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클래스 세부 카테고리>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변했다?
원래 세상은 변해 있었다. 망조가 들어가고 있었지. 종말로 한 걸음씩. 아니, 한걸음이 뭔가 수십 미터씩 가고 있었을걸?
그래서 이 소설 제목에도 아포칼립스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거잖아?
누구랑 얘기하는 거냐고? 너요. 너.
아무튼, 지금 하려는 말은 그런 게 아니다.
『차원 침공의 첫날 그린스킨 침공을 성공적으로 저지하셨습니다! 경이로운 업적! 미뤄뒀던 업적 보상을 산정합니다.』
눈을 뜨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눈앞에서 반짝이는 메시지 때문이다. 미뤄뒀던 업적 보상? 그런 게 있었나?
[있었죠. 천(千)급 간부 처리 보상이 남았습니다.]
응? 아아.
[메시지 로그를 띄워드릴까요?]
“그런 게 가능해?”
[가능합니다. 마스터께서도 쓰실 수 있어요. 각성자에게 기본으로 부여되는 기능입니다. 알려지진 않았지만.]
“메시지 로그.”
────────────────
『1. 72시간 동안 영주가 획득하는 모든 카르마 포인트가 100% 증가합니다.』
『2. 72시간 동안 영지민이 획득하는 모든 카르마 포인트가 50% 증가합니다.』
『3. 영지로부터 얻는 모든 카르마 포인트의 획득량이 영구적으로 10% 증가합니다.』
『4. 영주 전용 스탯이 대폭 상승합니다. 「위엄」 스탯이 레드 랭크의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5. 영주 전용 아이템을 수여합니다.』
『6. 현재 그린스킨과 전투 중임을 확인했습니다. 해당 전투가 종료된 후, 전투 결과에 따라 보상이 추가로 책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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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런 내용이었다. 다섯 개는 모두 산정이 끝난 상태로 여섯 번째 것만 남았는데, 그게 이제 정산이 된 모양이다. 아니면 어제 전투가 끝나고 기절하듯이 잠이 든 내 사정을 봐준 건지도 모르고.
아무튼 지금 추가 책정되는 보상을 받을 순간이 왔다.
『침공 첫날, 그린스킨 부대 60,715마리의 침공 방어 및 섬멸에 성공하셨습니다! 또한, 천(千) 급 간부 열두 개체를 격살하셨습니다!』
『이는 차원 침공을 업(Karma)으로 살아가는 그린스킨의 역사에도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의 대패(大敗)입니다. 이는 그린스킨을 대적하는 입장에서는 전무후무한 업적입니다!』
『창세 등급 아이템에 귀속된 차원의 의지 군주(君主)의 이야기가 이 전무후무한 업적에 담깁니다.』
『창세 등급 아이템과 업적 보상으로 클래스 [영주]의 세부 카테고리를 조기 오픈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
소리 없는 비명이라고 할까? 사람이 너무 당황하거나 놀라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다는 말을 절절하게 실감했다.
왜냐고?! 제게 뭔데 그러냐고?!
클래스의 세부 카테고리.
이건 쉽게 말하면 그거다. 게임으로 치면 2차 전직 같은 것 말이다.
해봤냐고?
해봤겠냐!
내가 말했지. 눈만 움직일 수 있어서 너튜브 같은 가이아 게시판 죽돌이었다고. 그때 봤다. 많은 각성자들이 세부 카테고리 개방 전과 후를 비교해 놓은 영상을.
그리고 경악했다.
클래스의 세부 카테고리가 개방된다는 건, 기존의 고유 능력을 그대로 두고, 추가로 고유 능력과 일반 능력을 개방한다는 뜻이다.
이게 뭐 그렇게 경악할 일이냐고? 쉽고 이해하기 편하게 고유 능력 [영지]와 일반 능력 [영지 관리]를 떠올려보라.
각성 첫날.
무려 6만이 넘는 그린스킨을 처리할 수 있던 원동력은 [영지]에 있다.
그것과 같은 혹은 더 나은 고유 능력이 최소 하나가 더 생기는 거다. 일반 능력은 더 말할 필요도 없고. 어떻겠냐?
“진짜 X된 거지!”
누가 X된 거냐고? 누구긴 누구야. 그린스킨 놈들이지.
“어, 어떻게 하면 돼? 그 세부 카테고리라는 거?”
『아시겠지만 세부 카테고리 개방은 큰 힘이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무료로 개방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플러스 카르마(Plus Karma)와 마이너스 카르마(Minus Karma)를 각각 100만 포인트로 세부 카테고리 개방의 기회를 드립니다.』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와 마이너스 카르마 포인트를 합해서 100만도 아니고, 각각 100만.
이건 엄청난 양이다. 어떤 각성자라고 하더라도 벌벌 떨 법한 포인트.
난 아니다.
“기꺼이 지불할게!”
내가 벌어들인 포인트가 많아서?
물론 그런 이유가 없다고는 못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아마 내가 포인트가 없었더라도 대출이라도 받아서 열었을 거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세부 카테고리 개방하는 걸 눈만 움직일 수 있게 된 이후 가이아 게시판에서만 봤다고 했지? 그말은 다시 말하면 적어도 지금으로부터 7, 8년은 지나야 등장하는 시스템이라는 거다.
그걸 지금, 종말의 두 번째 날에 연다? 대출을 풀로 땡겨서라도 받아야지!!
『지금 클래스 세부 카테고리를 오픈하시겠습니까?』
“당연하지.”
『각성자 승인 완료.』
『플러스 카르마 포인트 1,000,000 차감.』
『마이너스 카르마 포인트 1,000,000 차감.』
『클래스 세부 카테고리 오픈.』
『각성자 이요한. 클래스 ― 영주(領主).』
『하나 밖에 없는 「유일(Only One)」임을 확인.』
『각성자 사망 시, 클래스가 소멸하는 「영혼 귀속」 페널티 확인.』
카르마 메시지가 연달아 출력되다가 멈추고,
『특이사항 발견! 차원의 의지 「군주(君主)」의 원영신이 각성자의 영육에 동화되었음을 확인!!』
“어?”
의문도 잠시. 저 이해할 수 없는 특이사항이 바로 내 손에서 이제는 주인인 나만이 볼 수 있는 찬란한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창세(Genesis) 등급 반지 [점령 군주의 인장]에 마지막 ‘군주’의 이야기임을 직감했다.
『모든 조건 확인 완료.』
『룰렛 오픈.』
거대하고 환하게 빛나는 반투명한 룰렛이 눈앞에 나타났다. 총 다섯 칸으로 이뤄진 룰렛. 각각의 칸은 신기하게도 모두 다른 색으로 채워졌다.
“이건 빨간색이고, 여긴 주황색, 여기도 빨간색이네? 그리고 이건 노란색인데? 설마 이거 초록색이야? 그린?! 이거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거야?”
[맞습니다. 클래스 세부 카테고리를 오픈하면 얻을 수 있는 고유 능력의 랭크입니다. 「영혼 귀속」이라는 최고 수준의 페널티와 유일 클래스라는 조건 때문에 그린 랭크까지 열렸나 보네요.]
빨간색을 제외하면 지금 내 고유 능력인 [영지]와 랭크인 오렌지(Orange)와 같거나 높다. 그런데 무려 초록색이라니!! 고작 멸망이 시작된 지 이틀째인 오늘 아침에 벌써 그린(Green) 랭크라니!?
[물론 룰렛을 돌려서 그린(Green) 랭크 고유 능력을 부여하는 세부 클래스가 나와야 하지만요.]
아. 맞네.
내가 그린 랭크만 보고 잠깐 정신줄을 놨었네.
어쩌면 당연한 소리겠지만, 붉은색이 가장 크고 넓었고, 그린 랭크로 갈수록 점점 칸의 넓이가 줄어들었다. 초록색으로 칠해진 칸은 붉은색 칸과 비교하면 3분의 1 아니, 4분의 1도 안 될 정도로 좁았다.
더 고약한 건 초록색 바로 양옆에 가장 넓은 붉은색이 차지하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더 좁게 보이면서 저곳에 룰렛이 멈출 가능성이 아늑히 멀게 느껴진다.
“하긴 이걸 기대한다고 될 리가 없지. 어휴.”
괜히 설레발을 떤 것 같아 창피하다. 심지어 혼자 있는 것도 아니고, 반지에 있는 에고가 빤히 지켜보고 있는데 말이다.
“이건 어떻게 돌리는 거야?”
『룰렛을 돌리시겠습니까?』
“당연히.”
『룰렛 스타트!』
다섯 칸에 칠해진 네 가지 색이 서로 섞이며 아름다운 빛이 뿜어져 나온다. 그 황홀한 광경을 보면서 녹색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빨간색 고유 능력만 나와도 감지덕지다.
무려 고유 능력을 추가로 얻는 거니까. 랭크야 내가 천천히 올리면 된다. 언젠가 주황과 노랑을 넘어 초록에 도달할 테니까.
촤르르르―.
맹렬히 회전하던 룰렛의 속도가 줄어드는 게 눈으로 보인다. 화살표 아래로 파란색 칸이 지나갈 때마다 몸이 움찔거리는 건 어쩌면 본능이 아닐까?
주황색, 붉은색, 초록색, 붉은색, 노란색, 주황색, 다시 붉은색…….
그렇게 돌던 룰렛이 멈췄다!
“그럼 그렇지.”
붉은색에 멈춘 룰렛을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히든 스탯이 행운이 움직입니다.』
그런 메시지가 뜨더니 룰렛이 마치 누가 살짝 건드린 것처럼 움찔 움직였다. 움찔하면서 움직인 룰렛이 이동한 건 고작 한 칸. 그래 고작 한 칸이었다.
“…허어?!!”
[호오?!]
다만 그 한 칸에,
“초록…색이라고?”
붉은색과 초록색이라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지만 말이다.
* * *
히어로 영화나 만화가 인기를 얻으면서 의외로 악역인 빌런들의 인기도 높아졌다. 매력적인 빌런의 역할이 만화나 영화에서 긴장감을 주고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하니까 어쩌면 당연하달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상의 세계인 만화나 영화 속에서나 그런 거다. 그게 현실이 되면 과연 빌런을 두고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확언할 수 있다. 아니라고.
종말 첫날의 밤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각, 이요한과 올리비가 올린 영상을 확인하며 조금이나 희망을 품던 이들이 많아질 무렵, 부천시의 남쪽의 부천시민운동장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는 지옥이 강림했다.
교도소에서 출발할 때는 1천 명이 안 되던 침식자들이 부천시를 돌면서 마이너스 카르마가 많은, 인간 측면에서 보면 애초에 싹수가 글러 먹은 인간을 침식자로 만들면서 그 숫자를 불려갔다.
그렇게 모인 인류의 배신자들은 어떻게든 생존한 이들을 무참히 살해했다. 더 경악할 만한 일은 그 뒤에 일어난다.
“정리 끝났습니다. 어르신.”
정리를 끝냈다는 침식자의 보고에 차대두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기를 일으켰다. 그렇게 십초? 이십초 정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시간이 지난 뒤, 하늘에서부터 운석이 떨어져 내린다. 그린스킨이다.
쿠웅―! 쿵쿵!
그린스킨이 땅에 내려 박히는 굉음이 연이어 들리면서 운석에서 그린스킨이 무더기로 나타난다.
“괴, 괴물.”
보통이었다면 이렇게 인간이 모인 곳에 나타난 그린스킨은 침을 흘리며 달려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나타난 그린스킨은 마치 잘 정련된 병사처럼 차대두의 뒤에 정렬했다.
“이동한다.”
그 광경을 보고 놀라는 침식자들과 생존자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차대두는 당연하다는 듯이 반응했다.
【■■―! ■■■■■■■■!】
그럴 수밖에 없는 그 순간 차대두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듣고 이해하기 위해서 전력을 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 ■■■■■■■■■■■■■■■■■■.】
“명심하겠습니다. 주인님. 병력을 더 모으겠습니다.”
【■■■.】
“황송합니다.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주변에 있는 침식자와 생존자가 보기에는 차대두 혼자 중얼거리는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차대두의 몸에서 회색 마기가 뭉텅뭉텅 나왔다가 빨아들인 것처럼 그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허어.”
차대두가 처음 침식자가 되었을 때를 제외하면 굳이 각성하지 않은 생존자를 죽이는 행위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거다. 그에게 침식자가 되도록 속삭인 인외의 존재에게 직접 미션을 받고 그걸 해결하면 보상으로 이렇게 압도적인 마기를 받기 때문이다.
“다들 모였나?”
“네. 어르신.”
“그럼 각자 흩어져 지정해준 곳으로 이동해 인간을 사냥하고 암컷은 데려와라.”
“예. 어르신.”
그리고 그날 저녁 부천시 대부분이 차대두와 침식자의 권역이 되었다. 이요한이 세부 클래스를 개화한 날이기도 했다.
『아포칼립스에 나만 장르가 이상하다?』
심행 퓨전판타지 소설
(주)조아라