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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에 나만+장르가 이상하다-26화 (26/183)

26화

<아이템>

이요한이 아이템 때문에 의식 속에서 셋이나 되는 지구의 의지와 만나고 있을 때, 이요한을 따르는 지구의 의지의 사제들 이들 역시 아이템을 맞이하고 있다.

“으엥?!”

가장 먼저 아이템을 얻은 사제는 유다연이었다. 그녀가 단순히 열심히 버프를 주고 다녔다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그녀의 담당 지구의 의지가 현재 가장 힘이 강한 지구의 의지이니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

“오……빠아?”

유다연은 자신의 앞에 나타난 초록빛을 내뿜는 머리띠를 보며 반사적으로 이요한부터 찾았다.

직접 종말의 세상에서 맨몸으로 구른 이요한과 다르게 유다연은 회귀를 한 게 아니다. 회귀 전 이요한과 시간을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긴 하지만, 회귀 전 그녀가 이요한과 만난 시간은 이요한이 식물인간이 된 이후였다.

그러니 유다연의 회귀는 전투라는 측면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거다.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고, 이요한을 간호하기만 했던 유다연이 가장 잘 아는 건 이요한이라는 사람 자체?

그렇게 젖먹이 아기처럼 본능적으로 이요한을 찾은 유다연은,

“음.”

이요한의 상태를 단박에 알아차렸다. 어쩌면 가장 깊이 그리고 오래 지구의 의지와 연결되어 있었던 그녀이기 때문에 알아차릴 수 있는 부분이었다.

“엘리아나 언니.”

평소처럼 엘프 언니가 아니라, 이름을 부르며 다가온 유다연에게 엘리아나는 의문과 경계가 섞인 눈빛을 보인다.

“지금 오빠가 상위 존재를 만나고 있는 것 같아요. 자세히 보세요. 조금 다르죠?”

“그렇…것 같습니다.”

유다연의 말에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이요한을 꼼꼼하게 뜯어 본 엘리아나는 자책하는 말투로 인정했다.

“오빠 좀 잘 부탁해요. 혹여라도 이 중요한 순간에 우리 중 누군가 다치더라도 절대 나서지 말고.”

“당……! 그럴게요.”

아마 엘리아나가 하려던 말이 ‘당연하다’ 같은 거였다는 걸 엘리아나는 물론이고 유다연도 알았으리라. 그러나 유다연도 엘리아나에게도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요한이 지금 일종의 무방비 상태나 마찬가지라는 게 그녀들에게는 중요했다.

“보스! 제가 이런 걸……?”

당연히 다음 아이템의 주인은 범위 공격을 날리고 있던 올리비아였고, 그녀는 이요한에게 다가오다가 이요한을 양쪽에서 감싸고 있는 엘리아나와 유다연의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보고는 목소리를 줄였다.

“이게 무슨 상황이에요?”

올리비아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으나 두 여인도 아는 게 없으니 딱히 명확한 답이 나오진 않았다. 그저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 정도만 눈치껏 알아낸 올리비아도 이요한 옆에 섰다. 초록색으로 빛나는 패션 소품으로 착용하던 팔찌를 빼서 손에 들고서.

“그런데 다연. 이거 왜 이러는지 알아?”

올리비아가 아이템으로 변한 백금 팔찌를 손에 올리고 유다연에게 묻자,

“아마 그거 아이템일 거예요. 착용하면 능력치 같은 거 상승하는?”

“아?! 게임처럼?”

“맞아요. 올리비아 언니.”

“음…….”

그 이야기를 듣고 빤히 아이템을 바라보던 올리비아가 덥석 자신의 오른쪽 팔목에 팔찌를 차버렸다.

“어?! 언니!”

“음……! 음음.”

놀라는 유다연의 목소리는 올리비아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지금 그녀는 자신의 팔목부터 시작된 기이한 마력의 흐름을 느끼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후우…….”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는 짧디짧지만, 올리비아 본인에게는 제법 긴 시간이 흐르고 눈을 뜬 그녀는 깊은 한숨과 함께 ‘주황색’ 빛을 눈동자에서 쏘아냈다.

“언니?”

“이거 좋다. 너도 해봐.”

올리비아는 자신의 팔목을 차지하며 은은한 초록빛을 흘리고 있는 아이템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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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 주라투스 [Rank: History]]서로마 제국의 황제 호노리우스가 집필했다고 전해지는 마법의 책입니다.

서양 의식 마법의 흐름의 기원과 같은 책이며, 서양 마법의 인보케이션(소환)과 이보케이션(초환) 기법을 다루는 책입니다.

1. 마법 발현 시, 마력 효율이 15% 상승합니다.

2. 오렌지 랭크 이하 일 때, 최대 마력이 15 영구 상승합니다. 상승한 마력은 이 아이템이 파괴되거나, 아이템 소유권을 강탈 당하지 않는 한 유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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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이템에 마력을 흘리면 아이템 창이 뜰 거야.”

올리비아가 그렇게 말하자 궁금함을 이기지 못한 유다연이 아이템이 된 머리 띠에 마력을 주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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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서역 생명수 [Rank: History]]

바리공주 설화에 등장하는 서천서역의 생명수는 불치병을 치료하는 약입니다. 다만 완벽한 치료를 위해서는 감은 눈을 뜰 수 있는 개안초와 숨살이, 살살이, 뼈살이 꽃이 필요하기에 설화 등급에서 한 단계 하락해 역사 등급으로 책정되었습니다.

만약 ‘개안초’와 ‘살이꽃 세트’를 획득하면 아이템이 조합되어 설화(Legenda) 등급으로 상승할 수 있습니다.

1. 치료 행위의 효율이 50%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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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아~!”

유다연 특유의 아이 같은 감탄사와 가뜩이나 큰 눈이 더 커다래질 만큼 놀랐다. 그런 유다연의 반응에 올리비아가 궁금해 하는 건 당연하다.

“뭔데 그렇게 놀라?”

“올리비아 언니. 언니 바리공주 알아요?”

“무슨 공주?”

“알지.”

유다연이 묻기는 올리비아에게 물었는데, 답은 뜻밖에도 그 옆에서 들려왔다. 어느새 정신을 차린 이요한에게서.

“주인님!”

“오빠!”

“보스! 놀랐잖습니까! 괜찮은 겁니까?”

전투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그린스킨이 내지르는 괴성과 함성도 여전하고, 성벽에서 쏘아지는 대형 석궁의 활이 내는 섬뜩한 파공성도 여전하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이요한의 얼굴에는 여유가 가득하다.

“내가 얼마나 정신을 잃었지?”

“2분 17초입니다.”

“음…….”

이요한은 예상보다 시간이 더 많이 흘렀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의식 속에서 지구의 의지 셋과 대화를 나눈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은 것 같았기에.

‘아닌가? 그냥 그 대화가 즐거웠던 건가? 시간이 짧게 느껴질 만큼?’

“그것보다 유다연 아이템 어때?”

“이거 보세요!”

유다연이 내민 아이템의 이름은 머리띠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이름이었다. 생명수라니.

그리고 효과도 고작 한 줄.

하지만,

“…와. 금수저 사제가 또.”

그 내용은 오히려 한 줄 밖에 없는 아이템 효과가 개연성에 맞는 느낌이었다.

치료 행위 효율의 상승.

치료라는 모든 범주에서 마력 소비가 줄어들고, 요양이나 치료 기간이 줄어든다는 뜻이었다.

다만 치료 효과가 상승하지 않는다는 게 흠이라면 흠인데.

‘하긴 그것까지 됐으면 역사 등급이 아니라, 설화 등급이었겠지.’

더욱이 거기서 끝이 아니라, 몇 가지 아이템을 추가로 획득하면 하나의 온전한 이야기로 전승되어 설화 등급으로 상승한다는 내용도 있다. 등급 하나의 차이는 스탯과 달리 아이템에서는 엄청나다.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거다.

“좋은 거예요? 좋은 거죠? 좋죠? 그렇죠?”

재잘거리는 아기 새처럼 나와 내 손에 있는 아이템을 휙휙 소리가 다게 시선을 옮기면서 묻는 유다연의 강요 섞인 물음에,

“그래. 특히나 너에게는 엄청.”

이요한은 웃음 섞인 긍정의 대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다른 누구보다 유다연을 위한 아이템이었으니까.

“너는? 그것도 아이템 아냐?”

“맞습니다. 보스. 제게 적합합니다.”

“맞아. 아이템은 보통 그렇지. 너희가 ‘치운’ 카르마, 그러니까 지구에 들어온 마이너스 카르마 덩어리를 치운 보상이나 마찬가지니까. 어디 보자.”

“어떤가요?”

“좋네. 좋아. 좋은데.”

“좋은데?”

“서로마 제국의 황제 호노리우스? 알아?”

“네. 알아요. 음……. 정확하게 말하면 호노리우스는 모르지만, ‘교황 호노리우스의 서’는 들어 봤어요.”

“그래?”

이요한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책이지만 올리비아의 설명에 따르면, 서양 오컬트 쪽에서 제법 유명한 책이라는 올리비아의 설명에 그래서 역사 등급이었나라는 생각과 함께,

‘역시 유다연. 이 지구의 의지 중 가장 끗발이 센 재신의 사제답네.’

유다연의 아이템이 가지는 사기성이 다시 체감한다.

올리비아가 마력 효율 15% 상승도 분명히 좋다. 아니, 이것도 역사 등급에서는 보기 드물 정도로 좋다. 왜냐하면 ‘마력’은 거의 모든 클래스에게 필요한 스탯이며, 빌어먹을 침략자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공격이 무기에 마력을 두르는 것이었으니까.

그렇지만 고작 15% 효율상승.

하지만 유다연은 무려 50% 효율상승?

“응? 왜요? 오빠?”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이요한의 시선을 느낀 유다연이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라는 무해한 얼굴을 하고 되묻는다.

“됐다. 네가 무슨 잘못이겠니. 이게 다 극성 엄마 같은 재신이 문제지.”

“응?”

여전히 자신의 손에 쥔 머리띠가 얼마나 사기적인지 감을 잡지 못하는 유다연을 뒤로 하고 이요한은 자신을 향해 하나둘 하나둘 다가오는 사제들을 발견했다. 그들의 손에는 초록색 빛이 흘러나오는 아이템화 된 장비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이제 보니 재신이 문제가 아니라, 지구의 의지들 종특인 것 같은데? 종말 첫날 역사 등급 아이템을 뿌려?! 미친놈들 진짜. 어휴. 나중에 적폐니 어쩌니 하는 말 나오는 거 아냐?”

하지만 그 적폐와 불합리함의 극치가 바로 이요한 자신이라는 걸 그는 깨닫지 잊은 듯 했다. 다른 지구의 사제야 고작(?) 역사 등급이지만, 이요한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는 무려 등급조차 알려지지 않은 창세 등급이니까.

[마스터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기에는 좀…….]

당연하게도 사정을 모두 알고 있는 반지의 에고, 군주의 지적에,

“흠흠.”

이요한은 민망한 헛기침과 함께,

“슬슬 전투가 끝나가네.”

애써 말을 돌려야 했다.

그리고 이요한의 말처럼 전투는 곧 끝나가고 있었다. 무려 종말의 첫날 세 차례나 침공을 받은 길고 긴 하루가 말이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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