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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에 나만+장르가 이상하다-25화 (25/183)

25화

<사실 그러려고 부른 게 맞아요>

간혹 그런 도시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었다. 특별한 몇몇 장비는 장비가 주인을 선택한다고. 시련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던가?

그래. 내가 말했다시피 도시 전설 같은 소리다. 어디까지나 카더라식으로 알려진 소문이었다. 가이아 게시판에서 내 친구의 동료의 파티원의 세컨드의 삼촌이 그랬다는 식으로. 이 정도면 남이지.

이 카더라가 헛소리로 치부되지 않고 그나마 힘을 받았던 이유는 엑스칼리버의 주인 헬레나 요하네스 때문이다.

언젠가 유다연과 내가 언급한 엑스칼리버 신화의 주인.

엑스칼리버의 이야기를 내려받은 아이템을 착용하고, 간부 급부터 총대장 급 그린스킨의 목을 따고, 멸망을 부르는 것들의 편에 선 인류의 배신자인 ‘침식된 자’들은 헬레나라면 경기를 일으키며 피해다녔다.

지구를 배신하고 멸망을 부르는 것들의 편으로 돌아선 뒤, 인간의 악랄함과 지구인이라는 지형적 이점, 그리고 침략자들의 힘을 물려받아 그린스킨을 비롯한 이후 등장하는 괴물을 부하로 데리고 다니는 괴랄한 것들이 바로 침식된 자들이다.

그런 그들이 헬레나가 어느 지역에 있다고 소문이라도 나면 그 지역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을 정도니, 그녀의 대인, 대괴물 능력이 얼마나 대단했겠나.

그녀가 창세 등급 아이템의 주인이라는 루머의 주인공이 된 이유는 그녀가 쉘터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36시간 때문이다.그것도 어느 날, 평소와 같던 날, 갑자기, 사전에 어떤 기미나 그런 것도 없이 말이다.

어쩌면 그때 그녀도 엑스칼리버의 시련을 받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지금 그렇게 생각한다.

“엑스칼리버? 아! 인간의 동화 말인가?”

“동화라고 하기에는 사실을 기반으로 한 거잖아요. 설화라고 해야 맞죠.”

“소설에 가깝소.”

뭐야? 내 생각을 읽는 거야? 하긴 지구의 의지들인데. 재신도 처음에 그랬고. 그건 넘어가고,

“언제 나갈 수 있습니까? 저는?”

지금 밖이 한창 전투 중이라는 게 문제다. 생각하고 보니까 빡치네. 아니, 지금 밖에서 그린스킨 놈들이 바글바글한데, 왜 이때란 말인가?

“반지를.”

반지를 착용한 건 내 의지 아니었냐고? 그럴 리가. 일단 사람을 홀리게 하는 무언가는 분명히 이들의 힘이 작용하였을 거고, 그것에 앞서 능동 관리 시스템이라는 에고가 빨리 착용해보라고 재촉하기까지 했다.

“그렇군.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나?”

어쩔 수 없다고? 하! 삐뚜룸하게 올라간 입꼬리와 숨길 수 없다는 듯이 흘러나오는 눈웃음. 저거 비웃는 거다. 분명히 비웃는 거라고!

“장난은 거기까지 하세요. 정복. 그리고 시간은 걱정하지 마세요. 요한님. 지금 외부의 시간은 이곳과 다릅니다. 우리가 충분히 한 시간 대화를 나눠도 밖은 몇 분 밖에 흐르지 않아요. 이곳은 엄밀히 따지면 요한님의 의식 속이니까요.”

“맞소. 시간은 걱정할 게 아니오.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으니.”

중요한 거? 지금 전쟁보다 더? 내가 갑자기 맞이한 이 상황에 대한 당황스러움보다 더? 그게 뭔데?

“너. 네가 문제다.”

이번에도 정복이다. 그는 답답하고 한심한 사람을 보는 것 같은 감정을 숨김 없이 드러냈다. 흔히 매운맛 스트리머라고 하는 사람들의 게임 장면을 보는 시청자처럼.

“나? 내가? 내가 뭘?”

솔직히 지금까지 정말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태생이 쫄보에 아싸기질이 넘쳐나는 내가 했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그걸 말하는 게 아니에요. 정복은 그리고 우리는 당신을 걱정하는 겁니다. 요한님.”

“나를요?”

처음으로 생각이 아니라, 말이 먼저 튀어나왔을 정도로 번영이 한 말은 어딘가 의미심장했다.

“그렇소. 이요한 공.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요한 공의 정신이 걱정이오. 요한 공은 회귀를 경험했소. 더군다나 소설에 나오는 시간을 거스른 자들과 달리 공이 간접적이면서도 직접적으로 경험한 이 멸망은 처음부터 공이 알던 것과 많이 달라졌지.”

그건 맞다. 단순히 나비효과 따위가 아니라, 장르가 변경된 것처럼 달라졌다.

“그래서 작은 것에도 놀라고, 큰 것에는 더 놀라는 네가 문제라는 거다.”

아니 님아. 이게 무슨 대놓고 깐다는 앞담화야? 태생이 쫄보로 태어났는데, 어쩌라고. 그래서 그냥 죽는다니까, 굳이 나서서 자살을 못 하게 막아? 여기까지 끌고 온 게 누군데?

“쫄보라고요? 호호호.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도 보세요. 지구의 의지가 어떤 힘을 가졌는지 가장 잘 아는 분이 태연하게 할 말을 다 하고 계시잖아요?”

‘말’을 한 건 아니지. 엄밀히 따지면. 그냥 생각을 한 건데 당신들이 읽는 거지.

“우리가 생각을 읽을 수 있는데, 생각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게 할 말을 다 하는 거외다. 요한 공.”

아니, 근데 아까부터. 나 지금 뭐 3:1 토론 배틀이야? 왜 번갈아가면서 나를 갈궈? 말투도 다 제각각이어서 더 엉망이야. 집중 견제를 받는 느낌이라고.

“흥! 허약하기는!”

근데 정복은 여기 오기 전에 뭐, 다른 지구의 의지한테 다구리로 처맞기라도 했나? 왜 저래?

“어머! 어떻게 알았어요? 재신과 몇몇 플러스 카르마를 담당하는 이들에게 한 소리 듣긴 했어요. 요한님에게 깊이 관여하지 말라고. 호호.”

그랬구나. 그래서 뭐?! 내가 갈궜어? 왜 나한테 지……. 음음. 그래. 지적질이야!?

“아무튼, 다시 우리 이야기로 돌아와서, 요한 공. 비록 우리가 한 번은 실패한 이들이고, 멍청하고 성급하게 일을 처리해서 이 사태까지 왔으나, 우리도 제법 많은 준비를 했소. 그러니 너무 놀라거나, 의심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소. 믿어주시오.”

음? 잠깐만 뭔가 이상한데?

“내가 놀라는 게 당신들을 믿지 못해서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개성적인 세 명의 고개가 동시에 아래위로 움직인다.

“아닌데요?”

“그럴 리가 없잖소. 요한 공이 ‘그만해라! 이 미친놈들아!’ 라던가, ‘제정신이 아니네. 이것들!’ 이런 말을 했잖소. 그것 말고도 많지만, 이 말들은 하나 같이 ‘다수의 대상’을 지칭하고 있소. 그러니 그게 우리일 수밖에.”

이게 이렇게 되나? 아, 설마?

“그래서 창세 아이템을 만든 겁니까?”

“맞다. 내가 아니, 우리가 주장했다. 너의 클래스와 가장 어울리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게 우리니까. 그러나 카르마 포인트가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반려되었다.”

“그랬는데, 마침 그린스킨 여섯 총사령관 중, 가장 자존심이 높고 허영심이 강한 놈의 담당 구역에 요한님이 포함된 거예요. 놈은 선발대 하나가 통째로 사라진 것에 의문을 품었고, 눈을 보냈죠. 그리고 그 눈은 요한님의 얼굴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강제로 파괴됐어요. 혹시 주술사나 마법사, 비술을 다루는 이들의 원견에 대해서 아시나요?”

“아뇨.”

“거의 모두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매개체를 가지고 원거리를 관찰하는 것들이 파괴되면 시전에게 영향을 주게 되오. 경지가 높을수록 반발력은 줄어들지만. 어쨌든 놈은 총사령관 중 처음으로 지구에서 ‘자신의 피’를 본 머저리가 되었소. 그것도 침공 첫날에 말이외다.”

머저리가 되었다라.

“그래. 다른 그린 스킨 총사령관들은 전형적인 그린스킨 족속들이지. 오거, 트롤, 오크 같은. 하지만 놈은 주술사, 그것도 하이퍼 고블린 대주술사로 다른 총사령관을 무식하다고 비난했는데, 일이 이렇게 된 거지. 그러니 그 겉멋만 잔뜩 든 하등한 고블린 놈이 열을 받겠냐? 안 받겠냐?”

솔직히 모르겠다. 나는 저런 스타일이 아니니까 감정이입이 안 된달까? 애초에 지가 먼저 무시를 한 거잖아?

“그래요. 당신은 그런 사람이죠.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드물게 자비심이 넘치는.”

이게 맥락이 맞아? 자비심하고 조금 전, 내 불평하고? 어딘가 이상하다고 대화가.

“바로 이런 반응을 말하는 것이오. 시답잖은 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공은 어떤 의미에서는 보는 맛이 있겠지만, 다른 의미로는 불안해 보인다오.”

그게 왜 또 내 탓이야?

“맞다. 네 탓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너를 만나는 이유이기도 하고. 아까 말을 이어간다면 멍청한 고블린은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무리하게 병력을 투입했다. 덕분에 당분간 한국은 다른 다른 나라보다 안전하겠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지만 말이야.”

“물론 당장 전투를 치르고 있는 요한 님 입장에서는 너무 쉽게 말하는 거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이번만 잘 처리하시면 당분간 오늘 같은 전투는 없을 거예요. 한국에 투입할 예정인 그린스킨의 절반 이상이 요한님의 영지로 쳐들어온 거니까요.”

하지만 그린스킨 종족은.

“맞소. 그린스킨은 비정상일 정도로 번식력이 빠르지. 잉태를 할 수 있는 모든 여성 종족을 상대로 임신을 시킬 수 있다는 것도 그 원인일 터. 하지만 그것 역시 괜찮소. 이번 전쟁이 끝나면 얻을 이득은 고작 우리의 의지가 담긴 반지뿐만이 아닐 테니.”

창세 등급의 반지를 고작이라고 말할 정도라고?

“이제 끝을 낼 시간이 왔다.”

아니, 뭔 사람을 불러놓고 지들 할 말만 하고 끝내?

“호호호. 사실 그러려고 부른 게 맞아요. 우리는 지금부터 몇 년은 잠을 자야 하니까요. 앞으로 다시 보게 될 날까지 오래 걸릴 테니, 잠깐 만나서 푸념 정도는 괜찮잖아요?”

어?

“그것 때문만은 아니오. 처음으로 제작한 창세 등급의 아이템이니, 요한 공의 몸에 맞추는 과정이 필요했소. 그것을 최단기간에 적용할 방법은 바로 이것뿐이니.”

잠깐. 그런데 아까 아이템에 이야기를 넣은 존재는 셋이 아니라 넷이었는데?

“군주(君主)? 그놈은.”

“그가 제일 노났죠.”

“요한 공과 함께 할 테니 말이오.”

네?

“너에게 적을 병탄할 수 있는 힘을 주노라.”

정복이 그렇게 말을 하고 흩어지듯이 사라졌다.

“당신의 힘이 닿은 곳은 부족함이 없을 거예요.”

따뜻하고 온화한 목소리의 변영이 사라지고,

“공의 치하는 언제나 명징하고 정명할 것이외다.”

냉철하고 이성적인 목소리를 끝으로 통치마저 모습을 감추기 무섭게,

“어?”

시야는 다시 전투가 한창 진행 중인 전장으로 돌아왔다. 무슨 소린지 절반은 이해하지 못할 말을 곱씹을 틈도 없이,

“올리비아 언니. 언니 바리공주 알아요?”

뜬금없는 유다연의 발랄한 목소리에 집중해야 했다.

바리공주를 묻는 유다연과 그녀의 손에 들린 녹색 빛이 흘러나오는 머리띠. 그렇다면 지금 유다연이 하려는 이야기는 역사(History) 등급 아이템에 대한 이야기 일 거다.

“무슨 공주?”

“알지.”

당연히 끼어들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무려 ‘설화(Legenda)’ 등급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바리데기, 바리공주 이야기를 품고 있는 역사 등급 아이템이란 소리니까.

“주인님!”

“오빠!”

“보스! 놀랐잖습니까! 괜찮은 겁니까?”

나를 지키고 있었는지 화들짝 놀라는 세 여인의 걱정보다 내 시선을 더 잡아 끈 건 저 아이템이다.

‘본래는 설화 등급의 힘을 가지고 있는데, 뭔가 살짝 부족해서 역사로 한 단계 낮아졌다는 건데. 아이템 적용 범위가 낮아진 건가?’

“그래서 그거 무슨 아이템인데?”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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