요.]

뭐야? 심지어 자존감도 높아?

[일단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자세한 건 뒤로 미루고 빠르게 처리할 부분을 처리하면서 추가적으로 설명하겠습니다. 시스템.]

『[전체 공지] 지구 차원 최초의 태초(Genesis) 등급의 아이템이 제작되었습니다!!』

아직 날이 밝은 하늘임에도 어디서나 선명하게 보이도록 존재감을 드러내는 시스템 메시지는 전체 공지라는 글자를 강조하며 나타났다.

『최초로 태초(Genesis) 등급 보유자가 되었습니다.』

『업적 보상으로 호칭 「장비 전문가」를 획득합니다.』

『업적 보상으로 접두사 「지구가 도와주는~」을 획득합니다.』

애초에 이 장비 자체를 업적 보상으로 받았는데, 장비를 받았다고 거기에서 또 업적이 생겨? 무한으로 즐겨요냐?

“이래도 되나. 진짜.”

[됩니다. 일단 호칭 「장비 전문가」는 아이템 성능을 45% 증폭시켜주는 칭홉니다. 착용하셔야 해요. 접두사 「지구가 도와주는~」은 육체 스탯과 클래스 스탯이 아닌 숨겨진 스탯 「행운」을 개방시켜 꾸준히 증가시켜줍니다. 이 역시 장착하셔야 합니다.]

접두사? 접미사도 있어? 아니, 그것보다 칭호 시스템도 있었어?

[아뇨. 이번에 만들었습니다. 마스터께서 예상보다 월등하게 잘 해주셔서 첫날부터 칭호가 등장했네요. 칭호는 일찍 얻을수록 이득이니까요. 어서 장착하세요. 어서요.]

신이 난 목소리로 재촉하는 그녀? 에고? 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각성자 상태창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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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자 정보>

1. 이름(Name): 이요한

2. 칭호(Title): 지구가 도와주는 장비 전문가 [―]

2. 국가(Nation): 대한민국

3. 소속(Clan): None

4. 직업(Class): 영주(領主)

5. 카르마(Karma)

[선업(Plus Karma) 1#$.#@# ⏫]

[악업(Minus Karma) [email protected]#,@#$ ⏫]

6. 스탯(Status)

신체[Rank: Red]

[근력 41] [민첩 41] [체력 41] [내구 41] [마력 41]

특수[Rank: Orange]

[위엄 %$⏫]

히든[Rank: Red]

[행운 1]

<고유 능력>

1. 영지(領地)[Rank: R]

<일반 능력>

1. 영지관리 [Rank: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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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도대체 이게 뭔 일이야?

[왜 그러시죠? 마스터?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문제? 문제 투성이다. 저 표시도 제대로 안 되는 카르마 포인트는 그렇다고 치자. 지금 2만이나 되는 그린스킨과 전쟁 중이니까. 그런데 왜 위엄 스탯이 저 모양이냐고. 미친놈들인가 진짜.

“위엄 스탯은 왜 이래? 랭크가 아예 상승해버렸는데? 그런데 영지 랭크는 또 레드네? 위엄에 맞춰서 상승하지 않고? 숫자도 안 나오고?”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전부 설명할까요?]

“그……! 아니. 아니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하지만 나중에 다 설명해야 할 거야.”

[저의 존재 이유는 마스터를 모시는 것. 전 언제든 가능합니다. 마스터]

장비의 에고(Ego)라고하기에는 감정이 듬뿍 담긴 호언장담을 뒤로 하고, 칭호를 장착하기 무섭게 손안에 놓인 반지에서 뿜어지는 영롱한 무지갯빛이 손 틈으로 비집고 나온다. 어서 자신을 손가락에 끼라고 재촉하는 것처럼.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정복 군주의 인장]을 왼손 검지에 끼워 넣자마자 난 성벽 위가 아니라, 다른 곳에 서 있었다.

황량한 허허벌판의 너른 대지 곳곳에 피와 뼈, 그리고 부러진 병기들이 가득하고, 텁텁한 흙먼지의 냄새에도 숨겨지지 않는 피비린내와 시체가 썩는 냄새. 이곳은 전쟁의 폐해가 시각과 후각으로 전해지는 끔찍한 땅이다.

“빌어먹을! 드디어 만나는군.”

“말을 조심하세요. 그는 희망입니다.”

“불행하게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군.”

갑자기 땅에서 솟은 것처럼 나타난 세 명의 남녀.

검은색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갑주를 입은 중년과 노년 사이의 남성은 입고 있는 갑옷뿐만 아니라, 드러난 살과 망토에도 핏자국이 가득하다. 나타나자마자 ‘빌어먹을!’ 이라는 외침을 내뱉은 남성은 ‘노익장’이라는 단어와 ‘피비린내’라는 단어를 연상케 한다.

반대편에는 깔끔한 한복 느낌이 나는 옷을 정갈하게 입고, 먼지 한 톨 용납하지 않는 남성이 마치 대비되는 것처럼 서 있다. 이 남성은 온유하면서도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냉정함이 드러난다.

두 남성이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가 너무 상반돼 다가가기는커녕 보고만 있어도 불편한데, 그 사이에 자리한 여인은 그런 건 아무렇지 않은 듯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빤히 보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나 등장할 법한 특이한 옷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외모와 미소는 두 남자의 칼 같은 분위기를 어느 정도 중화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몸은 정복(征服)이다.”

“번영(繁榮)이에요.”

“통치(統治)라고 불리고 있소.”

그제야 내가 왜 이 빌어먹을 정도로 구역질 나고 불쾌한 공간에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내 손에 낀 창세 등급 반지 때문이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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