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침식된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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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소리겠지만, 이 글에 등장하는 시설과 인물, 상호나 지명 등은 모두 작가의 상상 속에 재창조된 것입니다. 혼동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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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한과 올리비아가 각각 올린 영상은 인터넷의 연결 여부와 상관없이 둘 중 하나는 거의 모든 지구인이 봤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이 난리로 인터넷이 끊긴 지역은 이요한이 올린 가이아 게시판의 영상을 봤다. 인터넷이 닿는 지역에 있는 이들은 올리비아가 올린 영상을 확인했다.
각성자가 아니면서 인터넷이 끊긴 곳의 사람도 있지 않냐고? 그래. 그런 사람들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둘 중, 하나다. 이미 각성한 지인이나 주변 사람이 도와서 각성한 후 영상을 확인하던가, 아니면 각성하기 전에 죽던가.
그런 식의 계산법이면 거의 모든이 아니라, 모든 생존자들이 확인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이 두 조건에서 비켜 나간 조건을 가진 이들이 있다.
“4552…….”
“이야. 우리 호랑이 교도관 나으리~. 몰골이 왜 그래요~?”
교도소에서 착용하는 죄수복을 입은 남자가 교도관 복장의 남자의 머리채를 잡고 여상하고 걱정이 된다는 듯이 묻는다. 하는 행동과 말투가 조금도 매치되지 않는 장면인데, 주변에 있는 이들은 익숙하다는 듯이 별 반응이 없다.
“미친 새끼들…….”
“아유~. 이 피 좀 봐. 어떻게 한데~. 그나저나 그거 해봐요. 그거. ‘떠들지 않습니다!’, ‘제대로 앉습니다!’ 이런 거!”
“…퉤!”
“어라?”
피가 섞인 침이 얼굴에 튀자마자 죄수복을 입은 남자가 교도관의 머리를 뽑아버렸다. 자기도 모르게 뽑았다는 듯이 당황해했다. 아니, 아쉬워했다.
“에이. 왜 이렇게 약해?”
“네가 강해진 거야.”
옆에서 음미하는 것처럼 담배를 피우던 남자가 그렇게 말했을 때야 마치 깨달았다는 듯이 ‘아!’ 하는 소리를 낸다.
“이 개새끼가! 누구 마음대로 사람을 죽여?!”
그때 뒤에서 거대한 덩치의 남자가 쿵쾅거리며 날아오듯이 뛰어나왔다. 어둡고 붉게 달아오른 얼굴의 남자는 교도관을 죽인, 가슴에 4552라는 번호표를 달고 있는 남자의 멱살을 잡으며 금방이라도 죽일 것처럼 굴었다.
“아아, 실수야. 실수.”
“뭐?! 실수?! 하!”
그리고 이 남자가 같은 수감자에게 화를 내는 이유는 흔히 말하는 사회통념이나 도덕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니다.
“이번엔 내가 죽일 차례였어! 막무가내로 서로 인간을 사냥하지 않고, 순서를 지키자고 한 것도 네놈이었지. 그런데 이제 와서 실수? 나도 실수로 네놈 목을 뽑아도 되겠네?”
“오케이. 오케이! 다음 내 순서를 양보할게!”
“하? 그건 당연한 거고 개새끼야! 그리고 너희 쓰레기를 어떻게 믿고 다음 순서를 기다려?!”
그럼 여기 죄수복을 입고 사람을 죽이는 수감자가 각성자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은 각성자가 아니다. 더 명확하게는 지금 교도관을 죽인 이 수감자를 비롯해 눈에 살기를 띠고 있는 이들은 절대 각성자가 될 수 없다.
이요한의 회귀 전과 회귀 후를 비교해보면, 각성 조건은 엄청 완화되었다. 언젠가 살짝 언급한 적이 있지만, 각성은 단순히 괴물인 그린스킨을 죽인다고 되는 게 아니다.
카르마 시스템이 판단하기에 각성할 당시 플러스 카르마가 마이너스 카르마보다 높아야 한다. 이요한의 회귀 전에는 플러스 카르마가 단순히 높다고 되는 게 아니라, 마이너스 카르마보다 몇 배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건이었던 걸 생각하면 조건이 엄청 완화된 거다.
그런 완화된 조건에도 이들은 절대 각성자가 될 수 없다.
을씨년스럽게 변한 교도소 내부의 쇠창살이 붙은 철문이 모두 개성 있게 휘어져 있다. 그 제멋대로 휘어진 철문에 어울리게 교도소 내부는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그 지옥과 같은 광경 속에서 태연하게 살아남은 이들.
낄낄거리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는 수감자들은 하나 같이 흉악범들이다. 단순히 살인이나 폭행뿐만 아니라, 거액의 사기를 쳤다거나, 연쇄 성폭행범이나, 인간에게 해악을 끼친 이들만이 남았다.
즉, 이들은 오히려 마이너스 카르마가 플러스 카르마의 수십 배인 존재들이라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들이 교도관을 감금하고 살해할 수 있을까? 그것도 사람의 목을 무슨 무 뽑듯이 실수로 쑥쑥 뽑는 걸 보면 각성한 게 아니면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들은 침식자다.
지구의 의지의 편에 서서 그린스킨을 비롯한 침략자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이들을 각성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침식자는 그런 이들과 정반대에 선 자들이다. 그린스킨을 비롯한 침략자들에게서 힘을 얻는 인류와 지구의 배신자들.
그걸 침식자라고 부른다. 이들은 마력이 아니라 마기를 사용하며, 각성자와 비슷하게 상태창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을 죽이면 강해진다. 그리고 그냥 죽이지 않고 그 과정에서 인간을 고통스럽게 할수록 더 많이 강해진다.
4552라는 죄수복을 입은 남자가 교도관을 괴롭히고 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순서를 어기고 먼저 사람을 살해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서로가 서로를 절대로 믿지 못하는 인류의 쓰레기들 사이에서?
“그럼 어쩌자고!!”
“어쩌긴! 죽어야지.”
누가 말리고 뭐할 새도 없었다. 근육질의 남자는 순식간에 멱살을 붙들고 있던 남자의 목을 뽑아버렸다. 4552가 교도관을 죽인 것과 똑같은 형태로.
“어어?!”
그리고 그가 침식자를 죽이기 직전까지 둘의 다툼을 재미있게 보고 있던 다른 침식자들이 기겁하며 그에게서 멀어졌다.
“누가 가서 어르신 모셔와!”
그리고 그 모습은 동료인 침식자를 죽여서 놀란 게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경계하는 모습이다. 마치 뜬금없이 나타난 맹수의 등장에 겁을 먹은 것처럼.
“크으으으.”
그리고 그런 두려움이 착각이 아니라는 듯이 가슴에 1171이라는 죄수 번호를 달고 있는 근육질의 침식자의 입에서 그린스킨에게서나 날 법한 짐승의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온 것도 그때였다.
“어이. 망치. 생각 잘 해. 어르신이 곧 오실 거라고.”
노랗게, 어두운 밤 산에서 만난 호랑이의 번들거리는 눈으로 그르렁거리면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침식자를 노려보며 입맛을 다시던 그는 ‘어르신’이라는 단어에 조금은 정신을 차리는 것처럼 보였다.
“크으.”
하지만 뭔가를 생각하는지 잠시 위쪽으로 향했던 눈동자에 다시 살기가 맺힌다.
침식자들이 이렇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까 말했잖은가. 이들에게 인간을 죽이는 것은 각성자가 그린스킨을 죽이는 것과 같은 행위라고.
그러면 여기서 문제.
침식자는 인간일까? 그린스킨일까?
인간이면서 그린스킨이다.
그렇다면 다시 문제 침식자가 같은 침식자를 죽이면?
“크으으으!”
지금처럼 된다. 침식자에게서 침식자에게로 힘이 전이된다. 100% 전이되는 건 아니지만, 평범한 인간 서넛 죽이는 것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이 생긴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이들 사이에서 살육전이 일어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니, 말이 안 된다. 본능에 충실한 이 쓰레기들이 살인의 순서를 지켜가면서 본능을 억누르는 건 더 말이 안 되고.
“이게 무슨 지랄이냐.”
그러나 이 남자의 존재가 그 불가능을 가능케 했다.
“어르신.”
침식자들에게 어르신이라고 불리는 남자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침식자가 된 지구인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유명한 남자이기도 하다.
27명의 여자를 성폭행 후, 죽인 연쇄살인범 차대두이기 때문이다. 그가 범한 여성의 연령대는 1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하다. 자신이 범한 여성을 그냥 죽인 것도 아니고 아주 잔인하게 살인했기에 더 공분을 사고 유명해진 40대의 남자.
가장 먼저 침식자가 된 그는 같은 방에 있는 수감자를 모두 죽이고 강해진 힘으로 문을 부수고 나와 자신을 막아서는 교도관을 죽이는 게 시작이었다.
차대두는 자신이 직접 침식자가 될만한 수감자를 선택했고, 그렇지 않은 수감자는 죽이거나 침식자가 죽일 ‘먹이’로 남겨놨다.
“망치야.”
“크으.”
차대두의 목소리에 난폭하고 원초적인 살기가 담겼음에도 망치라고 불린 침식자는 오히려 눈을 부릅뜨며 차대두를 노려보며 그르렁거렸다.
뻐억―!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여기 모인 침식자 중, 누구도 차대두의 손이 움직이는 걸 본 사람이 없다. 그런데 차대두가 휘두른 주먹에 맞고 망치가 벽에 날아가 쳐박혔다.
“망치야.”
“크으으.”
뻐어억!!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차대두가 휘두른 손을 본 사람은 없고, 그린스킨과 인간을 반쯤 섞어 놓은 몰골이 된 망치의 고개가 거칠게 흔들리며 이빨 조각이 날아다녔다.
“망치야.”
“예, 예에.”
빠아악!
이번에는 제대로 대답을 했음에도 차대두의 주먹은 쉬지 않았다.
“망치야.”
퍼어억―!
“컥! 에에.”
이번에는 오히려 대답이 튀어나오기 전에 주먹이 나간다. 이미 차대수의 눈빛에는 망치라고 불리는 침식자를 살려둘 마음이 없어 보였다. 무기질적인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가장 가까이 붙어있어서였을까? 망치가 누구보다 먼저 차대수의 눈에 담긴 살기를 읽어냈다. 그리고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자신이 죽을 거라는 것도 그는 인지했다.
“크와아아!!”
망치가 전력으로 힘을 내뿜자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탁한 회색 기운이 거칠게 흘러나온다. 마기다. 그리고 마기가 망치의 몸 밖으로 흘러나오자, 그의 외형이 그린스킨과 인간의 중간 정도로 변해간다.
아래턱이 튀어나오고, 피부가 어두운 녹색으로 변하고, 근육과 뼈가 커지면서 가뜩이나 큰 덩치가 두세 배 이상 커진다. 그 변화의 끝은 그린스킨의 특징 중 하나인 어금니가 툭 튀어나오는 것으로 끝난다. 마치 하프 오크 같은 모습으로 탁한 회색 마기를 내뿜는 모습은 누가 봐도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망치야.”
“크르르르릉!”
콰앙―!!
전과 같이 차대두가 주먹을 휘둘렀으나 이번에는 폭음과 함께 그린스킨으로 변한 망치의 주먹에 막혔다.
“내가 그랬지. 망치야. 침식자를 죽이지 말라고. 조만간 더 맛있는 각성자를 먹으러 간다고.”
하지만 차대두는 자신의 손을 막은 망치에 놀라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막힌 주먹을 거둬들이고 팔을 뒤로 당겼다.
콰아아앙!!
이번에도 역시 주먹이 막혔지만, 전과는 조금 달랐다. 차대두의 주먹을 막은 망치의 몸이 벽에 반쯤 파고들었다. 그리고 차대두의 오른팔이 망치와 비슷하게 변했다. 오직 오른팔만.
“너희끼리 서로 죽고 죽여봐야 제대로 익은 각성자 한 마리 먹는 것보다 못하다고.”
콰―앙!
“크와아아아앙!!”
망치가 휘두른 거대하고 빠른 주먹이 차대두의 변한 한팔에 쉽게 막혔다. 하지만 망치도 그건 예상했다는 듯이 미친 듯이 주먹을 뻗는다. 망치라는 별명이 그냥 얻은 건 아니라는 듯이 마치 만화의 소나기 펀치를 떠오르게 할 정도로 빠른 연속 펀치였다.
타타타탁.
하지만 그 만화 같은 주먹질이 너무 쉽고 당연하다는 듯이 차대수의 손에 막혔다. 그렇게 무감정하게 방어만 하던 차대두의 팔이 포탄처럼 발사된 순간,
콰득―!!
그린스킨을 닮은 망치의 머리가 내부에서 폭발한 것처럼 터져 사라졌다.
무거운 정적 사이사이 침식자들이 느끼는 공포가 스며들어 기괴하고 섬뜩한 고요를 자아낸다.
“하아! 염병.”
그 섬뜩한 고요를 깨부술 수 있는 이 자리에서 당연히 차대두뿐이다. 욕설이 섞인 한숨과 함께 주변을 둘러싼 침식자를 노려보던 차대두가 아직 식지 않은 살기가 담긴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내가 그랬지? 조금만 더 참으면 더 맛있는 각성자를 먹게 해준다고. 같은 침식자 먹는 것보다 침식자를 모아서 각성자를 습격할 때 쪽수를 채워야 한다고. 그런데 이런 사고를 쳐?”
그렇다.
이 인세의 지옥과 같은 교도소에서 규칙이 지켜지는 이유는 차대수의 저 계획 때문이다.
침식자가 힘을 얻는 매커니즘의 기본이며 핵심은 ‘인간 사냥’이다.
그냥 인간을 사냥할 수 있다.
그리고 침식자가 된 인간을 사냥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각성자가 된 인간을 사냥할 수도 있다.
상식적으로 어떤 게 더 많은 힘을 줄까?
차대두가 노리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아직은 종말의 극초기. 여기서 어느 정도 병력을 모아서 가까운 곳에 있는 주거지역이나 생존자 무리를 노린다. 거기에 각성자가 있으면 금상첨화.
“또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새끼도 이것과 마찬가지로 만들어준다. 힘을 탐하는 건 좋은데, 내가 정한 규칙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나를 이기던가 아니면 내게서 도망치던가. 둘 중 하나에 성공해라. 알아들어?”
“네!”
“네, 네네!”
“네. 어르신.”
차대두가 이끄는 809명의 침식자 무리가 부천시에서 움직인 것은 침공 첫 번째 날에서 두 번째 날로 지나가는 그 밤이었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